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규목사 (순복음인천 교회 목사)

오늘 이 시간에는 "복 받은 가정",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시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 받은 가정", "복 받은 가정."

여러분들에게 질문해 봅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은 복 받은 가정입니까? 받은 복을 누릴 수 있는 가정입니까? "아멘" 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가정들이 사랑과 행복은커녕 상처받고, 넘어지고, 깨어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위기를 만나고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가정의 위기는 돈이 없거나 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아름답고 부족함이 없는 에덴을 다 주셨을 때, 아담은 그 자체만 가지고는 행복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아담이 언제 행복했을까? 아담이 깊이 잠들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해 주시고,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인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데려갔더니, 아담이 보고 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그렇습니다. 아담은 언제 행복했습니까? 하나님이 짝지어 준 하와를 만날 때, 가정을 이룰 때.
그렇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만드신 최초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해서 인간에게 복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날마다 구하고, 그 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어야 참으로 복 받은 가정인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들, 특별히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분들은 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사람, 복 받은 가정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우리 가정은 복 받은 가정이다." 아멘. 그렇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어떤 복을 주셨는지, 또 어떤 가정이 복 받은 가정인지를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받은 복을 누리면서, 또 나누면서, 풍성하게, 복되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 가정

첫째로,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 가정",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 가정." 이런 가정은 복 받은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또 인도하십니다. 또 복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복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고 말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을 때에는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행복을 도적질 당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되는데 아담, 자기가 주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와, 자기가 주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보호가 떠났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내가 주인입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물질이 주인입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자녀가 주인이 되면 그 가정은 벌써 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행복을 도적질 당하고, 빼앗김 당하는 것입니다. 복 받은 가정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 아버지가 되신 그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실 때, 그 가정은 복 받은 가정인 것을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약합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이 복 주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세워주지 아니하시면, 복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시편 127편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환경적으로는 기름지고 좋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은 곧 패가망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롯의 가정은 아브라함보다 더 풍요로운 땅을 차지했고, 이주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떠났기 때문에 롯의 가정은 무너졌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지키시면,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모두가 가난과 굶주림 속에 있다 하더라도 사르밧 과부처럼 안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또 효부 룻처럼, 그녀는 이방 여인이고 가난했지만,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가 죽고 어려웠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기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효도한 룻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는 축복 받은 여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떤 가정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인가? 예배가 그 가정의 중심이 되는 가정, 또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에 하나님은 주인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너희와 함께 있다"(마 18:20)고 그랬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곳에 주님이 찾아오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 주일 성수하며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에 찾아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의 가정을 항상 주님이 찾아가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은혜 주시고, 사랑하시고, 치료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이 매일 모여 예배를 드리는 가정은 하늘도 반드시 책임져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있는 가정은 고넬료의 가정처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구제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가족을 위해서 항상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항상 복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28편 1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일 성수하는 가정,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 기도하는 가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말씀을 듣고, 또 묵상하고 나가서 실천하는 가정은 분명히 복이 있는 가정인 것, 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가정인 것을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가정에 예배가 회복될 때,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복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을 날마다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둘째, 정당한 수고의 열매를 식물로 삼는 가정

