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인목사 (광성교회)

오늘 여호수아 14장 6절에서 12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건강한 갈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갈렙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 대신에 여러분 각자의 이름으로 바꾸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혼자 살지 못하고 더불어 살아가게 됩니다. 더불어 사는 생활을 사회 생활이라고 합니다. 사회 생활의 기본 단위는 나 개인이 아니라 가정입니다. 가정 생활이 건강해야만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가정이 병들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병들어 버립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집을 나가거나 한다면 이 가정은 병든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건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에 있어서도 교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 생활 중에서 믿음이 싹트고 자라고 꽃피어 열매를 맺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우리가 믿음의 열매를 맺으려면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가 모이기만 하면 싸우고 예배 시간에도 싸우고 제직회 모임에서도 싸우고 당회가 모여도 싸우고 그런 다면 거기서 무슨 믿음이 싹트며 자라며 꽃피우며 열매를 맺겠습니까?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의 믿음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믿음 자체는 세계적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국경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나라''라고 하는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 나라가 건강해야 합니다. 나라가 병들거나 약하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나라도 건강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갈렙이라는 사람입니다. 본문에는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갈렙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건강한 생활에 대해서 본문의 가르침을 따라 무엇이 건강해야 하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마음의 건강 (6-7)

잠언 4장 23절을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재산을 지켜야 합니다.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나면 지킬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있을 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지켜야 합니다. 잠언에서 솔로몬이 지키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노아 당시의 심판 받을 사람들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악하다는 것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계획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음입니다. 즉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계획이 나오고 계획에서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병들면 생각 자체도 병들어 버리고 계획 자체도 병들어 버리고 행동 자체도 병들어 버립니다.

말을 바꾸어 말하며 마음이 악해지면 거기에서 나오는 생각도 악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계획도 악하고 마지막에는 행동이 악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킬 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즉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마음만 있으면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하루에 열두 번을 생각하고 울지 않습니까? 마음이 없으면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릅니다. 마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에서 7절을 보면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지나 시나이 반도를 거쳐 가데스바네아로 갑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두세 달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열두지파에서 "나"다 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뽑아 열두 명으로 정탐꾼을 조직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샅샅이 뒤져보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 정탐꾼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샅샅이 모든 것을 조사하고 돌아왔을 때 백성들이 그 정탐꾼의 이야기를 얼마나 듣고 싶었겠습니까? 정탐꾼으로 갔던 사람들 중에 열 사람은 하나같이 사람이 살수 없는 사람 잡아먹는 땅이라고 악평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는 장대한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은 허튼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 땅을 왜 악평을 합니까? 악평이라고 하는 것은 정평이 아니지 않습니까? 악평이라고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는데 왜 악평을 합니까? ''너희가 들어가면 그 땅을 차지하고 기업으로 받으리라'' 즉 되리라, ''하리라'' 하셨는데 아낙 자손이 살고 있다하여 왜 우리가 못한다, 안 된다고 그러는 것입니까? 마음이 병들었기 까닭입니다. 그래서 허튼 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갈렙은 ''자기의 마음에 성실한대로 보고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건강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포도 한송이를 두 사람이 막대로 꿰어 메고 와서는 "이것 보십시오. 이런 곳이 사람 잡아 먹는 땅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올라가면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열 사람들은 백성들의 간담을 녹게 하고 실망을 주었으나 갈렙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같은 땅을 보고도 삐딱한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악평을 했습니다. 말을 해도 삐딱하게 하고 일을 시키면 일 처리를 삐딱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9절에 보면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은혜 받을 때 건강해 진다는 말입니다. 30년 동안 교회에 나오고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마음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다 보면 악평을 하고 허튼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단 1년을 교회에 나와도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이 건강한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은혜가 충만하여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믿음의 건강 (8-9)

병들면 무슨 소리를 합니까? 앓는 소리를 합니다. 앓는 소리는 듣기 싫지 않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어머니가 누워서 지금 죽을 지경에 앓는 소리를 한다고 합시다. 어머니의 소리지만 듣기가 싫습니다. 어느 자식이 어머니가 아파 죽겠다고 하는 그 앓는 소리를 "참 듣기 좋다"고 하겠습니까? 앓는 소리는 듣기 싫은 것입니다. 믿음도 병들면 이와 마찬가지로 앓는 소리를 합니다. 믿음이 병들었을 때 내는 앓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병이 들면 첫째로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열 사람의 정탐꾼은 믿음이 병들었습니다. 악평을 하고 하나님이 된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안 된다고 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울고불고 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낙심케 합니다. 주의 일에 협력하지 않게 만듭니다.

