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진목사 (진리교회)

서론

1) 종교개혁의 날은 1517년 10월 31일인데 이 날은 마틴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여 비텐베르그성 교회 정문에 95개조의 의견서를 걸어 놓은 날입니다. 당시의 교황은 레오 10세였는데 그는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으며, 전쟁과 노름 그리고 사냥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전임자가 계획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완성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충당하는 방안으로 면죄부를 판매하였습니다. 면죄부란 참회자가 형벌이나 고행을 하는 대신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였습니다. 이전에는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를 했는데, 그것은 죄를 뉘우치고 사제앞에서 고백하고 고행을 하였는데, 여기서 고행이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면죄부라는 것이 나왔는데, 이것은 고행을 할 필요가 없이 돈만 내면 되는 것이였고, 자신 뿐아니라 연옥에 간 친족이나 친구들을 위해서도 면죄부를 사면 그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2) 루터가 살던 비텐베르고 바로 옆 지방인 삭소니 근처에서 도미닉파 탁발 수도사였던 테첼이 이 면죄부를 목청 높이면서 팔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면죄부를 사야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그의 연설이 이러하였습니다. "자! 들어보십시오. 하나님과 성 베드로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과 우리 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원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 사랑하는 친척들과 친구들이 죽어서 여러분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우리를 좀 살려줘, 제발 좀 살려다오. 이 지긋지긋한 고문, 너희들의 단 돈 몇 푼이면 거뜬히 면할수 있을텐데"하는 음성을, 여러분 그럴 마음 없습니까? 귀를 번쩍 뜨십시오. 죽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은 어머니가 딸에게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널 낳아 길러 준 우리지 않느냐? 네게 유산까지 남겨 주었는데 그렇게 박절하게 장인하게 그 조그만 것을 아낀다고 우리를 풀어주지 않겠느냐?" 여기 이 불속에 누워 있게 내버려 두겠느냐?" 여러분들은 그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전이 궤짝 속에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 그 영혼은 연옥에서 튀어 오르기 때문입니다. 이 면죄부를 받지 않으시렵니까? 신령하고 불멸하는 한 사람의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는데 단돈 금화 4분의 1입니다." 마틴 루터 교회구역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면죄부를 사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루터가 95개조항을 내건 이유가 바로 이것때문이였습니다. 당시에 유럽에 만연한 면죄부 판매에 대하여 반박하는 내용이였습니다.

3) 루터가 이 95개조항을 비텐베르고 성 교회 정문에 걸어 놓은 날인 1517년 10월 31일을 종교개혁의 날로 삼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알아야하는 것은 루터가 이것을 교회 정문에 걸었을때에는 그가 종교개혁을 일으켜야 되겠다고 생각하고서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그 당시 신부였고, 교수였습니다. 그는 당시에 만연한 면죄부 판매에 대하여 반박하는 글을 그곳에 써 놓았을 뿐입니다. 그의 생각은 순진하였으며, 그는 면죄부 판매가 잘못되었다는 것만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중에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온 유럽을 진동시킨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

4)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로부터 개혁이 일어나도록 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였습니다. 결코 초라하였던 한 로마카톨릭 사제였던 마틴루터의 개인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낸 것이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였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있는 로마카톨릭의 오류로부터 순수하고 새로운 교회로 다시금 거듭나게 하는 일이 한 개인의 힘과 지혜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종교개혁은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1.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한다

1)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지 않으면 부패하고 맙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타락하고 부패합니다. 언제까지 그러한가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환란과 어려움을 가져다 줄 때까지 그러합니다. 그러면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시금 새로운 모습을 가집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또다시 부패하여집니다. 바벨론 포로잡혀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지서들에 나오는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덕적인 모습은 어떠합니까? 철저하게 부패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 포로잡혀가게 만들었습니다. 신약성경에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새롭게 시작된 교회의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오면 문제가 생겼음을 보게 됩니다. 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데교회는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책망받았습니다. 신약성경에 벌써 교회가 타락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것은 2000년 기독교 역사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중세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이 성경에 나오는 역사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단지 너무도 긴 1000여년 동안 교회는 부패하고 타락하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2) 레미콘은 끊임없이 돌아갑니다. 그것이 왜 돌아가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이 돌지 않으면 그 안에 있는 시멘트가 굳어버립니다. 그래서 도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로서 날마다 개혁되지 않으면 교회도 굳어버리고 형식화되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복음으로 인한 은혜가 계속 흘러 넘치지 않으면 교회는 형식적이 되고 부패하고 결국은 겁데기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에 순수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모릅니다. 능력있는 사도바울이 목회하던 교회들에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도 문제가 생겼고, 고린도교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로 시기하고 싸우던 일이 교회안에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순수한 교회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할때에만 순수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것도 날마다 그 은혜가 임해야합니다. 교인들이 모두 은혜가운데 잠겨 있을 때에 그 교회가 비로소 순수한 모습을 갖춥니다. 그러나 은혜가 물러가고 은혜가 사라지면 그 교회는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에 없던 시기와 질투와 반목과 싸움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은혜가 있던 시절에 그렇게 사모하고 갈망하던 순수한 복음도 은혜가 사라지면 별로 마음이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러면 점차적으로 세속적이거나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교회안에 들어오고 교회는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합니다. 날마다 은혜가운데 심령들이 개혁되고 교회가 개혁되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형식적인 신앙인들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들이 매주일 모이고, 수요예배로 모이고, 사경회와 수련회로 모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여서 말씀을 듣고 나눔으로 은혜를 누리지 못하면 우리들이 참된 성도의 삶을 절대로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에데 게으르면 어느 순간에 형식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날마다 심령에 은혜를 누려야합니다.

