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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에는 매춘이 없었다.

우리 인간의 직업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가 매춘이다. 이것은 남성 중심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언제나 매춘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매춘의 역사에도 예외가 없지 않다. 발해의 경우가 그렇다. 발해의 여권은 상당히 강했다고 한다.

일부일처제가 일찍이 확립되어, 발해의 남자들은 인근의 신라나 중국의 귀족과 일반인들도 많이 거느렸던 첩을 제대로 둘 수 없었다.

남송시대의 문헌인 <송막기문>을 보면 발해에서는 첩을 두었다 하더라도, 남편이 외출하면 부인들이 공모해 그 첩을 독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일부일처제가 확고해서인지 발해의 무덤에는 부부합장묘가 많다고 한다.

첩을 둘 수 없었던 발해의 남자는 또한, 바깥에 나가서도 딴짓을 할 수 없었다. 신라나 중국,거란이나 여진족에도 있었던 홍등가, 창녀등이 없었다. 더구나 발해가 계승한 고구려에서도 창녀의 일종인 유녀가 있었다.

중국 동북부 지방에는 '홍라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홍라녀'라는 발해 여인이 장군이 되어 거란과의 싸움에 나가 이긴뒤 남편을 구해 돌아왔다는 전설이다. 집안에서만 강한 게 아니라 실제 전투를 수행할 정도로 씩씩한 발해의 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발해에서는 절을 할때도 남자는 무릎을 꿇고 하는데, 여자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리 역사에서 여권이 가장 강력했던 나라로 발해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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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보는 매춘의 역사

축첩제도는 욕심과 편의를 따라 남자들이 만들어낸 제도이다. 인류역사를 통털어 축첩제도는 라멕 전과 라멕 이후로 나눠진다.

창세기 4장 19절부터 등장하는 라멕은 자신을 위하여 두 아내를 얻었다. 거기서부터 남자들의 오랜 축첩제도와 크고 작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부다처제를 지지하고 원하셨다면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라는 오로지 일남일녀의 인간만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선 처음부터 잘 알고 계셨다. 첩으로 인해 가정과 국가가 분열되고 나라가 시끄러워 질것을.

욕심과 편의를 따라 신의 뜻을 거역하고 인간인 남자들이 만들어낸 축첩제도때문에 역사상 얼마나 많은 싸움이 있어 왔던가.

식욕보다 성욕을 우선시하는 남자들의 특성은 '열 계집 마다하지 않는다.'는 옛말 하나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까지 역사는 항시 남성 중심의 역사였다. 남성중심의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산물이 바로 매춘부와 축첩제도이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여러 첩을 거느렸던 지도자의 나라는 그만큼 전쟁이 많았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이다."100세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줄 테니 조용히 기다려라."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한 체 자식이 없어 초조하고 불안한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사라의 여종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음으로써 오늘날 중동지역의 분쟁은 끊임이 없기에 이리도 분쟁의 역사가 깊고도 유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