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렙목사 (산해원교회)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앞으로는 사도신경만 주로 우리가 고백하는 그런 형편이 아니라 주기도문의 진정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내 개인을 위한 것인지 교회 생활에 더욱 필요한 것인지를 한번 챙겨보아 주기도문에 입각한 그런 예배도 드려야 되겠다 싶어서 오늘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흔히 말씀들 하여서 이 땅에는 희망이 없다. 그런 말씀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미워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이렇게 합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희망이 있다는 것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에 천국이 아직도 희망할 것이 있다면, 또 천국이 아직도 모자라서 고쳐야 될 그런 부분이 있다라고 한다면 저는 거기 가는 것을 상당히 실망을 할 수밖에 없다 싶습니다.
천국에는 이 세상과 달라서 더 이상 고칠 것도 없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인 줄 압니다. 그래서 저는 천국을 사모하는 것이지요.
우리 주께서 가르쳐 하게 하신 기도를 보십시오.
10절에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그랬어요.
땅에 어떤 뜻이나 땅의 어떤 신앙이 하늘에 수출될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옵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고 또 그대로 되어지도록 우리더러 뛰라고 주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천국으로 수입해 수출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 땅에서 천국에 있는 것을 수입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땅에 있습니다.
물론 이 땅에는 희망이 너무 많을 만큼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어두운 면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을 포기할 것인가?
주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와 그 행하라 하신 것을 보면 이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변화 시켜야 합니다.
사랑함이 없으면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이 세상 잠시 잠깐 살다 갈 것이라 하면서 박대하고 이 세상에 가까이 가는 것을 마치 죄짓는 것처럼 생각하고 천국 천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듭난 이후에도 이 땅에 살게 하신 것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희망할 것이 너무나 많고 고쳐야 될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너희가 직접 하라 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세상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또 주께서 이 세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나라이 임하여 오셔서 이 땅이 천국과 같이 되도록, 이 땅의 희망 사항이 다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기도의 내용을 가르쳐 주셨을 때
그 9절 처음 내용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그랬어요.
이 기도의 내용을 가르쳐주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이 "그러므로"에 대한 뜻이 무엇인지를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할 수가 있다 그것입니다.
문장의 형태로 보아서 "그러므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서 이 기도 앞에 이 기도와 관련되는 그런 사건이 앞에 있었구나 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이렇게 고백할 때에 그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렇게만 늘 들어갔기 때문에
이 기도를 왜 해야 되는지? 그 앞의 상황을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드는 것은 어떤 것이며 일용할 양식은 무엇이며 악에서 구원받아야 될 것은 어떤 악이냐? 이런 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책을 읽을 때 그렇게 잃으면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요.
이 문장의 형태로 보아서 "그러므로"를 보아서 그 앞에 분명히 내용이 있는데 그 앞에 있는 내용도 어떤 것인가를 미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이렇게 하지 않고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뒤에 가르쳐주신 기도 내용과 같은 상황이 앞에 있었겠습니까 전혀 다른 상황이 앞에 있었겠습니까?
옛날 공부하던 때 국어실력을 좀 발휘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했으면 앞의 사람들이 잘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사람들처럼 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한 것을 보니까 앞의 사람들이 한 짓이 틀렸다 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의 사람들 그 당시의 사람들의 틀린 내용들을 우리가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기도의 진정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아쉬움이 부족함이 있다 그런 것이지요.
그러면 앞에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가 한번 읽어볼까 합니다.
6장 1절부터 4절까지 보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의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영광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이 제자들이 살고 있던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 생활을 중심 하면서 성전에 모이게 되었을 때에 주로 어떻게 했느냐.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자기가 칭찬을 받으려고 구제도하고 봉사도 하고 의를 행했다 그것입니다 당시에. 남에게 다 보이려고.
또 5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당시에 사람들의 그 성전 중심 생활을 본다면 기도를 한다든지 전도를 한다든지 예배수종을 든다든지 할 때에 저들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사람을 의식하고 주로 하고 있다 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중에도 계신데 하나님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하고 더 하고 있다 그것입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계신데 사람이 없으면 하지 않는다.
