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종목사 (과천교회)

오늘은 『우리 앞에 있는 두 가지 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7장 13절과 14절을 보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 앞에 두 개의 문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좁은 문이고 하나는 넓은 문입니다.

첫째, 넓은 문입니다.

넓은 문은 넓은 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넓은 문은 어떠한 것입니까? 본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했습니다. 그 문은 찾는 자도 많고 들어가는 자도 많습니다. 그러면 넓은 문은 어떠한 문입니까?
첫 번째, 노력하지 않고 쉽게 살려는 자의 삶입니다. 세상에는 노력하지 않고 소득을 얻으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땀 흘리지 않고 수확을 얻으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수고도 희생도 않고 좋은 성과를 얻으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쉽게만 인생을 살려는 자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성경에는 신앙생활을 인간들의 세 가지 직업에 비교해 놓고 있습니다. 농부, 군인, 경기하는 자입니다. 이 세 가지 직업은 모두 준비가 필요한 직업입니다. 노력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땀 흘리는 직업입니다. 준비한 만큼, 노력한 만큼, 땀 흘린 만큼 수확을 얻을 수 있는 직업입니다. 상급이 있습니다. 농부가 땀 흘리기 싫어하면 많은 추수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군인이 훈련을 게을리 하면 전쟁에서 그의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훈련을 게을리 하면 금메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 땀흘리기 싫어하는 자, 봉사하기 싫어하는 자, 불로소득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거기에는 수확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두 번째, 육체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의 길입니다.
정욕대로 사는 삶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표준 없이 사는 생활입니다. 노아 때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였습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밥이었습니다. 강포가 땅에 충만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방탕했습니다. 경건치 않은 결혼을 했습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 아내를 취했습니다. 일부다처주의가 생겼습니다. 온 사회전체가 부패했습니다. 악이 고함을 쳤고 악이 이기는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가는 길이 넓은 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넓어 그리로 가는 자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 넓은 문으로 가는 자에게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창조 자체를 한탄하셨습니다. 후회하셨습니다. 물로서 심판하셨습니다. 온 세계가 물로 심판 당하여 모두 죽었지만 노아 가족 여덟 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산 위에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전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홍수의 피해를 그 가족만 면할 수 있었습니다. 노아가 들어간 문은 좁은 문입니다. 들어간 자가 적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 받았을 때 롯과 그의 두 딸만 구원받았습니다. 그때 소돔과 고모라는 수 만 명이 살고 있던 큰 도시입니다. 그러나 모두 심판 받았습니다. 넓은 길, 넓은 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은 이렇게 찾는 이가 적습니다.
전도서 11장 9절에 보면 청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며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넓은 길입니다. 문제는 그로 인하여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 번째, 불신앙의 길이 넓은 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넓은 길입니다. 불신자의 삶을 에베소서 2장에서는 다섯 가지로 말합니다.

①허물과 죄로 죽었던 생활입니다. 영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육의 생활을 한다는 말입니다.
②세상의 풍속을 좇는 생활입니다. 삶의 표준과 가치가 세상에 있단 말입니다. 자기 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③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생활입니다. 마귀의 세력의 특징은 불순종입니다. 더러운 귀신으로 인간들을 타락시킵니다. 악령으로 역사하여 인간을 번뇌케 합니다. 거짓말하는 영으로 역사하여 거짓 삶을 살게 합니다.
④육체의 욕심을 따라 생활하게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⑤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생활입니다. 불신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 불신자의 삶은 넓은 길입니다. 결국 그 길은 지옥입니다. 영벌입니다. 멸망입니다. 찬송가 253장 1절의 내용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험하니
우리 몸에 매여 있는 그 더러운 죄 짐을
하나 없이 벗어놓고 힘써서 들어갑시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좁은 문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 생명 길 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을 쉽고 편하게 적당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문은 넓은 문입니다.
사람은 영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은 살아 있습니까? 넓은 문은 들어가기 쉽습니다. 육신은 일시적으로 잠깐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편한 것이 아닙니다. 그 문은 멸망의 문입니다. 영벌입니다. 지옥입니다.

둘째, 좁은 문이 있습니다.

좁은 문은 어떤 문입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8절에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9절에서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창에 찔리셨습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매를 맞아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그가 맞았기에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을 친히 담당하셨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오직 예수님의 이름뿐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문입니다.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주님만이 참 쉼을 얻게 해주십니다. 주 예수님만이 평강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짐을 오늘 이 시간 모두 예수님께 맡기시고 참된 평강을 얻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3장 24절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힘써야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영어로 스트라이브(strive)입니다. 이 말은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힘쓴다는 말은 다른 성경에는 ‘①진력한다(딤전 4:10). ②죄와 싸운다(히 12:4). ③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다(딤전 6:12). ④이기기를 다툰다(고전 9:15)’는 말씀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문만이 우리의 참된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만이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다는 것은 먼저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 사람입니다. 애굽의 황제가 되는 출세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11장 24절 이하에는 이렇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러나 부자청년은 좁은 문을 좇다가 중간에서 포기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바랍니다. 일찍 죽고 싶다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재물이 많았던 부자청년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가 가진 재물이 그의 삶에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가 계명을 지키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십계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 그 청년은 “그 계명은 내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계속 말씀해주셨습니다.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떠난 것입니다. 넓은 길로 가고 만 것입니다.
좁은 문은 ①십자가의 길입니다. ②세상을 포기하는 길입니다. ③내가 가진 주관이나 고집이나 경험이나 지식이나 모든 인간적인 조건을 포기할 때 주어지는 문입니다. 그래서 ④“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 채
주님 곁을 떠나갔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였고 소망이었소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주님 사랑한다던 베드로 고백처럼
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예수찬양 25장 1절)

다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다는 것은 교회생활에 성실함을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그 예수님의 몸에 속한 지체입니다. 지체는 그 몸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나뭇가지가 몸에 붙어 있어야 몸으로부터 오는 양분과 수분을 받아 건강한 가지가 되어 꽃이 피고 잎이 나고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참석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최고의 의무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그는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정성을 다해 찬송과 기도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법을 주의 종을 통하여 제시해 줍니다. 설교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 듣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빠졌다면 설교테이프를 사서 들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주시는 은혜 없이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 없이 살면 그 삶은 넓은 길로 빠지고 맙니다.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은혜 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회나 너무 좋은 시간입니다. 영적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놓쳐서는 안됩니다. 내 영이 살지 못하면 그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지기 때문에 넓은 문으로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다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일은 가족 구원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힘쓰는 것은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결사각오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목숨을 내어놓고 덤벼드는 자입니다. 가족구원을 위하여 결사적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지옥 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면 구원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사생결단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믿지 않으면 나는 밥을 먹지 않겠소”라며 금식이라도 하면서 매달려야 합니다.
몇 분 후에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 시간에 회개한 강도는 구원은 받았지만 상급은 분명히 없을 것입니다. 믿을 바에야 잘 믿어야 합니다. 봉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도 해야 하고 성가대도 해야 하고 식당봉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사도 되어야 합니다. 권사도 되어야 합니다. 장로도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직분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 자들에게 주시는 직분입니다.
찬송 부를 때도 열심히 부르십시오. 기도도 더욱 열심히 하시고 봉사도 열심히 하십시오. 말씀을 청종하십시오. 그래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좁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 영생이 있고 참 생명이 있고 복이 있습니다. 이 은혜와 복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