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희목사 (지구촌교회)

21세기 기독교 영성의 지도자 중에 헨리 나우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지낸 사람입니다. 그의 저서는 독자들에게 깊은 영성을 함양시켜주기에 전 세계적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일생에서 1985년은 아주 중요한 해였습니다.

1985년 초에 불란서에 있었던 정신지체아들을 모아서 양육하는 ‘라르쉬’라는 공동체에 한 지도자가 예일대학으로 헨리 나우웬 교수를 방문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 공동체의 지도자로부터 처음으로 정신지체아들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또 이런 정신지체아들을 섬기면서 삶을 고귀하게 사는 분들이 계시구나.’ 그 날은 그들이 사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고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이 공동체의 원장으로 있었던 장 바니에라는 지도자로부터 편지 한 장이 왔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정신지체아들의 수양회가 열리는데 헨리 나우웬이 거기에 왔으면 좋겠다”는 글이었습니다.
헨리 나우웬 교수는 처음에 자신을 강사로 초청한 줄 알았는데 막상 수련회에 가보았더니, “우리 수양회는 침묵 수양회(Silent Retreat)입니다. 이 수양회는 사흘 동안 열리는데 기도만 하고, 또 행동으로만 사람들을 돌봐주고 섬기는 수양회입니다”라는 것입니다. 특이한 수양회를 참석하면서 헨리 나우웬 교수는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헨리 나우웬 교수는 사흘 동안 아무 소리 안 하고 정신지체아들을 돌봐주고 발도 씻어주고 밥도 해주고 같이 식사하고, 그들을 쳐다보면서 마음으로 기도만 하면서 돌봐주는 침묵 수양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정신지체아들의 세계 속에 자기 몸으로 부딪히면서 자기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그들을 경험했습니다.

침묵수양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또 한 장의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교수님이 함께 있어서 축복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이런 우리 같은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커다란 하나님의 선물일까요.” 그 당시 헨리 나우웬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하버드대학 교수로 이제 막 옮겨 한참 할 일이 많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얼마든지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가 있는데, 그 편지 한 장이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에 도전을 주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하버드대학을 떠나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로 일하도록 나를 부르신다.’ 그의 마음에 자꾸 그런 부르심이 느껴져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그는 결국 주님의 강렬한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1985년 가을에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캐나다의 토론토 근처 ‘데이 브레이크 커뮤니티’(Day Break Community)라는 정신지체아를 위해서 새로 생긴 공동체의 지도자로 헌신합니다. 그 곳에는 단 6명의 정신지체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 6명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버렸습니다.
특별히 그는 거기서 정신지체아들도 시간은 걸리지만, 그들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고 그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1996년 9월 2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신지체아들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런 유언의 말을 남기며 죽었습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경험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이것이 정신지체아와 함께 살았던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 그대로 그는 제 이의 인생을 산 행복한 벤처 신자입니다.
현대 경영의 대부인 Peter Drucker는 오늘날 최고경영자들의 ‘중년 위기’(mid-life crisis)에 대해
아주 좋은 조언을 해줍니다. 일반적으로 45세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최고경영자들이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성기를 누리면서 더 이상 배우려들지 않으며, 어떤 것에도 더 이상 기여하지 않는 권태기에 빠져들 위험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는 인생의 후반부를 새롭게 설계하면서 제 이의 다른 경력을 쌓아 가는 삶을 살 것을 제안합니다. 건강한 인생을 사는 분들은 자원 봉사로 헌신합니다. 즉 최근 미국에서는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45세 가량의 중년 여성들 중 상당수가 Community college의 법과 대학에 진학하여 3-4년 공부한 후에 소규모 법률 사무소를 오픈하여 제 이의 인생 경력을 쌓아갑니다.