둘째로 믿음에 병든 사람은 일감을 놓고도 절대로 일을 하지 못합니다. 뒤에서 잔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에 병이 들면 봉사할 거리가 많은데도 절대 봉사하지 않으면서 뒤에서 불평만 합니다. 된소리 안된 소리를 하며 허튼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은 절대 봉사를 하지 못합니다.

셋째로 믿음이 병든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가령 다섯 식구가 살아간다고 할 때 식구 중에 누구 하나가 병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병든 사람이 그 가정에 유익을 주는 일이 있습니까? 손해를 끼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전염을 시킵니다. 유익을 주는 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이처럼 믿음에 병이 들면 꼭 다른 사람의 믿음에 손해를 주고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 사람을 가까이하면 병에 전염이 되듯이 나도 믿음에 병들어 버립니다. 누가 여러분 곁에 와서 불평하고 딴 소리를 하거들랑 ''이 사람은 믿음이 병들어도 단단히 들었다''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열 사람의 정탐꾼은 믿음에 병들었기 까닭에 하는 말마다 부정적입니다. 말을 할 때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합니다. 정의의 사도로 둔갑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긍정적이요, 건설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은 건강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 9절을 보면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갈렙 자신이 여호수아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 때 열 두 명이 정탐을 갔다가 보고를 할 때 열 사람이 딴 소리를 했지만 당신과 나는 마음에 성실한대로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도 알겠지만 그 때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좋았다고 하는 것은 건강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자기 스스로도 건강한 믿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앞에서 보고를 받고 있던 모세도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하였습니다. 자타가 함께 공인하는 온전한 믿음, 건강한 믿음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병든 믿음은 듣는 사람들의 간담을 녹게 합니다. 간을 콩알만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공포심과 불안을 조장하고 믿음에 상처를 주고 손해를 끼칩니다. 그러나 믿음이 건강한 사람 갈렙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하시니 좋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시니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항상 하나님의 편에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열 두 사람 중에 열 사람의 말은 안 된다 하고 두 사람은 된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열 사람의 말입니다. 민주주의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대가 되는 민주주의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편에서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아무 아무개가 미워 죽을 지경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둘이서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 편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새벽마다 나와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절대로 그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고 계시다면 속히 거두시기 바랍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 내 편이 되어 주십시오"가 아니라 "나로 하여금 하나님 편에 서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건강한 믿음은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주어야 될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호레이스 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순교자로 죽는 것 보다 순교자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순교자로 맞아서 죽는 것 보다 순교자의 정신과 신앙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갈렙이 바로 그런 순교자의 정신과 신앙으로 산 사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믿음입니다.

셋째, 육신의 건강 (10-11)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돈 몇 푼 더 버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 보다 한자리 더 높아지는 것입니까? 죽어 죽어 하다가 병고침 받아 1년 2년 더 사는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차라리 기독교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개종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늘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 놓으면 기독교는 이미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적은 하늘나라 거기에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런데 그 만 못하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이 땅위에서 오래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늘 나라에 가서 전도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 곳에 가면 전도가 필요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면 구제 사업을 합니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면 봉사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서 찬양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전도하는 일, 구제하는 일, 그밖에 나의 힘을 필요로 하는 너를 돕는 일, 이런 일들은 살아 생전에서만 하는 일입니다. 죽어 천국에 가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 오래 오래 사는 것입니다. 또 오래 오래 살아도 무드셀라처럼 ''969세를 살고 죽으니라''라고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삶의 뜻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건강하며 장수해야 됩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해도 일찍 죽어 버리면 일 할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 장수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 많이 하고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돈은 있을 때 지키는 것입니다. 다 잃어버리고 난 후에 지킬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건강도 내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입니다. 병들어 죽어 죽어한다면 지킬 건강이 뭐가 있겠습니까? 젊어서 병들면 하나님 앞에 참 미안한 일입니다. 건강하며 장수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0절에서 11절을 보면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 즉''라고 하였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와서 하는 말이 "당신과 내가 정탐꾼으로 갈 때가 40세가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내가 85세입니다. 지금 내가 85세로되 오히려 그 때보다 강건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 40세 때보다 더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환갑 60세 나이지만 30세의 건강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의 이런 건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서른 살 또는 서른 다섯 살 때 죽어 죽어 하지 않았습니까? 요즘은 제가 얼마나 건강합니까? 건강하니까 좋습니다. 일을 해도 피곤함이 없고 일감이 주어지면 참 기쁩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며 지키고 건강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을 지켜야만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을 보면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고 또 읽어보십시오. 바울 사도가 아파서 누웠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육체에 찌르는 가시가 있다고는 했지만 아파 누웠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이방인에게 전파되어 그 말씀을 듣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심은 전도하라고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을 때까지 앓아 누운 적이 없습니다. 죽을 때도 안방에 누워서 와석 종신하지 않았습니다. 붙잡혀 가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건강을 주심은 전도를 열심히 하라고 주었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건강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봉사 많이 하라고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이 젊을수록 열심히 봉사하십시오. 하나님도 젊음을 좋아하십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이 봉사할 때 25살부터 50살까지만 하고 그 후에는 은퇴하라고 했습니다. 젊음을 받치라는 그 말입니다. 젊었을 때는 내 멋대로 다 살아버리고 늙어서 주님 봉사하겠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건강할 때 그 젊음의 건강을 가지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육신의 건강이 바로 갈렙이 건강을 누리는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의 건강이 갈렙의 건강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넷째, 생활의 건강 (12)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서 생활이 병든 사람은 이렇다 하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한 곳에 부자가 있었는데 그 부자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둘 째 아들이 문제입니다. 자꾸 아버지 살아 생전에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다음에 주는 것이지 살아서 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달라고 졸라서 결국은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산은 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생활이 병든 둘째 아들은 자꾸 공짜를 바라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짜가 좋습니까? 공짜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은 생활이 병든 사람입니다.

