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근목사 (승리교회)

추석이 이제 여섯 밤 남았습니다. 어릴 때는 손꼽아 기다렸는데 요즘은 손꼽아 기다리지 않아도 금방 찾아오죠. 추석 그러면 제일 먼저 뭐가 생각이 납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이 생각이 날겁니다. 그리고 가족이 생각이 나겠지요. 이제 며칠후면 귀향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뭐 평소에 세시간 네시간 가던 거리를 열시간 스무 시간 걸려가면서까지 그렇게 극성맞게 고향집을 찾아가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 할 수 있는 그 시간... 바로 그 시간을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것이죠.
지금 산업화의 영향으로 우리가 지금 핵가족 제도로 그저 엄마, 아빠, 나 혹은 엄마, 아빠, 나, 누나나 오빠 이렇게 세 명 네 명이 살고 있습니다만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정상적인 가족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사촌 팔촌까지 한집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추석이 되면 아버님 손을 붙잡고 큰집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고 또 사방에 사촌들이 많이 몰려옵니다. 그러면 큰아버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 너희들은 한집안 식구야. 옛날 같으면 한솥밥 먹고 자랐을 사람들이야. 다투지 말고 함께 나누어 먹어라.”
그리고는 이같이 교훈 하셨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굶어도 함께 굶고 먹어도 같이 먹는 거야 다른 사람 안주고 너만 먹으면 못쓴다.”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족을 공동 운명체라 할 때 나는 먹는데 상대방은 못 먹는다 그러면 가족이 됩니까? 그것은 가족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가족과 함께 영원히 살 소망을 가졌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온가족이 다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데 가족 중에 누가 예수를 안 믿습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영원히 이산가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중년 사나이가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갔더니만 의사가 병을 주면서 소변을 받아오라고 합니다. 보통 바닥에 조금 찰 정도로 받아가도 괜찮은데 이 남자는 그냥 한 통 가득 받아갔습니다. 의사가 이렇게까지 많이 가져올 필요가 없는데... 그렇지만 이왕 가져왔으니 검사해 보십시다. 검사해 보았더니만 아무 이상이 없답니다. 이상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이 사나이는 재빨리 전화를 합니다. “아무 염려 없데. 건강하데. 안심하라구” 조금 우직하기는 합니다만 자신의 건강만 염려하지 않고 가족의 건강도 염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가족이 공동 운명체라면 어떻게 나만 예수 믿었다고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중의 일부가 예수를 믿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은 내가 예수 믿게 되면 내 가족은 자동적으로 예수를 믿게 된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개개인이 다 예수를 믿어야죠. 아들이 믿는다고 아버지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 왜 그렇게 말씀했겠습니까? 그건 바로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족은 함께 있는 가까운 존재입니다.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거죠. 이게 바로 복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가 굶고 있는 사람에게 쌀 한말을 주었다고 합시다. 가서 집안 식구끼리 나누어 먹어라. 그런데 그 사람이 나누어 먹지 않고 자기 혼자만 해 먹었습니다. 그럼 그게 가족 맞습니까? 한식구면 그럴 수는 없는 거거든요. 굶어도 함께 굶도 먹어도 함께 먹는 것이 가족이요. 한 식구의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추석을 맞이하여서 온 가족이 함께 모일 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너와 네 집 여기서 말한 집이라는 것은 지금 말하는 핵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촌 팔촌이 함께 사는 전통적인 가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어 추석에 모이는 온 친척들이 다 예수 믿어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에 아직까지 예수 믿지 않은 가족이 있으면 가족 구원을 위해서 강청 기도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청기도라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바로 한 불쌍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서 밤낮 부르짖어서 마침내 소원을 이루었다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집중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낙심치 않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응답 될 때까지 끊기 있게 하는 불퇴진의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문제를 가지고 기도 할 때에는 기도 후에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강청기도할 때 영혼을 위해서 기도 할 때에는 그런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노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 원하기 때문에 영혼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 우리 부모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강청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식으로 강청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 강청기도 하여 자기 조카 롯을 구원한 아브라함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이죠. 데라는 아브라함과 하란 아들이 둘 있었는데 하란에게서 난 아들이 바로 롯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삼촌이죠. 그런데 갈대아우르를 떠날 때 아브라함이 롯도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양과 소떼가 많아지고 롯도 양과 소 떼가 많아지니까 같이 있을 수가 없어요. 서로 좋은 초장을 차지하려고 종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께 있으면 피차 불편하니까 우리 서로 떨어지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먼저 선택하라고 했을 때 버릇없는 조카 롯이 욕심을 내서 자기가 먼저 좋은 편을 택했습니다. 동쪽을 보니 물이 넉넉하고 푸른 초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롯은 동쪽을 택해서 점점 동쪽으로 가다가 마침내 소돔성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접을 받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소돔 고모라성이 심히 약해서 불로 그 성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바로 조카 롯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 22절-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아브라함이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롯의 문제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소돔성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롯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소돔성을 구원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거기에 의인 50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 50이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혹 50이 모자랄 수도 있겠거든요. 그래서 혹 5명쯤 모자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자신이 없거든요 그래서 혹 40명쯤이면 어떠하시겠습니까? 아! 그래도 내가 멸망시키지 않겠다. 그래도 자신이 없어요. 혹 30여명쯤은 어떠하기겠습니까? 30명도 괜찮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20명이 있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내가 2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은 한번 더 말합니다. 