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모네(Claude Monet)
활동년도 : 1840~1926
작가소개 : 르아브르의 소부르주아였던 가족들은 그가 미술가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어린 시절 부댕의 격려를 받았고, 르누아르 등과 함께 글레르의 스튜디오에서 공부했다. 1870~1871년 런던에 머물렀으며 그 이후에는 파리 북부인 아르장퇴유와 베퇴유에서 살았다. 1883년 고향인 노르망디의 지베르니 쉬르엡트에 정착했다.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잦았고, 뒤랑-뤼엘을 통해 1880년대에 가서야 그런대로 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명성은 1889년 조르주 프티 화랑에서 열린 로댕과의 2인전 이후 찾아왔다.

그와 풍경과의 신비적인 교감(30대에 인물화에서 손을 완전히 뗐다)은 말기에 추상의 미개척지로 그를 이끌었다. 1874년 전시회에 출품된 <인상, 해뜨는 광경>은 인상주의 유파에게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인상주의을 대표했던 모네와 풍경과의 신비적인 교감은 말기체 추상적의 미개척지로 그를 이끌었다.

소년시절 르 아브르에서 보냈으며, 18세 때 그곳에서 화가 부댕을 만나, 외광묘사에 대한 초보적인 화법을 배웠다. 19세 때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스위스에 들어가, 피사로와 사귀었다. 2년간 병역을 치르고 1862년 파리로 귀환, 글레르 아뜰리에에서 르노아르, 시슬리, 바지유 등과 사귀며 공부하였다. 초기에는 꾸르베나, 마네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으나 점차 밝은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렸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때 런던으로 피신, 이때 터너, 콘스터블 등의 영국 풍경화파의 작품들에 접했다. 이것은 명쾌한 색채표현이란 점에서 커다란 기술적 향상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1872년 귀국,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살면서 센 강변의 밝은 풍경을 그려, 인상파양식을 개척하였다.

1874년 파리에서 '화가·조각가·판화가·무명예술가 협회전'을 개최하고 여기에 12점의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출품된 작품 《인상·일출》이란 작품 제명에서 인상파란 이름이 모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집단에 붙여졌다. 이후 1886년까지 8회 계속된 인상파전에 5회에 걸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대표적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한편 1878년에는 센 강변의 베퇴유, 1883년에는 지베르니로 주거를 옮겨 작품을 제작하였고, 만년에는 저택 내 넓은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을 그리는 데 몰두하였다.

작품은 외광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따라 밝은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대신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병치'를 이행하는 등, 인상파기법의 한 전형을 개척하였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묘사하려는 그의 작화 의도는 《루앙대성당》 《수련》 등에서 보듯이 동일주제를 아침·낮·저녁으로 시간에 따라 연작한 태도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소풍:The Picnic》 《강:The River》 등의 작품도 유명하며 만년에는 눈병을 앓다가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작품명 : 아틀리에의 한 구석
제작년도 : 1861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182x127cm
소장위치 : 파리 인상파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19세기 후반의 중후한 사실적인 화풍을 보이는 모네의 초기 작품이다. 모네는 1860 년부터 1862년까지 군에 복무하는 동안 알제리에 파견나갔을 때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늘 새로운 자연을 그렸다고 술회했는데, 하지만 이 작품에는 이국적인 풍물도, 그가 매혹된 빛과 색채의 인상도 그려져 있지 않다. 뒷면에 그려진 칼과 총 등에는 그의 군대 생활이 암시되어 있을 따름이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책과 막 뚜껑을 연 스케치 상자의 난잡함, 풍경인 듯한 벽걸이와 붉은 융단 등이 견실한 필치와 암울한 색채로 극명(克明)하게 그려져 있다. 화기(畵技) 향상을 위한 습작이라고는 하지만 뛰어난 묘사력을 보인 작품이다.



