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규목사 (은성교회)

오늘 말씀에서 주님께서 겪으신 고난의 단계를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는 많은 고난을 받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많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 견딜 수 없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죄 짓고 받는 고통이야 자의라도 가능하겠지만 죄 없는 고통은 참으로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42년 전에 논산훈련소에 가서 훈련을 받는 훈련병으로 입소해서 훈련받다가 대표로 매를 맞아 본 일이 있습니다. 수요일 밤 교회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다녀온 사람 모두를 다 불러서 매를 주려고 할 때 “제가 대신 대표로 맞겠습니다”라고 자진했습니다.
물론 다 허락을 받고 갔지만 그걸 좋지 않게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매를 실컷 맞고 기절을 하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의무실이었습니다. 젊은 청년으로서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 죄 짓는 나, 죄 지은 우리 때문에 주님은 고난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탄생하면서부터 말구유에서 겟세마네 언덕까지 예수님의 생애는 고난의 생애다 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버린바 되었다 라고 말합니다.

장로들과 세관들에게 버림받았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여기부터는 장로, 제사장, 서기관들 모두가 다 법정의 최고 의원들입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거기 모인 모든 백성들과 많은 군중들도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예수를 죽인 죄의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려달라고 그렇게 원했습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빌라도는 아무리 찾아봐도 예수를 죽일만한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가지고 와서 손을 씻으면서 너희들이 죽이길 원하고 밖의 민중과 유태민족, 장로와 대제사장이 죽이길 원하는 예수, 이 다음에 예수 죽인 다음에 그 피 값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겠냐며 내 책임이 아니라는 무죄함의 표시로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

그때에 그 안팎에 있는 유태인들 모두가 일어나서 예수 죽인 피 값이 있다면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도성은 크게 함락되고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110만명 이상이 불에 타 죽었다고 기록에 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본 영상이 한 시간 분량인데 몇 장면만 보았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독일나라 국경과 맞대고 있는 폴란드지역에 아우슈비츠라고 하는 곳에 끝도 보이지 않는 큰 감옥을 만들고 유태인 600만을 가스로 모조리 다 죽였습니다. 그런 비참한 현장을 지난 8월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그 현장을 둘러보고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죄짓지 않고 살아야겠다’ 저를 크게 따라하세요. “죄 짓지 말고 삽시다”
어떤 경우든지 죄짓지 말고 살아야 됩니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비참한지 그 처절함, 그 역사의 현장을 가서 둘러보면서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히틀러를 통해서 그 조상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고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자손에게 돌리라고 그렇게 원하더니만 이렇게 이루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죠.
어린 갓난아이부터 시작해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모두다 벗겨서 비참하게 방에다 몰아넣고 가스를 넣었습니다. 그 가스를 담았던 빈 통을 보았습니다. 산더미처럼 있습니다. 안경알과 테를 모아 놓은 것만 봐도 너무너무 비참합니다.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6톤이 넘습니다. 어린아이 신발, 어른신발 따로 모아 놓았습니다. 세상에 역사 속에 이런 비참한 것이 있는가 전쟁에 죽은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저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하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내가 한 정욕적으로 순간적인 말 한 마디 잘못된 것이 있다면 주님 다 용서해 주세요”

마태복음 27장에 백성들이 모욕하는데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빌라도에게 자신 있게 말한 것이 다 이루어졌다 이 말이에요. 그들은 모두가 다 철저히 예수를 버렸습니다. 오늘 나는 예수 버린 그 민족의 후예들이 비참하게 죽어간 그 현장을 보면서 너무너무 두렵고 떨림 속에서 그 현장을 보았습니다.

가서 보면서 어떤 경우도 나와 함께 교회에 몸을 담아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자 했어요. 애원하고자 하는 겁니다. 어떤 경우도 죄짓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사람이 한 번 나서 죽는 것이야 누가 막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비참하게 죽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렇게 죽으라고 하나님이 세상에 내보낸 것입니까?
너희 조상이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죽으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조상을 모시고 대대손손이 구원을 얻는 후손으로 살아야지 어떻게 하여 어느 날 순간적으로 잘못된 죄를 지음으로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그런 무서운 죄 값으로 받는다고 할 때 얼마나 두렵습니까?

놀라지 마세요.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죄로 그 후손들은 후에 히틀러의 손에 의해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지만 이스라엘 나라조차 없이 2000년 동안 세계지구촌에 흩어져 유랑민족으로 살지 않았습니까? 오늘 이 사실을 역사 속에서 공부하고 잘 알고있는 터입니다.

쉽사리 우리가 순간적으로 유혹을 받거나 순간적인 죄로 끝나는 줄 알지만 그 죄 값은 대대손손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을 볼 때 어떤 경우에든지 죄짓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내가 예수 십자가에 못박는 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저를 따라하세요. “죄짓지 맙시다 거짓말하지 맙시다 예수 버리지 맙시다”
어떤 경우도 예수를 버려서는 안됩니다. 예수 버린 민족, 예수를 거절하고 마다하고 싫어하고 져버렸던 민족들은 저 모양이 되었다 이겁니다. 그 죄 값은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요즘에 사담 후세인을 비롯해 이라크 민족을 봅니다. 알라신을 섬기며 고개를 쳐 박고 한 지도자가 우상이 되어서 말이에요. 역사 속에 비참하게 몰락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예수를 버려서 그런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수 버린 김정일을 보세요. 어떤 모습으로 되어 가는가 잘 보세요.

오늘 신앙생활 잘해서 영원한 구원과 영생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적인 실수와 죄로 인해서 비극적인 심판에 쓰러지지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죽임을 당하고 나의 길 되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예수 믿는 사람, 참되게 주님말씀 순종하고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사람을 가리켜 크리스토퍼라 합니다. 그 뜻은 주 예수를 업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나의 죄 위해 고난받으신 주님 이제 내가 고난 받을 차례입니다. 영광의 주님을 모시고 주님 다시는 모욕되지 않게 영광의 주님을 업고 다닌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합니다.

목사는 목사의 십자가, 장로는 장로의 십자가, 권사는 권사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다 십자가를 벗어 내던져 버리고 구원과 영광과 영생만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함께 영광을 당하는 겁니다.

나의 죄 때문에 나를 구원하시려고 많은 고난 당하시고 버림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3일 아침, 부활의 영광이 있다는 사실, 로마서 8장 17절에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도 하고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깨어 일어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로 향할 때 영광의 부활의 아침에 주님을 만나고 고난의 종 예수와 함께 일어나라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믿는 우리 모두에게 구원과 영생의 아침이 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