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희목사 (소망교회)

옛날 이야기입니다. 신라 때에 일이니깐, 꽤나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먼 여행을 떠나서 낯선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해는 저물었고 인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비는 낙수같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칠흙처럼 어두운 밤이 되어서 더 이상 어찌 할 수가 없어 서 더듬어 비를 피할 곳을 찾았는데, 마침 동굴이 하나 있어서 여기에 들어가서 한 밤을 지내고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먼길을 오면서 몹시도 피곤했기 때문에 젖은 몸을 가눌 길도 없이 거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한 잠 자고 나서 너무 목이 말라서 두리번거리며 더듬어서 물을 찾았는데 마침 그릇에 물이 있어서 그것을 마셨습니다. 아주 꿀맛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동녘이 밝았을 때 아침이 되면서 저들은 정신을 차려 보니까 자기들이 머물렀던 곳은 동굴이 아니라 무덤이었습니다. 자기가 마신 물은 해골에 고여있는 물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는, 또 생각하는 순간, 그대로 구역질이 나서 마셨던 것, 먹었던 것 다 토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중요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분명히 어제 저녁에는 꿀맛같이 마셨던 시원한 물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것을 아는 순간 견딜 수가 없어서 마셨던 것까지 다 토해버려야 했습니다.
여기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는 깊이 생각한 끝에 ''인생사 오로지 마음에 달린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한 평생의 운명이 여기서 달라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 꿀맛 같은 생수가 한 삽시간에 썩은 물로 바뀌기도 합니다. 썩은 물이 꿀맛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인간사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Being Happy 라고 하는 책을 써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분이 있습니다. 몇 주일 전에 제가 소개한 바 있습니다. 앤드류 매 튜스(Andrew Matthews)라고 하는 분인데요. 이 사람은 호주사람입니다. 그리고 본래 법학을 전공했습니다만은 25세에 좀 더 행복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갑니다. 그리고 만화 예술가가 되었다가 여러분 아시는 대로 1988년에 Being Happy 라고 하는 유명한 작은 책을 써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4개 대륙에서 오백여 TV,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게 됩니다. 참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다시 그는 Follow Your Heart 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말로 번역 할 때에
"마음가는 대로 하라"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 역시 50여개국어로 출간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 앤드류 매튜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만이 저 멀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도 환경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변화시켜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참으로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는 겁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처지에 못 마땅하게 여깁니다. 주변 환경이 영 마음에 안 들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 전부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서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심지어는 천지개벽이라도 해서 세상이 화끈하게 변해지기를 기대해보고 또 그렇게 소원합니다만은 이 분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변화 되어야하고 내가 먼저 달라 져야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며 또 우선적이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하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청결이 뭡니까? 여러분 어느 정도 청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음의 청결함의 수준만큼, 마음의 청결의 수준만큼 당신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건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번민이 있고, 고민이 있고, 문제가 많고, 또 나약해지고 병드는 일까지도 알고 보면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누가 청결한 사람입니까? 성경에 보면 노아라고 하는 사람은 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만은 말년에 그는 술에 취해서 실수를 합니다. 아브라함, 역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만은 그 믿음이 미흡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세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때때로 혈기를 이기지 못하여 실수했고,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때도 있었습니다. 고난을 이긴 대표자 욥 같은 사람도 이긴 듯 하게 보이지만은 사실은 그가 자기의 난 날을 저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그는 온전한 청결함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도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니다만은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고 할 때에 쫓겨가고 쫓겨가다가 마침 내는 죽기를 소원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족합니다. 더 살고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몸부림칩니다. 역시 그 마음이 청결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 같은 대사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것도 청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사도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호소합니다. 원하는 선은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로 기울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개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청결한 사람은 아닙니다.
마음의 청결이라는 것이 뭡니까? 힐라어 원문대로는 카타로스라고하 는 말입니다. 대체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먼저는 세탁된, 깨끗한 옷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것은 아닙니다. 더러워졌습니다. 그런데 깨끗하게 씻어서 깨끗하게 만들었을 때 그것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지켜서 그 더러워진 마음, 찌들어진 마음, 구부러진 마음, 변질된 마음이 다 씻어져서 회개하고 또, 깊이깊이 회개해서 깨끗한 마음이 될 때, 잠언에 있는 말씀대로
"무릇 지킬만한 것이 있으되 네 마음을 지키라"
마음을 깨끗하게 지켜갈 수 있을 때 이것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쭉정이나 벼 같은 것을 다 제해버리고 알곡을 만났을 때, 이거는 농사해보면은 이게 그 쭉정이를 다 날리고 나면은 거기에 알곡이, 요렇게 반질반질한 알곡이 솟아납니다. 그 알곡, 알곡만 모아놓았어요. 그것이 청결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섞이지 않은, 혼합되지 아니한 물건을 말합니다. 그런 물질을 말하는 겁니다. 가령 우유에다 물을 탔다. 그건 깨끗지 못합니다 순수한 우유, 포도주에 물을 섞었다. 그것도 잘 못된 거야. 포도주 그대로. 이런 것들이 깨끗한 겁니다. 그래서 인간을 말할 때에는 아주 깨끗한 일편 단심의 사랑을 가진 여자. 한 사람 만 사랑하는 거, 한 여자만 사랑하는 거, 이런 마음을 정결이라고 말합니다.