작품명 : 뜰의 여인
제작년도 : 1866~7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255x205cm
소장위치 : 파리 인상파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1866년 여름, 모네가 카미유와 함께 살고 있던 집 마당에서 카미유를 모델로 해서 그린 작품이다. 마당에 깊은 도랑을 파서 캔버스의 위쪽을 그릴 때에는 그 도랑 밑으로 내려놓고 그렸다고 한다. 이따금 이곳을 방문했던 바질과 쿠르베는 그 색다른 제작 광경을 보고 곧잘 웃어댔다고 한다. 화면에 그려진 네 여인은 모두가 카미유의 포즈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제각기 다른 포즈나 배치는 바질이 보관한 사진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대범한 화크추우르는 쿠르베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하얗게 빛나는 의상과 그 음영과의 편평한 색면의 아라베스크가 장식적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다.



작품명 : 노르망디의 농장의 뜰
제작년도 : 1865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65x80cm
소장위치 : 파리 인상파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1864년 7월 모네는 바질과 함께 노르망디의 옹페르에 머물면서 이 말을 근처의 생시메움 농장에서 숲과 농가를 즐겨 그렸다. '모네는 눈(眼)에 지나지 않는다.'-세잔은 그의 그림을 놓고 이렇게 말했는데, 이는 바깥 햇살 속의 자연에 대한 모네의 솔직한 신뢰를 퍽 아이러니컬하게 비평한 말이다. 농가 벽면에 보이는 명암(明暗)의 선명한 콘트라스트라든가 수면에 비친 그늘의 묘사에서 모네의 빛에 대한 집요하고 솔직한 관심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세잔의 말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후덥지근한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사물의 그늘을 차분히 가라 앉히면서 소박한 풍토색을 짙게 풍겨주고 있다.



작품명 : 개양귀비
제작년도 : 1873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50x65cm
소장위치 : 파리인상파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모네의 초기 말엽에 해당되는 34세 때의 작품인데, 광활한 초원 속에 핀 무수한 개양귀비의 빨간 '색채의 향연'을 그린,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서정이 감도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모네는 이 그림에서 선연(鮮姸)한 빛을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색채의 독자적 주장을 회화적 차원으로 표현했는데, 화면을 상 하로 양분시킨 늘어선 나무들의 검푸름과, 경쾌한 터치로 처리된 게양귀비의 빨간 반점, 푸른 하늘과 솜털구름, 그리고 화면 중앙의 멀리 보이는 건물, 포즈를 취한 여인의 옷과 양산의 수색(水色)이 빛을 담뿍 받았으면서도 독립된 색채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장대한 공간감(空間感)과 더불어 색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듯한 초여름의 향연이다.



작품명 : 양산을 든 부인
제작년도 : 1886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131x88cm
소장위치 : 파리 인상파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이 작품은 인상파 클럽의 마지막 전람회가 개최된 1886년의 작품이며,카미유-모네의 첫번재 아내-를 모델로 7,8년전에 그린 언덕위에서의 작품과 구도,포즈,기법등이 너무나도 흡사하다. 모네는 카미유가 죽은후 거의 인물화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지베르니에 정착하면서 생활이 안정된 1885년경부터 10년만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카미유에 대한 추억의 정을 느끼게 한다.이 작품의 모델은 후일에 모네의 두번째 아내 오슈데의 딸 수잔느이다. 경쾌하고 속도감 있는 터치, 바람에 휘날 리는 스카프, 드높은 하늘과 뭉개구름, 좌측으로 약간 쏠린 풀잎, 앞으로 기운 듯한 몸매가 원색의 초원과 조화를 이루어 화면을 밝고 상쾌하게, 그리고 행복감까지를 자아내게 한다. 양각의 중심부에 위치한 모델은 모네의 의붓딸로 생각되는데, 양산의 그림자가 해의 높이, 즉 그림을 그린 시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색채 혁명을 일으킨 모네의 집요하면서도 명쾌하고 섬세한 감각이 표출된 빛과 색채와 대기의 시원한 어울림을 이 한폭의 그림에서 들을 수 있다.



