직장 사정 때문에 원주와 광주에서 따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온 성도들과 함께 모인 시간이 저녁 7시 가까이 되었다.

1993년 7월 분당 매화마을로 이전한 교회에 그해 말까지 등록한 성도들 중 지금까지 이십 년을 한결같이 섬겨온 8명의 성도들과 제주도에서 여행으로 함께 모인다는게 꿈만 같았다.

그 때는 20代와 30代 초반의 젊고 싱싱한(?) 성도들이었는데 이십 년이라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어느새 40代 후반과 50代 초반의 장년 성도가 되어 이젠 같이 늙어가는 동무가 되었다.

이들 중 두 팀은 부부가 함께 등록하여 이번에 동행했지만 나머지 네 명의 성도는 혼자만 먼저 등록했기에 이번 여행에 배우자는 남겨두고 홀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일을 통해, 이 땅에서 아무리 부부와 가족으로 산다해도 구원은 결국 각자의 믿음으로 결정되는 것이요 예수님의 재림 시 이루어질 휴거 때도 분명한 자신의 믿음으로만 이뤄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아무리 부부라도 등록 햇수가 다르니까 지금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등록 20년차 성도를 위한 기념여행에는 어쩔 수 없이 따로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십 년 전 교회에 등록할 때, 이십 년 후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 해에 다른 성도들도 여러 명 등록을 했었지만 이사나 기타 사정으로 중간에 교회를 옮긴 이들도 있고 안타깝긴 하지만 중간에 미혹되어 시험에 든 채로 교회를 옮긴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도 다른 교회에서 지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곤 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만큼 만족스러울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목회자를 신뢰하고 지금까지 교회에 뿌리를 내리며 오늘을 위해 헌신해준 이들이 정말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뭔가 마음의 표현과 이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싶었다.

TV의 ‘짝’이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던 ‘제주 야자원’이라는 아름다운 펜션을 얻어 첫날 밤엔 정말 둘이 먹다가 셋이 졸도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제주 오겹살 숯불구이를 먹으며 지나간 날들의 회포를 풀었다.

다음 날 아침엔 맛있는 전복죽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나라의 맨 끝 섬인 마라도에 가서 유명한 해물 짜장면으로 배를 즐겁게 한 후 섬 일주를 했다.

송악산과 영화 박물관 그리고 산굼부리와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코발트 빛 영롱한 곽지 해수욕장과 애월 해안도로 드라이브 그리고 마지막 저녁을 바닷가 언덕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분위기와 함께 하곤 제주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경하였다.

이외에도 일일이 말할 수 없는 정말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추억 속에 간직한 채 잊을 수 없는 꿈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앞으로 10년 후인 등록 30년차엔 하와이로 간다나? ^^

오! 주여

이십 년 전엔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전혀 꿈도 꾸지 못했었나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다 있군요.

나중에 천국 가서도 그럴 수 있겠지요? (주후 이천십이년 칠월 둘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