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규목사 (인천순복음교회)

오늘 이 시간에는 "생각, 말, 행동",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 번 따라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생각."
"말."
"행동."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 좋은 말과 나쁜 말,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의 차이에 따라서 인생이 성공이냐, 실패냐가 좌우됩니다. 정말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가 결정됩니다. 복을 받을 사람이냐, 복을 받지 못할 사람이냐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서 4장 23절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생각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에서 좋은 말이 나오며, 좋은 말에서 좋은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 안에서 삼위일체가 되어 잘 이루어질 때,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이 잘 이루어질 때, 하나 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을 수 있으며,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넘치게 축복을 주시는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받는 우리가 될까,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좋은 생각을 많이 하자.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하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또 좋은 생각을 하면 마음에 평안함이 있습니다. 마음에 늘 평안함이 있는 사람은, 날마다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함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또 좋은 생각은 우리 몸에 활력소가 됩니다. 우리를 건강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몸에 활력소가 있어서 병이 들어왔다 가도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막 용솟음 치는 거예요. 좌절하지 않아요. 낙심하지 않아요. 뒤로 물러가지 않아요. 무엇이든지 하고 싶어서 막 몸에 힘이 생겨요. 그래서 마음에 결단을 하고, 또 말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고 무엇이든지 힘있게 용기를 가지고 시작하면, 안 되는 것들도 되게 되고, 없는 것들도 있게 되고, 놀라운, 하나님 안에서, 주님 안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개 좋은 생각보다는 나쁜 생각을 즐기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인간의 이런 습성을 잘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9절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생각을 합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생각을 하면서 이상하게 그것에서 쾌락과 기쁨을 맛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서 로마서 8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영이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을 봐야 합니다. 나쁜 것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좋은 자연, 좋으신 하나님 말씀의 말씀을 자주 읽으며, 자주 보아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더 많이 눈으로 보면서 읽어야 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 생각을 더 많이 해야 돼요. 그 뿐이 아닙니다. 예수님 생각을 더 많이 해야 돼요. 그 뿐이 아닙니다. 성령님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 이 무엇입니까? 요즘 TV가 텔레비전이 우리의 생각을 나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요즘 청소년들이 19세가 되기 전에 자그마치 20만 건의 폭력물을 본다는 것입니다. 또 5만 건의 살인을 TV를 통해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폭력물을 보고, 많은 살인 사건을 보았을 때, 그들 마음속에 좋은 생각이 들어가기가 전혀 만무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렇게 살면 안돼요. 할 수만 있는 대로 좋은 책을 많이 보고, 이왕 이면 좋은 비디오를 보고, 좋은 미담의 역사서를 많이 읽고, 좋은 미담의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살아가면, 분명히 좋은 사람이 되어서 이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맑고 밝고 환한 좋은 사회로 만들게 될 줄 믿습니다.
또 좋은 생각을 의식적으로 심는 삶도 가져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원수 마귀는 우리에게 나쁜 생각을 자꾸 심어주려고 하거든요.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그런 것들을 다 뽑아 버리고, 어찌하든지 내 의지적으로라도 ''나는 정말로 내 마음에 좋은 것 심어야지, 내가 좋은 생각을 해야지!'' 하고 살아가면 누가 도와주시느냐,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악한 방향으로 쉽게 흘러가기 때문에 이것을 의식적으로 제어하는 노력이 성도에게는 꼭 필요하다, 그 말입니다.
자, 그러면 어떤 생각을 심어야 할까요? 빌립보서 4장 8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유롭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한 것은 이것은 ''방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책임''지는 거예요. 자기가 생각했으면 말하고 말한 것에 대한 책임, 또 자기 행동한 것에 대한 책임, 이런 책임이 있을 때, 이것이 중요한 민주주의가 되고, 이것이 정말로 살기 좋은 사회이고, 맑고 밝고 환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너무나 많은 지도자들이, 너무나 많은 기성세대들이 안타깝게도 자유는 말을 많이 해요.