작품명 : 눈 속의 아르쟝뚜유
제작년도 : 1875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55x65cm
소장위치 : 도꾜 국립 서양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모네는 야외 사생을 시작하면서 설경(雪景)을 즐겨 그렸다. 르노와르는 '왜 설경 같은 것을 그리는지 모르겠어. 자연이 마치 병들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라고 말했지만, 모네는 그러한 친구와는 달리 은백(銀白)의 세계에도 빛과 그늘이 있음을 깨닫고 그 미묘한 뉘앙스를 묘출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옹플르 근처의 마을 어귀를 묘사한 이 그림은, 자연 상태의 변화의 다양성을 매우 솔직하고도 훌륭하게 부각시켜 놓았다. 눈 덮인 시골 아침의 청순함은, 근경의 하얀 길보다도 중경인 나뭇가지에 엷게 붙어 있는 눈의 베일을 통해서 아스라한 빛의 진동으로부터 우러나오고 있어 보인다. 볕살에 녹아 눈이 떨어져 한결 가벼워진 가지가 즐거운 듯 뻗쳐 있어 싱그러운 느낌조차 든다.



작품명 : 생 라자르 역
제작년도 : 1877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82.6x101cm
소장위치 : 하버드 대학 포그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1878년부터 78년에 걸쳐 모네는 파리의 생라자르 역과 그 주변을 테마로 한 일련의 작품을 그렸었다, 1877년 봄에 열렸던 인상파 제 3회 전시회에는 이 연작(連作) 일곱 편이 출품되었는데, 이 그림은 그 가운데 한 작품이다. 철도를 주제로 한 회화로는 영국의 풍경화 작가 터너의 <비, 증기, 속도> 등이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모네와 피사로, 시슬리 등 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교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역과 기차가 자주 제재가 된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모네는 역 구내의 정경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그렸는데, 특히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 새로운 기계 문명의 산물 자체가 아니라, 여기서 느껴지는 동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다. 스피디한 터치가 퍽 인상적이다.



작품명 : 일본 의상의 여자
제작년도 : 1876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231.3x142.3cm
소장위치 : 보스턴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19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이른바 우끼요 에가 유럽에 흘러 들어 가기 시작했고, 모네도 그 판화의 콜렉션을 그 무렵에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모네가 일본을 알게 되면서 그린 일본 취향의 회화다. 모네는 애인인 카미유에게 일본의 기모노를 입히고, 벽면도 일본 부채로 가득 채워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포즈나 장식적인 의장화의 구도 역시 일본풍인데, 그는 그 후 동양에 대한 감화를 크게 받아 양식적으로 이를 소화시키기도 했다. 모네가 이처럼 색다른 주제를 다루게 된 원인의 하나는, 이 무렵에 모네가 인물화를 버렸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작품명 : 과일이 있는 정물
제작년도 : 1880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65x80cm
소장위치 : 함부르크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모네의 모티브에는 정물이 별로 없다. 10 년 전 르노와르와 함께 일할 때는 가끔 꽃과 정물화에 손을 댔는데, 광선의 변화와 보색(補色)의 작용에 관심을 쏟고 부터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다. 이 그림에서 우리들은 먼저 르노와르의 풍윤한 색채를 연상하는 반면, 세잔의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한 조형 질서의 구축은 전혀 볼 수 없다. 하얀 테이블 위에 자연스럽게 놓여진 포도, 배, 사과 등이 부드러운 광선을 받아 한결 윤이 나고 싱싱하게 보이기만 한다. 모네는 일년 전에 가난과 싸우다 병사한 사랑하는 부인 카미유의 환상을 응시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다 한다. 실의와 고독, 그리고 적요(寂寥)를 자위하기 위해 정물화에 다시 손을 댔으나, 평정되지 않는 그의 마음을 나타낸 듯, 거칠고 빠른 터치를 전화면 에서 엿볼 수 있다.


