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인목사 (광성교회)

오늘은 민수기 16장 41절에서 50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위기에 몰렸을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이 죽으면 문제도 위기도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기 까닭에 문제도 있고 위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한번은 여우가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여우가 고양이에게 "자네 참 오래간만이로구만"라고 묻자 고양이가 "그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우가 "나는 이곳 저곳 다니면서 볼 것도 많이 보고 배울 것도 많이 배웠네"라고 말하자 고양이가 "무엇을 그렇게 많이 배우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우가 "이런 어려움 저런 어려움을 많이 보고 겪으면서 나는 그런 위기에 직면하면 그걸 피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 100가지를 가지고 있네"라고 하자 고양이가 "굉장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자네는 그럼 몇 가지를 가지고 있는가?"라고 여우가 고양이에게 묻자 "나는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기가 죽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여우가 으시대고 있을 때 사냥개가 떼를 지어 달려왔습니다. 물리면 죽는 것입니다. 그 때 고양이는 단 한가지 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우는 100가지가 있으니까 ''첫째 방법으로 해 볼까? 아니지 둘째가 낫지? 그게 아니야 셋째가 더 낫지 않을까? 넷째가 더 나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만하고 있는 사이에 사냥개가 와서 물어 버렸습니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모세와 아론도 위기와 코너에 몰립니다. 그런가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에 따라 그네들이 어떻게 했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41-42)

오늘 본문의 배경을 먼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덕분에 출애굽을 하고 자유를 얻습니다. 홍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건넜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들어섰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사촌인 고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라가 패거리를 짓는데 그 패거리가 모이다 보니 250명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패거리가 모인 목적은 ''왜 모세가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모세를 투표해서 세웠느냐? 또는 제비뽑아 세운 것도 아닌데 왜 자기가 우리 위에서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느냐? 우리는 모세만 못하냐?''하면서 달려들었습니다. 모세는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럼에도 누가 세웠느냐 하고 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괘씸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를 향한 원망이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요, 모세를 대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라를 중심으로 작당한 250명이 따로 모여서 모세를 대적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주위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 사이에 땅이 벌어지고 불이 솟아 나왔습니다. 고라당파 250명이 전부 불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땅을 합쳐 버리자 흔적도 없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문제가 끝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다음날 문제가 확대재 생산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첫째 부분이 그 날 되어진 일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41절에서 42절을 보면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고 하였습니다.
문제가 일단락 지어졌는가 했더니 그 다음날 겉잡을 수 없이 문제가 확대된 것입니다. 온 회중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여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하여 돌을 들어 쳤습니다. 폭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250명을 모세와 아론이 죽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라당파를 모세가 죽였습니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하나님께서 처리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모세가 250명을 죽여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까? 그 일에 모세가 동참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한 일을 모세에게 책임지라고 따졌습니다. 책임 질 수도 없는 일이요,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의 종살이로 불평불만에 이골이 난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켜 돌로 칩니다. 갈 데까지 간 것이 아닙니까? 그 백성들과 싸워서 이길 재간이 있습니까? 그 때 모세는 성막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성막을 바라보면서 ''저 성막은 내가 하나님을 만나던 곳이요, 하나님은 저기 계신데 하나님은 지금 이 일에 개입해 주시지 않을 것인가? 나는 바라볼 사람도 없고 바라볼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였더니 그 순간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났습니다. 백성들이 그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물러갔습니다. 모세는 그런 억울한 일, 또는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영광 중에 나타나므로 순식간에 백성들의 폭동은 끝났고 쉽게 해결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도 인생 살아가면서 난감한 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 나의 능력의 한계에서 이미 벗어난 일, 또는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꼭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을 전부 합쳐도 감당 못하는 능력의 하나님이 개입해 주실 때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그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사람이 어떻게 합니까?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데이빗 핑크(David Fink)는 의학박사입니다. 이 분이 ''평안의 4박자''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평안을 얻으려면 4가지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첫째 가만히 앉아서 없는 걱정을 찾아내어 근심하고 고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에 깊이 몰두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잡념과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이 깃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그리고도 되지 않거든 재미있는 놀이와 게임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게임에 몰두하다 보면 다 잊어버리고 평안할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 그렇게 하고도 평안해 지지 않거든 사랑에 빠져 보라고 합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눈이 멀어 소경이 됩니다. 즉 그 사람의 단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미움은 현미경이 된답니다. 어떤 물체를 볼 때 그냥 보면 깨끗해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곳곳에서 더러운 것이 보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현미경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나쁘다고 불평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에 미쳐 보라고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온갖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올 거라는 것입니다.
넷째 위의 3가지 방법을 다 쓰고도 마음이 평안해 지지 않거든 하나님께 미쳐 보라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평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랍니다. 평안의 주인 되시는 그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나도 평안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평안을 나에게 주실 때 내가 누릴 수 있는 평안이 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께 한번 미쳐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 평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랑을 한 것도 아니요, 게임을 한 것도 아니요, 일에 몰두한 것도 아닙니다. 한다고 한들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평안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평안이 여러분들과 여러분들 가정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함께 엎드려야만 합니다 (43-46)

