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환목사 (명성교회)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 이스라엘 아합왕과 그의 부인되는 왕비 이세벨이라고 하는 분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그 때는 암흑의 시대였고 이스라엘 역대 왕 어느 시대보다 더 혼란하고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죄악이 관영한 때였습니다. 정말 악한 통치를 하는 시대였습니다.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있으면 그 나라가 영적으로 건강하고 평화롭고 아무시험이 없어야 하는데도 인류 역사에 최고의 선지자인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하던 그 때에도 죄악은 그만큼 또 무섭게 맹위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는데 무슨 죄악이 이렇게 관영하냐? 악이 왜 이렇게 많으냐?" 그런 말들 합니다. 교회가 부흥해도 그만큼 죄도 부흥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것만큼 마귀도 역사한다고 합니다. 단비가 많이 내리면 곡식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잡초도 많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감당하시던 33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이 거룩하신 분이 오셔서 이 세상을 다스릴 때에는 이 세상에 평화가 오고 낙원이 와야 하는데도 얼마나 헤롯 이라든지 빌라도 라든지 그 당시에도 종교가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이 세상이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천국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는 사람이 사는 이 땅위에는 언제나 괴로운 일들이 있고 악이 있고 불의가 성하고 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 사탄의 세력은 언제나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정말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만나면 그 가정에는 어려움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두 사람이 열심히 성실하게 살고 부지런히 살고 최선을 다해도 가정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잘 믿으면 좋아질 수는 있습니다. 좀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가정 불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줄어들 수가 있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민주주의로 그리고 공권력이 얼마나 살아있고 국민의 의식이 얼마나 향상되어 있습니까? 그렇다고 부정 부패가 없습니까? 악한 일이 없습니까? 우리보다 더 마약이라든지 범죄는 더 잔인하고 많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새로운 지도자가 나온다고 천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국민의 의식이 발전하고 또 정신적으로 건강하면 우린 모든 나쁜 면을 줄여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교통사고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범죄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를 없이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노력한다 할지라도 이 땅위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 전에는 가정은 가정대로 또 우리의 삶은 삶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또 교회는 교회대로 늘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인이란 무엇입니까? 이러한 시대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어려움을 감당해 나가는 지혜를 주시고 영적인 건강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적응하게 하시고 참고 기다리게 하시고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슬기롭게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치 못할 일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양을 양이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 그리고 너희는 이 세상에 나가서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롭게 살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희를 도와줄 터이니 너희는 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아라. 순간 순간을 이 악한 세상에 지혜롭게 살아라.''

이스라엘 백성은 엘리야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회개도 하지 않고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정말 말씀이 전해져서 깨닫고 회개하고 반성하고 잘 듣는 것만 해도 큰 축복입니다. 저희 교회가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것은 이 아무것도 아닌 부족한 종이 설교를 해도 모두 성도들이 잘 듣는다라는 거예요. 본래 설교를 들으면 조는 것이 정상인데 안 졸고 다 잘 들으시는 거예요. 99.9%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도 잘 들어 주시는지. 저는 잘 듣는 것이 겁이 납니다. 왜냐면 잘 안 듣고 졸면 재탕이라도 하겠는데. 항상 새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적당하게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한 주일 내내 설교 준비합니다. 하도 잘 들으시니까.
그런데 엘리야는 말씀을 전하는데 듣지도 않는 거예요. 안 들어주는 거예요. 오히려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엘리야가 시험 들었어요. 좋은 일 하다가 시험듭니다. 기도하다가 시험듭니다. 선한 일 하다가 시험들지요. 전달이 안되고 열매가 맺어지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한 일이에요.

