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신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영락교회)

. 절망(1-5)

1. 제가 대학에 입학한 그 해 여름에 친구들과 무전여행을 떠났습니다. 텐트 하나 짊어지고 배낭 안에는 쌀과 고추장만 넣고 차비만 달랑 들고서 무전여행을 떠났습니다. 서울을 떠나 서해안을 따라서 쭉 내려간 다음,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부산으로 해서 올라 왔습니다. 여행을 다니다가 부산쯤 가니까 돈이 없어 머리나 수염도 깎을 수가 없다 보니 머리가 길어 반 거지처럼 되었습니다. 부산의 해운대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는데 순경에게 잡혔습니다. 그래서 해안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파출소에 잡혀 들어 갔는데, 장발족으로 잡혔습니다. 그 당시에는 머리가 길다든지 여성들 치마가 짧으면 잡아 갔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순경에게 일부러 기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행을 다니느라 돈이 없어서 길어졌다고 설명을 했지만 봐 주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출소 안에 유치장 같은 곳에 들어가서 있는데, 한 여름에 얼마나 더운지 물을 좀 달라고 해도 물도 주지 않고 머리를 깎으면 내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3시간을 거기에 버티느라 있었습니다. 시간은 안 가고 얼마나 지루한지 아주 힘들게 3시간 있다가 결국 항복하고 머리를 깎고 나왔습니다.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는 것이 다 깎아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쪽으로 한 줄 깎고, 저 쪽으로 한 줄 깎고는 내 보내주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채로 또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왔습니다. 그 때 그 여름에 거기에 갇혀 있던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루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는 동안에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은 안식일이 너무나 길고 지루했습니다. 시간이 가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신 분이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 병든 사람, 장애를 안고 절망 중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고쳐주신 분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인생을 주셨습니다. 희망을 주신 분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로마 군인의 말발굽 아래에서 압제에 신음하는 자기 민족을 구원하실 분이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기대하였습니다. 민족적인 희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의 정치 지도자가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예수님을 죽여 버렸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의로운 분을 마치 패역무도한 죄인을 죽이듯이 참혹하게 죽여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덤에 장사 지낸 후 바로 시작된 안식일은 결코 편안하게 안식할 수 없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희망으로 삼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해서 울분 가운데 안식일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을 희망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 지내고 났을 때, 그 희망이 꺾여서, 절망과 슬픔 가운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가 천 년 같은 지루함과 고통 속에서 안식일을 보냈습니다.

2. 그리고 안식일이 지나고 첫번째 되는 날 새벽에, 예수님을 따르던 세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어두운 길을 나섰습니다(1,2). 예수님의 시체나마 잘 돌보고자 하는 마지막 정성과 헌신의 마음으로 무덤을 향해 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남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은 용감하게 모험을 했습니다. 그들의 신변에 위험할 수도 있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 때문에 모험을 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그 여성들의 머리 속에는 시체 생각만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절망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면서 무거운 무덤 문을 누가 옮겨줄 것인가를 걱정하면서 갔습니다(3). 그런데 무덤에 도착해보니까 무덤 문이 이미 옮겨져 무덤이 열려져 있었습니다(4).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열린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안에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흰 옷 입은 한 청년이 무덤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무덤은 정지된 곳이고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어두운 새벽에 무덤 문이 열리고 사람을 만난다면 누구나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 희망의 소식(6-8)