한 때에 어지간히 시끄럽게 문제되었던 작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제2복음이라고 하는 책인데, 예수님의 생애를 전혀 다른 각도, 시야에서 이렇게 그려놓은 책인데, 이것을 스웨덴 노벨상을 주는 기관에서 문학작품으로 노벨상을 주겠다고 했더니, 카톨릭 교회에서 교황청에서 반대를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어지간히 시끄럽게 변론을 벌였는데 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주었습니다 작년에. 이제는 이 작품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제가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한 장면을 제가 소개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여자는 가버나움에서 아예 간판을 내걸고 정식으로 영업을 하는 창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날 이 집을 들어가게 되는데, 아무 상관없이 마리아를 만나게됩니다. 그야말로 인간적으로 만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만납니다. 마리아는 그때 예수님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은 가셨다가 몇 일 후에 다시 거기에 들렀는데, 예수님이 몹시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이 여자가 나를 만난 다음에도 다시 창녀 업을 계속 했는지, 안 했는지, 생활이 달라졌는지, 안 달라졌는지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넌지시 물어봅니다.
"요새도 창녀 영업을 하느냐?"하고 묻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예수님, 여자는 동시에 두 남자를 절대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그가 오랫동안 해오던 그 더러운 직업을 깨끗이 청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믿고 나를 존경했으니까 이제는 창녀 직업을 버려라."
했다면은 여자가 이렇게 말했을 거 같아요.
"먹고살아야지요."
그랬을 거 같아요. 예수님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그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인간적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사랑하게 되면서 아주 몸에 찌들은, 오랫동안 해오던 창녀 행위지만은 깨끗이 청산합니다. 이것이 청결입니다. 사랑이 순수해질 때 나머지 모든 것들을 다 저버리게 됩니다. 하나의 가치가 깨끗해질 때 그 외의 일들은 쉽게 다 버릴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게 청결이올시다.
자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랑, 믿음, 소망 알고 보면 이것도 마음의 문제입니다. 보세요. 사랑, 사랑의 행위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행위는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가 있으나 마음은 하나입니다. 마음이 있어서 사랑입니다. 사랑의 행위라고 하지만은 그 속에 마음이 담겨있지 않을 때, 순결하지 않을 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여러분 때로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자녀를 사랑하는데도 자녀가 말을 안 들어요. 그렇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랑이 정말 청결하냐고. 한 번 회개해 볼 필요가 있어요. 진정한 사랑은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게 사랑이 아니 에요. 단순한 관심이요, 관심 다음에는 집착이요. 강한 집착일 뿐이요, 어쩌면은 자기 사랑일 뿐이요, 내 체면 나를 위해서 저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지 그거는 사랑은 아니더라구요. 참 사랑은 깨끗한 사랑은 반드시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 순수성이 없어요. 여러 가지 행위가 있는 것 같고 뭘 하고 뭘 하고 밥 주고 돈주고 뭐 하는 것 다 같아도 사랑이 없어요. 그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지난주간에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 자기 학교에 들어가서 좌우간 총을 난사해 가지고 열일곱 명이 죽고 스물 다섯 명이 다쳤는데, 아주 싱글싱글 웃으면서 전부 쏘고 자기도 죽었어요. 그 부모, 아주 잘 사는 집이에요. 흔히 말하는 BMW를 굴리고, 아주 잘 사는 집이에요. 그 부모가 참 답답하대요. 애가 왜 그런 줄 모르겠대요. 모를 밖에.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 여러 분 이것이 문제예요. 밥도 먹여 주었어요, 용돈도 주었어요, 그것이 사랑은 아니더라구요. 순수함, 깨끗한 사랑이 거기에 없어요.
또 여러분 믿음을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 믿는 마음 깨끗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기도 하고 구제하기도 하고 선행도 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보면 구제하기는 하는데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도 하는데 사람에게 보이려고 큰 소리로 기도한다. 사람을 의식하면서,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 이게 넌센스 아닙니까? 이게 청결하지 못한 믿음이요. 또 하나님만 을 기쁘시게 해야겠는데 보상받고 자하는 마음이 앞서 있어요. 하나님 앞에 투자하는 마음이에요. 요새는 그랬어요. 선금 십일조까지 있어요. 내가 만원을 벌려고 할 때는 천원을 미리 헌금을 한다는 거죠. 그리고 장사를 하는 거예요. 이런 마음이 이게 깨끗한 마음이 아니거든요. 깨끗한 믿음이 아니에요. 자 그래서 청결한 믿음.
