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목사 (대흥장로교회)

지난 12월에 한국에 ET 할아버지라고 불리던 채규철 이라는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이 분은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한국인의 계몽과 복지를 위해서 일생 헌신하신 분입니다. 그분에 관한 기사를 보니까,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 저기가 어디야... 참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 이분이 말씀하신 것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 우리가 사는데 F가 두 개가 필요해, Forget (잊어버리라)과 Forgive(용서해라)” 1968년에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술을 30회 이상을 해서 겨우 살았지만, 온 몸이 화상으로 일그러졌습니다. “내가 만약 사고가 난 뒤 그 고통을 잊지 않았다면, 나 지금처럼 못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로운 것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에는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새 해에는 우리 다른 모든 것은 A 학점을 받으시고, 두 과목의 F를 갖고 살아갑시다.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과거에 내게 행한 미움과 고통들... 형제를 용서하고 살아가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벌써 5학년입니다. 6학년입니다... 엊그제 갑자기 제 아내가 당신은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가?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정답은 알아요. 당신하고 결혼했던 그 때가 가장 행복했어.... 이렇게만 대답하면 3년은 편안할 것입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언제가 제일 행복했었나?를 생각하면서 대답을 못했더니, 옆구리 공격이 오는 겁니다. 그래서 정답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저의 솔직한 대답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라고 생각합니다. 10대보다는 20대가, 20대보다는 30대가, 30대 보다는 40대가 행복합니다. 올 해도 제 삶에 가장 행복한 한 해로 이끌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올 해로 우리 교회가 30살이 되었습니다. 1977년에 이익관 목사님과 몇 분의 성도님들이 시작한 우리교회가 이제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 은혜의 축복의 방법으로서 수많은 분들의 수고와 헌신, 눈물과 땀흘림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성장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30살은 참 중요한 해입니다. 교회 30주년이 무슨 대단한가? 라고 말하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하루에도 수십 개의 교회가 문을 열기도하고 닫기도 합니다. LA 교계를 대표하던 교회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오랜 전통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있는 교회도 많습니다. 사람이 30살이 다되도록 시집장가를 못가면 놀림감이 되고 맙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은 나이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내 나이가 얼마인데...” 나이로 한 수 누르려 고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평양부흥운동 100주년이 있는 해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 요즘 한국교회에도 쓸데없이 나이와 전통만 자랑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90년이 되었고, 100년이 되었고... 아무것도 비젼도 사명도 없는 역사는 부끄러울 뿐입니다. 전통과 역사는 내일의 비젼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올 해에는 우리교회가 청년교회답게 젊음이 있고, 헌신이 있고, 비젼이 있는 교회로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제 한국축구를 세계 4강까지 들게 하였던 유명한 축구 감독인 히딩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국가대표직을 맡고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변화”를 싫어하는 한국의 축구를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짜여오던 틀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한국 축구가 망하는 줄 알고, 자기 것을 고집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이젠 소년 사이즈를 벗고 헌신과 젊음이 넘치는 교회로 새롭게 출발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다윗이 쓴 시편 110편은 구약에 나오는 메시아 예언에 대한 말씀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고 확실하기 때문에, 예수님도 사도들도 많이 인용한 시입니다. 오늘 특별히 나눌 말씀 3절은, 올 해 우리교회의 주제 구절이기도 합니다. 새벽이슬과도 같은 청년의 비젼과 헌신을 감당하는 대흥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거룩한 옷을 입자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을 가리켜 3절에 “거룩한 옷을 입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교회가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세워진 제단이 되려면, 올 해에 모든 성도님들이 거룩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거룩의 옷”은 구별된 옷을 입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분할 수 없는, 불신자들과 구분할 수 없는 회색의 옷을 입지 말고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임을 보일 수 있는 구별된 거룩의 옷을 입고 새해를 출발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35장에 보면, 야곱의 집안에 큰 위기가 닥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에서 강간을 당함으로 세겜땅 모든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제는 어디도 이동할 수도 머물러 있을 수도 없이 된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이 살인자가 되어 가나안의 모든 거민들과 브리스 족속들에게 언제 어떻게 공격을 당해 죽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상황에서 온 식구들에게 “벧엘로 올라가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그 전에 “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하고 의복을 바꾸고 벧엘로 올라가자”라고 외칩니다. 버리고 가자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올라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3번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하고... 의복을 바꾸고...” 어찌 보면 똑같은 말입니다. 성결케하자는 것입니다. [시 15 :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 15 :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여호와의 장막, 아버지의 집에 설 자는 정결한 자, 신실한 자입니다.

