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 (경향교회)

누군가 18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역사의 원년을 이루는 그의 삶 속에서 어린이를 저희 한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인의 표본으로 교훈하셨습니다(마 18:2, 막 9:36).

Ⅰ. 예수의 어린이관에 대한 성경을 봅니다(마 18:1-5).

마태복음 18장 2~5절 중에서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에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9장 35~37절에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에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3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어린이관은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셨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어린이는 한편 구석에 있어야만 될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른들 구석이나 가족들의 구석이나 사회나 국가의 한 구석이나 교회의 구석에 있어야 될 존재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저들 한가운데 세우셨을까?
우리는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사실을 능히 찾아낼 수 있습니다.

1) 어린이 자체의 존재적 중요성을 일깨워 줌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예수님 제자들이나 어른들은 예수님께 오는 아이들을 꾸짖고 업신여겼습니다. 사실상 저들은 성년이 되기 전에는 여자들과 함께 수에 칠 가치도 없다고 여겨졌던 시대였습니다. 어린이는 아직까지 미숙한 존재로 가운데가 아닌 구석이나 밖에 있어야 될 자들로 취급받던 때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실로 놀라운 예수의 행동이었습니다. 그 존재적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이었습니다.

2) 어린이는 마땅히 영접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는 부모와 가족과 사회와 국가에서 언제나 그 중심으로, 한가운데로 영접 곧 환영받아야 될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 큰 이유는 어린이를 영접함이 곧 예수를 영접함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영접할 정도가 아니고,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결과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가운데 있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3) 어린이는 천국인의 표본이 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어린이는 누구든지 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이에게 있는 특성을 강조함으로 중생인(거듭남)의 품성을 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① 돌이킴, 곧 회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잘못에 대한 자기 변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②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③ 남을 섬기는 받듦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④ 부모를 향한 신뢰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⑤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⑥ 주어진 행복에 대한 만족과 감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⑦ 미래를 향한 소망심이 가득 차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3복음서에서는 어린이에 대하여 말할 때,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한가운데 세움을 받는 자들이 아닌가!

4) 어린이는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① 영접하였습니다. ② 자기에게 나옴을 용납하였습니다. ③ 그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었습니다. ④ 저희 위에 안수해주셨습니다. ⑤ 그리고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마땅히 가운데 세움을 받아야 할 자들이 아닌가! 예수 사랑과 축복의 대상들은 언제나 가운데 세움을 받는 자들입니다.

5) 어린이는 하늘에 천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마 18:10).

Ⅱ. 교회의 한가운데 어린이를 세워야 됩니다(마 18:6-14).

예수님의 삶은 바로 하나님 나라 운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운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에 대한 교훈을 행하신 그 배경에는 제자들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으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고 쟁론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게 된 것입니다(막 9:33~34). 저들은 또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마 18:1)라고 주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누가 크냐고 하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천국에서는 어린이가 제일 큰 자’라고 대답하시는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고 천국에 대한 교훈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에 와서 교회로 하여금 어린이를 교회 가운데 세워야 한다는 책임 있는 교훈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린이를 한가운데 세우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1) 예수 믿는 하나의 소자라도 실족케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마 18:6~9).

마태복음 18장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소자’는 앞에 나오는 어린아이를 지목할 뿐만 아니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마 25:40)에게도 해당됩니다. ‘실족’이란 말은 ‘넘어지게 하다’(마 16:23), 혹은 ‘오해하게 하다’(마 17:27)라는 뜻으로 유혹에 빠뜨려 그 믿음을 넘어뜨리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고 함으로, 소자를 실족케 하는 자의 받을 앙화(殃禍)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자를 실족케 하는 손이나 발이나 눈은 예외 없이 지옥 불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마 18:7~9).

2) 예수 믿는 하나의 소자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멸시하지 말라, 관심 밖의 존재로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있는 데도 없는 것 같이, 귀한 데도 천한 것 같이 여기지 말라고 한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그 소자들은 이미 하늘에서 파송받은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국가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단 10:13, 12:1). 교회를 지키는 수호천사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계 1:20). 혹은 개인을 지키는 수호천사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행 12:15). 본문에는 어린이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마치 신복이 왕을 가까이 배알하듯이(왕하 10:8), 하나님 앞에서 저 어린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18:10).

3) 예수 믿는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지 않고 다 찾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3~14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에 대한 교회의 목자적 심정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그것을 100마리의 양 가운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예수의 목자적 가슴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 소자에 대한 교회의 목자적 가슴은 ① 개인적인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마리 양, 한 소자입니다. ② 참으시는 인내의 사랑입니다.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는 인내입니다. ③ 궁극적으로 찾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찾고 마는 것입니다. ④ 그것은 기뻐하는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궁극적 구원의 사랑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은 오늘 교회가 어린이(小子)를 한가운데 세워야 할 책임있는 사명입니다. 교회가 어린이를 한가운데 세움에 있어 그 어린 소자 하나도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는 찾도록 찾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하였습니다. 아니 감사하였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라고 하였습니다. 천국복음의 비밀이 어린아이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그 현장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를 찬양하는 어린아이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마 21:16)라고 격찬하며 만족하셨습니다.

천국은 바로 아이들의 세계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였습니다. 사나운 짐승들이 어린아이에게 끌려 다니는 세계라고 하였습니다(사 11:6). 젖 먹는 어린아이와 젖 뗀 어린 아이들이 맹수들과 함께 사는 평화세계라고 하였습니다(사 11:8). 말하자면 갓난아이들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영적 중생인들의 세계를 말합니다(벧전 2:2, 벧전 1:23).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17). 이것은 지상의 전투 교회와 내세의 승리 교회(천국)의 특색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세계입니다.

※ 어린이는 하나님의 날 한가운데서야 될 존재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어린이를 저희 한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시민성을 교훈 하였습니다. 중생 받은 영적 어린이는 하나님나라에서 중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영접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회개와 겸손과 신뢰심과 순종과 감사와 소망의 품성을 지닌 천국인의 표본이 됩니다. 저들이야말로 주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교훈 하였습니다.
※ 교회는 모름지기 이러한 어린아이들을 한가운데 세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을 한가운데 세우기 위하여 하나라도 실족케 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그 하나를 잃으면 찾도록 찾아내고 마는 예수님의 목자적 심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인의 품성을 교훈 하셨습니다. 지적으로, 체력적으로, 영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들은 마땅히 교회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도록 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이야말로 가정과 교회와 역사의 중심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의 중심에는 영적으로 거듭난 아이, 곧 갓난아이, 젖 먹는 아이, 젖 뗀 아이, 어린아이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저들이 교회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교회된 특색과 미래적인 중심의 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받은 새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닌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교회의 한가운데, 역사의 한가운데 세우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영적 어린아이는 교회에서 가장 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기둥과 터가 됩니다(딤전 3:15). 이 집의 가운데는 어린아이들이 서 있어야 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