작품명 : 해바라기
제작년도 : 1881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101x81.3cm
소장위치 :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모네는 만년에 이르러 풀과 꽃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런데 1880 년 이전에 독립된 꽃의 정물과가 적은 것은 퍽 기이한 노릇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모네는 야외에서 화가(畵架)를 세워 제작하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었던 화가였으므로, 아틀리에 안에서 차분히 앉아서 제작을 해야 하는 이런 장르에 종사하는 시간이 많지 못했던 것 같다. 모네는 변하기 쉬운 자연 현상과 기후에 집착하고 있었다. 계절이나, 시각에 하지만 첫 부인 카미유가 죽은 다음, 특히 1880년부터 82년에 걸쳐 이상하리만큼 꽃과 과일 등 정물화에 골몰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그는 아틀리에에서 감정의 응어리를 정물화에 쏟아 놓은 것이다.



작품명 : 뱃놀이
제작년도 : 1887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145x132cm
소장위치 : 도꾜 국립 서양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모네가 1883년부터 산 쥬베르니는 세느로 흘러 들어가는 에프트 강의 상류에 위치했고, 모네의 가족들은 이따금 에프트 강에서 뱃놀이를 했다. 모네는 이 뱃놀이와 강변의 무성한 포플라 연작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같은 계열의 것이다. 미망인 앨리스가 데려온 두 딸이 하얀 옷차림으로 작은 배를 타고 서로 마주 보며 정겹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수면에 투영된 그림자의 물결과 햇빛을 듬뿍 머금은 은파가 이 아가씨들의 뉘앙스를 더욱 청결하고 밀도 짙은 것으로 부각시켰다. 배의 선미(船尾)만을 4각형으로 잘라 화면 중앙에 앉히고, 일체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파격적인 구도가 오히려 빛과 그림자를 대담하게 대비시킨 효과로 나타나, 화면 전체가 오히려 신선하고 더욱 밝아 보인다.



작품명 : 파도치는 투루빌 海
제작년도 : 1897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73x101cm
소장위치 : 도꾜 국립 서양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가파른 낭떠러지가 계속되는 해안선은 투 루빌이라고 하기보다는, 세느 강 입구로부터 오른쪽에 아름답게 펼쳐 있는 에틀타나디에프 등이 있는 북쪽 해안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투루빌 근처에서 모네는 몇점을 제작해 냈기 때문에 아마도 그림 제목이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억센 파도치는 바다 풍경에 감명을 받은 모네는 날카롭고 활달한 붓놀림으로 파도의 맹위를 잘 묘출해 놓았다. 모네는 과연 그가 받은 충동 그대로를 화폭에 옮기는 화가라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서 실감케 된다. 그는 어떤 감동적인 풍경에 접하면 민감하게 움직인다. 물론 그는 풍경을 정치(精緻)하게 보거나 분석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가 처음 느낀 인상에 충실했던 것이다.



작품명 : 햇볕을 담뿍 받은 포플라
제작년도 : 1891
작품재료 : 캔버스 유채
작품크기 : 92.5x73.5cm
소장위치 : 도꾜 국립 서양 미술관 소장
작품설명 : 일광을 담뿍 받은 포플라가 황록색으로 변해 바람에 나부낀다. '빛의 엽사(獵師)'인 모네에게는 에프트 강변의 포플라야말로 엽사의 그물과 같은 존재다. 시간과 날씨와 장소, 그리고 화포의 대소에 따라 빛을 변용시킬 수 있는 모티브이다. 이 그림은 한낮에 에프트 강의 배 위에서, 쨍쨍 내리 쬐는 햇살을 받고 하늘 높이 솟은 포플라를 그린 것인데, 전체를 밝은 색채로 상호 대비시키고, 물감을 두텁게 바른 마티에르가 수간(樹幹)과 잎과 수근(樹根) 언저리의 잡초들의 양감(量感)을 나타내 주고 있다. 수직과 수평의 선을 강조한 구도도 이 연작의 큰 특색으로 주목할 만하다. 포플라를 통해 창조해 낸 하늘과 물과 빛의 대화라면 좀 지나친 표현일는지-.



