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목사 (와싱턴한인교회)

지난주, 한국에서는 참 오랜만에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58년부터 1977천까지 단계적으로 복개하여 완전히 사라졌던 청계천이 약 2년간의 대역사를 통해 생태 하천으로 다시 태어난 사건입니다. 지난주에 그 아름다운 모습이 시민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저도 TV 뉴스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주의 깊게 살펴 보았습니다만, 참 많은 감회가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아스팔트 덮개 밑에서 악취를 진동시키며 썩어가고 있던 청계천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덮어놓고 사는 동안, 그곳이 얼마나 썩어버렸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 죽음의 하천이 이제 맑은 생태 하천으로 회복되어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 더 어려운 과제일듯 하지만, 그래도 우리 조국이 '개발'만을 위해 분투하는 나라에서 문화를 존중하고 사람다움의 가치를 귀히 여기는 나라로 변화하는 것 같아,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1.

제가 청계천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서 시원한 생명수 강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오늘 읽은 동일한 요한복음 본문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실로암 연못과 예루살렘 밖에 있던 기혼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과 우리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이 본문에 암시되어 있는 또 다른 상징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했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을 보면,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문이 많은 사람은 이 대목에서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라? 그러면 예수님이 어떤 성경 말씀을 염두에 두고 계셨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기에서 언급된 그 성경 본문을 찾기 위해 구약성경을 뒤졌습니다. 학자들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이와 비슷한 이미지를 오직 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오늘 읽은 에스겔 47장 1-12절입니다.

에스겔 47장은 40장에서부터 48장까지 이어지는 연속된 환상의 일부입니다. 조국 유다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폐허가 되고, 백성들 중 지도력을 미칠만한 사람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있던 시기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예언자로 부름 받습니다. 에스겔은 특히 환상을 자주 보았는데, 40장부터 47장은 장차 조국 유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회복되리라는 비전을 담고 있는 환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에스겔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된 후 어떤 역사가 벌어질 것인지를 목도하게 됩니다. 환상 속에서 예언자 에스겔이 성전 문을 들어서는데, 그 문지방에서 물이 솟아나 동쪽으로 향한 문을 통해 흘러 나갑니다.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물길을 재 보는데, 그 물은 점점 깊어지더니 나중에는 헤엄을 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깊어집니다.

성전으로부터 흘러나가는 강물이 충만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자, 안내하는 사람은 예언자를 강둑으로 인도합니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강둑에 늘어서 있는 나무들을 보여줍니다. 안내하는 사람은, 이 강물이 흘러나가면 강둑에 있는 나무들의 잎은 시들지 않을 것이며,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이고, 그 열매는 사람들의 영양소가 될 것이고, 그 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약재로 쓰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며,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번성할 것이라고, 그 안내자는 에스겔에게 예언합니다.

2.

이 환상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 폐허가 된 성전이 장차 회복되어, 예배가 살아나고, 찬양이 살아나고, 말씀이 살아나며, 참된 교제가 살아나면, 그 성전으로부터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어 바깥세상으로 흘러나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전으로부터 흘러나가는 생명의 기운은 죽어있던 모든 것을 살게 하고, 모든 생명체에게 참된 생명을 회복시켜 줍니다. 성전이 살아남으로 세상 전체가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성전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성전이 죽으면 이 세상도 죽습니다. 성전이 회복되면 세상도 회복됩니다. 에스겔이 살던 당시에 온 천하에는 죽음의 기운이 퍼져 있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어, 예배도 죽고, 찬양도 죽고, 말씀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참된 교제도 끊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막혀 버렸습니다. 하나님에게 이르는 통로가 막혀 버리니 참된 생명의 기운이 막혀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장차 성전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와 찬양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것이고, 참다운 교제가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생명의 물줄기가 성전으로부터 세상 곳곳으로 흘러 넘어들어갈 것이며, 그렇게 하여 세상 전부를 살아나게 할 것입니다.

성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은, 따라서, 가시적인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이란 하나님과 만나는 곳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관계가 삶의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실해지면 우리의 삶 전체가 부실해집니다. 에스겔의 환상에 의하면, 모든 생명의 운명 그리고 내 생명의 운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3.

에스겔 47장과 요한복음 7장37-39절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발견됩니다. 에스겔 47장의 환상은 지금 말씀드린 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환상을 당신을 믿는 개인에게 적용하십니다. 다시 한 번 보십시다. 3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이 말씀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성령이 임하시면, 성전이 회복되어 그곳에서 생수의 강물이 세상 곳곳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나를 믿는 사람에게서 성령의 강물이 터져 나와 세상으로 흘러나가 다른 사람들을 살게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에스겔의 성전 환상을 믿는 사람 개인에게 적용하심으로써 "나를 믿는 사람이 하나하나가 곧 성전이다!"라는 진리를 전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여러분은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성전 문지방에서 생명수 강이 터져 나와 밖으로 흘러 모든 생명을 살아나게 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의 생수가 흘러들어와 밖으로 흘러나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내 안에 생명수가 항상 흐르고 있어서,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든, 내 속에 흐르는 성령의 생수로써 사람들을 살게 하는 존재로 우리가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믿으십니까?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여러분의 주님으로 믿으신다면, 여러분이 '걸어다니는 성전'이 되었다는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걸어다니는 성전'이라고 믿는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만 있지 말고, 성전의 구실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생명수가 우리 밖으로 흘러 넘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을 살게 해야 합니다. 생명의 강물을 흘러내보내어 모든 죽어있는 것을 살게 하고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여 황무지를 낙원으로 변모하게 하는 그 놀라운 비전을 여러분 마음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감추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 안에 성령의 생수가 흐르고 있고, 그 생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낼 때, 그들에게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 바로 그 일을 위해 여러분이 부름 받았고, 그 능력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물론, 그것은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들어온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 능력이 우리 안에 고여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밖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4.

