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부천제일교회)

현대 과학의 꽃이라면, 아무래도 우주 공학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주 공학에 관한 이러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폴로 13호를 공중으로 띄우면서 과학자들은 크게 낙관을 했습니다. ''이 우주선은 정교하고 완전한 설계에 의해서 빈틈없이 만들어졌다. 정말 과학문명의 걸작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이 우주선에 혹시 고장이 난다면, 백만 분의 일 정도의 확률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확신하는 가운데 아폴로 13호는 하늘을 향하여 명쾌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약 2만 마일쯤 가서 드디어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산소 부분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주 미아가 될 지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지상에 있는 텍사스 휴스턴에 우주 비행 지휘소에다가 구원을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조치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들려오는 메시지는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이었습니다. 이제 우주선이 모든 조치를 다하였으나 불가능하므로 우주 미아가 되려고 하는 상황에 미국의 대통령이 이 보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 국민에게 담화를 발표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국력이요, 우리의 과학의 쟁점인 아폴로 13호가 지금 우주 미아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군인, 과학자, 어린아이까지 포함해서 전 국민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 이후에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태평양 상에 아폴로 13호가 안착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구조된 우주 비행사가 나오자 군목이 찾아가서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장면이 그 당시 뉴욕 타임지의 표지로 게재된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주 비행사 한 사람인 스위져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능력이 이렇게 아름다운 안착을 이루었다.''

한국과 미국의 불임치료 공동 연구진이 불임 환자에 대한 2가지 진료 보고를 내놓은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임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진료방법과 또 하나는 열심히 진료만 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두 부류로 나누어서 실험을 한 것입니다. 포천 중문의대의 차병원의 차광렬 학원장, 이 분은 콜롬비아 의과 대학에 객원교수로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콜롬비아 의대의 산부인과 과장인 로젤리오 A. 로보라고 하는 사람이 함께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생식의학 전문지 저널 ''오브리 프로덕티브 헬스''에는 전문적인 용어를 써서 상세하게 게재되어 있는 것을 얼마 전 뉴욕 타임지가 다시 보도한 것입니다. 「1998년에서 1999년까지 약 1년 간 차병원에서 199명의 불임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환자들의 사진을 찍어서 미국, 호주, 캐나다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보내서 이 환자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실험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결과는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중보기도,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해서 기도를 받으면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기도를 받지 않고 치료를 받는 사람보다는 임신율이 배가 더 높았습니다.」라고 하는 실험결과입니다. 공동연구진의 로보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구 결과가 연구 결과임으로 어쩔 수 없이 학술지에 게재를 하긴 합니다만 나는 도저히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보도하는 뉴욕 타임지는 한 술 더 떠서 이러한 사실을 함께 보도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심장병 환자를 위하여 기도했더니 심장병 환자의 치유율이 높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기도하고 있지만, 기도가 우리에게 능력으로 역사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중보기도를 합니다. 중보기도는 내가 남을 위하여 기도하고, 남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남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이 중보기도가 이만큼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과학적 증거로 여러분에게 제시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도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면, 그 능력이 얼마나 강하게 나에게 역사하시겠습니까?