사람만 나타나면 알아주기를 바라서 기도도 그저 외식하므로 기도하고 평소에는 기도도 잘 안 하는 사람이 사람 나타나면 기도하고 이렇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스스로를 이 말씀 앞에 비추어볼 때 어떻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경우를 잘 압니다.
제가 주의 종이 되기 전까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서 종으로 부름 받을 때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천국 경험을 한 그 이전까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의식한 것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한 것이 더 많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부름 받기 전 장로로 있을 때에 기도회로 모이면 그저 대강 대강 졸기도 하고 먼저 와서 있다가 목사님이나 성도님이 나타나게 되면 기도를 제대로 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고 대접을 한다든지 충성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나도 모르게 많이 의식하고 생활했다 라는 것을 제 자신이 고백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니까 "목사가 그랬냐?" 목사 되기 전이라 안합디까? 그런데 목사가 된 이후에도 백프로 진실하게 하나님만 의식했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성도님들이 전화를 하면 성이 났다가도 성 안난 것처럼 "여보세요" 평안하기를 빕니다. 이렇게 되어집니다.
없을 수는 없지만, 또 물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오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제가 중직을 갖고 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한때가 많았음을 저도 고백하면서
여러분의 그 마음 중심도 오늘 이 같은 말씀 앞에서 한번 비추어 보시고 체크해보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라는 것을 염두해 두고서 이 가르쳐 주신 기도 내용을 전부 풀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외식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다 했습니다.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열심히 하고 칭찬해 주지 아니하면 그만 성나고 하나님의 칭찬을 하나님의 상급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상급을 기다린다.
그래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더 열심히 하고
그 사람은 "잘한다 잘한다"하는 것으로 이미 상을 다 받았으니까 하늘의 상은 기대하지 말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람에게서 받는 상 그것 별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얻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상이 진실하고 영원히 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무엇을 위하여?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기 위해서,
희망이 많은 이 세상을 정말 고치기 위해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런데 여기에서 이 문장에서 빠진 말이 있습니다. 간단히 하다 보니까 빠진 단어가 있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 불렀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겁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는데 이 이름 앞에 뭐가 빠졌겠습니까? 어떤 단어가 빠졌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조금 길더라도 "아버지의" 라고 하는 정말 아버지를 넣었으면 더 구체적이었을 텐데 그냥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하니까 막연합니다.
그런데 앞에 사람들이 하나님 이름보다 자기 이름을 더 내려고 했는데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하라 했으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면 거기에 더 보탠다면 뭡니까? 아버지의 이름이 내 이름보다 더 나시기를 원하오며. 아멘? 그렇습니다.
이 앞의 내용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라는 것을 연결해서 풀지 아니하면 이것이 실질적으로 풀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내 이름보다 더 나시옵시고.
그런 것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내 이름보다 더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멘 안하시렵니까? 정말 여기는 동의해야지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누구 이름보다? 내 이름보다 더 높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의 충성과 나의 헌신과 나의 기도를 인하여 나보다는 아버지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오며.
헌신과 봉사를 남에게 보이려고 혹은 나 좋으라고 해서도 안되고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옵시고"
시험에 든다니까 뭔가? 싸우는 것을 말하는가 헌금하기 싫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주일 성수 하기 싫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
시험에 드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참 복잡합니다.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라는 것을 대입시켜서 앞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무엇이기에 "시험에 들지 말게" 했느냐?
교만한 시험에 들지 말라 그겁니다. 자랑하는 시험에 들지 말라 그겁니다. 이해가 되시면 아멘 합시다.
시험 내용을 알아야 됩니다. 막연하게 외워버리니까 앞뒤 것을 다 떼어버리니까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밤낮 기도하지만 구체적으로 내게 와 닿는 게 없다 그것입니다.
그 앞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에도 외식하므로,
그저 자기 개인생활이나 개인 마음은 그게 아니면서 사람들 모인 곳에서, 교회 모인 곳에 가서는 아주 경건한척하고 외식하고.
그리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것도 사람에게 칭찬 또 목사에게 칭찬 이것이 있으면 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그저 안 할 정도가 아니라 시험에 들어 가지고 성이 날 정도 되는 이런 형편이 된다라고 한다면 우리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리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미 어디에 든 것이라고요? 시험에 든 것이다 그겁니다.
