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은 멕시코 독립기념일이다, 프레즈노 도심 풀턴 몰(Fulton Mall) 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이날을 기념한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중남미는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였다. 여기에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입이었다.

180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스페인으로 쳐들어가 국왕 페르난도 7세를 퇴위시키고, 자신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그 자리에 앉혔다.

멕시코의 스페인 관리들은 감히 새 국왕에 대해 반대하지 못했으나, 많은 멕시코인들은 비밀단체들을 조직했다. 그 가 운데 일부는 전 국왕 페르난도를 지지했으며 다른 일부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했다.

신부 이달고는 돌로레스 근처의 산미겔에 있는 비밀단체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당국에 의해 음모가 발각되 고 일부 단원들이 체포되면서, 이달고는 몸을 피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달고는 1810년 9월 16일, 교회의 종을 쳐 교구민들을 불러모은 후 스페인에 대한 독립혁명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했다.

곧 수천 명의 인디오와 메스티소(라틴 아메리카의 에스파냐계의 백인과 인디오와의 혼혈 인종)들이 이달고의 과달루페 의 성모 마리아 깃발 아래 모여들었고, 그가 산미겔에서 시작한 독립운동은 상층계급에 대한 일반 대중의 사회경제적 전쟁으로 번져갔다.

이들은 멕시코시 서부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수도의 문턱에 다다랐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달고가 주저하는 바람 에 기회는 사라졌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흩어졌다.

결국 1811년 1월 17일 칼데론 싸움에서 패한 그는 미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북쪽으로 몸을 피했지만 도중에 체포되었고, 그를 기다리는 건 사제직 박탈과 총살형이었다. 물론 이달고가 실제로 성취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은 많은 멕시코인들에게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그가 돌로레스에서 독립선언을 했던 9월 16일은 훗날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이 되었다. 이달고는 실패했지만 시대는 멕시코를 향해 흘러갔다.

당시 18세기 천부인권론을 강조한 루소 등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대혁 명 등의 사건도 있었다.

여기에 크리오요(멕시코에서 태어난 백인)가 식민지 경제정책에 반기를 들고 스페인 출신의 본토인들에 대항하는 일이 일어나며 마침내 멕시코는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스페인의 통치력이 약화되는 틈을 타 다시 프랑스군이 침략해 왔지만, 1861년 5월 5일 ‘디아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푸에블라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해버렸다

위의 내용은 간단하게 멕시코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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