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희목사 (지구촌교회)

세계의 문학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가 낳은 천재적 작가입니다. 그런데 그는 참으로 불행한 환경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가난한 군의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자랐습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폐병으로 여의고, 18세 때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잃은 발작증세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고아처럼 외롭게 지냈습니다.

그의 청년 시절 역시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사회주의적 결사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총살 직전에 극적으로 황제의 특사를 받게 됩니다.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아 사형은 면했지만, 대신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4년 간 징역을 살게 됩니다. 그 후 5년 간 중앙아시아에서 기막힌 고생을 하며 그는 불행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결혼 생활도 불행하였습니다. 36살에 맞은 아내, 마리아 이사예프는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다가 43살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병들어 죽습니다. 3년 후 재혼하여 아들을 얻었지만, 아들을 안아 본 기쁨도 잠깐, 그 어린 아들은 러시아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병들어 죽고 맙니다. 피를 토하는 아픔의 순간을 지냈다.

설상가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치명적인 병이 있었습니다. 한평생 이 병에 시달렸습니다. 간질병이었습니다. 종종 쓰러지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병을 『거룩한 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직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는 오히려 고난을 받고 고통을 받는 만큼 신앙은 빛이 났습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자신에게 신앙은 삶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신앙적 안목으로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평생 질병과 싸우고, 평생 고난과 시련 속에서 누에고치가 명주실을 뽑아내듯 글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인 ''분신'', ''백야'' 등에 보면, 불행한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요 자신의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 1866년에는 ''죄와 벌''을 썼고, 1880년에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많은 명작들을 남기게 됩니다. 이처럼 극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 불후의 명작이 창작된 것입니다.

특히 그의 장편소설 가운데 『죄와 벌』은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다룬 너무나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작품은 그의 나이 44세 때 쓴 것입니다. 그 해는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움에 시달리던 때요, 곧 빚쟁이를 피해 4년 간이나 도망 다녔고, 아내 마리아가 죽고, 형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던 해였습니다. 이처럼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의 한가운데서 그의 간질병도 더 자주 발작하여 가장 참담하던 때에 불후의 명작『죄와 벌』을 쓴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에델바이스는 고산지대의 작은 꽃이지만 이른 봄, 아직 눈이 덮여 있는 추위 속에서도 꽃 봉우리를 맺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난(蘭)도 너무 따뜻한 곳에 놔두면 꽃이 피지 않고, 약간 추워야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귀한 꽃일수록 역경을 온상으로 삼는다는 교훈입니다. 이제 어느덧 21세기의 첫 봄인 4월이 되었습니다. 봄이 되면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 하나 있습니다.

정원사가 나무의 가지들을 싹둑싹둑 잘라냅니다. 어떤 나무들은 무자비할 만큼 잘라 냅니다. 왜 그렇게 과감하게 자르느냐고 물으면 정원사는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나무의 건강을 위해 자릅니다. 가지를 자르지 않으면 건강하고 좋은 나무가 될 수 없고, 또 새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시편 말씀처럼 우리가 고난의 바다로 깊이 나아갈수록, 소망의 항구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 시편 기자의 표현대로 인생의 항해는 아무런 예고 없이 폭풍과 돌풍을 맞아 허우적거립니다. 어느 누구도 인생의 풍랑 앞에서는 힘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도 아무 소용없어요(27절). 본문의 표현 그대로, 사람이 어떤 큰 환난과 시련에 부딪치면 지혜도 바닥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유일한 돌파구가 있습니다. 그 풍랑의 와중에서도 주님께 부르짖어 간구하기만 하면, 주님은 기꺼이 그 풍랑 속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은혜를 수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드디어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주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1세기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으로 기진맥진하고 계신가요?
오늘도 여전히 내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며, 반드시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주시는 그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제자들은 이따금 깊은 밤, 갈릴리 바다 한 복판에서 노도광풍을 만나지만, 주님께서 찾아와 주시기만 하면, 그들은 여전히 소망의 항구로 안전하게 도착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그 어떤 노도광풍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나갈 때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풍랑이 이 배를 위협하며 저 깊은 물 입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 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그래요. 인생의 험난한 파도를 내 힘으로는 밀어낼 수 없으나, 내 인생의 선장이신 예수님은 그 어떤 풍랑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고난은 여전히 변장된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보자기에다가 축복을 싸서 주십니다.

1. 고통을 통해 발전합니다

제가 지난 1월 미국에서 들었던 얘기입니다. 목화가 매우 귀했던 시절, 목화다래바구미라는 곤충이 멕시코에서 미국 남부로 넘어와 목화밭을 망쳐 놓았습니다. 할 수 없이 농부들은 콩이나 땅콩을 비롯한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해야만 했고 소, 돼지, 닭들을 어떻게 사육하는지도 배워야 했습니다. 뜻밖의 재난이었습니다. 그런데 농가의 소득은 목화만 재배할 때보다 훨씬 더 높아졌습니다.
앨러배마 주의 엔터프라이즈 사람들은 단일 농작물만을 재배하다가, 그 목화다래바구미 덕분에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함으로써 더 부요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감사해서 목화다래바구미 기념비까지 세웠답니다.
비문에는 "목화다래바구미와 그것이 가져다 준 번영을 진심으로 기념하면서"라고 씌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아픈 만큼 크는 것입니다. 훈련이 힘들어야 크게 발전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요즘 어떤 일로 아파하고 계신가요? 힘들고 괴로운 일이 무엇인가요? 어떤 고난을 겪고 계세요? 오히려 더욱 주님 앞에 엎드리고, 오직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고자 하는 새 믿음이 생기지 않아요? 인생의 실패란 당신이 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내 인생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창조적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문제를 푸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문제가 당신을 해체시킬 것입니다.(Solve your problems or Your problems will dissolve you)