그래서 악에서 구하옵시고. 이 악이 뭡니까? 악은 죄요 악은 마귀다 그겁니다.
마귀는 뭡니까? 사단마귀의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만하게 하고 자랑하게 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게 하고 이것이 악이 하는 것이다 그것입니다.
거기에서 구하옵소서. 날 건지어 주시옵소서. 내가 시험에 들어있었나이다. 이 시험에서 나를 다만 구해주옵소서.
지금 다른 것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제 자신이 헌금하며 내 자신이 헌신하며 내 자신이 예배에 수종들면서 타인에게 보이려고 내가 영광을 얻으려고, 사실은 내 본심이 그랬겠나이까?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진정 원했겠나이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가 나를 뒤집어씌웠나이다. 이 악에서 나를 구원해주옵소서.
그래야 교회가 바뀌고 교회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다 그겁니다.
주님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너무 엉망이기 때문에 희망이 많다. 할 일이 너무 많다 그겁니다. 주님이 바라시는 것이 천국에는 없어요. 이 세상에는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그대로 임하여서 하나님 나라의 마음씨와 하나님나라의 그 가슴과 하나님나라의 그 계절이 이 땅에 와서 이 땅을 하늘같이 되기를 바란다 그겁니다.
쓰다가 버릴 때에는 버리더라도 말입니다.
왜?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이 기도가 엄청난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너희는"

또 13절 하반 절에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그것 좋은 고백이지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니까 그저 간단해요. 평범한 얘기 같아요 그러나 옳은 말 같아요.
그러나 그렇게 여기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를 생각하고 이 구절을 보라 그겁니다.
그랬다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 있을 것이 백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겁니다.
왜? 저들이모든 것을 주장하는 줄 알고 저들이 마음대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겁니다.
외식하고 자랑하고 저들이 온 백성이 이끌어 가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겁니다.
주께서 그런 모습을 보시면서 "너희는 그렇게 하지말고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했다 그겁니다.
그러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라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뭐가 빠진 겁니까? 사람에게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라 아니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러므로" 앞을 알아야 된다 그겁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사람에게가 아닌 하나님에게 영원히!
곳곳에서 아멘 아멘 여러분 고백을 해 주시는데 하나님이 그 아멘에 기뻐하실 겁니다.
과연 현실적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입니까? 과연 아멘인가? 이 아멘은 결코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이 아멘의 진정한 뜻은 무엇입니까? 이것이야말로 고백입니다. 장난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아멘
우리 교회에서 아멘 이것 너무 쉽게 쉽게 많이 합니다.
어느 부흥강사 왔는데 "나 오늘 비행기 타고 왔는데 믿습니까?" 아멘.
비행기 타고 온 것이야 아멘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 아멘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귀한 단어가 할렐루야 아멘 입니다.
이 할렐루야, 구약에 보면 전부 시가 뒤에 보면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 앞에는 뭡니까? 하나님께 영원히 입니다.
그 다음에 신약에 와서는 아멘 입니다.
그것은 진실로 그리되옵소서 진실로 나도 동감입니다. 진실로 이것은 나의 신앙입니다. 이래서 아멘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멘은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실 때에 그저 있사옵나이다 라고 하고 끝내어야 할텐데 아멘 까지 기록했다 그겁니다.
뭡니까? 너희가 아멘 시켜라 그겁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진실로 아버지께 영원히, 이르지 못한 이 세상, 이르지 못한 이 교권자들, 이르지 못한 이 세상의 왕들,
그러나 너희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 임하게 하셔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다 돌아가도록, 있도록 하라 아멘 하라. 그리고 영광이 사람에게 있어서 되어지지 아니할지라.
너희는 외치고 이 세상을 고쳐가라는 것이지요.

