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목사 (대흥장로교회)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급자족의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애를 쓰며 살기 때문에, 기도라는 것은 참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자급자족에 목숨을 걸고 살다가 빠지기 쉬운 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 나름대로의 길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기도에 시간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 황당한 방해일 뿐입니다. 기도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기도는 털썩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나는 자급자족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요한일서5장에 보면, 우리 믿는 자의 믿음의 증거가 3개인데, 물과 피와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1)물은 씻음을 상징합니다. 늘 우리의 더러워진 부분들을 씻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나처럼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이런 사람은 믿음의 삶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 늘 더러워진 발들을 부끄럽게 예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또한 피가 믿음의 증거라는 말은 희생과 헌신을 말합니다. 믿음의 삶은 희생과 헌신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예수도 믿고 세상도 즐기다가, 턱걸이라도 천국에만 들어가면 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희생하기를 꺼리고, 헌신하기를 싫어합니다. “묻지마 교회, 묻지마 성도”가 요즘은 숫자적으로 성장합니다. 누가 와도 안 묻습니다. 왜, 어떻게, 신앙생활은? 가정생활은? 숫자적 성장이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믿음의 삶은 다른 말로 희생이고 헌신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기독교 신앙의 길입니다.
(3) 또 믿음의 중요한 증거가 성령님이십니다. 내 모든 삶이 믿음의 삶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사는가? 아니면 내 마음과 내 생각과 뜻대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에 보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사도행전2:에 보면, 성령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고 이것이 초대교회의 태동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삶은 기도로 주님께 내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의 뜻대로 내 삶을 이루어 주십시오... 이것이 새벽의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하루가 잘 굴러가고, 기도하지 않아도 저녁에 부끄럼 없는 인생은 내가 삶의 주인인 사람입니다.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될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중에 신음하며 하나님을 안 찾을 수 없게 하셨고, 그들의 부르짖음으로부터,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고, 광야의 40년 동안 고통과 위험과 장애물과 어려움들을 겪게 하시면서 역사하시는 도구는 기도였습니다. “부르짖으매...” 모든 백성들은 원망하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할지라도,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특별히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출애굽기 17:8-13에서 잘 말씀해 줍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르비딤에 있는 이스라엘을 공격해왔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장정을 뽑아서 전쟁은 네가 하고,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은 여호수아의 전쟁 지략이나 용감함 때문에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두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피곤해서 두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했습니다. 저녁이 되도록 손을 들 수가 없어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한 손씩을 붙잡아 들어 올려줌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힘이 어쩌면 전부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성령 충만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풍성한 승리를 이루어 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무릎으로 자녀를 양육하면 실패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이 모였습니다. 12절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감람원이라는 산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입니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지켜야 할 규례가 39개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안식일에 여행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이라는 정의를 2000규빗( 약 914미터) 1km이상을 걸어 다니면 여행으로 간주했는데, 감람원이라는 산이 예루살렘으로부터 1 km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유대인의 회당을 보면 모두가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주거지 근처에 있는 것이 특징이고, 파킹랏이 별로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1 km 이상 먼 회당에는 갈 수가 없고, 운전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120성도들이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였는데, 물론, 그들도 약속대로 성령충만한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만, 마가의 집안도 큰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마가는 어려서부터 집에서부터 본 것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첫 선교사로 파송 받을 때에 마가 요한을 데리고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구브로에서 선교 여행하는 일이 너무도 힘들고 고달퍼서 마가 요한이 슬며시 도망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크게 다투기도 하였지만, 마가 요한은 다시 바나바와 더불어 성경에는 그의 사역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만, 평생 복음의 일군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을 봅니다. 기도하는 집, 기도하는 자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며, 넘어져도 결코 아주 쓰러지지 아니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결코 실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저자 Bruce Willkinson은 현대 부모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위험한 유형들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1) 알아서 크겠지... - 난 밥만 먹여주면, 의식주만 해결해주면 알아서 자기가 크기를 기다리는 유형은 아주 위험합니다. 동물적 유형입니다.
