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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여성에게는 엄격하기 그지없었던 시대에 태어난
      메리 슬레서는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아프리카 개척 선교사로 일생을 불사른 용감한 여인이었습니다.

      스코틀랜의 궁핍한 가정 출신인 그녀는
      11살의 어린 나이 때부터 방직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고,
      14살부터는 매일 10시간 이상씩 중노동에 시달리는 생활을
      13년이나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녀에게 교회는 더러운 빈민가의 비참한 삶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 이미 진실된 회심을 경험했고
      20대초부터 퀸스트리트 선교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에 대한 열망을 키워 가던 메리는
      여성 선교사에게도 문이 열려 있는 칼라바르
      선교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드디어 1875년 그 유명한 탐험가 리빙스턴의
      죽음의 계기로 선교사를 지원하고야 맙니다.

      이내 메리는 나이지리아 칼라바르에 정착하여
      언어를 비우며 선교사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지만,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내룩 오지로 들어가서
      개척 사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곡절 끝에 3년이 지나서야
      내륙에서 사역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주술과 마술이 지배하는 어둠의 땅에서
      그녀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토인들의 불합리한 풍습들을 뜯어고치려고
      애를 썼고 불평등한 취급을 받던 여성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열정가였던 그녀는 이후 수많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었던 적대적인 토인 지역에서
      25년간 헌신합니다.

      그토록 용맹하고 열의에 차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공은 숨기려고만 하였던 그녀는
      후배 선교사들의 사역을 위한 기반 작업에
      충실히 임할 뿐 어느 정도 개척 사업이 안정되면
      다른 선교사에게 해당 지역과 업무를
      넘기는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믿는
      믿음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던
      굳센 여인 메리 슬레서는 무교육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아프리카
      선교 사역의 가능성을 극적으로 확장 시켰습니다.

      그녀의 소리는 없으나 처절했던 노력은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주축 세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