21세기 성공적 거인들의 공통점은 나이를 초월하여 도전한다는 점입니다. 그들 모두는 나이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금세기 가구업계의 혜성으로 등장한 주디 조지는 “나에게는 오히려 나이가 무기였다”고 간증합니다.
권투 선수로서 링 위의 전도사로 활약했던 조지 포먼은, “하나님은 40세를 사형 선고로 생각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역전승의 인생을 간증합니다.
금세기 최고의 초베스트셀러 ‘007’ 시리즈를 탄생시킨 영국의 소설가 Ian Fleming은 43세에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제 이의 인생 경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40세 이후부터 이제까지 경험한 것에 대해 ‘긍정’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인생 40부터가 새로운 제 이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도약과 도전의 발판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입니다. 본문은 모세에 관하여 일목요연하게 보도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모세가 이집트 왕실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벤처 신앙으로 제 이의 인생을 살았음을 최대한 부각시켜주고 있습니다.
22절을 보면,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최고의 교육을 마스터하므로 상당한 실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왕자로서의 권좌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이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의 마음에 자기 동포 이스라엘 민족을 돌아볼 생각을 품었던 것입니다. 남자 나이 마흔이면 안정을 추구할 연령입니다. 자리 매김에 황금기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나이를 이렇게 분류하기도 합니다.
“10대는 꿈으로 살고, 20대는 애정으로 살고, 30대는 실력으로 살고, 40대는 현실로 살아간다.”
더욱이 그는 나이 사십이 되어 자기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절정의 시기인데도 그는 제 이의 인생을 살고자 안전한 자리 매김을 거부하는 단호한 결단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세는 나이 사십에도 제 이의 인생을 살고자 과감한 모험을 했기에 믿음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40세에도(23절), 그리고 80세에도(30절) 제 이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좋은 모델을 제시해줍니다.

1. 현재의 편안함을 극복하자

이미 말씀드린 대로 모세는 오늘날 은연중에 안전 위주로 살아가려는 현대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는 표상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나이 사십이 되었을 때 이집트 왕실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거절하고 자기 민족 구원을 위한
제 이의 벤처 인생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세상 신분보다는, 히브리인이라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앙적 신분을 택합니다(히브리서 11:24).
그는 세상에서의 잠시 잠깐 동안의 일락과 번영을 기꺼이 사양하는 가치관의 대 변이를 이루어나갑니다. 그는 헌신 지향적인 인생으로 궤도를 수정합니다(히브리서 11:25-26).

현대 기독교 지도자 John Maxwell은 모세의 새로운 도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믿음의 지대에서 살았다”(He lived in the faith zone out of the safe zone.)
그렇습니다.
우리가 제 이의 인생을 살고자 도약하려면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벤처 신앙입니다
“인생이란 과감한 모험을 하지 않고는 진정 위대한 일을 이루어낼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삼중고를 극복하고 승리한 헬렌 켈러가 말하듯이, “안전이란 미신과 같은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이란 과감한 모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세는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안일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우선 그는 나이 사십이 되었을 때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이집트 왕실에서의 호강을 물리치고 미디안 광야의 나그네로 들어갑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그의 나이 팔십 세 때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또 다른 제 이의 인생을 출범합니다(30절 이하).
참 재미있는 것은,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도 아들이 없는 집에서 컸고, 미디안 목장에서도 아들이 없는 이드로의 집에서 후계자와 상속자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모세는 가만히만 있으면 호박이 넝쿨 체 들어오는 수지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현재의 안일주의와 편안함을 극복한 것입니다. 오히려 목숨걸고 헌신하기로 인생의 궤도를 수정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영웅적 거인이 된 것입니다.

스타벅스 커피의 Howard Schultz는 이런 성공 지향적인 벤처 마인드를 품게 해줍니다.
“무엇을 하든지, 안전하게만 하려고 하지 말라. 언제나 해왔던 방법으로 일을 추진하지 말라. 정형화된 틀에 일을 맞추려고 하지 말라. 남들이 기대하는 것만큼만 한다면, 결코 그 범주를 벗어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오늘 우리도 모세처럼 안전지대의 틀에서 벗어나 믿음의 지대로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세기의 성자 헨리 나우웬처럼 안일주의나 편안함의 매너리즘을 벗어나는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도약만이 당신을 믿음의 거인 대열에 서게 해줍니다.

2. 과거의 실패 경험을 극복하자

모세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실패를 딛고 일어섰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그는 나이 사십에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 구출시켜보려고 시도하였다가 무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22-29절).
이런 처절한 실패 후에 그는 미디안 광야에 들어가 어느덧 4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요. 어떤 경우에는 뜻이 좋고 목적이 훌륭해도 실패할 수가 있습니다. 실패가 문제는 아니에요.
그러기에 어느 날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 기슭에서 자기를 잊지 않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 놀라운 은혜체험을 계기로 그는 과거의 실패 경험을 극복하고 제 이의 인생을 도전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모두 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극복하고 역전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회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의 씁쓸한 실패의 상처 속에서 사십 년 광야 인생을 살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을 보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오늘 아침 우리도 그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십니다.

