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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간
 
 
용혜원
 
 
달빛이 쏟아지는 엄동 설한에
초저녁도 아니고 한밤중이면
꼭 뒷간에 가고 싶었다

혼자 가기엔 너무나 무섭고 싫어
형, 누나, 그리고 동생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나도 무섭다" 며 같이 가주지 않았다

그래도
"누나, 누나"를 부르며 칭얼거리면
막내 누나는 마지 못해 촛자루 하나에
불을 켜 손에 꼭 쥐어주며 앞서 나오셨다

뒷간에 웅쿠리고 앉아 있으면
몽당 빗자루 하나 놓여 있어
수많은 무서운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가고
구멍 뚫린 곳에선
엉덩이가 시리도록 찬바람이 불어왔다

촛불이 흔들리고
무서움증이 등골에 바짝 다가올 때면
"엄마"를 부르는 외마디에
추위에 떨면서도 "엄마"라고 부르는 그 소리에도
누나는 "여기 있다!" 고 말하셨다
엄마라고 불렀는데도 말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지금도 가끔씩 누나의
"여기 있당께"라는 그 음성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