2. 고통을 통해 영광을 얻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끝나지 않습니다. 십자가 다음의 영광스런 부활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더라면 사흘 후에 살아나는 영광스런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당신은 어떤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시나요? 그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느껴지십니까? 내 십자가는 남들 것보다 훨씬 더 무겁다고 비교되십니까? 면류관도 그만큼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잖아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훈련하시는데, 어느 날 개울을 건너면서 가능하면 큰돌을 하나씩 메고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제자들은 잔머리를 굴려 작은 것을 들고 갔고, 우직한 베드로만 큰돌을 끙끙거리며 메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개울 한 가운데쯤 지나는데 갑자가 물결이 거세게 밀려옵니다. 가벼운 돌을 들고 들어왔던 제자들은 다 떠내려가고, 큰돌을 메고 온 베드로만 안전하게 건넜다는 일화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컸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영광도 컸습니다. 요셉, 욥, 모세, 다윗, 다니엘, 바울 등입니다. 고난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잠시동안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슬픔에 빠져 있더라도 이것을 기뻐하십시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의 믿음이 연단을 받아서 순수하게 되면, 불로 연단하여도 마침내는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칭찬과 영광을 차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베드로전서 1:6-7)

3. 고통을 통해 영성이 강해집니다

우리 몸이 건강해지려면 적당히 고통스런 운동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성은 더욱 그렇습니다. 인간의 영성은 시련과 연단을 통하여 강해집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연단이 많았던 만큼 그의 영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강한 영성의 사람이었습니다. 장미 나무에 거친 가시가 있기에 장미꽃도 아름답듯이, 바울은 육체의 가시 때문에 영성이 더욱 강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 문학가들의 숨겨진 얘기를 했으니까, 우리가 잘 아는 또 한 사람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요 사상가인 Blaise Pascal입니다. 파스칼은 선천적으로 허약한 몸과 과도한 연구로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는 종종 심한 복통과 두통을 호소했습니다. 파스칼은 결핵성 복막염 환자였습니다. 파스칼의 39년 인생 중 건강을 유지한 것은 고작 2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계적인 과학자요 수학자요 사상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찾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육체의 병이 영혼의 약이 됐어요. 내가 아는 지식은 단 하나, 주님을 따르는 것은 선이요 주님을 거역하는 것은 악입니다."

파스칼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착상이 떠오르면 메모를 해두었습니다. 그는 5년 간 9백 24개의 주옥같은 단상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팡세』입니다. 병은 신체의 장애일 뿐 의지의 장애가 아닙니다. 그 어떤 환자도 창조적 도전으로 위대한 성공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당신은 어떤 연단을 겪고 계신가요? 당신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어떤 고통이 있습니까? 당신의 영성이 더욱 강해질 수 있음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고통을 통해 귀한 그릇이 됩니다

어느 구두회사의 사장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고급 구두일수록 많이 두들겨 맞고 손이 많이 간답니다."

그래요. 다이아몬드도 Cutting이 많이 된 것일수록 고급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고급 도자기 본 차이나는 뼈를 부서뜨려서 분가루처럼 고운 가루를 만든 다음에야 고급 그릇이 됩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 귀한 그릇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크게 쓰시려고 강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모세를 귀하게 쓰시려고 완전 밑바닥 훈련을 시켰습니다. 다윗을 고귀한 인물로 쓰시려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 바울을 세계적인 인물로 만드시려고 육체의 가시까지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당신은 어떤 풍랑을 만나고 계신가요? 당신의 항해를 방해하고 있는 파도가 무엇입니까?
어떤 악순환으로 기진맥진하고 계신가요? 어떤 영적 좌절과 어두운 골짜기에 갇혀 계신가요?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저앉으려 하시나요? 그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저자는 그 어떤 절대절명과 사면초가의 암담한 상황에서도 주님께 부르짖으라고 호소합니다(6, 13, 19, 28). 우리가 엎드려 애절하게 부르짖기만 하면 그 어떤 곤경에서도 건져주십니다.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처럼 꿈꾸고 원하던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주십니다(30절).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고통과 고난의 깊은 바다에 떠내려간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의 비전을 성취해주십니다. 우리의 목표를 달성시켜주십니다.
우리 지구촌교회는 갑작스럽게 닥쳐온 IMF 경제한파 중에서도 지구촌선교센터 건축이라는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주셨습니다.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의 성전건축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든 문제는 해답이 있습니다(There is a solution to every problem). 중요한 것은 나에게(to me)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해서 내 안에(in me)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기만 하면, 주님은 그 어떤 풍랑도 잔잔케 해주시며, 곤경에서 일어나게 하시며,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비전성취의 항구로, 목표 달성의 항구로, 성공과 승리의 항구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길은 험난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갑작스레 노도광풍이 불어올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성난 파도가 숨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예측 불허요, 예상 밖의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바다는 결코 조용하지 않습니다.사납고 험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당신이 당하였던 고통과 아픔 때문에 당신은 더욱 발전할 수 있었고, 당신의 영성은 더욱 강해졌으며, 당신이 치른 대가보다 영광이 더 크잖아요. 토기장이 하나님은 당신을 귀한 그릇으로 만들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그 어떤 고난과 아픔은 도스또예프스키가 말하듯이『거룩한 병』인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당신이 주님을 향해 절규하는 믿음으로 부르짖기만 하면, 당신은 반드시 소망의 항구에 도달 할 것입니다!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