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신목사 (영락교회)

가. 최후의 만찬

1. 유월절 만찬
지난주간에 우리가 추석 명절을 지냈습니다. 추석은 한 해 농사를 수확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 가족 식구가 모여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에 다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명절인데, 애굽 사람의 장자가 모두 죽어 가는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을 구원받았고,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 받은 것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도탄 가운데에 빠져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새 삶을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명절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유월절 명절은 그래서 생명과 구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최후의 만찬
그런데 이 유월절 명절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방에 앉아서 유월절 만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 만찬은 기쁘고 즐거운 만찬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 기간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울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26:1-2) 그리고 한편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모여서, 예수님을 잡아죽일 음모를 다 꾸며 놓고 있었습니다. (26:3-5) 그리고 이미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로 작정하고 선생님과 동료들을 배신하는 일을 작정했습니다.(26:14-15) 기쁘고 즐거운 유월절 만찬이지만 거기에 모였을 때에 그 만찬 자리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짙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 앉은 제자들에게는 명절의 기쁨은 없었습니다. 죽음과 이별의 두려움과 우울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 예수님의 사랑

1. 사랑의 표징 (26.27.28)
그런데 이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어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떡은 예수님의 몸이고 잔은 예수님의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그저 한 현상으로만 봤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우울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바로 예수님 자신을 제자들에게, 인간들에게 온전히 다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것은, 죽음과 이별의 두려움과 슬픔의 사건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정말로 사랑하셔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남김없이 다 주시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나눌 때에 떡과 잔을 나누어주시면서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눈에 보이는 표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 십자가는 죽음의 표지일 뿐만 아니라 최상의 사랑의 표지입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떡과 잔을 나눌 때에 이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몸을 버리고 피를 흘리셨다는 상징입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주시는 가를 나타내 보이는 표지입니다. 최고의 사랑, 최상의 사랑을 우리가 성찬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찬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인간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2. 죄사함의 표지(28)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것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셔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죄에서 구원해서 새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은 한 개인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서 새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떡과 잔을 나누는 성찬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얻게 된다는 약속으로 주신 표지입니다. 성도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내 자신이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찬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그러나 그 성찬 속에는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신 지극한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버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 그 떡과 잔에 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표지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성찬을 받을 때에 죄사함 받았다는 언약의 표지를 그 가운데에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1. 예수님께서 떡과 잔을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26)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27)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떡과 잔을 받아 먹을 때에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를 죽음에서 구원하셔서 새 생명을 얻게 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성찬, 즉 눈에 보이는 외적인 은혜의 표징에 참여하므로, 우리가 구원 받을 백성이고, 새생명 얻은 백성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날마다 죄의 유혹과 시험에 흔들리고 있지만, 떡과 잔을 받을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견고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예수님과 연합되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교제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방법이 바로 성찬입니다. 그 떡과 잔을 받을 때에 예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찬은 또한 영적인 양식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받아, 견고하고도 풍성한 영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장로교를 시작한 칼빈 선생님은 “기독교강요”에서 우리가 받는 은혜들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의 첫번째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지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때마다, 성경 공부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지시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두 번째는 “성례”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글을 읽거나 듣는 것으로 끝나지만, 성찬은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우리의 감각으로 경험을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례를 통해서 우리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그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라는 것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강력하게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실 때에 우리 지성과 마음이 성령의 빛으로 비추심을 받고 우리의 마음을 여셔서 말씀과 성례가 들어오게 하시는 것입니다.(Institution 14. 8. p.345)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단순히 우리 지식만 동원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받을 때에 우리의 손과 눈과 미각만 동원된다면 우리에게 은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찬을 받을 때에 성령께서 비추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감동 감화하시면, 그 말씀과 성찬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성찬을 받을 때에 성령께서 여러분들 가운데에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밝히 비춰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찬을 받을 때에 성령께서 여러분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성찬을 받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성찬을 받을 때에 영생의 삶이 풍성해 지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랑의 공동체
또 성찬을 통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므로, 모든 성도들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찬을 통해 자신의 몸을 우리들에게 주셔서 우리와 완전히 하나가 되시며, 우리도 그와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성찬에 참여하는 수천명의 성도들이 모두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한 몸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되어 어떤 불화나 분열도 침입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어거스틴은 그래서 성찬을 “사랑의 유대”라고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Institution 17. 38 P.507)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 속에 어떤 불화나 분열도 침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은 성찬을 자주 집행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성찬을 집행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주 회상하고, 그 사랑과 은혜를 자주 받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성찬을 자주 받으므로 성도가 서로 사랑을 증명하고 사랑을 증진하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단결하고 사랑의 유대를 인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Institution 17.43.44. p.515ff) 초대교회 때에는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그 전통을 이어 받아서 모일 때마다 성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로마 카톨릭교회는 성찬만 했습니다. 말씀과 성찬이 같이 주어져야 하는데, 말씀은 빼고 성찬만 하다 보니까 성찬이 점점 신비적으로 나가게 되고, 우상숭배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그 성찬을 없애버리고 1년에 한번씩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칼빈 선생은 그렇게 성찬은 자주하지 않는 관습을 “마귀의 간계”라고 비난하면서, (Institution 17.46. p.518) 일주일에 한번 씩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제네바 시의회는 일년에 한번씩 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으니까 칼빈 선생님이 일주일에 한번씩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일년에 12번은 해야 한다고 권면하면서 시행해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그 동안 일년에 성찬과 세례를 합쳐서, 11번 정도 성례를 했습니다. 내년부터는 매달 첫째 주일에 성례를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회상하고, 그 사랑을 경험하고, 우리 교회 성도들 간에 사랑의 유대를 강화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이별의 슬픔과 두려움을, 사랑과 은혜로 바꾸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성찬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셨습니다. 그 성찬을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운 주의 사랑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죄사함 받고 구원받아서 새 생명 얻은 약속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오늘 여러분들이 성찬을 받을 때에 성령께서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떡과 잔을 받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회상하며 그 고난 속에 담겨져 있는 주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찬에 참여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받는 형제 자매들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우리 교회가 사랑으로 한 몸 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