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목사 (기독교한국침례회 영안교회)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를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죄'일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사업에서, 관계에서,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 등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런 크고 작은 실패들이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다 줍니다. 그러나 죄와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저는 죄로 말미암아 실망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왔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텍사스의 형무소에서 한사람을 보증하여 석방해 낸 일이 있습니다. 그는 30세의 청년이었습니다. 면회실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저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마약으로 10년형을 언도 받았는데 지금 3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교도소에 들어와서 성경도 읽고 예배도 드리고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 제발 저를 믿어주시고 보증을 서 주십시오! 제가 이제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목사님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사정했습니다. 제가 사인을 하면 그는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세 번 그를 만나고 나서, 망설이다가 사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집에 데리고 와서 2주 동안 우리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성경을 가르치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어느 정도 제대로 사는 것 같아서, 교회 앞에 아파트를 하나 얻어주고, 모든 생활비를 다 대주며 그곳에서 지내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출소한지 딱 3주째가 되는 어느 날, 저의 차를 가지고 나갔다가 사흘만에 들어왔는데, 이미 마약을 입에 댔습니다. 길에서 경찰에게 심문을 당하고 도망 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쫓기는 얼굴로 저를 찾아와 "목사님, 제가 도망가야겠는데 도와주십시오! 다시 잡혀 들어가면 감옥에서 남은 7년을 보내야 합니다!" 그 날 밤, 그가 흘렸던 절망의 눈물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머리를 벽에 찍고, 손으로 벽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길 수 있는 줄 알았는데, 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며 저의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제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다니요!" 그는 울부짖으며 통곡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가정은 결혼생활 1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간음의 죄에 빠지던 그 어느 날, 그 가정에는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부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로 벌어져 버렸고, 자녀들은 고통으로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쌓아올린 그의 경력과 직장을 다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제 앞에서 흘리던 그의 눈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여러분, 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노력의 실패, 그리고 다른 실패는 나를 약간 실망시킬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그 순간, 그것이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것 같지만, 죄는 반드시 우리를 추적하여 우리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저와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서 죄의 독침에 쏘여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밝은 얼굴을 하고 예배를 드리고 길을 다닐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한 두 번쯤 죄의 쓰라린 독침에 쏘여 보았을 것입니다. 죄는 언제나 그렇듯이, 저와 여러분을 파멸과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 넣습니다.

죄의 독침에 쏘여 절망의 수렁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같은 죄를 짓고, 또 짓습니다. 결심을 해 보지만 또 다시 무너져 버리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시편 130편 기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소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어떻게 시편기자는 이러한 대답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까요? 그의 체험을 통해, 그의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그 스스로도 죄에 한번 빠져 보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수렁에 빠져 낙심과 절망 가운데서 신음하던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나고 그 수렁에서 빠져 나와 본 경험이 있기에, 자신의 간증을 하며 우리에게 "예,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 시편 130편은 네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정확히 쓴 사람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많은 성경학자들이 생각할 때, 이 시편은 이스라엘 왕 중의 한 명이 썼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 왕은 남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죄를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큰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그 죄의 결과로 생긴, 독침처럼 파고드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경험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네 단락은, 우리가 절망 속에서 빠져 나오는 네 단계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절망의 수렁에서, 죄의 늪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시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빠져 나올 수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 네 단계가 필요할 줄 믿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부르짖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1. 부르짖으라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체험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깊은 데서' 이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저 산 위에서가 아니라, 저 흑암 깊은 데서입니다. 그는 지금 실망과 절망의 수렁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의 죄 때문입니다. 3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여기서 말하는 죄악은 똑바른 것을 구부러뜨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똑바로 가는 것인데, 그는 일부러 그 길을 가지 않고 굽은 길로 가버린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만 성생활을 해야 하는데, 다른 남녀를 만나 관계를 맺은 겁니다. 이것은 범죄입니다. 구부러진 겁니다. 속이지 말아야 하는데, 거짓말을 해서 부(富)를 축적한 것도 하나님의 법을 떠나 구부러뜨린 겁니다. 이것 역시 죄악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왕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져서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며 부르짖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이것은 죄 때문입니다. 이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은 제 잘못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의 부르짖음을 한번 들어보세요. 잘 관찰해 보세요. 1절, 2절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懇求)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 시편기자의 간절하고 애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까? "주님, 내가 부르짖사오니, 내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간구하는 나의 음성에 귀를 한번만 기울여 주십시오!" 얼마나 처절한 시편기자의 심정입니까?