"나는 생각의 자유다",
"나는 말의 자유다",
"나는 행동의 자 유다"
그래요. 좋아요. 생각의 자유, 말의 자유, 행동의 자유, 좋아요. 그러나 자기가 한 말은, 자기가 한 행동은 자지가 책임을 져야 이것이 민주주의의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만의 하나라도 자기가 말한 것 책임지지 아니하고, 자기가 행동한 것 책임지지 아니하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경제, 사회, 종교의 지도자가 전혀 될 수가 없다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될수록 좋은 생각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말하기 전에는 반드시 깊이 생각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15장 28절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성인 성(聖)자 한문을 보면, 귀 이 (耳) 변에 입 구(口), 그 다음에 임(壬)자를 썼습니다. 그 말이 무엇입니까? 듣기는 많이 듣고, 생각도 많이 한 후에 말을 하면 그 사람은 성인 군자가 된다, 그 말입니다. 듣는 것 교만해서 안 들으려고 하고,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말만 자꾸 뱉어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무리 지식이 있고, 지위가 있고, 권세가 있어도, 그런 사람들은 존경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인 군자가 될 수가 없다, 그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위한 일들을 깊이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같이 위대하신 분도 우리를 깊이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베푸시고, 사랑을 베푸실 때도 그냥 기분 나시는 대로 뚝뚝 잘라서 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 하나님도 깊이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보세요. 시편 40편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 어떻게 하신다고요?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그 뿐이 아닙니다. 시편 144편 3절입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생각하고 계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해보시고
"그래, 이만하면 내가 사랑을 베풀 때가 되었어", 생각해보시고
"이만하면 내가 응답해 줄 때가 되었어", 생각해보시고
"이만하면 내가 치료 해주고 복 주실 때가 되었어"
하고 결단하신 후에 우리에게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다 영혼이 잘 되게 해주시고, 범사가 형통하게 해주시고, 강건하게 하시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시는 놀라운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생각하시며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 말씀인 것입니다.

둘째, 좋은 말을 많이 하자.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자."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부요하기를 원하십니까? 한 사람도 여러분 스스로가 불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한 사람도 여러분 스스로 가 "나는 가난한 게 좋아", 가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로 행복하려면, 우리가 부요하려면, 우리말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행복을 많이 말하면 행복이 오고, 불행 을 많이 말하면 불행이 오는 거예요. 부요를 많이 말하면 부요가 오고, 가난을 많이 말하면 가난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우리가 삶 속에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려면 우리는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실수 가운데 가장 잘못된 실수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실수가 많은데 그 중에 제일 무서운 실수가 뭐냐, 제일 큰 실수가 뭐냐, 말의 실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말의 실수가 없다면 그 사람은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요, 온전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나쁜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하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하는 말로 인해서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합니다. 잠언서 12장 18절 말씀입니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어떤 사람이 쓴 글에 보니까, 전 세계에서 전쟁으로 말미암아 총칼로 죽은 사람보다 세치도 안 되는 혀의 말로 상처받아서 마음이 상해서 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전쟁이 나서 총칼로 죽은 사람보다 수 십 배, 수 백 배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보면 이 불과 세 치도 안 되는 혀가 핵무기보다 무서운 거예요. 신무기보다 무서운 겁니다. 혀 때문 에 마음 상하고, 혀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혀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혀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냐, 그 말입니다.
반대로 좋은 말은 어떤 말입니까? 위로하는 말, 평화를 주는 말, 기쁨을 주는 말, 은혜를 가져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말은 미움과 시기와 절망과 죽음을 가져오게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말을 하려면 좋은 말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부모를 통해서 좋은 말을 듣고, 스승을 통해서 좋은 말을 듣고, 형제를 통해서 좋은 말을 듣고, 그 뿐이 아닙니다. 예배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 설교를 통해서 좋은 말을 듣고, 성경을 더 많이 읽음으로 말미암아 더 좋은 말을 듣는 우리가 되어져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과, 또 부모의 말을 경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무시해도 안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경청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감사함으로 그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 양약이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해마다 어린이 주간이 되면, 참 저는 듣기 싫은 소리를 가끔 들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내가 별로 못 들은 것 같애. 1999년은 안 그랬던 것 같아요. 해마다 어린이 주일이 되면 너도나도 방송국에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국에서 앞 다투어서 학교를 찾아가요. 길을 가는 학생들에게 물어요.