본문으로 돌아가서 43절에서 46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문제가 일단락 되었습니다. 문제가 일단락 지어지자 백성들은 물러갔지만 모세와 아론은 회막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달려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예" "아론과 함께 저 백성들에게서 떠나가라" "왜 그러시지요?" "저 백성들의 꼴을 나는 더 이상 못 보겠다. 이러는 것이 한 번 두 번이냐? 순식간에 없애 버리고 말겠다"고 하셨습니다. 250명도 순식간에 없애 버린 것이 아닙니까? 백성도 그렇게 처리해 버리고 말겠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볼 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던 백성들이 아닙니까? 그 때 할렐루야 아멘 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이 지금 큰 위기에 봉착했구나, 이것은 엎드려 기도해야 할 문제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하나님과 담판을 짓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될 문제다''하여 모세가 엎드렸습니다. 모세가 엎드리는가 했더니 아론도 함께 엎드렸습니다. 이것은 아론의 문제만도 아니고 모세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너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럴 때 모세와 아론은 함께 엎드렸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아버지만의 문제입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문제이기도 하고, 아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딸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럴 때 ''당신만 교회에 나가 기도하십시오''라고 하지 마십시오. 어머니만 나와 엎드려야 됩니까? 아버지도 함께 엎드리고, 아들도 함께 엎드리고, 딸도 함께 엎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와 아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것은 기도할 문제다''하고 함께 엎드린 것처럼 여러분 가정에도 문제가 생기거든 함께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함께 엎드릴 때 문제가 해결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함께 엎드린 아론에게 "나는 여전히 엎드려 기도하겠으니 향로에다 제단의 불을 담아 그 위에 향을 두어 빨리 백성들에게 가서 속죄하십시오. 돌아올 때까지 나는 엎드려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계속 엎드렸고 아론은 그 향로를 들고 백성 가운데로 달려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진로를 거두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는 하나님과 의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공동묘지에는 전혀 문제도 위기도 없습니다. 산 사람에게는 반드시 문제도 위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엎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 영(John Yong)이라고 하는 흑인이 있었습니다. 그 흑인은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다가 넓은 땅을 샀습니다. 그 땅에 농사를 짓고 자기 먹을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팔아서 은행의 빚을 갚았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은 아이를 한 두명만 낳았으면 좋겠는데 14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자식이 14명이나 되면 그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광성교회 성가대가 9개인데 저는 그 성가대 이름을 잘 기억을 못하고있습니다.
존 영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하나님 우리는 먹는 입이 많습니다. 농사를 망치면 우리는 굶어 죽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굶어 죽으면 꼴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 농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평생에 농사를 실패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자녀들과 함께 꼭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 끝에 컴퓨터에 입력을 시키듯 하는 말은 "이 집의 뿌리는 하나님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철소가 있는 광양 김씨입니다. 광양 김씨는 본래 경주 김씨에게서 나왔습니다. 경주 김씨의 본래 뿌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신라 경순왕입니다. 그래서 저의 뿌리를 묻는다면 경순왕이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뿌리는 하나님이다. 우리 가정의 뿌리는 하나님이다''라고 거듭해서 말하고 입력을 시키다 보니 자녀들의 머리 속에 그 말씀이 깊이 새겨졌습니다. 뿌리에서 끊어지면 죽는 것이 아닙니까? 자녀들이 평생 하나님을 벗어난 일이 없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흑인들이 그렇게 잘 된 사람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 아들 중의 하나는 박사가 되고 대학 교수가 됩니다. 딸들은 전부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간호사가 존경을 받을 때였습니다. 아들 하나는 농부로서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자녀들이 잘 되었습니까? 엎드릴 줄 아는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뿌리에서 끊어지면 죽는 줄 아는 자녀들이 평생 동안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자녀들을 길러 보셔서 알겠지만 자녀는 내 마음대로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음만은 이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세와 아론 그리고 존 영의 모습을 보고 자녀들을 위해서 엎드리는 부모, 부모를 보고 엎드릴 줄 아는 자녀가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기도할 문제다 하면 엎드리십시오. 자녀들에게 엎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엎드리는 성도가 승리하고 엎드리는 가정이 축복을 받습니다.