우리가 죄의 절망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먼저 이런 부르짖음이 있어야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 또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루 지나 면 잊어버립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절망 속에서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겁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세요. 제가 지금 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어요. 죄 때문에 우리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죄 때문에 제 자녀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제 교회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주님, 제가 부르짖사오니 제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신기한 것은 '나의 간구(懇求)하는 소리'에서 이 '간구(懇求)'는 은혜라는 단어와 그 어원이 똑같습니다. 시편기자는 무엇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애원하는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수표를 남발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이런 사람을 봅니다. 자기가 지은 죄의 결과가 찾아오면, "하나님, 이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음부터는 하지 않겠습니다" 공수표지요. 어떤 분은 하나님 앞에 뇌물을 바치려고 합니다. "하나님, 만일 이번만 용서해 주시면, 하나님 앞에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얼마만큼의 헌금을 드리고, 얼마만큼의 봉사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이러한 잘못된 약속과 뇌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해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죄의 수렁에서 끌어낼 수 있습니까? 내 결심입니까? 내 약속입니까? 내가 하는 작은 봉사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할 줄 믿습니다. 시편기자는 이것을 알고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渴急)해하며 부르짖고 있는 겁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내려 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넘어집니다. 그런 절망의 수렁에서 그 죄가 우리의 발목을 붙들지 않고, 그 수렁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 부르짖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확신의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2. 확신하라

3절과 4절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관찰해 본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종종 죄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보다는, 그 죄의 수렁에서 머물러 있는 이유가, 자신이 너무 많은 실패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난달에도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 회개했는데, 내가 또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겠는가? 나는 너무 많은 실패를 했어. 하나님은 내 모든 잘못을 기억하고 계실 거야." 그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적인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일일이 장부에 기록해 놓으시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장부를 들춰내서, "너 1996년에 이 죄를 범했고, 97년 2월에도 이 죄를 범했고, 98년도에도 내가 용서를 해 줬고, 99년도에는 세 번이나 찾아 왔고... "이런 하나님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기자가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인 줄 압니까? 그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는지 압니까? 여기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계사가 아닌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기록한 장부가 아예 없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그 순간 우리의 죄를 잊어버리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런 확신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3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 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하나님이 만일 우리의 죄를 계산하고 계신다면 누가 주님 앞에 설 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사유(赦宥)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여기서 '사유하심'은 '용서하심'을 말합니다. 우리가 왜 주님을 경외합니까? 주님은 우리의 죄를 감찰하시기보다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쓰인 '용서'라는 단어는 독특한 단어입니다. 구약에서는 이 '용서'라는 단어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쓴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조건 없는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횟수와 상관없습니다. 잘못을 아뢰기만 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해 주십니다. 이 개념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6~7)

이사야 선지자는 왜 이런 말씀을 선포했을까요? 그 이유를 8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8~9)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는 상상할 수 없이 높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용서의 범위는 우리의 이해의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면 용서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생각을 해부해 보면 자신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자기의 속만큼 좁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너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아!" "죄를 범했느냐? 나오기만 해라! 돌아오기만 해라! 내 앞에 나와서 부르짖기만 해라! 그것이 몇 번이건, 얼마나 심각한 죄가 되었건,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해 주마!"

구약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과연 그런 분이셨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들고 왔더니, 백성들은 그 동안을 못 참고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섬겼습니다. 모세는 너무 화가 나서 십계가 새겨진 돌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백성을 다 죽이셨나요? 아닙니다. 그 백성들이 겸비하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 엄청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에 들어간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그 얘길 듣고, 온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돌로 쳐죽이려고 했어요. "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느냐?" 하나님은 그들에게 40년 동안이나 회개할 기회를 주셨어요. 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용서를 가장 확실하게 받은 왕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므낫세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왕 중, 가장 악한 왕이 있다면 바로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55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수많은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예배당에 바알신을 섬기고, 자신이 복을 받으려고 이방의 풍습에 따라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죽이고, 수많은 여자들을 바알 신전에 모아 놓고 문란한 행위를 하고, 백성들에게 온갖 음행한 일을 다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셔서 전쟁을 일으켜 포로로 잡혀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놀라운 말씀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33장 10절부터 13절까지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간지라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돌이킬 수 없는 흉악한 죄를 지은 므낫세가 바벨론에 전쟁 포로로 잡혀가서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아!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했구나!" 하고 회개합니다.
우리는 보통 고난이 와야 회개하지 않습니까?