"너, 무엇이 제일 싫으니?"
그래요. 어린이 주간에. 그러면 그래요.
"우리 엄마 가요 공부하라는 말이 제일 싫어요. 학원 가라는 말이 제일 싫어요. 나는 그런 소리 좀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반대로,
"너는 무엇이 제일 좋으니?"
"무슨 말이 제일 좋으니?"
그렇게 물으면 어떠냐, 그 말입니다.
"무엇이 제일 싫으니?"
그렇게 묻는 언론의 기자들이나, 또 그렇게 대답하는 어린아이들이나 다 답답해요. 여러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한다고요. 그것은 잔소리가 아닙니다. 부모의 말은 잔소리가 아니라, 생명의 소리인 줄 믿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벌어서 공부하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벌어서 학원 가라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땀 흘리고 애쓰고 수고해서 전체 수입의 40%라는 많은 돈을 자녀의 교육비로 쓴다고 그러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까운 돈을 주면서
"학원 가라",
"공부하라",
"학교 가라"
그러면 ''나를 위해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생하시는구나!'' 그러면서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 것인데, 이게 잔소리로 들려지는 거예요.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만약에 그 부모가, 그렇게 잔소리하는 부모 가 없다면,
그렇게 잔소리하는 선생님이 없다면 어떻게 교육을 받으며, 어떻게 살고, 우리가 지식을 얻고, 우리가 이 사회에서 힘있게 살아갈 수가 있겠냐,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대로
"무엇이 좋으냐? 어린이날이 되어서 무엇이 좋으냐? 말 좀 해봐라."
"네, 좋은 것이 있지요. 우리 아버지와 우리 어머니가 피로 날 낳으셨잖아요, 우리 아버지와 어 머니가 힘들게 벌어서 우리를 학교에 보내 주시잖아요. 그것만도 아닙니다. 학원까지 가라고 말씀합니다. 학원비가 얼마나 비싼지 몰라요. 과외비가 얼마나 비싼지 몰라요. 우리들 잘 살고, 교육을 잘 받아서, 훌륭한 사람되라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는 지 몰라요. 너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좋아요."
아멘. 왜 그런 사회를 못 만드냐, 그 말입니다. 왜 그렇게 대답을 못 하냐, 그 말입니다. 왜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왜 유도하지 못하냐,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돼요.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도록 말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묵상하기 때문에, 입을 열면
"하나님 아버지."
입을 열면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
입을 열면
"우리의 보혜사 성령님."
입을 열면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진실로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습니다. 구하는 이가 받고, 찾는 이가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IMF 경제 체 제에서 어렵지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66권속에서 축복의 말씀을 가득가득 우리에게 약속해주셨습니다. 그것을 믿고 우리가 받아들인 사람마다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입에서 하나님 말씀이 막 나와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적인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치료의 힘이 있습니다. 축복의 힘이 있습니다. 저주가 물러가고, 원수 마귀가 한 길로 들어왔지만, 일곱 길로 떠나게 될 줄 믿습니다.
나쁜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 살면서 나쁜 말이 안 들려질 수가 없습니다. 유혹이 말이 안 들려질 수가 없습니다. 마귀의 말이 안 들려 질 수가 없습니다. 다 들려져요. 그럴 때는 한 귀는 듣고 쏙 뽑혀 나가게 하는 거예요. 그런 말을 들려 준 사람 앞에서 못할지라도 돌아서면 탁탁 털어
"나는 이 말과 관계가 없다. 유혹의 말아, 핍박의 말아, 이 부정적인 말들아, 다 물러가라!"
