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철랑목사 (부천동광교회)

실망하지 않고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살면 됩니다. 넘어지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가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라는 것이 없이 사는 것처럼 한심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스위팅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사람은 먹지 않고도 40일을 살 수 있고, 물을 마시지 않아도 8일을 살 수 있다. 숨을 쉬지 않아도 최고 4분까지 살수 있어도 소망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의 상상 속에 갖고 싶은 것을 만들어 내고, 현실 속에서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먼저 꿈이 있고 꿈이 이루어진 현실이 있습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원대한 포부가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란 무엇인가? 바라는 것 기대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 가장 아름다운 말입니다. 소망이 없는 종교란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의 우열은 소망이 많고 적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빛의 창조자이십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벧전 1:3). 소망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소망의 출처

태양에서 빛이 나오듯이 하나님에게서 소망이 나옵니다. 태양 빛을 받고 식물이 자라고 과실이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소망의 빛을 받아 불행을 고칩니다. 불행을 고치는 약은 소망밖에 없습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생수가 솟아 나오듯이 소망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내게 믿음이 없으면 소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참 소망을 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를 믿는 믿음 위에서면 미래가 보입니다.
미국 땅에 처음으로 이민을 시도했던 영국의 청교도들은 추수감사절이 되면 식탁 위에 옥수수 다섯 개를 올려놓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들이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하여 첫겨울을 지나게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 한 사람 당 옥수수 다섯 개가 하루 식량으로 배급되었습니다. 추위와 영양 실조로 절반이 죽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자 메이플라워호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선장이 이민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본국으로 돌아갈 사람은 이 배에 타십시오. 무료로 태워주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본국으로 돌아갈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도와 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부유하고 자유로운 나라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불과 33세의 나이에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을 펴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1967년에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뉴욕타임스는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은 희망의 신학 때문에 그 기반을 잃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잡지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창백한 피 속에 철분을 공급하였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책이 1973년에 번역되어 지금까지 20번에 걸쳐 인쇄할 만큼 주목을 받아온 것입니다.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한 학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는 연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소망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합니다. 신학을 배우려거든 소망의 신학을 하십시오. 신앙을 가지려면 소망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어두운 밤에 불기둥으로 믿은 자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소망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소망의 능력

소망은 지속적으로 바라고 기대하게 합니다. 앞에 있는 것을 붙잡기 위해 끈질기게 좇아갑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2)
하나님이란 말과 소망이라는 말을 같을 뜻으로 표현 한 것이 “소망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소망이시고 소망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을 주십니다. 소망을 갖게 되면 보이는 것을 따라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갑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라고 하십니다(롬 8:24). 금광을 찾는 사람이 땅을 파고 또 파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황금 광맥을 찾고 말겠다는 소망 때문입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고된 노동을 계속하게 하는 것은 소망의 힘입니다.
헨리포드는 자동차를 만들어 마차보다 더 많은 물건을 실어 나르고 말을 타는 것보다 더 빠르고 편리한 자동차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모든 미국 사람과 전세계 사람들이 자기가 만드는 자동차를 타게 하겠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가 자동차 회사를 세움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습니다.
소망은 새 일을 시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시작한 일을 완성하게 합니다. 소망은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의 근원입니다. 그 일을 하겠다는 의지와 그 일을 시작하게 하는 용기입니다. 소망은 디디고 일어서게 하는 토대요 인생을 끌고 가는 동력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삶의 의욕을 상실한 허수아비입니다. 소망은 생활력입니다. 삶의 동력원입니다. 큰 소망은 큰 인물을 만듭니다.
월트디즈니가 1955년에 디즈니랜드를 만들었고, 1971년에 디즈니월드를 완성했습니다. 디즈니 월드를 개관하는 날 월트디즈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인사말에서 완성된 디즈니 월드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디즈니의 부인이 인사를 대신하며 말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이미 디즈니월드를 보았습니다. 만들기 전에 그의 머릿속에 그려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디즈니 월드를 꿈꾸고 소망하였다는 것입니다.
살기가 어렵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진한 성적이 자살하게 하고 그 딸의 뒤를 이어 아버지가 목숨을 끊는 그들은 참된 소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소환하실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살아야 합니다. 짐이 무거워도 몸이 살기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성적이 올라가지 않아도 살아야 하고, 실연을 했어도 살아야 합니다. 사업에 실패했어도 끝까지 살아야 합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려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찬송 82장)

소망의 결과

소망의 결과는 구원입니다. 성경은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롬 8:24). 소망의 결과는 어두운 밤을 지나 새 아침을 만나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말할 날이 있게 합니다. 소망이란 성경전체에 흐르고 있는 지속적인 주제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앞날의 계획하셨고, 그 계획은 상당한 시간을 거쳐서 이루어질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면서 오로지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을 믿고 떠났습니다. 소망의 결과를 목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누가 소망의 이유를 묻는다면 대답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 3:15) 사람에게는 불안과 절망이 수시로 찾아오지만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게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소망은 안정성을 부여해 줍니다. 소망 중에 사는 사람은 안정감이 있습니다. 안정이란 질서가 잡힌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의 안정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이 오셨습니다. 주위가 산만하다고 마음까지 미친 듯이 날 뛰면 어찌되겠습니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고 소망의 예수를 모시고 사십시다.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세요. “야곱의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세상에 소망을 두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란 우상과 다른 참된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궁지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참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데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을 열심히 살게 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 4:9-10)
“수고하고 진력한다”는 말은 열심히 산다 전력을 다한다. 힘닿는데 까지 애쓰는 것입니다. 모든 힘을 아낌없이 쏟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열심히 살게 되기 바랍니다.
소망은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신다”(13절)고 하셨습니다. 주안에 있는 자에게 소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자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은 하나님께 받을 상을 더 크게 합니다. 욥은 “고통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욥 6:10) 하였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기 바랍니다.
부활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자리라”(고전 15:19) 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닙니다. 사업 성공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행한 일로 하나님 앞에 내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위대한 현대사상가인 에리히 프롬은 인간 호모 에스퍼런스(Homo esperance)라고 정의했습니다. esperance란 라틴말로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희망을 갖고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까요?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시기를 원하노라”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성령의 능력은 바람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하고도 강한 힘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악령의 활동을 차단하고 실패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들을 소멸합니다. 성령은 꿈을 꾸게 하고 이상을 보게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숨결과 같습니다. 소생하게 하는 생동력입니다. 다시 살려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