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시절이었다. 재정적으로 열악 할 때 다른 성도들 보다 좀 더 많은 헌금을 하여 교회 살림에 보탬이 되는 여성도가 있었다.

믿음도 있고 모든 예배의 참석은 물론 새벽 기도도 열심히 하고 또 우리 부부와 아이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며 개척목회 당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옥의 티라고 할까? 다른 사람보다 감정의 기복이 조금 심해서 같은 여자이며 사모인 제 아내는 항상 그 분의 얼굴 표정을 본의 아니게 살피게 되었다.

예배당에 들어 올 때의 그 분의 얼굴표정이 그 날 내 아내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 이었다.

그 분의 얼굴이 밝으면 내 아내의 얼굴도 함께 밝아지고 그 분의 얼굴이 흐리면 내 아내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며 어떻게 저 분의 비위를 맞출 것 인가 때문에 고민이 많아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전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온 내 아내가 개척교회 사모가 되면서 성도의 눈치를 보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몇 년후에 그 분이 떠나면서 눈치 보는 것을 졸업하게 되었지만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가끔 예배 후에 사택에 돌아오면 ‘아무개 성도 혹시 시험든거 아니예요?’ - 하며 마치 투시의 은사를 받은 사람모냥 내게 묻곤 한다.

그러면 나는 아내가 신경쓰는게 싫어서 ‘아냐, 별일 없어요’ 하며 안심을 시키지만 개척교회 때 터득한 눈치의 은사(?)의 영험에 가끔 놀라기도 한다.

사람의 내면의 마음의 상태가 얼굴표정과 말과 행동에 나타남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이십년 이상의 목회기간동안 많은 성도들을 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경험에 의해 이 눈치의 은사(?)가 생기게 된 것 같았다.

특히 나와 오랜 세월 신앙생활 함께한 성도들의 표정은 내 눈치 레이다망에 거의 정확하게 잡히기 때문에 교회 마당에 돗자리를 깔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3년여 전에 불신상태에서 우리 교회에 전도된 남자성도의 사업이 점점 어려워 지더니 정말 바닥까지 내려 가길래 나는 그 동안 그의 눈치를 약간 걱정스럽게 살펴 왔었다.

혹시라도 ‘내가 교회 나와서 이렇게 어려워 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신앙을 버릴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이번에 좋은 공사가 수주가 되어 기공 감사예배를 드려 달라기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 했는지 몰랐다.

그 동안 그렇게 고통스러웠음에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 마음이 고마웠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준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2011년 추수 감사주일을 며칠 앞두고 경험한 감사의 순간 이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주후 이천십일년 십일월 셋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