셋째, 문제를 정면 돌파해야 합니다 (47-50)

본문으로 돌아가서 47절에서 50절을 보면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명이었더라 염병이 그치매 아론이 회막문 모세에게로 돌아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로 들어가기 전에 홍해가 가로 막혔습니다. 큰 문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홍해를 건널 때는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고 길을 내 주신 다음에 건너라고 하셨습니다.
제 손자가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숙제와 과제를 내 주면 자기 혼자 못합니다. 부모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어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상태에서 홍해 바다에 뛰어 들라고 하면 뛰어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길을 내 주고 건너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숙제를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요단강이 가로막았습니다. 요단강은 보리를 거둘 때에는 물이 넘쳐서 건널 재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길을 내 주고 건너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큰 문제가 가로막힌 것입니다. 그럴 적에 하나님은 무조건 뛰어들라고 하셨습니다. 즉 정면 돌파하라는 겁니다. 제사장들로 하여금 법궤를 메고 문제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문제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요단강의 제사장들이 버티어 섰을 때 길이 생겼습니다. 문제 속으로 뛰어 드니까 길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전부 건너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아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절대로 숙제를 대신 해 주지 않으십니다. 네가 하라는 것입니다. 뛰어 들라는 것입니다. 문제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답이 없는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문제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으나 찾는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지금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진로하사 염병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막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14,700명이 죽었습니다. 그 때 모세의 명을 받은 아론이 향로를 들고 그 문제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거기가 어디라고 뛰어듭니까? 나도 염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 인줄 알고, 해결의 길이 여기에 있는 줄 알고 문제 속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정면 돌파했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들과 산 사람들 사이에서는 순간 하나님께서 진로를 거두셨습니다. 문제를 절대 피하지 마십시오.
뉴턴은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문제가 있으면 절대로 부딪히지 않고 피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요단강이라는 문제가 가로막혔을 때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그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문제에 끌려가는 사람입니다. 문제에 자꾸 끌려가다 보면 수렁에 빠져 버립니다. 요단강이 넘칠 때 요단강에 떠내려가면 죽게 되는 것이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세 번째 사람은 문제와 맞서는 사람입니다. 정면 돌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문제와 부딪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최선을 다할 때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단강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이 하루에 14,700명이 죽어갈 때 도망을 갔습니까? 문제에 휩쓸려 허둥대다 말았습니까? 뛰어들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모든 문제는 깨끗이 마무리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안을 되찾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문제가 꼭 있습니다. 피하지도 말고, 문제에 끌려가지도 마시고, 문제와 부딪혀 들어가서 정면 돌파하십시오. 최선을 다하는 날에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위기에 몰렸을 때는 첫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위기에서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바라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함께 엎드려야만 합니다. 민족적인 문제, 국가적인 문제가 있을 때 또는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온 가족이 함께 엎드리십시오. 이것은 기도할 문제라 생각될 때 모세와 아론이 함께 엎드렸습니다. 그들이 엎드릴 때 해결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누구를 탓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문제 속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피하지 마십시오. 문제에 끌려가지도 마십시오. 정면 돌파해야 합니다. 문제에 뛰어들고 맞서서 최선을 다하는 날 요단강 가운데 길이 나듯이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릴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