작품명 :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제작년도 : 1866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91.4*129.6cm
소장위치 :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설명 : 인상파 거장 모네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눈을 갖고 대상의 색의 뉘앙스를 포착, 이것을 경쾌하고 민첩한 필촉으로 신현해 간다. 인상파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색이었다. 음영까지도 색이었고, 색이 결여된 흑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색은 모두가 태양 광선이 대상을 비추고 대상의 색채를 반사하는 곳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대상의 색은 모두가 이 광선의 갖가지 바리에이션에 지나지 않는다. 생 타드레스는 영블해협에 면한 노르망디의 관광지로 르아브르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모네는 1866년부터 67년까지 숙모댁에 머물면서 몇 점의 해안 풍경을 그렸다. 바다에 면한 테라스를 그린 이 작품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외광에 대한 모네의 예민한 감수성과 빼어난 표현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무렵의 모네는 인상파의 기법을 분명하게 발견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양광 속의 풍경과 인물 묘사에 강한 흥미를 갖고 빛의 밝음을 표현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색채 분할에 가까운 수법을 쓰고 있다. 전체 화면을 테라스, 바다, 하늘이라는 세개의 수평한 부분으로 나누고 그 셋을 두 개의 깃대로 묶어 놓은 교묘한 구도로 전체를 마무리 하고 있다. 어지럽게 핀꽃과 바다의 파도, 구름의 묘사는 곧 다가올 인상파의 수법을 예고 하고 있다.



작품명 : 해돋이
제작년도 : 1872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50*65cm
소장위치 :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작품설명 : 이 작품은 인상주의 그룹에 있어서 기념할 만한 작품이다. 제명<인상>은 이 그룹 이름의 기원이 되었고, 빛의 효과를 포착하려는 수법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점에서도 이 그룹의 회화 표현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1회 인상파 전람회에 출품되어 반향을 일으킨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전람회를 보러온 풍경화의 대가 조셉 뱅상이 그림 옆에 있는 기자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거요?]
[해돋이-인상이랍니다]
[인상?...애들의 색종이 쪽이 나을걸요]
이 기사는 다음날 아침 <샤리봐리>신문에 게재되었다. 이것이 <인상파>라는 명칭의 인연이 되었다.
여기서 모네는 르 이브르항의 아침, 또는 안개속의 해돋이 광경을 그렸는데 안개낀 대기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뉘앙스를 바로 여기에 인상파 회화가 찾는 세계가 있다. 빛과 대기는 모네에게는 매력이었고 그의 회화의 주체였다.



작품명 : 아르장퇴유의 뜰
제작년도 : 1872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60.8*74c
소장위치 : 시카고 미술관
작품설명 : 모네는 보블전쟁 기간에 영국과 네덜란드를 여행한 뒤, 1872년 종전과 더불어 파리의 교외에 있는 아르장퇴유로 이주했다. 여기서 5년간을 가족과 함께 지내는 동안 모네의 집은 젊은 인상파 화가들의 집회 장소가 되었다.
르느와르와 모네를 중심으로 한 이들 화가들은 1874년 최초로 인상파 화가전을 갖게 된다. 가옥들을 바른쪽으로 놓고 정원을 펼쳐 놓은 이 그림은 집 곁에 청색과 백색이 어울린 항아리를 배치하고 있다. 모네가 여기서 사용한 기법은 1870년의 초반, 르느와르의 자극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작품명 : 강
제작년도 : 1868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81.7*100.3cm
소장위치 : 시카고 미술관
작품설명 : 1860년 모네에게 있어 그의 화력 가운데서 가장 대담하고도 실험적인 몇 작품을 남긴 해였다. 이 작품도 그러한 것의 하나이다.
물의 표현은 시종 모네와 그의 동료들이 추구했던 과제였다. 물은 공허 속에 평온하다. 거기에다 정해진 틀을 가해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역으로 오랜 고유색의 관념에서 색을 해방시켰다. 물은 자유롭게 반사하고 변화하고 주변의 색을 되받아 낸다.
이 그림은 그러한 효과를 잘 살린 작품이다. 수면에는 한 채의 집이 비치고 있다. 실물은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바른쪽에는 여러 채의 집이 보이지만 그것은 알맞은 실체감을 상실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체는 공허 속에 평온한 인상을 지고 있다. 물가의 여성도 평판으로 배경에 동화된 듯싶다. 집이나 인물만이 아니라 그림 전체가 미묘하게 빛나면서 당장이라도 떠내려갈 것 같은 표면을 가지고 있다.