두 번째입니다. "정당한 수고의 열매를 식물로 삼는 가정", "정당한 수고의 열매를 식물로 삼는 가정." 우리는 축복이라고 하면 나의 노력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축복은 노력 없이, 땀흘림이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축복과 은혜가 다른 것을 압니다. 은혜는 그냥 거저 받는 거예요. 하나님으로부터 그냥 거저 받는 겁니다. 은혜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뭡니까? "구원"입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 받는 것은 우리의 땀, 우리의 수고의 대가인 것을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축복이란,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열매 맺으며,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는 것입니다(갈 6:7, 시 128:2).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려서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속아서 날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있습니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노동의 신성함을 거부하고, 수고하고 땀흘리는 일을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자인 것입니다. 노동의 신성함을 거부하는 사람, 수고하고 땀흘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하반절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따라하시겠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이것을 가르쳐야 됩니다. 가정에서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확실하게 가르쳐야 됩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줘야 됩니다. 나라도,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에 있는 말씀이 아니라 신약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의 말씀이 아니라 은혜의 말씀인 것입니다. 은혜의 말씀 중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나님조차도 육일 동안 일하시고 수고하셨기에 창조의 기쁨을 맛보셨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 중에 6일 동안은 일터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땀흘리고, 애쓰고, 수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얻어지는 수확, 이것이 축복인 것을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얻어지는 열매가 축복인 것을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수고의 보람, 노력의 기쁨, 성실의 열매, 이 세 가지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행복이 뭐냐고요? 행복이 뭐냐고요? "수고한 만큼 보람이 있다", "노력한 만큼 기쁨이 있다", "성실한 만큼 열매를 맺었다." 이것이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셔들이면, 죄로 인해서 깨어진 이 행복이 다시 회복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쓴 열매를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게 해 주시는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28편 2절입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그랬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그런 복을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고, 그 수입의 일부를 이웃을 위해서 쓰는 것, 이것이, 이런 가정이, 진짜, 진실로 복 받은 가정으로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말을 합니다. 시편 37편 3절 말씀이십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그러므로 자녀를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과보호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노동의 신성함과 땀의 대가를 가르치지 아니하는 것,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자녀들은, 안타깝지만 범죄자로 키우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땀의 대가는 귀한 것이다, 존귀한 것이다" 하고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노력할 줄 알고, 애쓸 줄 알고, 땀을 흘릴 줄 아는 자녀로 키우는 것입니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서, 어느 자리에서 일하든지, 노력할 줄 알고, 수고할 줄 알고, 땀흘릴 줄 알고, 애쓸 줄 아는 그런 삶을 가르쳐 주는 그런 부모가 좋은 부모인 것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기도하는 아내,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세 번째, 복 받은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기도하는 아내,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기도하는 아내,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기도하는 아내, 순종하는 자녀." 아멘. 그렇습니다. 아내가 혹시 학벌이 좋지 않아도, 혹시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처가가 부자가 아니어도, 기도하는 아내라면, 혹시 자녀가 공부는 좀 못해도, 얼굴은 좀 못생겼어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모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 가정이야말로 복 받은 가정으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우리 가정, 복 받은 가정", "우리 가정, 행복한 가정."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이런 가정은 복 받은 가정이요, 행복한 가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28편 3절로 4절에 말씀하십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정에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여성이 좋은 아내다, 그 말인 것입니다.
유대 땅에서는 포도나무가 사람에게 얼마나 유익을 주는지 몰라요. 결실한 포도는 수분과 영양분이 있습니다. 유대 땅은 사막이기 때문에 물을 구하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몰라요. 그런데 포도를 통해서 수분을 공급받고, 포도를 통해서 영양을 공급받습니다. 유대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포도나무가 얼마나 필요한 나무인지, 얼마나 귀한 나무인지 몰라요.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여성은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지 몰라요. 여성은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합니다. 또 그들이 힘써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입니다. 또 나가서 힘써 남편을 일하게 합니다. 자녀는 나가서 열심히,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하게 합니다. 얼마나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몰라요. 여성이 결실한 포도나무의 역할을 담당할 때, 그 여인은 진주보다 귀하고, 그 남편은 아내를 믿고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다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언서 31장 10절로 11절 말씀이십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은, 현숙한 아내의 남편은 나가서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입니다.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아내, 그런 남편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여성들은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슬기로운 아내만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누가 그럴 수 있습니까? 예수를 믿은 아내, 성령을 받은 아내, 기도하는 아내, 말씀을 먹는 아내. 이렇게 살아갑시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복 주시는 가정은 그의 자녀들이 어린 감람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누구와 같다고요? 어린 감람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복 받은 가정의 아내가 포도나무와 같다면, 복 받은 가정의 자녀들은 감람나무와 같다고 그랬습니다. 포도나무가 귀한 것처럼 감람나무도 유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말로 귀중한 나무입니다. 감람나무에서 뭐가 나옵니까? 올리브유가 나옵니다. 기름을 짜서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밤에, 캄캄한 밤에 등불로 쓰여지는 기름이 뭡니까? 올리브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리브유는, 감람나무의 올리브유는 식용으로도 쓰여지고, 불을 밝히는 기름으로도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또한 감람나무는 한번 베면 죽어 없어지는 나무가 아니라, 베어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힘차게, 또 잘리면 또 나오고, 잘리면 또 나오고, 잘리면 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람나무처럼 우리의 자녀들은 실패에 굴하지 아니하고, 넘어졌다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진리 안에서 이 사회를 밝히는 하나님의 등불로 계속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칠전팔기하고, 승리하는 자녀들로 주님이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넷째, 대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가정

