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이유 - 이정하
 

만남을 전제로 했을 때
기다림은 기다림이다.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았을 때
기다림은 더 이상 기다림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엔, 오지 못할 사람을 기다리는,
그리하여 밤마다 심장의 피로 불을 켜
어둔 길을 밝혀두는 사람이 있다.

사랑으로 인해
가슴 아파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오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바깥에 나가 서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왜 안 되는가를.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더라도
기다리는 그 순간만으로 그는
아아 살아 있구나 절감한다는 것을.
쓰라림뿐일지라도 오직 그 순간만이
가장 삶다운 삶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