생활이 병든 사람은 첫째로 공짜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은혜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씁니다. 은혜가 공짜라는 말이 아닙니까? 정권이 바뀔 적마다 줄줄이 수갑차고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의 많은 부분이 기독교인이 아닙니까? 모든 것이 다 은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좋지만 공짜는 좋아하지 마십시오.

둘째, 엄청난 유산을 받고 난 후에 자기 집에 유하면서 아들 노릇을 했습니까? 그 유산을 가지고 멀리 떠나가 버리고 아들 노릇은 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이 병든 사람은 자기 집안에서 자기 위치를 절대 지키지 않습니다. 집을 떠나버립니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나 버렸습니다. 자녀가 문제가 되어 경찰서 유치장을 자기 집 드나들 듯이 합니다. 생활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탕자가 바로 그러지 않았습니까?

셋째, 그 엄청난 유산 전부를 허비해 버렸습니다. 쓸 곳에 쓰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쓸 만한 곳에는 한푼도 안 쓰고 써서는 안될 곳에 다 쓰고 돌아다니다가 재산이 전부 거덜났다는 말입니다. 이 때 탕자에게 물어 봤다면 아마 "그 때 하나님께 헌금이나 왕창 해 버리고 말 것을"이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분이 없습니까? 돈푼이나 제법 가지고 살다가 망하고 난 후에 "헌금이나 다 하고 말 것을!"이라고 말입니다. 돈푼을 조금 가지고 있을 때 목사가 헌금 소리를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교회에 가니까 헌금 소리만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에 나오는 탕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또는 너를 위해서 절대 돈을 쓴 적이 없습니다. 자기의 향락을 위해 쓰지 않을 곳에 다 쓰고 허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생활이 병든 사람입니다. 생활이 건강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2절을 보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열두 지파의 군대들이 총동원되어 점령한 후 ''너희가 가져라'' 하고 나누어 준 땅이 절반이 채 안됩니다. 그 때 갈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약속해 준 말씀이 ''네가 네 발로 밟는 땅은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점령한 땅에 ''이것은 내 것입니다''하고 한바퀴만 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것은 공짜 아닙니까? 갈렙이 공짜를 바랬습니까? 갈렙은 기름진 평야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름진 땅은 원하는 사람에게 다 주십시오. 나에게는 저 산지, 즉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곳을 주십시오. 특히 거기에 있는 철옹성 같은 헤브론성을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싸워 이겨서 기업을 삼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가서 싸워 이기고 기업을 삼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땀과 피를 흘려 기업을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버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이 다 벌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두 번째로 벌었으면 많이 모아 놓으십시오. 모으지 않으면 돈을 번다는 사실은 의미가 없습니다. 벌어 모아 놓은 것을 누리지 못하면 모아 놓은 것은 역시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모으고 쓰지를 못한다면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실컷 누리고 가십시오. 누린다는 것은 내가 먹어야 되고 내가 입어야 되는 것만이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너에게 베풀어주어도 내가 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 말입니다.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은 생활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도 갈렙처럼 이렇게 생활이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갈렙은 마음이 건강했습니다. 마음은 은혜로서 건강해 집니다. 둘째로 갈렙은 믿음이 건강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갈렙은 육신이 건강했습니다. 오히려 늙었지만 젊음의 건강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갈렙은 생활이 건강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벌고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많이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이 건강한 사람은 벌 줄을 알고 너에게 베풀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갈렙의 건강이 여러분들의 건강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