2) 잘 부탁 드립니다 - 관리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몽땅 다른 사람에게 맡깁니다. (어린이집, 학원, 학교, 과외 선생님, 상담 선생님등... 엊그저께 신문을 보니까, 중요 타이틀이 방학은 쩐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방학 때가 되면, 과외, 특별 학원, 어린이학교 몽땅 돈 들어가는 일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 뭐든지 최고로 해줘야지... - 오로지 돈으로 키우는 양육하는 부모입니다. 최고 수준의 학교, 유치원, 최고급 장난감, 옷 이것이 최고의 부모인 것 처럼 착각합니다. 세상에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이 제일 좋은 부모겠지요?
4) 미안하구나 너무 바빠서... - 직무와 사업 지향적인 부모들일수록 자녀 양육은 스케줄에 없습니다. 그냥, 미안하지만, 나는 나, 너는 너! 의 유형입니다.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 가장 실족하는 유형이 바로 이 유형입니다.
5) 자식은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해야 돼 - 군대식. 선임하사와 같은 단속 지향적 교육방침의 유형입니다. 특징은 “안돼”가 많습니다. 다. No! 자식은 무조건 부모가 하라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놈은 의사가 되고, 둘째 놈은 변호사가 되고, 셋째 놈은 사업가가 되고... 망치는 위험한 부모의 유형입니다.
6) 내 자식 수송은 내가 책임진다 - 택시 기사 역할만을 열심히 해주는 부모. 학원, 음악, 연기, 발레, 과외, 도서실등... 하루 종일 태워다 주고 부모 다했다고 생각하는 유형입니다. 남의 새끼들은 다 걸어 다니는데, 나는 이렇게 널 운전해서 태워주는 좋은 부모란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7) 교회에서 살아라 - 교회에다가 자녀들을 묶어놓으려고 합니다. 무조건 교회 활동만 잘 하면 다 해결될 것 같은 착각의 유형입니다. 도대체 자녀의 신앙과 교육 상태가 어떤지 상관없이 교회에만 놓으면 잘 크겠지... 유형입니다. 아닙니다.
결코 실패가 없는 자녀가 되시기를 원하면 기도하는 부모가 되십시오. 어거스틴의 스승인 암부로스는 그 어머니에게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 기도하는 자식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농구 경기에서 승패는 정확한 슛 확률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리바운드의 숫자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슛을 실패했을 때에 누가 열심히 리바운드를 잡느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얼마든지 잘못된 길로 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기도는 리바운드의 힘을 줍니다. 자녀교육은 무릎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Lincoln을 키운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소리는 오막살이 통나무집 구석구석에 깔려있는 것 같았다. 집안뿐 아니다. 들에서 일할 때나 내가 성장하여 가게에 나가 일할 때에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언제나 어머니의 기도소리는 내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행동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응하게 하시려고...)

결코 실패가 없는 자녀로 양육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16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일어나서 첫 설교를 하게 되는데, 그 끝부분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 유다에 관하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가룟유다의 죽음에 대해서, 사건이 아니라, 말씀의 성취로 말합니다. 그리고 20절에 보면, “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 직분을 타인에게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가룟 유다 대신에 제자를 뽑고자 하는 것이 내 생각과 우리의 결정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맛디아를 선출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의 표현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응답과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말씀에 항상 귀 기울입니다. 기도했으니까, 이제 내 마음대로 한다...라는 것은 기도를 헛되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많이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길은 “성경 말씀”입니다.
신명기 6장에 보면, 자녀 손 대대로 축복받는 삶을 누리는 비결을 말씀해 줍니다. 신6:2-6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
그리고 신명기 11장에서 다시 한번 쉐마 “들으라 이스라엘아...!” 이 말씀을 거듭 강조해서 말씀합니다. 자녀가 복되고 형통하기를 원하시면 말씀을 가르치십시오. 그런데, 그 말씀에 대해서는 입술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기독교의 힘은 말씀에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에 말씀으로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가 반역죄로 붙들려 시베리아 감옥으로 갈 때에 한 작은 역에서 장교부인들이 작은 성경책을 그 죄수들에게 전해 주었는데, 그 때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손에 작은 성경이 하나 들려졌습니다. 감옥 안에서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된 것이 그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너무도 충격을 받아서 간질병까지 있었는데 , 말씀의 힘은 그의 병까지 고쳤고,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충격적인 능력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중심에 가득했던 증오와 원망, 불평과 미움이 다 사라지는 기적적인 치유를 받게 되었으며, 그 후 그는 죄와 벌, 죽음의 집 등 세계적인 작품을 쓰게 됩니다.