본문 말씀을 보면,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그야말로 쉼 없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아시고 신앙생활 하십니까? 아니면, 이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신앙생활을 해오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 말씀은 역사적으로는 열 두 제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요한복음 17장 9절 말씀이 되므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가 하나님의 제자이고 주님의 제자예요. 그런고로 ''우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비옵나니''하는 말씀이 된 것입니다. 자신에 관한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태어날 때부터 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나의 영의 어머니인 조모님이십니다. 저 하나를 하나님의 종으로 양육하시기 위해서 그 분은 일생을 희생하셨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자 그 분께서는 24시간 동안 4시간을 주무시고, 20시간을 저를 위해서 중보기도 해주셨습니다. 사역을 하다가 어려워질 때면 그 분의 기도를 떠올립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가 시험이 오거나 유혹이 오거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분이 계시는데 내가 왜 주저앉아 있을 수 있을까?'' 용기를 얻곤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진리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는 계시를 삶 속에 적용해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생각하십시오. 보좌 옆에서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더 의의 병기로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기도를 해주시는가? 11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와 같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합니까? 성삼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과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성삼위는 하나이십니다. 성삼위는 온전한 연합입니다. 온전한 연합 안에 나와 여러분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의 세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 안에 영이 있습니다. 내 영 안에 성령이 내주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 도서를 통해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성전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성전 된 자 중에 베드로를 여러분에게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베드로는 원래 부량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성품이 원만치 못했습니다. 성격도 다혈질이었습니다. 그는 직업도 갈릴리 바다의 고기를 잡는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3년 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보여준 표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다사로운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부활했을 때, 부활한 예수를 직접 만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지식으로 사람을 바꾸어놓을 수 없습니다. 기적과 이적, 표적을 통하여 사람을 믿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이 신령한 반열에 서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바로 베드로가 그러한 실정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 때에 베드로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히 베드로에게 임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부량무식한 사람이요, 기회주의자적인 존재요, 그는 누구에게도 설 수 없는 열등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 종교전문가와 당시의 많은 권력가들과 수많은 군중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외쳤는데, 한 번 설교할 때마다 삼천 명씩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성령이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는데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동정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렇게 외칩니다. ''네가 나에게 원하는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용하는 종이었습니다. 예수 안에 베드로가 있다는 사실을 그의 은사를 통하여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적을 베푸는 베드로를 주목합니다. 별난 사람, 슈퍼맨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사도행전 13장 12절, 13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는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이 예수의 영광을 위하여 일을 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베드로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종으로 삼으셔서 예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살리고, 그가 걷고 뛰고 영광을 돌리게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성령과 성자와 성부와 함께 하심을 증명해 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땅에 육신이 있지만, 그의 영은 하늘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몸은 성령이 사용하시는 데 내놓은 도구였습니다. 베드로는 인격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이 쓰시는 병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각자가 ''내가 오늘 교회에 나왔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다. 그러나 영적 눈으로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편 팔에 안겨서 하나님의 가슴에 찰싹 당기고 하나님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에 예수님이 이러한 제목으로 또 기도하십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서 빠지지 않도록 보전케 하옵소서.'' 했습니다. 여러분, 먼저 ''세상에서''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보다 신앙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때는 이러한 꿈이 있습니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 사람과 만나지 아니하고, 오직 신령한 체험과 은사와 그 세계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죄된 세상을 다 버렸으면 좋겠다. 잡다하고, 복잡한 것을 포기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에세네파라고 하는 경건한 유태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소위 쿰란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본하고, 찬송하고, 서로 사랑하며, 경건한 삶을 살며, 세상과 완전히 단절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쿰란 공동체의 유적을 보고, 그러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들이 선하게 산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 또 오늘 말씀에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님의 제자라면, 세상 속에 나가서 세속 속에서 나의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라.''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 중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오늘의 역사와 함께 하며, 오늘의 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쳐나가기 위해 하나, 하나 힘들게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악으로부터 보전케 하라.''는 말씀은 이미 오늘 봉독한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악령으로부터 우리를 보전하옵소서.''하는 말씀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위하여 기도했는데, 열 한 제자는 예수님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중의 한 사람,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7절 말씀에 보면,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이 말씀의 배경은 만찬 중에 한 조각의 떡을 유다에게 주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네 안에 사단이 들어갔구나. 