작품명 : 생 타드레스 해변
제작년도 : 186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75*101cm
소장위치 : 시카고 미술관
작품설명 : 1867년까지의 모네 작품은 다른 화가들의 양식을 배우고 흡수함으로써 성립된다. 그리하여 부댕, 욘킨트, 마네, 쿠르베 등의 화가들이 갖가지 기법에 의한 실험을 통해 60년대 말경에 모네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빛과 색을 그때, 그곳에서 잡아 이것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야외에 나가 그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1867년 여름, 작품을 통해 그는 자기 자신의 양식을 확립했다. 여기에서 그는 자기에게 회화란 과연 무엇인가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양식은 아직도 시험 단께였다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무겁게 엉킨 구름의 반점상의 착색은 60년대 중반의 욘킨트를 생각케하고 수면에서의 빛의 반사를 무시하고 실루엣으로 처리한 요트는 마네가 그린 해안 풍경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러나 해변과 수면에 가해진 운필과 착색에는 이미 색체 표현의 혁명적 기법으로 전개되는 색조 분할이 엿보인다.



작품명 : 에트르타의 겨울 배들
제작년도 : 1885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74*92.8cm
소장위치 : 시카고 미술관
작품설명 : 이 그림의 주제는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1883년에 이 작품과 같은 해안에 매여 있는 배를 그린 작품(뉴욕 페르디난도 K. 산 컬렉션)이 있다. 그러나 배라고 하는 개체에의 접근과 파노라마풍의 원경인 대기 표현을 한 화면 속에 결합하려고 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개체에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대상을 그 기본적인 형태에서 잡아내려고 한<노적가리>의 연작이 같은 해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서로 나누어져 있는 두 개의 공간을 빛과 색의 반향 속에서 통일시키려는 시도는 모네에게 있어 결코 자주 볼 수 없다.
<노적가리>와 <루앙 대성당>의 연작에서 나타난 것처럼 어째든 그는 접사에의 호기심이 강했다. 모네는 이 야심적인 표현을 시도하면서 곤란한 국면을 맞아 하나의 해결 방안을 찾아냈다. 좌우에 각각 오두막집과 배를 배치하여 무대처럼 공간을 만든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좌우에 한정되었던 전경의 시선을 구름 낀 하늘과 바다에까지 확대하는 극적 해방감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작품명 : 지베르니의 포플러
제작년도 : 1888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74.5*93cm
소장위치 : 뉴욕 근대미술관
작품설명 : 지베르니 근교를 걷고 있는 모네는 에프트 강가에 나란히 서 있는 포플러를 보고 이 나무들에 매료되었다. 강변에는 네 그루의 포플러가 수직으로 곧게 뻗어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나무 그늘이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게 뻗어 있었다. 물위에는 나무의 종신이 쑥쑥 수직으로 달리고 나란히 선 나무 밑둥의 풀잎들은 옆으로 누워 좌우로 연이어지면서 하나의 수평선을 만드고 있었다. 이 수직과 수평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모양에 흥미를 느낀 모네는 이 네그루으 포플러를 그려 20장 정도의 연작을 만들었다.
1891년의 그것이 그의 유명한 포플러의 연작이다. 이 작품은 그것보다 3년 앞서 그려진 것으로 연작의 포플러와는 취향을 달리하고 있다. 이 그림은 수십그루의 포플러가 햇살을 담뿍 받아 빛나며 푸른 잎의 생생함을 반영한 상쾌한 색의 세계이다. 포플러의 연작을 태어나게 한 전신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작품 이후 모네는 빛과 대기의 다양한 조건 하에서 동일한 주제를 보여주는 연작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 작품들은 그가 채색된 빛의 효과에 정신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터너의 작품들이 지니는 효과를 닮아 갔다(그는 1870년 런던을 방문하고서야 터너를 알게 되었다). 그의 운필은 만년에 갈수록 더 큰 다양성을 보이고 더 개성적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작품명 : 버드나무 밑의 모네 부인
제작년도 : 1880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81*60cm
소장위치 : 워싱턴 국립회화관
작품설명 : 모네의 색의 세계에선 인물도 초목도 하늘과 집도 고유한 색채를 지닌 독립체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풀숲의 흰 옷의 부인 모습도 막연하다. 빛 속에 빠져들어간 것처럼 얼굴도 손도 발도 확실치 않다. 버드나무의 나뭇잎들도 엷은 잡색의 터치로 연기처럼 처리되었고 원경의 집들도 담홍색과 청홍색의 반점에 지나지 않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우리들이 무턱대고 개개의 물체가 무엇이냐고 판단하기에 앞서 전체를 바라보면서 여러 색채의 혼합을 눈여겨보면, 홀연히 눈앞의 풀숲에서 흰옷의 부인이 나타나고 그 뒤로 버드나무의 나뭇잎들이 푸른 초원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밝은 하늘에 잎을 벌리고 나타난다. 빛의 화가 모네는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이 빛의 세계를 자신을 갖고 충실히 그려냈던 것이다.



