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용목사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 마태복음 6장 30절에 답이 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나님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왜 염려를 하느냐 이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할 때 루터가 하도 걱정 근심을 하니까 그 부인이 하루는 하얀 상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서 “아니 여보, 누가 돌아가셨소?” “예, 하나님이 돌아가신 거 같습니다. 당신이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을 보니 당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이 돌아가신 게 분명합니다.” 이 말을 듣고 루터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맞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지.”

이 세상에서 제일 걱정이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이들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걱정이 없습니다. 먹을 걱정도 없고 입을 걱정도 없고. 왜 그렇습니까?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엄마 아빠가 책임지고 공급해 주니까 아무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엄마 배고파 말만 하면 밥을 넣어주고, 엄마 똥 쌌어 말만 하면 기저귀를 갈아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아바 아버지. 아바는 아빠란 뜻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어린 아이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주는 아빠와 같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 아빠가 없는 사람은 걱정할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하니까. 그러나 하나님 아빠가 있는 사람은 결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걱정 근심 두려움이 어떻게 해서 인간에게 생겨났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떠남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니까, 보호자가 없어졌습니다. 내 힘으로 먹어야 하고, 내 힘으로 병을 고쳐야 하고, 내 힘으로 적들과 싸워야 하고.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근본적으로 걱정 근심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보호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공중의 새를 보라 했습니다. 그리고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게 너무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새들과 꽃들은 하나도 부족한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에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새들과 꽃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자녀들을 돌보시지 않겠냐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은 꽃보다 새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수백만 마리 새보다, 수백만 송이 백합보다 더 귀한 자녀들인데, 왜 아버지가 먹이고 입히지 않겠냐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걱정을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걱정의 배후에는 불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도 예수님은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렇게 호칭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할수록 걱정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걱정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걱정의 문제는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걱정은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걱정은 믿음을 죽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없습니다.

걱정이 믿음의 최고 적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걱정을 누가 우리에게 주겠습니까? 하나님의 적, 마귀 사탄이 우리에게 걱정을 주는 것입니다. 사탄이 역사하면 온갖 걱정 근심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마귀들이 모여서 무기 전시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질병, 미움, 파산, 테러, 전쟁 등 수많은 무기들을 전시하고 가격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런데 가격표가 없는 무기가 딱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무기들은 다 가격이 매겨져 있는데 이 무기 앞에는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졸개 귀신들이 대장 마귀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대장님! 사람을 해롭게 하는 무기들은 그 성능에 따라 다 가격이 붙어있는데, 왜 이 무기만 가격표가 없습니까?” 그러자 두목 마귀가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 무기는 가장 무서운 무기야. 이 무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수백만을 동시에 죽일 수 있지. 그래서 값을 매길 수가 없어. 부르는 게 값이니까!”

이 무기가 바로 “염려”였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마귀가 최고 자랑하는 무기입니다. 염려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총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2000년에 미국에서 살인으로 죽은 사람은 2만 명이 좀 안 됐고, 자살로 죽은 사람은 숫자는 3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하와이는 이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호놀룰루 시 검시관실 발표에 의하면, 1999년 한 해 살인은 약 27명 고통사고는 약 65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살은 몇 명이었는지 아십니까? 109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살인과 교통사고를 합한 숫자보다 자살한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하와이에서 이렇게 걱정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총보다 염려의 무기를 더 즐겨 사용하는 것입니다. 소리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염려라고 하는 이 무서운 사탄의 무기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방패로.” 믿음의 방패만이 염려의 독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염려의 화살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방패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걱정 근심 두려움의 악한 화살을 막아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ak 6: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