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종목사 (과천교회)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자녀들 양육에 대한 말씀을 정리하며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리는 제목은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어린아이들을 안수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이라고 정했습니다.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입니다. 그는 어린이가 가정과 사회, 국가의 장래임을 부르짖으며 어린이날을 지킬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점되어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이 계속 될 수 없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어린이날을 지킨 것은 1923년부터입니다. 1948년 우리나라의 정부가 수립된 후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어린이는 가정의 꽃입니다. 미래의 희망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기초입니다. 새싹입니다. 어린이는 약해 보이지만 언제나 새롭고 싱싱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튼튼하고 싱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고 가꾸어야 합니다. 어른들의 의무이며 부모님들의 의무입니다. 시대의 과제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속죄의 죽음을 담당하시려 제자들과 같이 올라가실 때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데 큰 역할을 한 제자들 사이에 서로가 크다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의 다툼이 심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이들의 모습을 보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자기 자식들의 지위를 부탁하게 된 것입니다. 오른쪽과 왼쪽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의 겸손, 정직, 순수, 깨끗함, 정결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천국에 들어갈 표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모들이 예수님의 축복기도를 바라고 아기를 데리고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13절, 14절, 16절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본문과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에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 말씀입니다.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에게서 이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축복하며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욕설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것은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때론 욕을 들은 그대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좋은 말대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축복한 것만큼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저주는 저주한 것만큼 그대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너희 혀를 자갈 먹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도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출애굽한 히브리 민족이 광야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 하나님은 그 지파의 두령들을 한 사람씩 선출하여 그들이 장차 들어가서 살 땅을 정탐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탐한 땅은 한마디로 사람이 살아가기가 매우 좋은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했습니다.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었기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신체조건도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탐꾼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대장부들이고 자기들은 메뚜기 같다고 신세한탄부터 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지도자를 넘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10가지 재앙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갈라진 홍해를 건너는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어본 사람들입니다. 바위에서 나온 생수를 마셔 본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원망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아무리 큰 기적을 체험했다하더라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입니다.
원망하는 자에게는 원망할 일만 있습니다. 짜증내길 좋아하면 짜증날 일만 생깁니다. 결국 그들은 정탐한 40일, 하루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40년 간을 더 광야에서 살게 되었고 출애굽했던 자들은 광야에서 재앙으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부정적인 말의 무서운 결과입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또 다른 사건하나가 기억납니다. 예수님을 잡아서 재판하던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석방시켜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군중들에게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죄 없는 자를 죽이는 이 피 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유대군중들의 대답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하나님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서대장에 의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민족이 되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세계 제 2차대전 때는 600만이 독일 나치의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유대인이기에 당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부모의 죄가 자식들에게까지 돌아가게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자식에게 축복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긍정적으로 인생을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복 받기를 좋아하던 야곱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애굽에 갔을 때 그의 아들 요셉의 두 아들 즉 손자를 축복 기도했습니다. 복은 축복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이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습니다. 그 집이 받아들이면 그 집것이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축복은 빈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읽게 해야 합니다.

교회출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자녀들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언젠가 비행기로 부산을 다녀올 때 있었던 일입니다. 부산까지는 이륙 후 약 50분 거리입니다. 부산에 거의 도착할 때쯤 옆자리에 젊은 아기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그 아기가 울기 시작하더니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이리 안았다가 저리 안았다가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기를 받았습니다. 꼭 품어 안고 찬송을 불러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두 번쯤 불렀을 때 아기가 조용해지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습니다. 아기의 부모들도 교회에 다니는데 찬송소리에 아기가 잠이 드니까 신기하다고 하였습니다. 신기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전하여진 것이지요. 자기들도 이제부터는 아기에게 찬송을 불러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찬송하십시오. 같이 성경을 읽으십시오. 영적으로 통합니다. 같이 교회에 나오십시오. 부모들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면 아이들도 그대로 따라합니다. 술을 먹습니다. 담배를 피웁니다. 그러나 성경 읽고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 그대로 따라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그대로 합니다. 주일 잘 지키면 그것도 따라서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하면 그대로 따라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훌륭한 자식들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님이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있습니다. 출애굽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는 모세입니다. 그 아들 뒤에는 어머니 요게벳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네 가지의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와 교회와 사회입니다. 이 넷 중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이 가정입니다. 비록 형편상 대학을 다니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릴 때 인격 훈련이 바로 된 사람은 유익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출석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 안가는 것은 큰 일처럼 여기고 교회 가지 않는 것은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피아노 레슨이나 과외 빠지면 큰일이고 교회는 갔는지 안 갔는지 헌금은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 챙기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됩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기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잘못해도 그냥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가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 자식이건 남의 자식이건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기도하고 믿음의 훈련을 시킵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인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무한합니다. 30년 후의 과천교회는 우리들의 어린 자녀들의 몫입니다. 그들이 장성해서 이 교회를 봉사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십시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바르게 물려주는 선조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셋째, 사회성 있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 독선적이면 안됩니다.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을 줄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에 맹목적이면 안됩니다. 내 자식이 하는 일이 전부 다 좋으면 안됩니다. 잘못했을 때 매를 들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기지 못했을 때는 승복할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Fair Play입니다. 지금은 아기들을 적게 낳기 때문에 자식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잘못 교육되기 쉽습니다.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아이들로 자라기 쉽습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줄 모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주방으로 갔습니다. 식탁 위에 아들이 쓴 청구서가 한 장 놓여 있었습니다.
1. 이번 주 아빠 구두 닦아 드린 것. 5,000원
2. 엄마 심부름 세 번 한 것. 3,000원
3. 쓰레기 두 번 내다버린 것. 2,000원
합계 10,000원
어머니는 빙긋 웃으며 그 밑에 답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10,000원과 함께 식탁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1. 너를 몇 달동안 내 뱃속에 넣고 다닌 것.
2. 너를 그동안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데 들어간 돈.
3. 네가 아플 때 밤새 울며 기도하며 눈물 흘리며 간호한 것.
4. 이외에도 너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까지 전부 공짜이다.
아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그 편지를 읽고서 자기가 쓴 청구서 밑에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위의 것은 이미 다 지불되었음 그래서 만원은 돌려드립니다. 엄마의 아들.”

지금 아이들은 사랑할 줄 모릅니다. 봉사할 줄 모릅니다. 정리할 줄 모릅니다. 궂은 일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사회성이 없습니다. 학교 청소도 엄마가 가서 해주어야 합니다.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빗자루를 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걸레를 손에 댈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꾸지람 속에 자란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운다.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미움을 배우며 자란다.
매를 맞으며 자란 아이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된다.
놀림을 당하며 자라난 아이는 수줍음을 타게 된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남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관용 속에 자란 아이는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된다.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자란다.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안다.
공정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올바름을 배우게 된다.
안정 속에 자란 아이는 믿음을 갖게 된다.
기도로 자란 아이는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된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예배를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를 가르쳐야 합니다. 봉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21세기 우리나라의 주인공, 이 세계의 주인공으로 양육되는 우리의 자손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