모세는 이 때 나이가 벌써 팔십 세였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실패의 경험을 딛고 극복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괴테는 80세에「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흑인의 한 많은 역사를 파헤쳐 준「뿌리」라는 대하 소설을 쓴 알렉스 헤일리는 8년 동안 1백 번이 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는 처절한 실패를 극복하다가 드디어 1976년, 55세가 되던 해에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현대 기독교 상담의 대가 Paul Tournier는, “사람의 성숙은, 성공보다는 실패나 시련을 거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약한 사람 중에서 참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크게 성공하지 못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경험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패를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① 실패는 적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입니다(Failure is not foe, but friend)
실패는 오히려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아군이요, 친구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도 못합니다.

② 실패는 영원한 것이 아닌, 순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Failure is not monumental, but momentary)
노르만 빈센트 필 박사는 이런 좋은 말을 합니다. 당신이 실패했을 때, 당신이 할 첫 번째 단계는 잊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절대로 그것을 거론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해야할 세 번째 단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다음 번에는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런지요. 무엇이 최선의 방법일까요?”

③ 실패는 패배가 아닙니다(Failure is not Final)
한번의 실패가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됩니다(Failure doesn''t have to be final).

평범한 농부가 천신만고 끝에 서른 아홉 살에 처음으로 공직을 얻고, 뒤늦은 50세에 정치무대에 입성한 후 61세 되던 해에 갑자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거하므로 미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 곧 헨리 트루먼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실패했을 때에도 항상 전진했고, 좀더 좋은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역사의 거인들은 하나 같이 실패의 뼈아픈 경험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모세처럼 80세 뒤늦은 나이에도 여전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실패를 극복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실패를 잊어버리고 미래의 성공을 내다보므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미래의 불안함을 극복하자

어느덧 모세의 나이가 80세 노인이 되었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집트로 다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집트의 억압과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주라는 것입니다(34절).
『시방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내리라』

이 때 모세는 다섯 가지 변명과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저항합니다(출애굽기 3-4장). 특별히 이집트에 다시 돌아가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모세는 미래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믿음으로 극복합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함께 하실 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놀라운 기적과 표징을 행하였습니다(36절).

모세는 더 이상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믿고 나갔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7절에서는 모세가 이집트 왕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보도해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언제나 “무서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걱정이나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불안해하지 말라”고 강조하십니다. 오히려 “담대하라”고 용기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으로 미래의 불안을 극복해야 합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긴장과 염려는 다섯 가지 해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첫째, 혈액 순환이 나빠지고, 둘째 근육통이 생기고, 셋째 판단 착오를 일으키며, 넷째 요긴한 것을 잊어버리게 하고, 다섯째 실력 발휘를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그야말로 백해무익(百害無益)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아버지 George Muller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종말이며, 참된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종말이다”라고 멋지게 정의해줍니다. “염려 다 맡겨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미래는 우리의 관한 밖에 있습니다. 오히려 미래는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 36절을 보면, 모세는 오직 벤처 신앙으로 안전지대를 떠나므로 오히려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숙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나이 광야 40년 동안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가 믿음으로 안전지대를 떠나는 제 이의 인생을 모험한 만큼 그는 능력의 사람의 되었습니다.
현재의 안일주의, 과거의 실패 경험, 미래의 불안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나가는 만큼 영웅적 거인의 대열에 설 줄로 확신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John Maxwell의 말 한 마디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If you want to grow, you need to go.】
《당신이 더 크게 되려면, 앞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 초청) (찬송가 360장)
너무 늦은 것은 없네 (S. Longfellow)

''너무 늦었어‘
오, 어떤 것도 너무 늦은 것은 없네.
카토는 여든에 희랍어를 배웠고
소포클레스는 그의 웅장한 [오이디푸스]를
그리고 시모나이드스는
그의 동료들을 제치고 시인상을 탔다네.
두 사람 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 말일세.

데오프라스투스는 아흔의 나이에
[인간의 인격]을 쓰기 시작했고,
초서는 우드스톡에서
자신의 나이팅게일들과 함께
예순에 [켄터베리 이야기]를 썼었네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마지막까지 수고하며
여든이 지났을 때 [파우스트]를 완성했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앉아서
‘밤이 왔고, 이미 낮은 지나갔다’고 말할 것인가?
노년은 비록 다른 옷을 입고 있을 뿐
젊은 황혼이 사라질 때면
하늘은 낮에 보이지 않던 별들로 가득 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