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목사 (대구서문교회)

예수님께서 로마병사들에게 잡히시기 전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유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제자들에게 행한 예식이 바로 성찬예식입니다.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마지막 유언처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찬예식에 대하여서는 여러 다른 신학적 입장이 있는데, 가톨릭에서는 ‘화체설’이라하여 떡과 포도주는 실제로 예수의 살과 피로 변화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종교개혁자 루터는 ‘공재설’이라 하여 떡과 포도주 속에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임한다는 입장입니다. 쯔빙글리는 성찬에서 그리스도가 실재로 임하는 것이 아니고,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기념이요 상징이라는 ‘상징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성찬을 단순히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쯔빙글리의 견해도, 성찬에서 그리스도가 실제로 임재 하신다는 루?! 痼?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실재와 형식의 깊이에 있어서 영적 실제를 보아야 한다는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는데, 즉 성찬 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성도들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를 기념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 성찬예식에 참예하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의 우리를 향한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던 주님은 곧 자심의 몸과 피를,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그 사랑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주님이 마지막 부탁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서로 높아지려고, 서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다투는 모습을 보시는 주님은 너무나 안타까워 사랑의 새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오늘 성찬예식을 통해 예수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함께 마심으로 우리 서문교회가 예수님의 피로 하나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에 서로 미워하고 있는 성도가 있다면 오늘 성찬예식을 통해 용서하고 서로 사랑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에 불화가 있는 가정이 있습니까? 오늘 성찬예식을 통해 가정이 하나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간에 갈등이 있는 가정이 있습니까? 오늘 성찬예식을 통하여 가정이 주안에서 하나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3)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가운데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 다시 오마 약속한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하시며 세상 가운데 믿음의 선한 싸움을 힘겹게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예식을 통해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말씀(마 28:20)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4)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 사명들을 기억하고 잘 감당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 위대하신 사랑을, 주님의 인류를 향하신 그 사랑을 아직도 흑암에 사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여러 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1) 성만찬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예수님과 내가 한 몸이 되는 축복을 누립니다.
(2)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한 지체)가 되는 축복을 누립니다(고전 10:17)
(3)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았던 것처럼, 이 예식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성찬예식을 제정하시던 날은 유월절 밤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마심으로 죽음의 심판이 지나가는 축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4) 더럽고 추한 나의 진홍 같이 붉은 죄가 눈과 같이 희게 용서를 받게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죄책감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죄를 짓는 연약한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 새로운 능력이 나의 몸 속에 들어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예식을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행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 역시 모일 때마다 음식을 함께 나누며, 성찬예식을 통하여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회를 거듭 할수록 사치해지고 분당을 조성하게 되고 빈부의 차이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고전 11:22).즉 성찬예식의 진정한 의미는 잊어버리고 빈 껍데기 형식만 남은 성찬식을 무섭게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문의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 성찬 예식이 단순한 연중 행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만찬을 베푸시는 바로 그때의 감격으로 이 예식에 참예하시기 바랍니다. 2000년 전 그 감격과 그 축복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오늘 예식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예수님의 새 생명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새로운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