상담을 해 보세요. 우리에게 왜 고난이 필요합니까? 가정을 떠나 다른 사람과 간음을 행합니다. 숨겨져 있을 때는 즐깁니다. 그 간음 행위가 드러나서 가정이 흔들리고, 자기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비로소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므낫세도 그랬습니다. 그가 돌이키니까 하나님이 그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범위는 우리의 이해의 범위를 초월함을 믿으십니까? 이런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런 확신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미국에 헤롤드 휴즈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결혼을 했어요. 그러나 얼마나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아내의 마음에 많은 상처를 심어 주었어요. 그리고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그의 아내는 그의 술을 끊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알코올중독 치료학교를 갔다오면 얼마간 나아졌다가 다시 술을 먹고 방탕한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죄를 짓고 나서 가장 실망하는 사람은, 아내나 주위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끝내기로 하고 자살을 결심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자살할 때 욕조에서 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도 역시 욕조에 누워서 엽총의 총부리를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습니다. 방아쇠만 당기면 이제 그는 끝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어요. 어릴 때 자신을 데리고 어머니가 불렀던 찬송가의 일부가 생각났어요. 그 찬송은 너무나 유명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였어요.

그는 하나님을 깊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열심히 교회를 나갔지만, 그는 알코올을 끊었을 때 잠간씩 나간 것이 전부였어요. 그는 자살하려던 총을 내려놓고, 마지막 사죄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욕실 타일에 무릎을 꿇고 욕조를 손으로 잡고 기도했어요. "아버지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평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머니, 아내,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올바로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습니다. 이제 아무 희망이 없어서 자살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자살하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 기도를 끝내려고 했는데 또 기도가 나왔어요.
"아버지 하나님, 제발 아내와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저를 깨끗이 지워 주세요!" 그렇게 입을 열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자기가 살아왔던 장면들이 영화필름처럼 펼쳐지는 거예요. 가족들에게 수많은 못질을 한 자신의 방탕한 모습들이 보여지는 겁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는 회개했어요. "아버지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가 쏟아져 나온 것에 대해, 그는 자서전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며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이런 일이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몇 시간을 통곡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했는데, 기진맥진해서 일어나 보니 차디찬 타일 바닥에 엎드려 있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며 간구하고 일어났는데, 자신의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왔어요. 평생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평안함! 마음이 그렇게 평안할 수 없더라는 겁니다. 그는 "이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와서 그 거룩한 손을 자신의 등에 대고 계심을 느꼈어요. 그래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나이 40대 초반에 이 일이 있었는데, 8년 후인 49세에 헤롤드 휴즈는 아이오와주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에, 워싱턴 DC에서 미국을 이끄는 상원 국회의원 중에서도 국회의장을 지낸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사건입니다. '알콜 중독자가 상원의원 의장이 되다!' 그 날 이후, 그는 하나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주일에 예배드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에 자신의 생을 바쳤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장부에 기록하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가 돌아오도록 밤이나 낮이나 기다리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집을 나가면, 우리를 잊어버리고 팽개쳐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99마리의 양을 집에 버려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셔서, 골짜기를 건너시고 가시덤불을 헤치는 선한 목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런 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의 크기와 횟수에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의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그 다음은,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용서하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3. 기다려라

