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철랑목사 (부천동광교회)

어떤 미국 사람이 소형 비행기를 조종하고 애틀랜타에서 버밍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일기가 나쁜데도 무슨 일이라도 날테면 나라지 하고 쉽게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눈보라를 만나 무전을 쳤습니다. 긴급 구조요청을 보낸 거지요. 그러나 문제는 자기가 지금 있는 위치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짙은 눈보라 때문에 사방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환하게 빛나는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는데 저 앞에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 십자가는 수련장에 세워진 대형 십자가였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이 비행기 위치를 파악하고 가장 가까운데 있는 비행장으로 안내하여 비상 착륙에 성공했습니다. 눈보라 치는 캄캄한 밤에 십자가 때문에 구조를 받은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가 없었다면 사고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는 대형 십자가를 찾아가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밤에 보여준 십자가가 그 사람을 구원했습니다.

첫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절) 십자가는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대신하여 수풀에 걸려 있는 양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나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주셨습니다. 내 죄를 대신 해 주신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속죄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어떠한 죽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12:32,33). 땅에서 들린다는 것은 사람을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아 세우면 발이 땅에서 들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끌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사랑의 힘입니다. 누구라도 저항 할 수 없는 사랑의 힘입니다. 자석이 쇳가루를 이끌 듯이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입니다.

주님의 인격과 교훈은 인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이끄시는 능력은 지속적입니다. 또한 광범위합니다.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사람을 이끄십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만 힘이 있습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는 동안만 힘이 있습니다. 그것도 정권 말기가 되면 그 힘이 아주 약화됩니다. 권좌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무력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살아 있을 때 보다 돌아가신 후 더 많은 사람이 따릅니다. 가롯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도들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가장 수치스런 죽음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헌신하는지 모릅니다. 주님을 높이는 찬양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분을 칭송하는 문학과 그분의 덕을 기념하는 사업과 행사가 사업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교양이 넘치는 사람도, 살인 강도까지도 마음을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이끌리는 것이 은혜입니다. 십자가에 이끌리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따르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을 통해서 죄인이 구원받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의인을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라 했습니다. 무엇이 죄일까? 죄는 하나님을 떠나서 혼자 살아가겠다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며 무관심하는 것이 죄입니다.

속죄의 제사는 흠 없는 짐승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제사장이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립니다. 피흘림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히 9:22). 죄 없으신 어린 양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이를 믿는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전도자 무디가 연합 집회를 막 끝내고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한 젊은이가 달려왔습니다. 벌써 끝났습니까? 끝났다고 하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무디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네”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으니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일세”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어린 아들이 장난을 치며 놀다가 아버지가 귀중히 여기는 벼루를 깨트렸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보로 여기는 벼루를 깨었으니 큰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할머니에게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호소했습니다. 할머니는 걱정말고 가만히 있기라고 하셨습니다. 저녁때 아버지가 돌아오자 할머니가 아버지 방으로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자네 방을 치우다가 실수로 벼루를 깨었으니 어쩌면 좋을까?”라고 하자 아들이 말하기를 “어머니 염려하지 마세요. 벼루야 다시 사면되지요 어머니가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손자가 잘못한 것을 할머니가 벌 안 받게 잘 처리해 준 것입니다. 할머니의 지혜가 손자를 구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셋째, 십자가는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17절) 바울이 받은 사명은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요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말의 지혜로 하지 않고 십자가 자체를 전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나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체험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전하고 믿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위대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꼭 해야할 일을 하는데 있습니다.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시간과 관심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당장 성과가 없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실패했어도 또 다시 도전하고 또 실패하면 그 원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제플리 웰슨은 그의 저서 “뒤틀린 복음”에서 엉터리 복음, 싸구려 복음, 편의주의 복음을 말합니다. 엉터리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데 그치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며 헌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엉터리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희생과 헌신이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전도란 길을 가르쳐 주는 일입니다. “내가 곧 길”이라고 하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하신 예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21-23)

어떠한 조직도 재생산되지 않으면 쇠퇴합니다. 전도해야 개인도 살고 교회도 부흥합니다. 교회는 씨를 뿌리듯이 예수의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빵을 훔치다 들킨 노인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이 물었습니다. 빵을 훔친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왜 빵을 훔쳤습니까? 배가 너무 고파서 그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재판관은 벌금 5달러를 선고합니다. 그리고 5달러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은 죄가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소문이 많은 사람에게 퍼졌습니다. 우리가 퍼트릴 소문은 벌금 5달러를 내준 판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우리말에 “이영차!”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여럿이 한 가지 일을 할 때 기운을 돋구려고 함께 지르는 소리입니다. 우리 모두 “이영차!”라고 외칩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로 구원받은 우리가 합심하여 “이영차!” 하십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합시다. 성전을 짓는 일을 위해서도 “이영차!” 합시다.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전파하십시다. 전하지 않으면 듣지 못하고 듣지 않고는 믿지 못합니다. 다음 주일은 총동원 주일로 지킵시다. 결석자 없는 주일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전도인이 되십시다. 전도는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이요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십자가의 도를 전파합시다. 우리도 예수의 하신 일을 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