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목사 (토랜스 한인연합감리교회)

어제 아침에 두 아들 녀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려고 프랭클린 소세지 몇 개를 잘라 반찬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름대로는 맛 있게 만들려고 소금도 치고 후추가루도 쳤는데,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 소세지가 무척 짜게 되었나 봅니다. 큰 녀석이 소세지를 입에 넣다 말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짜요. 하지만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밥과 함께 짜디짠 소세지를 맛 있게 먹어주더군요. 다 먹고 난 이후 “아빠, 감사합니다. 정말로 맛 있었어요.” 아들 녀석의 감사의 말을 들으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하지만 아빠의 정성과 마음을 헤아려주는 그 녀석이 너무 고맙기도 했구요. 고마움을 말로 표현해주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조그마한 것이라도 감사한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나는 전부터 잘 알던 분을 우연히 은행에서 만났습니다. 뜻하지 않은 만남에 너무 기뻐 은행업무를 급히 끝내고 그분을 모시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도중 그분은 별로 재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개척교회하는 것이 마음 편하죠. . . 비록 경제적으로 힘들긴 해도. . .” 한숨 섞인 한탄 속에서 현재보다는 다른 삶의 환경을 열망하는 그분의 희망을 역력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무척 초췌해 보였습니다. 꿈과 이상을 향한 희망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곁에서 사라져 버린 꿈과 이상을 놓치고선 말로 표현하기 힘들 불만족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또한 그분으로부터 풍겨지는 낙심과 불만을 느끼면서, 나는 한결 같은 밝은 미소로 잃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밝은 미소를 다시 찾기 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쉽지 않는 환경이지만 그래도 희망 가운데 추진해가고 있는 우리 교회의 개척 상황을 기쁘게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그분이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목회 현장에서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찾기 원하는 마음으로. 왜냐하면 그분 역시 나처럼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이셨으니까. .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설명입니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정한 순서가 아닌가 합 합니다. 먼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순서 말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엔 수많은 강단에서 “감사”에 관한 설교가 전해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감사주일 설교를 위해 감사에 관한 메시지를 준비하려 했는데, 기쁨이 없이는 감사도 없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감사의 전제 조건인 기쁨에 관해 설교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설교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소원대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 때문에 크게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독생자의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매우 비싼 값을 치루고 진주를 구입했다면, 그것을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손가락에 끼고 이러저리 둘러보며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자신의 기쁨을 나누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그 진주는 언제 보아도 좋기만 할 것입니다.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비싼 값을 치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여러분 때문에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을 정도로.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얼마나 큰 기쁨을 가지고 보시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 때문에 기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두 아들들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더욱더 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치루셨던 대가는 내가 두 아들들을 키우기 위해 치뤘던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극히 큰 기쁨으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너무나 좋지 않습니까? 그 눈동자를 생각만해도 좋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면, 크게 쓰임 받은 신앙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뻐하사 축복하시는 분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예로 들면, 모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신 10:15-“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그래서 그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이끌어 내어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약속의 땅으로 가도록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백성을 기뻐하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민 14: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그래서 그들은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들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자신을 기뻐하사 넓은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삼하 22:20-“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그래서 그는 결국 목동의 신분에서 벗어나 한 나라의 왕이 되어서 그 나라를 위대한 왕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우리 때문에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스 3:17). 만약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기뻐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토록 가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면, 웃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웃고 살아갑시다. 우리 모두 기뻐하며 살아갑시다. 우리 때문에 너무 기뻐 노래하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서.

둘째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보면서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들 사용하고 있는 영어 성경 번역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뻐하되 주 (여호와)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Delight thyself also in the Lord (KJV);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NIV); “Delight thyself also in Jehovah (ASB).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세상 안에 있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상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갇혀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비록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 보호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삶이 세상 사람들과 우리의 삶의 차이점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하나님 안에 (주 안에) 있다”는 말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이것은 나의 소속을 말해주거든요. “나는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즉 하나님께 속한 자이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속해 있으면 세상으로부터 영향 받지만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 하나님께 영향 받습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 세상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속해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 기쁨이 내게 전해지니까.

오랜 병상 생활로 인하여 지칠대로 지쳐버린 히윗 여사가 어느날 아주 즐거운 모습으로 청소하고 있는 흑인 여자를 보고서 짜증내며 말했습니다. “청소나 하는 주제에 무엇이 즐겁나?” 그때 흑인 여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모든 형편과 사정이 찬송으로 변할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 즐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흑인의 대답은 히윗 여사를 크게 부끄럽게 했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냈던 것임을 깨닫고 참회의 시를 쓰게 되었는데 그 시가 바로 찬송가 455장 가사입니다.

1절.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갈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절.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갈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히윗 여사에게 있어서, 상황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변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자신을 보며 자신을 평가하던 시각을 버리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의 가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셋째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만이 참된 기쁨의 근원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말씀을 연구하면서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영어 성경책들의 번역과 한글 성경책들의 번역 차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명한 영어 성경책들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한글 성경책들은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한글 개역성경); “네 즐거움을 야훼에게서 찾아라” (공동 번역);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표준 새 번역); “여호와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뻐하여라” (현대인의 성경). 이런 성경 번역의 큰 차이점은 본문의 알이라는 히브리어 전치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영어 번역본들은 전치사 알을 “안, 안에서 (in)” 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반해, 한글 번역본들은 “~ 때문에 (because of), ~과 함께 (with)” 라고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 때문에 (because of), ~과 함께 (with)” 라고 번역한 한글 번역을 좋아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한글 번역은 “여호와 때문에 기뻐하라,” “여호와를 기쁨의 근원 삼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항상 돈에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아십니까?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싶지 않습니까? 그것은 돈을 만들어내는 기계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 기계를 갖고 있다면, 돈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의 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기쁨의 근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됩니다. 교우 여러분,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쁨의 참된 근원이심을 깨닫고, 그분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으로 인해 전해지는 기쁨 속에서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넷째,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매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해야 합니다. 매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가까이 해야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만이 기쁨의 참된 근원이심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원하시는지를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9:16-주님의 법 기쁨으로 삼고 주님의 명령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시편 119:24-주님의 가르침은 나의 기쁨 주님의 가르침 따라 날마다 살아갑니다.
시편 119:47-나 주님의 명령 사랑하기에 그 명령 따르는 것 기쁨으로 삼으렵니다.
시편 119:70-저들은 걱정거리 하나없이 무사태평 아무런 깨달음도 없으나 이 몸은 주님의 법만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을 기쁨의 참된 근원으로 삼고 살아가기로 작정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연인들이 서로 깊은 사랑 속에 거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이 항상 함께 하고 싶다는 것과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을 수 없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섯째,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저가 네 마음의 소원(간구, 요청)을 들어주실 것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이 말씀의 순서를 바꾸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너무나 기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우리는 기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쁨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고 있든 항상 지속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라고.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이번 주간은 추수감사주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평소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주간입니다. 감사의 마음은 억지로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기뻐야 감사가 우러나옵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하는 감사의 표현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억지로 하는 “감사합니다”는 말은 듣는 자에게 듣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감사는 기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금주간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마음 속에 기쁨을 소유하고, 그 기쁨이 감사의 표현으로 바뀌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