오늘 엘리야는 사마리아에서 브엘세바까지 수백 Km를 사환 한사람을 데리고 그곳까지 내려갑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우리나라는 어디서 어디까지입니까?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입니다. 백두산 위에도 살 수 없고, 한라산이 마지막입니다.
이스라엘도 단은 북쪽 끝이고, 브엘세바는 남쪽 끝입니다. 남쪽으로 땅은 있습니다. 그러나 더 못 갑니다. 사막이에요.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지막 선이 브엘세바입니다. 지금 엘리야가 브엘세바 마지막까지 가는 거예요. 거기서 같이 가던 사환을 두고 하루종일 걸어서 한 40Km 광야 깊은 곳으로, 뱀이 있고, 전갈이 있고 사자가 있는 무서운 곳으로 몇 시간도 견디기 힘든 곳으로 갑니다. 죽을 결심을 하고 갑니다. 그럴 때는 어디든지 가게 되어져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면 사람은 빌딩에서 내려다보아도 무섭지 않고요, 한강을 보아도 무섭지 않고요, 아무도 없어도 무섭지 않아요. 살려고 할 때 무섭습니다. 오래 살수록 무섭습니다. 잘 살려고 할수록 무섭습니다. 생명을 사랑할수록 무섭습니다.
그러나 죽으려고 하면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이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사람,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사람입니다. 제일 무서운 거예요. 지금 엘리야가 거기까지 갔어요. 그곳에서 로뎀나무 그늘아래 광야에 있는 조그만, 보잘 것없는 나무 밑에서 누워서 하나님 앞에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산 것도 많이 살았습니다. 이제 저를 데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더 이상 할 것도 없고요 살 곳도 없고요 살 수도 없고요. 갈 곳도 없습니다. 저 데려가십시오.'' 그리고 데려가도록 기다립니다.
누웠는데 누가 데려가려고 온 것이 아니라 깨우는 것입니다. 눈을 떠보니까 천사가 왔어요. 성경에는 천사가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예가 많이 나옵니다. 사자굴 속에 들어가니 사자굴 속에, 풀무불 속에 들어가니 풀무불 속에 야곱이 잠을 잘 때는 잠자는 곳에, 아브라함에게는 손님이 되어 천사가 찾아오기도 하셨고 우리의 삶 속에 천사는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험한 세상에 천사들을 통하여 수많은 위기와 환란과 시험과 외롭고 걱정 근심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를 건지기도 하시고 도와주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입니다.
천사가 깨우며 일어나라고 왜 그러냐고 그래서 일어나 보니까 천사가 고기를 가져다 구워놓은 거예요. 그리고 물 한 병 가져다 놓았어요. 먹고 힘을 내라고 얼마나 힘드냐고 엘리야는 죽고 싶어 먼 길을 왔지만 정말 배가 고팠어요. 다 먹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길이 없어요. 이미 광야 깊은 곳까지 내려왔어요. 죽고 싶은 거예요. 또 누웠어요. 천사가 또 깨우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9:3-8입니다.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저도 이런 어려운 일을 누구보다 더 많이 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를 누구보다 더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한번은 닭고기가 얼마나 먹고 싶은지 돈도 없고 살 수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때에 닭고기가 먹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고 성도의 마음에 권고하셔서 아침에 닭을 잡아 가지고 온 거예요. 세상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소 한 마리 잡아오는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도 닭고기 먹고 싶어 기다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그 닭 한 마리 가져다 줄 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힘을 주시는 거예요. ''아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는구나. 내 먹고 싶은 것을 아시고 내 형편을 아시고 나를 도와주시는구나''.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지금 먹을 것이 많아서 힘내는 것이 아닙니다. 겨울 물 한 병이요. 떡 한 조각입니다. 엘리야가 은, 금이 쌓여서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숯불에 구운 떡 하나이지만은 이것이 엘리야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배부른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가 가야할 길에 힘이 되어 주시는 거예요. 능력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 때문에 일어나서 먹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항상 세상적인 일로 먹고 마시고, 취하고 잠들지만 우리는 자던 잠도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안 된다. 내가 이러면 안 된다.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걸어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The Calling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위대한 것입니다. 짐승처럼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놀라운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어졌습니다. 저희들이 어렸을 때 또 목회를 하던 6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 어머니들은 참으로 사명 때문에 못 먹고 못 잡수셨지만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가정마다 행복하고, 웃음꽃이 피어나고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건강했습니다. 어머니들이 사명을 가지고 가정을 지켜주었습니다. 어머니라고 하는 어미 母자는 자녀에게 젖을 먹이는 것을 어머니로서 한문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여자를 다른 면으로 아름답게 보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면으로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웃집에서 부를 때도 누구 어머니, 또 남편이 부를 때도 누구 엄마, 저 같으면 우리 애들의 이름인 솔아, 하나야 이렇게 불렀습니다. 어머니로서의 이름, 삶, 자리가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어머니의 행복은 자녀에게 젖을 먹이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한복이 투피스인데도 상의가 짧은 것은 왜 그렇습니까? 다른 나라 옷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 옷이 그런 것은 빨리 젖을 꺼내라고, 쉽게 꺼내어 아이들을 먹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언제나 찾을 수 있고 언제나 아이들에게 열려있는 가슴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남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이것이 주어질 때 자녀는 행복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건강도 물론, 자녀의 건강만이 아니에요. 가정의 건강, 가정의 행복이에요. 어머니의 행복이에요.
가장 훌륭한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이것을 다 사용하는 거예요. 평생을 그래서 모든 어머니들은 다닐 때에 이것을 다 내어놓고 다녔어요. 그것은 영광이었어요. 그러나 간혹가다가 예쁜 젖이 보이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여자예요. 자녀를 위해 쓰여지지 아니하는 젖은 모두가 볼 때 좋지 않게 보는 거예요. 모든 어머니들은 일을 할 때나 물을 이고 다닐 때 자랑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다녔어요. 이게 영광이에요. 사명이에요. 모든 어머니들은 그 기쁨으로 사는 거예요. 주름이 졌지만 모두가 용기가 있었어요. 못 먹으면서. 저희 가정만 해도 어머니가 딸을 많이 낳으셨어요. 못 잡수시는 거예요.
그러나 어머니의 힘이 피곤치 않고 늘 솟아나는 힘이 뭐냐? 자녀들에게 먹이면서 자녀들을 위해서 다 주면서 늘 힘을 얻는 거예요. 어머니의 힘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왜 어머니들이 이렇게 피곤해 합니까? 왜 어머니들이 이렇게 지쳐 있습니까? 사명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쓰여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젖은 짝젖이어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젖을 먹일 때 양쪽을 거의 먹이지 않아요. 한쪽만 먹여요. 왼쪽 젖을 먹여요. 안고 먹이면서 한 젖은 가지고 놀고 한쪽은 먹는 거예요. 모든 어머니의 젖은 양쪽이 똑같은 것이 아니라 왼쪽 젖이 흘러내려야 돼요. 그래야 그것이 훌륭한 어머니예요. 그래서 며느리를 볼 때는 그 어머니의 젖을 보고 며느리를 데려왔다고 해요. 그래야 그 가정에 좋은 자녀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거예요.

