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윤목사 (서울교회)

사도바울의 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에베소 6장의 ''종들아''라고 시작하는 이 말씀은 바로 이 노예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노예들 중에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 됨으로서 참 자유을 느꼈지만, 현실을 타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고 누명을 쓰고 손발이 절단되는 처지에 놓여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마침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옴으로써 비로소 참 자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네 섬기는 일을 용감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대접을 받기 위함이 아닌 섬기기 위해 왔듯이 그들에게 주인을 기쁨으로 섬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위대한 삶의 좌우명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Ⅰ. 내가 섬기리라(I serve)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도록 우리 가운데 임재하고 계십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섬깁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섬깁니다. 피차가 명령을 하고 존경을 받고 대접받는 것이 아닌 모두 섬기는 백성인 것입니다. 섬김에는 특정한 법칙도 없이 그저 기쁜 마음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하듯 다른 이를 기쁜 마음으로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Ⅱ. 이 좌우명은 우리 일에 영향을 미친다

이 좌우명은 우리가 하는 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혁명을 일으키듯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주님을 진실로 섬기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종하게 됩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 6:5) 굴종이 아닌 순종을 함으로써 기쁜 마음으로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는 거룩한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적당히 입술발림으로 하는 것이 아닌 두려워하고 떨며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오든 오직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감시 하에 됨을 압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눈가림 없이 성실함으로 임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상주시는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Ⅲ. 이 좌우명이 우리 영을 향상시킬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남을 섬기려고 하다보면 고난과 역경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는 사람은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오히려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지도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열심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앞에서 열심을 내면 그 밑의 사람들이 충성을 다하겠다며 따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물며 우리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이 세상에 오신 분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르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는 인색한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을 섬기는 심정으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주님께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하며 사람의 불신임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실패에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을 섬김으로 얻게 되는 특권들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본분을 기억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그분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살지 못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이를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소유물인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의 머리라. 머리와 몸이 붙어 있어야 살 수 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중에 그리스도를 섬기고, 우리의 이웃을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섬기는 성도님들 되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