주께서 이 기도 끝에 아멘 이라고 하라 하신 것은 우리고 하여금 이 땅을 바꾸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은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어떤 나라 어떤 족속의 장도 하늘로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세워지지 못한다 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하나님께서 다 세워주셨건만 하나님께서 그 영토들과 백성을 흩어져 나누어 있게 했건마는, 또 언어를 혼란시켜서 각 다른 언어를 쓰게 하는 민족들끼리 모여 살게 했건마는 아직도 그 영토와 같은 말을 쓰는 백성을 다 자기 소유로 삼고 있는 그런 독재도 얼마 있다 그겁니다. 이 세상에 말입니다.
이 세상에 그런 것이 있어서는 안되지요. 이 세상에 어디 개인의 민족이요 백성이 어디 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개인의 영토가 어디 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것이지요.
마치 어느 왕이 자기 개인의 것인 줄 알고 모든 영토를 개인 사유화해서 대를 이어서 말이지요. 왕의 것이다 왕족의 것이다. 이 짓하고 있다 그겁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러한 영광을 가로챈 그 임금들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오늘날처럼 나라와 민족과 영토를 자기 소유로 만든 그런 왕들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언제부터 가능해진 것입니까?
저와 여러분 같은 주의 제자들처럼 이 기도에 아멘한 사람들이 이와 같이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겁니다.
이와 같이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나라를 비롯한 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것도 참 좋은 제도입니다 마는 잠깐 잘못하면 하면 하나님을 서운케 해 드릴 수 있어요.
뭐냐? 민주주의 국가는 그야말로 국민이 주인이다 그것입니다.
국민이 집권자들과 위정자들을 세우는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국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고 이 나라가 국민의 소유가 아닙니다.
진실로 우리는 무엇을 고백해야 되느냐
"주여 이 나라와 이 백성은 다 하나님의 것이옵나이다 우리가 뽑아 세운 것도 우리가 투표했을 뿐이고 제비 뽑았을 뿐이지 우리의 제비를 사용하고 우리의 마음들을 하나님이 이용하셔서 세우는 군왕들과 세우는 그 통치자들도 다 하나님이 세운 줄 믿습니다."라고 하고 이와 같은 자리에 올라선 사람도 "이 나라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끝내어야 할텐데 "이 백성아 너는 나 때문에 잘 산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거짓말입니다.
하나님 아니고 그 누구 인간이 나라를 잘 살게 합니까?
여러분 살펴보십시오. 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빼앗았던 그런 나라요 그의 주의 그런 사상 그런 사람들 다 무너져갑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곳이 많고 아직도 이런 위정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희망이 있다 그겁니다.
희망이 있다라고 하니까 그것이 좋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고쳐져야 하기 때문에 고칠 희망이 있다 그겁니다.
희망할 내용이 남아있으니 기도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께서 행동으로 고쳐지도록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늘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자신은 그러면 어떠합니까?
물어봅시다. 여러분의 자녀, 진정 여러분의 자녀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맡아 기르고 있는 청지기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소유입니까? 하나님의 소유입니까? 하나님의 소유인줄을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서 여러분의 자녀를 여러분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끼며 사랑하며 내 몸같이 사랑하며 키우고 있지만 누구를 위하여 키웁니까?
여러분을 위하여 키웁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키웁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키우는 것이 맞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다 키워서 하나님의 주신 뜻을 따라서 이 세상을 바꾸어 갈 수 있는 주의 일을 하는 쪽의 사람이 되든지 세상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든지 이렇게 키워서 성인을 만들고 나면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선물에 대하여 성장하는 과정에 제 임무를 다했사오니 이 자식이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내어보내야 할텐데 자식에게 사랑을 쏟는 것을 보면 마치 자기 소유같이 여기고 있다 그겁니다.
그리고 나이든 다음에는 자기 자식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던지 "내가 어찌 키웠는데" 이 소리가 심방가보면 빠지지 않아요.
다 내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내 자녀에 대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재산이 다 내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셨다 라고 십일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몸이 내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몸이 내 것이라고 내가 갈 수 싶을 만큼 내 몸을 살리고 내가 안 아프고 건강할 만큼 건강하게 만들어집니까?