그러므로 너는 나를 팔 일을 하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일을, 작업을 계속 진행하라.''는 뜻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제자가 스승을 파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가룟 유다가 했지만, 가룟 유다 안에, 영 안에 사단이 역사 하므로, 사단이 가룟 유다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 지성인들은 기독교를 윤리로 봅니다. ''기독교란, 박애다.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다.'' 이렇게 말합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힘이 어디서 오는가? 사랑의 힘은 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 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사랑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이지, 내 스스로는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 지성인들은 교회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인정하지만,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특히 사단의 이론에 대해서는 정말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도 주님은 분명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2절 말씀에 보면,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여기까지는 열 한 제자를 지켰다는 뜻이고,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것은 가룟 유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예수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주도해 가는데 악한 역을 바로 가룟 유다가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건에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삶의 본질은 영적인 것이 삶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보는, 눈으로 보는 삶의 본질인 영적 사건의 하나의 그림자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6장 말씀에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영적 전쟁이다.'' 누구와 싸우느냐?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뭡니까? 바로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입니다. 인간의 인격이란, 영의 몸입니다. 자기가 수용한 영의 현존이 나의 인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신 인격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습니다. 악령을 모신 인격은 가룟 유다의 인격을 닮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기도 중에서 우리를 악령으로부터 영적으로 보전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예수님의 기도가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보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적극적인 말씀으로 다시 재해석하면, 악으로부터의 보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은 결국 바로 여러분께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이 뭡니까? 산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결혼을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습니까? 자녀를 낳습니다. 사랑하니까 자녀를 낳지 않습니까? 직장을 나갑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직장을 나갔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 직장을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화장을 하고 왜 아름다운 옷을 입습니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기 위해서 우리가 모든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의 본질은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이 불이라면, 내 육체는 사랑의 불을 크고, 뜨겁고, 활활 타게 하기 위해서 던져 넣는 한 줌의 땔감인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뜻깊은 장례식에 가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것은 고 문국원 장로님의 장례 예배였습니다. 1940년대 의사가 되신 문 장로님, 그 분은 그 당시의 권력과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엘리트층에 속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곳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인술을 펼치면서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거문도에 교회를 건축하고, 거기서 인술을 펼치면서 희생하는 종으로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중년부터는 애향원이라고 하는 소위 한스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체 안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가슴을 맞대고 일생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코가 빠졌을 것이고, 어떤 환자는 저녁 때 손가락을 빠져나갈 것이고, 어떤 자는 지금 한참 진행중이라서 냄새가 코를 찔러서 아마 문장로님을 괴롭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일생을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면서 사셨다가 우리 앞에 한 줌의 시신으로 관속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랑의 불을 마음껏 태우는데, 자기의 몸을 마음껏 아낌없이 던져 넣었던 생이었습니다. 뜻이 있는 삶, 의미 있는 삶,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았던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차원은 영성으로 볼 때, 도자기와 같습니다. 도자기는 도요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고, 예술품이라 하더라도 도자기가 도요 안에 들어가서 그야말로 강한 불을 통하여 그것이 구워지지 아니하면, 가치가 없습니다. 내가 좋은 인격으로 이 땅에 태어났고,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서 이 땅에 산다고 하더라도 바로 사랑의 불에 내가 던져지지 아니하면, 나는 아무 빛을 발할 수 없으며, 예술성을 지닐 수 없으며, 높은 고가의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사랑의 불에 자기를 던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기도하시기를 ''악으로부터 보전케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17절 말씀에 ''또한 주님이 기도하기를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리고 재림의 소망이 바로 복음입니다.

근대 경영학은 매우 고도로 발달을 했습니다. 이제는 경영학에 있어서의 인사관리와 마케팅 이론은 옛날과 같지 않습니다. 옛날의 경영학의 인사관리란, 성품이 좋은 사람, 가문이 좋은 사람, 성격이 원만한 사람, 그리고 명문대학을 졸업한 그런 사람을 뽑았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괴짜, 문제아를 뽑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괴짜입니까? 그 속에 삶의 에너지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괴짜에게 동기부여만 하면, 무지무지한 삶의 에너지가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괴짜를 뽑습니다. 단, 문제는 경영자가 그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아가 문제를 해결합니다. 문제아를 불러다가 동기부여를 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온순하고, 얌전하고, 말 잘 듣고 하는 사람들, 삶의 에너지가 없어서 맹종하고, 창의적이지 못하며, 항상 모든 문제에 있어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마케팅 이론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상품을 이동해서 유통에 의한 마진 최고의 이윤추구가 아닙니다. 고객을 어떻게 감동시키느냐? 고객에게 동기부여를 하면, 스스로 자원해서 구매할 것이고, 그 구매는 확장될 수밖에 없고, 많은 구매를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동기 부여하는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예수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내 영 안에 역사할 때, 성령의 감화 감동을 통하여 동기 부여를 받고, 나에게 보상이 있습니다. 부활의 보상을 얻기 위하여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어서 진리로 삶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예수님의 기도의 응답으로 사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소원하는 소원한 바가 이루어지는 대로 사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능력이요,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기도의 성취로서 승리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