1. 그런데 그 무덤 속에서 만난 사람은 사실은 희망의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시체로 있지 않고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6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고, 여기에 계시지 않다고 하면서 빈 무덤을 증거로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는데, 부활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다시 높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덤에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 아들을, 아버지께서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무덤의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그 가운데서 부활하고 다시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소식을 그 여성들이 들었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 사역하시면서 여러 번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예고하신대로 성취되었다고 하는 정보를 듣게 된 것입니다. 이미 들었던 얘기를 다시 재확인해서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들었던 얘기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지금 그 지식을 재확인해 주는데도 연결 되지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희망의 소식을 들었는데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2.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천사들이 전해 주면서 그들이 하는 말이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고 증거하는 몇 가지 얘기를 첨부해 주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는 사실을 보여 주기도 하고, 이 사실들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해주라고 했는데, 이는 그 사람이 베드로와 제자 등 예수님 주변 인물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그 제자들을 만나리라고 말씀하셨던 말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을 봐서 그 천사가 하는 얘기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하나도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승천하시기 까지 한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제자들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참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서 체포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을 때, 다 도망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되,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한 배신자입니다. 이익이 될 때는 따라가다가 손해가 될 때는 가차없이 배신하고 떠나간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배신하고 도망간 그 제자들을 부활하신 다음에 다시 찾아가 만나신다는 것입니다. 옛날 함께 사역하고 훈련시키시던 현장, 바로 갈릴리에서 옛날의 제자들을 다시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다시 제자로 불러서 그들에게 일을 다시 맡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자기를 배신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을 벌 주시지 아니하시고, 실패를 탓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3. 천사는 여인들에게 전해 준 희망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달해 주도록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 자체도 귀에 들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긴 했지만 가서 전할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 잡았습니다. 나도 믿을 수 없는데 남에게 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 된 것을 알고 있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새로운 지식을 지금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지식을 듣고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이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무덤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 지식은 수도 없이 확인했습니다. 가족 중에서, 동네 사람 중에서 누구든지 죽으면 끝인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지식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존의 지식을 뒤엎는 새로운 지식이 주어진 것입니다. 희망의 소식이기는 했지만, 새로운 지식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역사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둥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지구가 네모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지구가 네모라서 지구 끝에 가면 네모난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때문에 가면 멀리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존의 지식만을 가지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뱃사람들이 항해를 하면서 쭉 끝까지 가 보니까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 체험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지식을 많이 가져야 하지만, 성경지식만 가지고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66권이다. 구약은 39권이고 신약은 27권이다. 예수님께서 30년 동안 계시다가 3 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셨다’는 지식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예수가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만 가지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사람이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믿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신앙으로 인해서 인격의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 세 여인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는 했지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두렵기만 했습니다..

다. 부활신앙(9-11)

1. 희망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그 희망의 소식을 전해 주지도 못하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그날 아침에 만나 주셨습니다(9).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드럽고 따뜻한 옛날 그대로의 목소리로 “평안하뇨?(마 28:9)”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음성을 다시 들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드러운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은총을 받았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셨다는 지식 외에,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려서 고생을 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귀신이 들려서 귀신의 지배 아래 살았습니다. 자기도, 다른 아무 사람도 그녀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온갖 수치와 고통 중에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춥고 어두운 시기, 절망적인 시기에 예수님을 만남으로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똑같은 체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고 생각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다시 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절망을 극복할 수 없었는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절망을 깨뜨리고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천사가 전해 준 희망의 소식은 하나의 지식에 그쳤습니다. 지식 만으로는 절망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짐으로써 그의 지식이 하나의 체험이 되었고, 예수님과 만남으로 인해서 절망을 깨뜨리고 희망을 가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이전의 관계가 일시에 회복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 친밀한 관계가 일시에 회복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난다는 기존의 지식이 완전히 뒤집어 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면서 완전히 바뀌어지고 진정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함으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확신을 가지게 된 마리아는 이제 희망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했습니다(10). 예전에는 두려워서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확신을 갖고 이제부터는 담대하게 나가서 그 소식을 전파했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했습니다.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확신에 차서 희망의 소식을 전파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다가 체험에 담아서 확신 있게 전파했습니다.
여러분 지난 주에 우리가 전도 대상자를 작정했습니다. 이 전도 대상자를 작정하는데 참여한 교인들이 2,044 명이고, 또 우리가 그날 작정한 전도 대상자가 4,506명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희망의 소식을 전하는 책임이 우리 성도들과 우리 교회에 있습니다. 사명입니다. 여러분, 우리 세상이 지금 어떤 세상입니까? 절망에 빠져 있는 세상입니다. 전쟁이 일어나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괴질로 인해서, 경제적인 불안으로 인해서 절망에 빠져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세상 속에 희망의 소식을 가지고 있고, 희망의 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성도들입니다. 교회입니다. 교회가 희망의 체험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희망의 소식을 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지식만을 가지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들이 하나의 지식을 추가 시키는 그런 시간, 그전에 가지고 있던 지식을 재확인하는 데만 만족하는 시간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부활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 없고, 희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부활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절망에서 빠져 나와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절망적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지금 절망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 혼자서는 이 절망을 이겨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전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 자아와 내 인간의 욕심과 내 죄악된 본성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고 무덤에 장사 지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절망을 깨뜨리고 희망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이 아침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절망을 깨뜨리고 희망을 가지는 이 아침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절망적인 세상 속에 나가서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 희망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