복 받은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대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가정." 그렇습니다. 이 말이 뭡니까? "대를 이어가는 신앙." 할아버지 신앙, 아버지 신앙, 아들 신앙, 손자 신앙, 계속 대, 대, 대대로 신앙을 이어가는 가정, 이런 가정이 복 있는 가정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는 목사예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제가 대형 교회의 목회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 분들이 있어요. 어떤 분들입니까? "삼대가 장로"예요. 할아버지 장로, 아버지 장로, 손자 장로, 삼대가 다 장로인 가정을 보면, 뭐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고, 또 존경스럽고, 고마운지 몰라요. 그런 분들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져요. 그리고 "삼대 목사." 할아버지 목사, 아버지 목사, 손자 목사. 이 땅에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온 지 불과 116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삼대 장로, 삼대 목사인 가정을 보면 얼마나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몰라요. 또 장로가 아니고 목사가 아니어도 "사대 신앙", "사대 신앙." 할아버지 신앙, 아버지 신앙, 자기 신앙, 자기 아들의 신앙, 사대 신앙. 그런 가정을 보면 얼마나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 대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가정을 복 받은 가정으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북한 사람들이 쓰는 말인데 잘못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앙에 도입하면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요. "대를 이어 충성하자." 따라합시다. "대를 이어 충성하자." 자기가 섬기는 교회를 위해서, 할아버지도 충성, 아버지도 충성, 그 아들도 충성, 손자도 충성한다면 복 받은 가정 중에 복 받은 가정인 줄 믿습니다.
이번에 금강산에 가는데 현대 금강호에 도착하고 깜짝 놀랐어요. 크게 플랜카드를 걸었어요. 천을 너무너무 크게 걸었어요. 거기에 글씨를 크게 썼어요. 뭐라고 썼는지 아세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가 그 플랜카드를 걸어 놓은 겁니다. 이렇게 문구가 쓰여져 있었어요. "한번 순복음은 영원한 순복음", 이렇게 써있었어요. 야, 은혜가 되대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가 그것을 걸었어요. "한번 순복음은 영원한 순복음." 그 말은 해병대가 쓰는 말이죠?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그러나 해병대만 쓰라는 법은 없습니다. "한번 순복음은 영원한 순복음."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시편 128편 5절로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찌로다}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드릴까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찌로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대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복중의 복이 뭡니까? 우리의 가정이 평생토록 성전에서 흘러 넘치는 복을 누리고, 나아가 자식의 자식을 성전에서 보는 것, 이것이 복중의 복인 것을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전, 곧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의 보혈을 통해서 축복과 치료가 넘쳐흐르는 것이 성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어른들은,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남향이나 동남향에 집을 지으면 최고로 좋다고 그랬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바꿔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의 집이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하느냐? 성전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성전을.
독일은 2차 대전 때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폐허 위에 교회를 먼저 지었습니다. 제일 아름다운 땅, 제일 언덕의 땅, 제일 보기 좋은 땅에 교회를 먼저 세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고, 모든 집을 지을 때 교회를 향해서 창만 열면, 문을 열면 모든 방향이 다 교회를 향해서 서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독일에 가보면 놀라운 것은, 모든 큰 건물의 유리창은 모두 십자가의 형태로 정확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창틀이 다 십자가입니다. 다 십자가. 그리고 창문을 열면 모두 교회가 다 보입니다. 2차대전에 그들은 패망했지만, 세계의 정치, 경제, 기술의 대국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해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교회가 곧 우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곧 교회가 되어야 복 받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잘 들으세요. 교회를 등지고 살면 혹시 자기 대에서는 믿음생활을 잘한다고 할지 몰라도, 자식 대에 가면 성전을 등질 수가 있어요. 나뿐만이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교회 중심의 삶을 가르쳐야 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전을 떠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호수아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고 그랬습니다. 성경에 말을 합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입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여호수아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청년 여호수아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 순복음의 아들딸들, 순복음의 청년들이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저녁에 성전에 모이고, 일할 때에 일하고 주일날 성전에 모여서 기도하는 청년, 찬양하는 청년, 복음을 전하는 청년, 선교하는 청년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교육시키십시다. 제일 아름다운 게 뭡니까? 부모와 자녀가 함께 손을 잡고 주일날 교회를 향해서 가는 모습이 제일 아름다운 모습인 줄 믿습니다.

결론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 가정은 이미 다 복 받은 가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가정은 복 받은 가정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물질, 명예, 권력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이것 자체가 우리에게 복을 줄 수는 없습니다. 행복을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가정마다 행복하고, 가정마다 복되고, 가정마다 즐거운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우리 모든 가정을 하나님이 축복하심으로 말미암아 복 받은 가정이 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이제 받은 복을 누리며, 베풀어주며, 나누어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