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철목사 (포레스트한인장로교회)

사람들 누구나가 갖고 싶은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평안입니다. 평안은 마음의 공백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리자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가요? 쉽게 말하면 즐거움인 것입니다. 즐거움이 있는 마음을 평안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는 것은 평안한 마음이 아닙니다. 즐거움이 생산되는 마음을 평안이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 즐거움이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어야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살기에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 되었었는데 하나님이 먼저 화해를 청해 온 것입니다. 상대방이 수가 많고 강력하면 화해를 해야 사는데 강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해를 청해 오셨습니다. 말로만 청해 온 것이 아니고 아들을 선물로 보내시고 화해를 청했습니다. 하나님과 화해하는 전제 조건이 죄의 문제인데 이 죄 문제를 아들의 죽으심으로 해결을 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생명을 주시고 자연을 주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아시는 하나님과 화해가 없다고 하면 삶이 즐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평안합니까?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평안합니까? 평안이 없는 마음은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였다고 하는 진리가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화해의 은혜 가운데 들어 온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이면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 가을이 되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즐거움을 가지려고 하는 것 다 은혜 안에 들어 온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괴로운 사람보고 아름다운 보여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것, 먹을 것, 다 필요 없습니다. 마음이 걱정이 많으면 입맛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해 된 사람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영적 재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하는 선언이고 그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는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는 평을 누릴 수 있는 ,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화평한 자는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 가운데 기독교는 죽어서 하늘에 파이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기독교는 막연히 죽어서 달콤한 파이를 바라는 허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져내신 것은 죽음에서 살려내는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신앙의 인격으로 살아 갈 수 있게 훈련 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을 희망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일을 시키려고 사람을 찾을 때 경험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내가 시키려고 하는 일에 이미 그가 배우고 실천하고, 오랜 훈련을 받았느냐고 하는 것을 찾습니다. 구원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을 시키고 그것이 환난입니다.
오늘 성경의 환난이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데 즐거워할 수 있냐는 물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또 낸다는 것입니다. 환난이라고 하는 말은 본래 압력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라고 하는 말은 무엇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려고 해도 어려운 일이 많아집니다. 밖에서 오는 압력도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뜻대로 살려고 해도 힘이 듭니다. 자꾸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환난입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환난을 못을 박는 망치라고 하였습니다. 못을 나무에 박으려고 하면 망치로 때리어야 합니다. 아픕니다. 그러나 맞을 수록 깊이 들어갑니다. 안에서 맞고 있는 것을 인내라고합니다.
오늘 수양관에 올라와서 보았지만 변화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목수와 건축업자들만이 한 것이 아닙니다. 교인이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일한 교인도 있습니다. 먼 곳을 와서 일을 합니다 목사의 프레샤가 있습니다. 설교에서 프레셔가 있습니다. 이것을 환난이고 이것을 참고 해 내는 것이 인내입니다. 돈 이야기 잘 하지 않는 목사이지만 은근히 수양관 위하여 헌금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마음이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특별헌금을 합니다. 이것이 다 인내입니다. 즐거움으로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할 수 없이 합니다. 저 밑에 물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은 압력 때문에 올라오는 것입니다. 압력이 없으면 올라와서 씻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난 가운데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화해 한 사람들만이 갖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만이 희망을 갖게 됩니다.
환난 가운데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 사람은 변화된 사람이고 훌륭한 인격자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희망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연단은 불 가운데 들어가서 다져진 단단한 쇠를 말합니다. 사람에게 적용하면 고생 가운데서 다져진 인격을 말합니다. 위해서 말한대로 훈련된 사람이고 경험한 사람이고 고생을 해 본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하나님은 희망을 갖게 해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희망 가운데서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8절)
하나님은 사랑을 확증하신 증거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은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 줍니다. 자기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로 지배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경우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은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자가 있지만 그리스도는 우리가 의인도 아니고 별 볼일 없는 인간도 아닌데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힘도 없고 경건치 않고 죄인들인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은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수양관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한 교회입니다. 이 수양관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생 고생해도 하나님의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이 쓰실 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앉아서 처음으로 예배하는 의자는 우리 교회에 초기부터 계셨던 이문자 권사님이 헌물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오기전에 환상을 보고 찾아 왔는데 아름다운 포도송이가 있는데 가만히 보니 줄기에서 끊어져 있었습니다. 생각하기를 곧 마르겠구나 생각할 때 '네가 바로 포도송이다'라는 음성을 듣고 교회를 찾고 우리 교회를 들어와서 20년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하십니다. 그는 말하기를 목사님이 나보고 교회를 나가라고 등을 밀어내도 안나갈 테니 나가라고 하지 마세요. 시험도 많이 받았습니다. 오래 다니던 딸도 교회를 떠났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오늘 수양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의자를 바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이 되고 희망을 갖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교인들,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화평은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도 압력을 받을 때도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사랑안에 머물기 위하여 참고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교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도록 우리 자신을 주는 여러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영원한 영생이 있고 이곳보다도 더 좋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이 땅에서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