강물이 세상 곳곳으로 흘러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다른 한 편으로, 좀 더 현대적인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강물에 모터 펌프를 대고 고무호스를 연결하여 사람들에게 물을 내뿜어대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우리 안에 흐르는 생명수를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고무 호수를 대고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더 신속하게 물을 분산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 물줄기를 피하여 달아날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내 속에서 흘러넘치는 성령의 생수가 서서히 그 사람에게 스며들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성령의 생수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들어가 그 사람을 살아나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과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애써 무슨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함께 있으면,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의 생수가 그 사람에게 스며듭니다. "내게는 생수가 별로 없는데"하고 걱정하십니까? 걱정하지마십시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흐르는 성령의 강물은 더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의심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필요한 사람에게,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곳에 그냥 가 있기만 하시면 됩니다. 자주 그리고 충분히 함께 있어 주시면 됩니다.

'함께 있는 것'에 덧붙여 뭔가를 할 필요를 느끼시면, 잘 들어주시면 됩니다. 말하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왜 듣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 사람이 자신의 말을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 나로부터 그 사람에게 흐르는 성령의 생수가 더 잘 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는 않고 내 말만 하면, 내 쪽에서는 물이 흘러가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스며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필요하면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아씨시의 성자 프랜시스가 한 번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때를 얻든 못 얻든 전도하십시오. 필요하다면 말도 사용하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말'은 제일 무력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잘 사용되는 말은 복음을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라."고 권고합니다. 말을 하되 진실된 말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속에 흐르는 성령의 생수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들어갈 것이고, 그 성령의 생수가 그 사람을 살아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로서는 다만 같이 있어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고, 필요할 때 말해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성령의 강물이 흘러가는 통로가 될 때,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생명의 영이 그 사람에게 흘러들어가 그 사람을 살리게 됩니다. 이것이 '걸어다니는 성전'이 할 일입니다.

5.

우리 각자가 진정으로 '걸어다니는 성전'이 될 때, 우리 교회 전체가 에스겔이 예언한 그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성전은 건물만으로 성전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건물만으로 교회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예배당 건물 없이도 얼마든지 교회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는 Swinks Mill Road상, 1219번지에 있는 건물이 아니라, 이 교회의 교인으로 등록된 우리 각자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참된 성전이 되지 않고는 우리 교회가 참된 성전으로서 생명의 강물을 세상 속으로 흘려보내는 사명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설립 54주년을 맞았습니다. 창조적 사고력이 뛰어난 어느 교우께서 우리 교회의 이름을 두고 이런 말씀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목회자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순조로이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것을 두고 그분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더랍니다. "정말, 와싱톤한인교회는 그 이름 답게 '와, 신통한 교회'일세!"

듣고 보니, 참 신통한 발상입니다. '신통'(神通)하다는 말이 뭡니까? '신'이 '통'했다는 말입니다. 신이 역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귀신이 역사 하는 공동체는 죽지만, 하나님의 신, 성령이 역사 하는 교회는 이렇게 신통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지난 54년의 역사 가운데는 물론 부끄러운, 신통치 못한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교회는 '와 신통한 교회'로 널리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참으로 신통한 교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하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만으로는 신통한 축에 끼일 수 없습니다. 교회 내에서 좋고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잘 진행되는 것으로도 불충분합니다. 감동적인 예배, 신령한 말씀, 심도있는 교제, 헌신적인 봉사만으로도 불충분합니다. 그 모든 것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생명력이 교회의 문을 통해 세상 속으로 흘러나가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교회로 끌어 모으기 위해 나가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죽음의 세력 아래서 자신이 죽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부어주신 생명의 영을 흘려내보냄으로 죽어있던 사람들이 살아나고, 절망 속에 있던 사람들이 희망을 얻고, 살 이유를 모르던 사람들에게 살 이유를 알게 해 주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럴 때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최근부터 선교 사역을 담당하게 된 문형일 전도사님에게 "새 해에는 우리 교회 교인 수를 하나도 늘릴 가능성이 없는 선교 사역을 좀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몸을 불리려는 동기가 아니라, 오직 죽음과 어둠의 세력 아래서 사는 사람들에게 진실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려는 동기로 선교 사역을 해 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우리 교회는 앞로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찾아가 '같이 있어주고' '귀담아들어 주는' 사역을 해야 하겠습니다.

리처드 마우(Richard Mouw) 박사는 그의 책 '무례한 기독교'(Uncommon Decency)에서 "기독교인들의 과제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이다"(Our calling is not to expand God's Kingdom but to reveal God's hidden presence.)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억지로 힘써서 확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확장해 가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함께 있어주고 귀담아들어 줌으로 하나님이 지금 활동하고 계심을 알아차리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교와 전도의 본질입니다.

54년의 생일을 맞으면서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 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헌신해 오신 모든 성도들에게 축하를 드리며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헌신 덕에 저 같은 사람이 오늘날 이 아름다운 영광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이 위대한 역사에 저 같은 사람이 동참하게 된 것에 대해 또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뜻 깊은 날에, 저는 오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걸어다니는 성전'으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점검해 보기를 청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비전에 비추어 우리 교회의 모습을 점검해 보기를 청합니다. 앞으로, 우리 각자를 통해 성령의 생수를 주변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고, 우리 교회의 사역을 통해 성령의 생수를 세상 곳곳에 흘려보내는 역사가 한층 더 강화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역사를 위해 여러분 각자가 더 뜨거운 마음으로 헌신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