또 소망도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위탁하는 마음인데, 하나님만 바라 고 하나님만 소망해야 되는데 우리가 어느 사이에 물질세상, 자녀, 명예세상 다 이렇게 이지러지고 다 어지러워졌어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희미하게 되었어요. 순수하지 못해요. 그런고로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 깨끗한 가운데 사랑하고 믿고 또, 소망하고. 여러분 그리할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올시다. 동기가 순수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청결하다는 말은 온전히 비운다고 하는 말만은 아닙니다. 여러분 그런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만을 사모하고, 하나만을 사랑해서 그것이 순수하다는 뜻이지 다시 말하면 단순하다는 말이지 텅 비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말이 아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의 단순성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좀 전에 말씀한 앤드류 메튜스의 그
"마음가는 대로 하라"는 책에서 그는 열 가지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일곱 번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이것이 일곱 번째의 실천사항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하는데 그 사랑의 내용 은 무언가 하면 마음을 비우라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하는 거다. 이런 데 저런데 찢겨 가지고 노예 생활하면 자기 사랑하는 게 못된다. 자기 사랑을 자기를 깨끗하게 보존해요. 마음을 깨끗하게, 그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운동선수의 운동하는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내용을 보면 너무도 재미있어요. 운동선수 는 언제나 마음을 비워야한다. 그러면서하는 말입니다.
첫째는 집념하고 운동점수에 대하여 마음을 두 지 말라. 한 점, 한 점 뭐 올라가고 내려가는 거 그거 신경 쓰면 전념할 수 없어요. 운동만에 전념할 것이고 점수에 마음이 끌리면 그 마음이 깨끗지 못한 거예요. 또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마라. 욕심을 내고 무리 한 것은 좋지 않아요. 마음을 비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 또 여유를 가지고 화를 내지 마라. 그 E.Q. 의 문제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야지 이러한 저러한 일로 인해서 화를 내 면 운동선수가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고. 또 상대되는 사람을 증오하던가 시기 질투하지 마라. 누굴 이겨보려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면 벌써 운동이 곤두박질한다는 거예요. 또 한 가지는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지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마라. 뭐 잘한다고 하던, 못한다고 하던. 잘한다고 했다고 해서 뭐 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못한다고 했다고 해서 다 틀린 것처럼, 남이야 뭐라고 하던 말던 자기행동에 자기 책임을 지라. 그 뿐만 아니라 성과 는 자기헌신으로부터 온다는 걸 잊지 마라 그래요. 농구황제인 마이클 조던이라든가 혹은 골프의 신동이라 는 타이거 우즈라고 하는 이런 사람들도 가만히 보라. 물론 재능도 있었지만은 그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또 하나 있어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 사람들은 다 운동 을 즐겼어요. 운동으로 인해서 상을 받고 못 받고 일등을 하고 못하고 그게 아니에요. 문제는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그 자기가 하고 있는 운동을 즐겼느냐 그것이 문제라요.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를 즐겨야 되요. 일하는 사람은 일을 즐겨야 되요. 그것이 바로 마음을 비우는 일이요, 그것이 마음을 청결케 하는 일이요, 그것이 가장 생산적인 일이다, 이런 얘기입니다.
우리 신앙생활, 우리 사회생활에 도 잘 적용되는 얘기예요. 우린 너무 여러 곳에 신경을 써요. 마음이 어지러워 졌어요. 깨끗지 못해요. 무엇을 해도 순수하질 못해요. 오직 한 마음으로 거기에 정성과 마음과 노력을 쓸 뿐만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순수하게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니 역사 하십니다. 물질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이 물질 사랑하는 마음을 제거합니다. 명예를 사랑합니까? 명예를 버릴 수 있도록 역사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울 때 하나님께서 그거 다 제거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깨끗하고 순결하게 하나님만 사랑할 수 있도록 청결케 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련, 우리가 당하는 많은 사건들이 그걸 말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오로지 주님만, 깨끗하게 사랑하도록. 순결하게 사랑하도록 하나님이 친히 그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그의 커리큘럼에 의해서 우 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올시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 아주 귀중한 말씀이예요. 이것 은 은총적 보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순결케 하고 또 순결한 다 음에 어느 순결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라는 사람이 욕심이 많았어요. 물질에 대한 욕심, 자녀에 대한 욕심. 좌우간 욕심 많은 사람 대표자요. 그런데 얍복강변에 섰을 때 이걸 다 포기하게 됩니다. 자녀를 건네 보내고, 재산을 건네 보내고, 홀로 남아서, 오직 홀로 남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쓸데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제 마음이 어지간히 깨 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 주십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이제 그가 형님을 만날 때에 순수한 마음으로 만나게 될 때 너무 감격해서 그때 유명한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형님의 낯을 보니 하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본 거예요. 여러분 참으로 마음을 비우고 순수하고, 청결해 질 때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력하다는 것은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내가 무능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청결케 하고 정결함에 도달하도록 하나님 친히 역사를 하십니다. 그리고 어느 성 결에 이르렀을 때에 주께서 그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 팔복 가운데 첫째 말씀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 이 있나니 하시고 오늘은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다 마음이 문제요. 마음이 가난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 이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주 신비로운 말씀을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에서
"또 우리에게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 이 새어 새벽 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샛별이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샛별이 우리 마음에 떠오를 그 때까지 마음을 청결케, 청결케 해야 합니다. 주님의 얼굴 을 보는, 주의 얼굴을 본 사람의 평화, 본 사람의 능력, 본 사람의 지혜가 그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