2.하나님의 의

1)오늘 본문은 마틴루터의 회심과 관련된 구절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구절이 종교개혁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의"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씨름하면서 이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는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회심의 경험은 이렇습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몹시 애쓰는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의'였다. 그것은 내가 이 의라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요 따라서 불의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처벌하신 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의 상황으로 말하면 수도사로서는 털끝마치도 흠잡을데가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기에 도무지 나의 공로를 가지고는 그 분을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공정하고 성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증오하고 그 분에게 투털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바울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하고 계속 캤다. 밤낮 가리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던 어느날 나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죄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그 의라는 것을 터득하였다. 그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였다. 성경 전체가 새로운 의미를 지녔으며, 전에는 '하나님의 정의' 때문에 내 속은 증오로 가득차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이루 말할수 없이 소중하게 되었으며, 더 큰 사랑을 불러 일으켰다. 바울서신은 이 대목이 나에게 있어서 하늘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였다" 마틴루터가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온전하게 이해하게 되었을때에 그는 회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우리는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서만 하나님 앞에 설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한 것이 공로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직임을 받고 십일조하고 하는 것이 공로가 되어서 천국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한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다메섹 경험을 통해서 자기의 모든 의를 버렸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나의 것이 되고, 그래서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나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설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고 천국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서 갈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어야하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신 것도 믿어야하고, 나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신 것도 믿어야합니다. 그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가져다 주는 도구가 됩니다.

3)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의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자신의 의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야합니다. 여러분자신의 의를 가지고는 천국갈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구원얻는 길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의를 버리고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어야 여러분은 그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에 두려움이 없이 설수 있습니다.

3.루터가 발견한 이 진리의 중요성

1)루터가 발견한 이 진리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을 이신칭의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가 교회안에 살아있으면 그 교회는 건전합니다. 그러나 이 교리가 그 교회안에서 들리지 않으면 그 교회는 타락해가는 징조라고 볼수 있습니다. 중세 1000년동안 이 진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구원얻는다는 진리가 중세 1000년동안이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진리를 모르고서는 아무도 구원얻을 수 없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천국간다는 식의 설교는 이단적인 복음입니다. 오늘날 어떠 교인들은 "내가 십일조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천국 못가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면죄부 사서 천국간다라는 생각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루터가 경험한 회심이 필요합니다. 아직 이신칭의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천국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서만 간다입니다. 내가 교회다녀서 간다가 아닙니다. 내가 봉사하고 헌신을 많이 해서 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교회에 돈을 많이 내어서 그 돈 소리를 듣고 하나님이나를 천국으로인도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천국갈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입니다.

2)오늘날 이 진리가 다시금 점차적으로 희미해져가고있는 것을 보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채 500년도 지나지 않아서 개신교의 후손들은 500년전에 왜 종교개혁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루터가 분열을 일으켰다고 생각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로마카톨릭과 일치운동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요즈금 교회의 현상입니다. 이 모든 현상이 말하는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교회가 서서히 타락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있으면 그런 현상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로마카톨릭은 500년전보다 더 미신적이고 부패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교회안에서 그러한 카톨릭을 용인하자는 생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 교회들이 지금 부패해져가고 있다는 증거일뿐입니다.

3)종교개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진리의 대발견입니다. 사람이 구원얻는 것은 행위가 아니고 오직 믿음이라는 이 위대한 교리를 발견한 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핵심입니다. 그것이 마틴루터 개인을 개혁시켰으며, 독일을 개혁시켰고, 온 유럽고 온 세상을 개혁시켰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이 진리입니다.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믿음으로 천국에들어갔는지 모릅니다. 중세 천년동안 이 진리가 사리짐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우매함가운데 멸망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진리의 대발견은 그 이후세대의 수 많은 이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었습니다.

결론

1)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현재 누리는 이 복음의 은혜들은 종교개혁자들의 피흘린 대가들입니다. 독일과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수 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순수한 복음과 교회의 회복을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당하며 심지어 죽음에까지 처해졌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그들의 희생의 고귀한 대가를 이렇게 누리고 있습니다. 마틴루터의 이 종교개혁은 이후에 청교도들과 18세기 대각성 그리고 19세기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흥의 역사와 복음의 풍성한 은혜들은 모두 종교개혁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의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천국의 모든 문은 형식적이고 비성경적인 진리에 의하여 다 막힌 현실속에 놓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지옥의 문을 부수고 그 후손들에게 생명의 고귀한 복음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2)그러므로 이번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서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가 받은 이 고귀한 복음을 생각해야하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이 복음! 이것이 바로 자유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영생을 주는 복음이며 이것이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복음입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믿음이 있는가 살펴봅시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후손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이신칭의 교리를 순전하게 잘 전파하는지 살펴봅시다. 우리 교회가 이 교리를 힘있게 전하지 못하며 우리 교회가 병들어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정말로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지 살펴봅시다.


3)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을 후손들에게 잘 전달해 줄 수 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통하여 전달됩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희생을 통하여 순수한 복음을 지금까지 전해받았습니다. 우리도 우리 후손들에게 이 복음을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이 복음을 전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후손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제목은 우리도 이 일을 잘 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