아니요. 아프고 안 아프고 낫게 하는 것도 하나님 장 중에 있는 것이고 내가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이건 변경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이 무지몽매 한 인생이 자기 몸과 자기 호흡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다 자기 것인 줄 압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하여 건강관리를 열심히 합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합니다. 돈을 모아도 자기를 위하여 모으고 자식을 위하여 돈을 모읍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돈도 여러분의 건강도 여러분의 호흡도 여러분의 수명도 다 하나님의 것인데 예수님 당시에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의 현실처럼 오늘날도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면 가족 중에 하나님이 누가 먼저 데리고 가든지 늦게 데리고 가든지 초연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셨다가 하나님나라에 젊은 딸이 필요했구나 젊은 아들이 필요했구나 또 하나님이 내 아이를 치셨구나 하나님이 내 아이에게 복을 주셨구나.
아이가 크게 복된 일을 해도 하나님 때문에 기뻐해야 하고 크게 어려운 일을 당해도 "아 하나님께서 처결하시는구나"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사무적으로 대해야될 청지기에 불과하면서 모든 영광을 우리 자신이 가지지 아니하냐?
영광 돌려드리나이다. 돌려드리나이다 할 때 무엇 돌려줄 것인데요? 하면 몰라요 그냥 외우고 있어요.
아니요. 진실로 뺏어 온 영광을, 도둑질한 그 영광을 더 오래 참으시기 전에 돌려드리시기 바랍니다.
내 자식을 돌려드리고 내 재산을 돌려드리고 내 몸을 돌려드리고 내 호흡을 돌려드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매 이 모든 것이 주의 것이니이다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과연 이 같은 장엄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있어야 하는데 육신은 추수를 한, 그래서 저장한 곡식을 먹으면 되겠지만 영혼이 죽고서야 육신이 어찌 삽니까?
그리고 이 주께서 가르쳐 주신 내용을 살펴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또 그 앞으로 가보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백합화도 주께서 기르시고 공중에 나는 새들도 깃들 곳이 없어도 주께서 먹이시는데 그것을 걱정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고쳐야 될 것이 다 무엇입니까? 육신적인 겁니까? 영적으로 고치라 합니다.
그래서 이 진정한 양식은 무엇이냐?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은 우리 세 때 먹는 쌀보리 그것이 아니라 이 기도에서 가르쳐준 일용할 양식이 무엇입니까?
영의 영식을 먹으라는 겁니다.
일용할 영의 양식을 주시옵시고, 영의 양식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3장 하반 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영의 양식이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성경을 상고하거나 설교를 듣기만 하면 되는가?
어느 날 야곱의 우물가에 제자들이 예수님 잡수실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마을에 갔다 왔습니다.
그 사이에 예수님은 물 길러 온 여인과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에게 준비한 음식을 갖다 드리니까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구원하고서 그리고 수가성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고 나서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뛰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서 제자들에게 특색 있는 예수님 잡수시는 음식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양식을 소개하고 있었어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먹는 양식이 흘러 들어와야 우리에게 영양이 공급되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거듭났으니 거듭난 영혼은 예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부모가 먹는 양식이 그대로 자식에게 가지 않습니다,
부모가 갖고 있는 저항력이 그대로 자식에게 가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의 양식이 무엇이냐? 제자들이 갖고 온 그런 양식을 논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양식이 있었는데 오늘 그 양식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요한복음 4장 31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은 마을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오고 이 여인은 유대인과 상종도 못할 예수님이 상종도 할 수 없는 그런 여자였지만 주께서 사랑을 베푸사 구원을 받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 사람을 데리고 간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제자들은 통 이해를 못했고 주님께서도 "너희는 이 양식을 알지도 못하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갖다 드렸는가?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이 뜻은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상고하고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몇백 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따라합시다.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간 많이 설교를 듣습니다. 언제나 성경을 상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2장 26절 말씀같이 행함이 없는 말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그랬어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말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오늘 우리는 이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절실함을 알고 예수님처럼 양식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하나 하나 행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 행할 때에 그 말씀에 영양과 생명이 여러분에게서 솟구칠 줄 믿습니다.
또 그 들은 말씀대로 이루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루어 나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고 이 세상은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아직도 희망할 것이 많은 이 세상을 천국처럼 희망할 것이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하는 데에 저와 여러분이 동참하여 사역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내어드린 주기도문을 뜻을 생각하면서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