출애굽기19:10에서도 애굽으로부터 마지막 나가기전에 모세에게 한 가지를 명령합니다.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그렇게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명하며, 베드로는 15-16절에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 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가 거룩하기 때문에 자녀된 자는 당연히 아버지처럼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거룩의 표준은 아버지께 있으며 그가 세운 말씀에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22절에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청년의 가장 자랑스러운 모습은 순결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멋있으면 뭐합니까? 순결하지 못한 것은 청년의 모습은 아닙니다. 30살에 부요함을 자랑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 오렌지족 외에는 30살에 부요함, 집 큰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또, 건강을 자랑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 건강한데요... 순결입니다. 우리 교회가 30살이 되었으면 세상과 구별된 순결한 모습으로 새해를 출발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말씀으로 성결한 우리교회와 성도님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북유럽에서 흰 담비를 잡는 방법이 있는데,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구멍 입구에 까만 먹칠을 해 놓으면, 흰 담비는 털을 더럽히느니 도망가다가 그 구멍으로 들어가질 않고 돌아서서 싸운다는 겁니다. 짐승도 더럽히는 것을 생명을 내어주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너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새벽이슬의 특징은 맑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도 성결함인 줄로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 그러면 “풍성, 아름다움, 귀한 보석, 화려함...” 이런 것들을 먼저 생각하는데, 계시록에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모습이 “거룩”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2. 즐거이 헌신하자

두 번째로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의 모습은 “ 즐거이 헌신하니...”입니다. 하나님은 즐거이 감당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어린아이 때에는 억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의 때의 특징이 있다면 자원하여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때에 유일하게 인간이 그 십자가 사역에 동참한 사람이 있습니다. 구레네인 시몬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부터 누우실 사관이 없고, 반겨 맞는 마음이 없었고,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사랑하는 제자들마저 모두 도망가고 흩어졌지만, 그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유일한 사람이 “구레네인 시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로마의 군인들이 그에게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는 힘들기만 할 뿐 아무런 영광이 없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맡겨진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직으로서 교사로서 찬양대로서, 각봉사의 부서로서... 세상의 모든 일 다 감당하고 시간 있으면 감당하겠다라는 자세라면 아예 시작부터 하지 마십시오. 해봐야 헛고생입니다. 아무런 인정도 상도 없습니다. 즐거이 헌신합시다. 고린도후서9:7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사야12:2-3에 "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 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생수는 결코 악에 바친 얼굴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즐거움이 없는 예배는 인위적인 예배이다. 즐거움이 없는 헌신은 인위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릇을 준비하실 때에 즐거움으로 감당할 그릇을 찾으십니다. 성전에 바쳐진 사무엘도, 하나님의 사명을 받는 이사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할 때에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써주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쁨으로 감당할 준비가 된 고백입니다. 빌립보서 2:13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나가실 때에, 우리로 소원을 두게 하신다는 것은 하고자하는 열망을 주시고,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찬송가513장 "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로써 갈한 심령에 힘을 얻고 주가 언약한 말씀을 기억하고 너 십자가 지고 가라.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가라 내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시편100:2 -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성경에 보면, 특별히 즐거이 감당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찬양입니다. 찬양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노래하라! 이렇게 꼭 수식어를 “즐거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이 찬양할 수 있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는 헌신과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제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릴 때에 즐거이 감당하라고 말씀합니다. 예배드리는 이시간은 우리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는 여호와 그분을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운 겁니다. 환경과 때와 관계없이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박국3:17-18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평범한 것은 참 큰 축복입니다. 대단하고 뭔가 특이해서 감사하고 즐거워하려고 하지 말고, 평범함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자동차도 평범한 차가 축복입니다. 좋은 차타면 항상 불안하고, 어디 세워도 불안하고... 비즈니스도 너무 잘되면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내도 너무 예쁘면 좋을 것 같아도 굉장히 불쌍합니다. 제가 아는 분의 아내가 대학 때 무슨 퀸인가 하신 분인데, 문 열어주고 닫고.... 밤에도 잠을 잘 못자요. 도망갈까 봐.... 이런 면에서 우린 얼마나 행복합니까? 세상 때문에 기뻐하지 말고, 평범한 것 좋은 겁니다.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이 헌신하는 청년과 같은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3. 새벽이슬 같은 청년 교회