열명 있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끈질기게 조카 롯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봅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대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하나님만 능력 있습니다. 여러분 가족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가족을 위해서 전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전도해보니까 어떻습니까? 참 전도하기 어려워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려워요.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더 쉽습니다. 이제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하나님만이 내 남편을 구원할 수 있고 하나님만이 내 가족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소망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대면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방책이 있으면 좀 도와 주세요 하다가 안 도와주면 다른 방책을 찾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책이 없어요. 그러면 포기할 수 없죠. 끝까지 그 사람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내 가족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용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내 가족의 삶이 깨끗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차례 내 나름대로 노력해 왔습니다만 안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여기 ‘감히’ 라는 말을 두 번이나 했는데 조카롯을 위해 감히라는 말을 쓰며 용기를 냈듯이 용기를 내야 합니다. 진정한 용기가 어디서 나옵니까? 진정한 용기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혼자 길을 가다가 사나운 개를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명을 지르고 도망을 치겠죠. 이 여자가 결혼하여서 사랑하는 자기 자녀와 함께 길을 가는데 개가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이를 내버리고 도망치겠습니까? 그런 어머니는 안 계실 겁니다. 용기를 내서 아이를 등뒤에 숨기고 개를 쫓아내겠죠. 어디서 용기가 나왔습니까? 바로 사랑에서 용기가 나온 것이죠. 우리가 내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내 가족을 구원해야 되겠다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강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9장 12절 이하에서 이같이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큰 근심 그리고 그치지 않는 고통이 그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골육지친을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이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는 이 말의 의미는 예수를 믿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를 안 믿으면 천국 못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죠. 내 사랑하는 가족이 지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냥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조카 롯이 불심판을 받게 됩니다. 불과 유황불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릴텐데 그 속에서 불탈 자기 조카 롯을 생각하니까 아브라함이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회사원이 아주 더운 지역인 앨라바마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자기 아내에게 이메일로 급히 편지를 씁니다. 그런데 급하게 편지를 쓰느라고 주소를 잘못 썼어요. 아내 이름이 Jenn인데 Jene로 잘못 써서 엉뚱한 사람에게 잘못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메일 받은 사람이 공교롭게도 남편 장례식을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온 부인입니다. 이메일이 와서 열어보니 이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여보 나는 무사히 도착했소. 그런데 이곳은 무척 뜨겁구려.” 그 소식 듣고 부인이 실신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지옥을 생각한다면 열심히 전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노방 전도하는 송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전도에 열심이 조금 식었을 때 아마 자기마음을 다짐하기 위해서 지옥의 고통을 겪어보아야 겠다는 마음으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모기향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 그것을 그냥 쥐어 본 겁니다. 엄지와 검지로 빨간 모기향을 쥐고는 주여! 주여! 하며 끝까지 참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양쪽이 새까맣게 타고 콩 하나가 들어갈 만큼 구멍이 파져 있습니다. 거기에다 굵은 소금을 비벼 넣고 막 비볐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불로서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엄청난 고통이 왔습니다. 그 순간 내 사랑하는 동족아 지옥 가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서울역 앞에서 ”예수 천당“이라고 전도한 것입니다.
이제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지옥불에 빠져 가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책임지고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하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여 주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강청 기도 덕분에 롯은 건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역사가 이번 추석에 일어나야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때문에 여러분의 불신 가족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야겠습니다. 내 가족을 위해서 누가 나보다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월드컵이 끝난 다음에 그 뒷이야기를 여성잡지에서 보았습니다. 안정환 선수가 대 이탈리아 전에서 골든볼을 터트려서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는데 그 부인이 미스코리아 출신인데 아주 예수를 잘 믿어요. 월드컵 경기 때에 금식하면서 기도했답니다. 그러다가 쓰러졌어요. 얼굴만 예쁜 줄 알았는데 예수를 참 예쁘게 믿어요. 가족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롯을 위해서 기도해줄 사람은 아브라함 밖에 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불신 가정을 위해서 정말 안타깝게 기도 해줄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책임져야 되요. 끝까지 응답 받을 때까지 구원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강청기도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사랑은 영원한 현재형입니다. "I Loved You" 내가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이혼할 때나 하는 말입니다. "I Love You" 내가 지금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기도했는데 안됩디다. 기도는 과거형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기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 추석에 전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우리가 기도로 준비하십시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다름 추석과 다르지 않습니까? 태풍 ‘루사’를 겪었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고 종말을 생각할 것입니다. 이번 추석만큼 좋은 전도의 기회가 없습니다. 충분히 기도로 준비하고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주님 주시는 지혜로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서 온가족이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는 복된 가정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