쫓아버리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 어떤 것이 좋은 말일 까요?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며, 경 우에 맞는 말, 이것이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8장 7절에 말씀하십니다.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또 어떤 말이 좋은 말입니까?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말, 중립적인 말,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15장 1절에 말씀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그랬습니다. 또 어떤 말이 좋은 말입니까? 남을 위로해주고, 칭찬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16장 24절입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믿음이 담긴 말, 여기에는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귀신도, 질병도, 저주도 말로서 물리칠 수 있는 것,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말을 긍정적으로 말할 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말을 창조적으로 말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의 힘에 때라서 행복과 불행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불행을 말하면 불행이 오고, 행복을 말하면 행복이 옵니다. 이 우리의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몰라요.
여러분이 정말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괴롭히는 원수 마귀가 다 한 길로 왔을지라도 일곱 길로 쫓겨나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또 어떤 말이 좋은 말입니까?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말. 잠언서 17장 9절입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어떤 말이 좋은 말입니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말. 에베소서 5장 4절입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언제나 생각한 뒤에 말하는 습관도 가져야 합니다. 부부싸움을 해결하는 비결 중 하나가 뭐냐고요? 그런 말이 있어요. ''3분만 참아라! 부부 싸움은 없다!'' 3분만 참아라. 그렇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한 것의 결과는 우리 자신에게로 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이런 말을 합니다. 전도사 10장 20절입니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처럼 오직 바르고 정직한 말을 하고, 이해하고 깨달은 말을 하며, 좋은 말을 해야 될 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37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셋째, 좋은 행동을 많이 하자.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좋은 행동을 많이 하자."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과 좋은 말은 반드시 좋은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행동은 그 사람의 삶이요, 인격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그랬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복을 받느냐,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행동은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나쁜 행동은 파괴와 분열과 멸망을 가져옵니다. 좋은 행동은 나도 좋고 남도 좋지만, 나쁜 행동은 나도 망하고 남도 망한다, 그 말입니다.
생각과 말이 행동으로 입증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좋은 생각을 했다면, 좋은 말을 했다면 분명히 그 행동으로 그 좋은 것이 증거 되고, 입증되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한다고 말만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8절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경 말씀을 듣고 실행치 아니하는 사람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마 7:26-27), 그랬습니다. 우리는 좋은 행동과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경건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경건을 실천해야 합니다. 또 우리 사회의 커다란 단점은 무엇입니까?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그래도 있는데,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사랑을 말해야 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구제하고 나누어주어야 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몸으로 참여하고 봉사해야 그것이 교회를 사랑한다 말하는 것이 그대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십니다. 시편 150편 2절을 보니까,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말입니다. 아담의 나쁜 행동이 전 인류에게 비극을 가져온 것처럼, 또 예수님의 좋은 행동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 온 것처럼, 우리 모두가 다 이제 아담 따라 가지 말고,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따라 갈 때, 나도 잘 되고, 가정도 잘 되고, 사회도 잘 되고, 우리 모두가 다 좋게 될 줄 믿습니다.
최근에, 지난 10월 30일날 인천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꽃다운 55명이 죽었습니다. 총체적으로 잘못 행동한 사람들로 인하여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감독 관청, 경찰, 건물주인, 그 업주, 다 책임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학교도 잘못 가르친 책임, 교회도 잘못 가르친 책임, 더더군다나 부모도 잘못 가르친 책임, 본인들도 분별 없이 행동한 책임,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십니다. 사무엘상 2장 3절입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 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행동 을 해야 됩니다.

넷째, 좋은 사람이 되자.

따라 하시겠습니다.
"좋은 사람 이 되자!"
그렇습니다.
생각이 좋고, 말이 좋고, 행동이 좋은 사람, 인격자입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복 받을 사람입니다. 누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 누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고, 실천하는 사람.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 누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힘으로 되지 아니 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그랬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세례, 성령충만 받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서 성령세례 받고 성령 충만함 받으면, 얼마든지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고, 열매를 맺고 살아갈 수 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