다윗은 청년의 모습을 새벽이슬에 비유하였습니다. 이슬의 의미는 참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이슬과 같은 청년들이라는 표현을 신학자들은 해석하기를 (1) 조용하게 그리고 넓은 대지를 적시는 이슬과 같이 엄청난 수효로 말합니다. (2)또한, 성결하고 깨끗한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새벽에 풀잎에 맺힌 이슬은 맑고 투명한 모습의 상징입니다. 옛날 뱀장사들이 이 뱀은 새벽이슬만 먹고 큰 뱀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3) 또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로 해석합니다. (4) 매일 이른 아침 이슬이 맺히듯 매일 매일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로 해석합니다. 우리 교회가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 엄청난 부흥과 순결함과 조용한 역사와 매일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큰 이적의 역사는 대부분 새벽에 일어난 것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시편 46:5절에 “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신다고 시편의 저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57편에서도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대적 위기인 홍해를 앞에 두었을 때에, 홍해가 갈라진 역사가 새벽에 있었습니다. 출14:에 보면, 밤새도록 홍해 물을 말려놓으시고 24절에 “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모세가 바로 왕에게 가서 10가지의 재앙을 보이며 “내 백성을 내어놓으라”고 외칠 때에는 “너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바로에게로 가라...” 그러므로 모세가 아침 일찍이 바로에게로 가니...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언약을 받기위해 시내 산에 오르던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여호수아6장에 보면, 여리고성이 무너진 기적도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여인들도 안식 후 새벽에.... 새벽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밤에 결정하는 사람은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보통 새벽 한 시간이 저녁 3시간 노력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아침에 판단력이 예리하고, 저녁에는 감성이 예리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보통 젊은 사람들 잘 들어요... 어두컴컴한 은은한 달빛 아래서 “미스 김... 저랑 결혼해 주시겠어요?” 이럴 때에 감정에 이끌려서 “그러지요...”그랬다가는 평생 고생합니다. “내일 새벽에 기도해보고 대답할게요...”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대답하시면 평생 후회 안합니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고, 우리의 이민의 삶의 승리도 새벽의 승리자가 되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외교관이신 문봉주 집사라는 분이 쓴 “새벽형 크리스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분은 기독교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십일조도 하고, 봉사도하고, 목사님이 시키면 순종하고... 그런데 기쁨도, 감사도, 감격도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를 나갑니다.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술 담배로 찌들고, 주일날이면 교회에 가고... 하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침에 덜 깼는데, 주일날입니다. 그래도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면서 열심히 찬송을 부르는데 옆에서 아내가 말합니다. “ 술 냄새나니까 입 다물어요...” 이 소리를 듣는 순간에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못난 사람 같으면, 그래, 교회 안 나간다.. 더러워서... 그러겠는데, 이 사람은 아내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은 것입니다. 변해야겠다.... 그러던 차에 스위스로 임지가 옮겨져서 그곳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새벽기도에 나가면서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은혜로 뭐고 머리만 띵하고, 하루 종일 하품만 나오더니... 포기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는데... 그래서 이분이 주장하는 것은 주일 대예배, 새벽기도회가 아니라, 새벽대예배라고 말합니다. 새벽이 가장 큰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탤런트 가운데 김혜자라는 분이 있어요. 이분이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권사님이신데, “담배를 골초로 피우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첫 아이를 임신할 때부터 속이 느글거려서 배웠는데, 끊을 수 없습니다. 권사가 되어도... 다른 것은 다 할 테니.. 담배만 봐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좋아하던 담배가 메스꺼워요. 피울 수가 없어서, 순한 담배로 바꾸었는데도 냄새가 싫어요. 하루는 미국에 사는 딸이 전화가 와서 말합니다. “고은아, 이상하게 담배 냄새만 맡으면 싫다! ” - 딸이 와락 울어버리는 겁니다. 사실 날 임신할 때부터 담배를 피운 엄마에게 끊으라고 말도 못하고, 남편과 100일 기도 시작했어요. 그런데 벌써 하나님이 응답하셨네요... 새벽은 우리의 축복의 시간입니다. 잠자면서 허비하지 맙시다. 내일부터 한 주간 특별축복새벽기도회입니다. 새벽을 깨웁시다.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