세 번째 단계로 기다리라고 말씀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우리가 죄에 빠졌을 때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는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확신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 가운데 있다가 잠깐 기도하고, 바로 뛰는 사람들이 있어요. 죄를 지었으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헌금도 하고, 마구 뛰어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그런 일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심각한 죄 가운데 있다면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고통 가운데서 기다리는 것은, 죄의 결과와 그 흔적으로 말미암아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자신이 기다려보고 나서, 이 기다림을 '파수꾼의 기다림'에 비유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제가 졸병 때 보초를 나갔습니다. 제가 간 안동 39사단은 100% 보병 밖에 없었어요. 졸병 때는 밥 먹고 나가서 하는 일이 보초서는 일입니다. 하루에 4교대를 하는데 졸병들은 3교대를 합니다. 비상이 걸리면 2교대를 합니다. 그러면 하루 12시간 보초를 서야합니다. 2교대가 걸렸을 때, 내 다음 사람이 고참이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교대시간에 고참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졸병을 '말뚝보초'라고 합니다. 밤 10시에 나가면 새벽 2시에 들어와 자야 되는데, 고참이 4시간 동안 안 나오면, 나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보초를 서야 합니다. 제가 최전방(?)인 부산의 거제리 정비창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졸병 때는 간첩이 넘어오는 걸 진짜로 믿어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긴장하는 겁니다. 보초서는 그 4시간은 정말 깁니다. 처음엔 기도하고 찬양하고 견딥니다. 그러다가 고참이 못 나온다고 전화가 오면, 그 새벽 2시부터 6시까지는 보초 안 서 본 사람은 모릅니다. 해가 뜨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얼마나 아침이 기다려지는지 모릅니다. "왜 이렇게 해가 뜨지 않나!"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고, 피곤한지 모릅니다.
시편기자는 얘기합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여러분이 뛰기 전에 하나님을 기다려 보셨나요? 내가 죄를 지었어요. 죄를 지을 때는 즐거웠어요. 그러나 그 죄가 드디어 독이 되어 나를 쏩니다. 내 가정이 흔들리고 내가 심히 고통 당합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을 믿으며 확신합니다. 그렇다고 금방 응답이 오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다리는 작업이 쉽지 않다고 시편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얘기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가 치료받기 위해, 회복되기 위해 하나님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는 생각지 않고, 일주일 기도해 보고 응답이 없으면 포기해 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은 말합니다.

"주님의 시간에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하루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리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In His time! 그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겁니다.

4. 증거하라

7절과 8절을 보세요.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 하시리로다

시편기자가 말씀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그는 큰 죄를 지었어요. 그 죄로 말미암아 고통이 다가왔어요.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기도하다가 그 다음,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주변의 일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의 인생에 간섭하셔서 수렁에서 끌어올려 주십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시편기자는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증거 했어요. 내가 죄를 지어 고통 속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셨다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주 기쁜 소식을 들었다면, 어떻게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놀라운 일은 우리가 그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치유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같은 사역을 하십시오. 알코올 중독에 걸렸다가 주님 앞에 돌아와서 술을 끊은 사람들을, 교회에서는 다른 알코올 중독자가 오면 그 사람을 선생으로 붙여줍니다. 그러면 그 알코올 중독자가 중독에서 빨리 벗어날 뿐만 아니라, 마음에 남아 있던 그 죄의 상처가 깨끗이 지워집니다. 저는 그런 간증을 많이 듣습니다. 사역하기 전까지는 100% 고침 받지 못합니다. 교회만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시는 분들의 신앙을 보세요. 하나님 앞에 완전히 고침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사역해야 합니까? 왜 전파해야 합니까? 왜 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까? 다른 사람을 돕는 의미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완전히 치유 받기 위함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며 참으로 감격스러운 것은, 이 순례자는 절망의 수렁에 빠져 있다가 8절에 가서는 설교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야할 순례의 삶인 줄 믿습니다. 누구라서 죄를 범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라서 실수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라서 과거에 잘못을 범하지 않은 자가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그 과거가 여러분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과거를 딛고 절망의 수렁에서 헤쳐 나와 설교자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간음을 범했던 자가 이제는 간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며, 간음을 막는 전파자가 될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 증거로 이 시편기자는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외칩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 하시리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과거에 지은 죄가 족쇄가 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므로 말미암아 그 실수와 죄악들이 여러분의 입술에 메시지가 되게 하시고, 외침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를 향해 설교가 되게 하십시오. 메신저가 되십시오. 이것이 진정 우리가 걸어가야 할 순례자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