시편1편에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 결론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리고 그 삶의 축복이 무엇 인가하면 4절에 ”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만큼 우리의 삶의 변화와 능력과 축복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영어책, 수학책, 역사책도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성경을 부모님들이 먼저 읽으십시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경험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에게 말씀을 주십시오 말씀 위에 세워진 집은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같은 신앙입니다. 부모님이 목사와 장로요, 집사요 권사요, 구역 장이고 회장이고... 다 직분은 화려한데, 성경을 보지 않으면 누릴 축복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적인 석학으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오직 구약 성경만으로도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추종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납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가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 살아갑니다. 말씀은 결코 우리 자녀를 실패자로 남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말씀을 손에 들고, 성경의 기쁨과 감격을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3.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일을 감당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첫째는 결코 사람을 헐뜯거나 염려하거나 험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승천 하신 후에 제자들이 가장 먼저 다룬 문제가 가룟유다였던 것을 보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가룟 유다에 대한 배신감으로 가득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가 일어나서 가룟 유다의 모든 배신행위에 대해서 꾸짖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제 곳으로 갔나이다”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험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향하여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이 험담입니다. 자녀를 험담하는 것도, 또한 다른 사람을 식탁에서 험담하는 것도 자녀들에게는 일생을 불행하게 살게 하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6장에서 “기도는 이렇게 하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마태복음7장에서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고,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둘째로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을 세워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이하 21절을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혀 기도에 힘쓴 후에 제일먼저 행한 일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전심으로 기도하였다는 것과 가룟 유다 대신에 사람을 세운다는 것이 별개의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중에 제일먼저 한 일이 사람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기도로 서로 세워주는 마음이 됩시다.
셋째로 기도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어려운 일을 닥쳐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걱정과 염려할 일이라고 말하지만, 믿음의 성도들은 “기도해야 할 제목들”이라고 말합니다. 염려와 기도는 둘 중의 하나만 해야 합니다.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리라 ”(빌4:6-7) 자녀를 위해서 기도했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많은 부모들이 신문에 아이들이 가출하고 사고치고, 자살하고 , 마약과 10대 임신 모들이 나오고... 이런 뉴스를 대할 때마다 자식에 대한 염려로 가득합니다. 이것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도의 제목들이 가득해 집니다. 우리 아이들, 교회의 아이들, 지켜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모든 것이 기도의 제목들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였으면 , 자녀들을 세워주십시오. 모든 일에 “너는 나보다 훨씬 낫구나...” 이렇게 세워주세요.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왕년에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땡전 한푼 안주고, 학비도 안 줘서 아버지가 스스로 벌어서 학교를 다녔고, 매일 굶고... 아이들의 인식 속에 할아버지는 무책임하고 자식만 낳고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한 무능한 할아버지로 만들지 마십시오. 언젠가 신문에 4자녀를 모두 서울대학교를 마치게 하고, 의사, 법관으로 키운 한 농부가 어떻게 그렇게 잘 키웠느냐?고 묻자, 자기야 말로 정말 자녀를 위해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단 한가지, 학교를 마치고 아이를 데려오면서,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이 뭐니? 아버지는 무식해서 잘 모르니까, 좀 가르쳐줄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이가 학교에서 들은 수업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가르치는 겁니다. 그러면, “넌 아버지보다 훨씬 낫구나...” 매일 이 말이 듣고 싶어서, 학교 수업을 잘 배워서 아버지에게 가르치려고...
한국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를 목회하시는 정필도 목사님이라는 분이 쓴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라는 책에 보니까, 이런 말씀을 합니다. “ 교회는 성도들의 기도의 눈물이 차야 성장하고, 교회의 부흥은 성도들이 무릎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람들만 많이오면 진정한 부흥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겸손할 수 있고, 기도할 때에 사람을 온전히 세울 수 있고, 기도할 때에 교회에 불평이 없어집니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이것이 우리 가정과 자녀, 교회가 풍성하게 복 받는 비결입니다. 다른 것은 바빠서 잘 감당하지 못하셔도 “기도하는 일”에 힘쓰며, 자녀들에게 기도의 후원자가 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