작품명 : 수련
제작년도 : 1906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89.5*93.3cm
소장위치 : 콩코드 광장, 오랑쥬리 미술관
작품설명 : 1891년에 지베르니에 있는 농가를 매입한 모네는 제작 틈틈이 못을 파고 정월을 꾸몄다. 1899년부터 27년에 걸쳐 그린 연작 <수련>은 여기서 모티브를 취한 것이다. 모네는 수면에 드리운 빛의 장난을 한없이 추구한다. 1901년부터 2년에 걸친 런던 방문 대, 모네는 대기의 화가 터너의 세계에 이끌렸다. 1908년과 그 다음해에 그는 베네치아에 머물러 물의 도시가 자아내는 환영에 이끌리기도 했다.
이러한 두 도시의 여행 성과는 각각 빛과 반영의 소용돌이 속에 수련의 연작으로 나타났고, 그 귀결은 미술사상 하나의 금자탑을 이룩했다. 그것이 곧 인상파 미술관의 제2실을 장식한 수련의 연작인데, 화가 앙드레 마송의 말처럼[인상파의 시스티나 예배당]이기도 하다.
연작초기 구도에는 수면에 제방도 등장하고 나무도 있고 때로는 못을 가로지른 일본풍의 다리도 그려넣곤 했다. 그러나 연작이 계속되면서 주제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고 그럼으로 해서 수면상의 변화 이외의 일은 관심권 밖의 일이 되었다. 수평선도 화면세서 사라지고 거기에는 다만 못의 면만이 펼쳐지게 되었다. 수련만이 점재(點在)하고 때때로 구름이 그림자를 흘리며 지나간다. 색과 빛의 반사속에 물체는 그 실체를 잃고 다만 환영처럼 떠돌고 있다.



작품명 : 산책하는 사람들
제작년도 : 1865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94×64cm
소장위치 :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작품설명 : 이 작품속의 모델은 모네의 친구인 바질과 젊은 여자모델 카미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