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뷔야르(Edouard Vuillard)
활동년도 : 1868~1940
작가소개 : 프랑스 퀴소 출생.

1877년 파리로 이주하였다.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바느질로 생활하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1888년 아카데미 쥘리앙에 들어가 P.보나르를 알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나비파(派)의 일원으로 출발하였다. 인상파의 영향을 벗어나 고갱의 화풍을 따랐으며, 나아가 형태의 단순화와 색면(色面)의 장식적 배합을 지향하였다.

작품은 어머니와 자식의 정경(情景)이나 실내의 정물과 같은 신변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제재로 삼았으며, 깊이 있는 배색과 애정 깊은 운필(運筆)은 앵티미슴의 대표적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만년에는 약간 아카데믹한 방향으로 기울어, 상류 계급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전기(前期)만한 생기는 없다. 작품으로 《파리공원》(1894년경) 《모델》(1905~1906) 등이 있다.

뷔야르는 미학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 젖어 있던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보나르를 알게되어 1888년 함께 나비파를 조직한다. 나비파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뜻한다. 이 파의 중심 이론가였던 모리스 드니, 폴 세뤼지
에, 케르-자비에 루셀등은 종합적이고 장식적이며 정제된 예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또 아카데미즘, 자연주의 인상주의 등을 배척한다는 점에서 나비파에 동참한다.

초기부터 뷔야르는 나비파 중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상징주의자들과 어울리면서도 상징적인 주제보다는 부르주아 집안 실내의 내밀한 정경, 길거리, 작가가 임으로 개성을 제거한 인물 등을 그리면서 장식적인 면을 추구한다.

임의적인 분할, 대담한 생략, 넓게 칠한 단색, 검은 테두리, 원근감을 버리고 얻은 이분법적 화폭의 장식성, 채색의 섬세함 등이 차분하고 매력적인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동시에, 고갱의 구획주의와 종합주의에서 받은 영향이 드러나기도 하며 보나르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취향 역시 뷔야르의 그림 규모, 그래픽 요소 등에서 드러난다. 1900년이후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 된다. 그는 초상화에서 공간의 절제, 빛의 유희등에 유념하여 작업한다.

1903년 그는 <살롱 도톤>을 공동으로 준비한다. "그림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장식뿐이다"라는 작가 베르카드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면서 뷔야르는 1892년부터 1938년까지 홀로 혹은 공동으로 여러건물의 장식을 담당한다.

그중 아방가르드 연극의 무대장식, 포스터, 프로그램, 샹젤리제 극장과 샤이오극장의 실내장식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男긴다. 양차 대전 사이 작가는, 파리의 유명한 부유층, 작가, 배우 등의 초상화가로 이름을 얻고, 유머와 인물의 심리 묘사를 자기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로 만든다.

1928년 뷔야르가 평생 함께 살며 그토록 사랑하며, 500여점 이상의 작품에 그렸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1938년 작가의 70세 생일을 기념하여 그의 회고전이 베른하임 미술관에서 열렸고 이전시로 인하여 그를 잘 모르던 젊은 관객들에게도 뷔야르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작품명 : 작업실
제작년도 : 1893
작품재료 : 두꺼운 판지위에 유채
작품크기 : 31.8x 36.5cm
소장위치 : 매사추세츠노샘프턴, 스미스대학미술관
작품설명 : 실내 공간에서 보여지는 벽지 커튼, 의상의 무늬와 패턴을 이용해 회색, 분홍, 청색과 같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붓터치로 색채 연속을 만들었다. 인물과 가구, 벽지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어디가 벽지인지, 커튼인지 시각적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작품명 : 아침 식사
제작년도 : ***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57 x 60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19세기 말 화가들에게 실내 공간은 도시화된 파리의 거리 못지 않게 모더니티를 반영하는 공간이었다.
보나르와 함께 앵티미즘 화가로 분류되는 뷔야르의 그림에서도 실내는 그 속에 어우러진 인물들과 함께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어머니를 모델로 해서 그린 이 그림 역시 가정의 내밀한 실내 공간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뷔야르의 작품에서 초기에 실내의 가재 도구들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했던 인물들은 후기로 갈수록 화면의 중앙으로 들어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작품에서 인물은 아직까지 모호한 옆모습만으로 묘사될 뿐, 만년에 주로 그렸던 초상화들에서 느껴지는 인물의 심리적인 내면은 엿보이지 않는다. 실내의 벽지와 식탁보, 어머니의 실내복 등이 화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 친밀한 가족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명 : 식사 후
제작년도 : 1890∼98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28 x 36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식사 후>는 뷔야르가 주로 다루는 실내와 인물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 사회의 근대화, 도시화는 건축이나 집의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당시는 아르 누보로 대표되는 실내 디자인이 막 부상하던 시기였다.

앵티미스트인 뷔야르는 꽃무늬 벽지로 장식된 식당의 정경을 세밀하고 환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당대 부르주아 계층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반점들이 프린트된 벽지, 여인의 옷, 식탁의 그릇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듯 어렴풋하게 그려졌다. 벽지와 여인, 인물과 식탁 위의 물건들이 모호하게 융화된 실내 공간에는 왠지 따뜻한 분위기가 감돈다.



작품명 : 침대
제작년도 : 1891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73 x 92.5cm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작품명 : 파리의 공원
제작년도 : 1894
작품재료 : 캠버스에 템페라
작품크기 : 212*152cm,212*152cm
소장위치 : 파리근대미술관
작품설명 : 나비파 시대에 그려진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초기의 뷔야르의 장식적인 경향을 전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뷔야르는 그의 초기나 후기에도 무대 예술이나 그밖의 장식 예술에 강한 관심을 나타냈지만, 이러한 장식 예술에서 요구되는 조건은 얼룩이 없는 질감, 일정한 리듬감일 것이다. 그리고 후년에 나비파를 떠난 뷔야르의 작품을 특징짓는 것도 역시 직물과 같은 질감, 광택이 없는 불투명한 칠, 세밀한 필촉의 면밀한 교착에 의해 짜여지는 무늬이다.
일생동안 거의 아틀리에 밖으로 나와 본 일이 없던 그는 단조로운 화면을 두려워하고 화면 모든 부분에서 자신과 친숙하고 가까이한 적이 있는 듯한 이미지, 질감, 촉감을 구했다. 그는 화면이 적당하게 메워져야만 만족했다. 선택하는 주제도 그에게는 익숙한 것들, 친숙한 실내나 모친이나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