며칠 전 신문에 보니까 유방확대 수술을 했다가 누가 눌러서 터졌다는 안타까운 기사가 나왔습니다. 오늘 어머니도 어머니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다 방황하고 타락하고. 남편도 다 다른 길로 가고요, 본인들도 다 허전해 가지고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고 이것이 오늘 온 사회의 불안이요. 오늘 이 나라의 모든 흐트러진 윤리, 도덕, 모습들이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명을 다해야 가치 있고, 아름답고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거예요. 제 각각 사명으로 돌아가야 민족이 살고 세계가 살 수 있는 거예요. 들에 있는 꽃 한 송이도 제 사명을 다할 때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야합니까? 엘리야가 힘을 얻어서 호렙산으로 올라가듯이 하나님의 종들은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되고, 우리 한 분 한 분이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인간의 행복을 인간의 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동의보감을 남긴 허준을 우리가 TV를 통해서도 보고 우리가 잘 압니다. 1546년부터, 1615년까지 살았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 내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명의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이렇게 훌륭하게 된 것은 스승을 잘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인체해부의 최고의 명의였던 스승 유의태의 제자가 바로 허준입니다. 유의태는 괴질인 반의에 의해 이 땅을 떠나면서 사랑하는 제자 허준에게 자기의 시신을 기증합니다. 나를 꼭 실험하라고, 허준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반드시 자기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쓸 것을 권고합니다.
그래서 허준은 스승의 시신을 안고 밀양 천왕산에 들어가서 석굴 속에, 한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굴속에 들어가서 3일 동안 해부를 합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을 다 열어서 다 해부해서 낱낱이 기록하고 하나하나를 보존하여 남기는 것입니다. 해부가 끝난 후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을 때 허준은 ''나는 드디어 사람을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시계를 고치는 사람이 시계 안을 보지 않고 어떻게 고치겠어요. TV를 고치는 사람이 TV 안을 모르고 어떻게 고치겠어요. 허준은 드디어 사람 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스승님을 매장하면서 그는 새롭게 태어납니다. ''천지신명과 스승님은 제 맹세를 들어주십시오. 스승님이 베푸신 은혜를 잠시라도 잊으면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또 의원이 되는 길을 괴로워하거나 병든 자를 구하는데 게을리 하거나 약과 침을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탐하거든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 드립니다.

실력이 위대하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좋은 환경이 위대하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자기의 길이 무엇인 줄 알고 그 길을 고고하게 최선을 다하여 힘을 얻어 끝까지 나아가는 자가 위대한 자입니다. 허준이 빌딩을, 재산을 많이 남겼더라면 허준이라는 존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취를 감췄을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주어진 사명을 다 하는 사람은 별과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어부입니까? 농부입니까? 조각가입니까? 목수입니까? 운전기사입니까? 자기의 삶에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사명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이 땅위에 가장 큰 자요. 성공한 자요. 위대한 자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이런 것에 대해 많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목사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사명을 가지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몸도 마음도 생명도 다 바치고, 세상은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양떼를 사랑하고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목자입니다. 이것이 선한 목자입니다.

오늘날 현실은 목회자도 변질되었습니다. 편한 것 좋아하고 대접받는 것 좋아하고 명예를 너무 따라가고 온갖 세상, 부귀, 영화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양떼는 돌보지 않고 잘 살고 돈 많은 사람에게 목사가 유혹을 더 많이 받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목회자들의 자동차도 너무 화려하고 생활도 너무 화려합니다. 저부터 깊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제자리로만 돌아가면 이 나라가 좀 더 좋은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죄악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상에 낙원이 온다는 게 아닙니다. 가정이 무슨 천국같이 되는 가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명을 다할 때 어려움이 있어도 이길 힘을 주시고 어려움 속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엘리야야 일어나라! 앞으로 나아가라!
나아가야 합니다. 가야할 길로 가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경 한 곳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에스겔 34:1-6 말씀입니다.(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멧부리에 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사명입니다. 더 잘 살고 더 부유하여 태산같이 은, 금을 쌓고 먹을 것을 쌓아 놓는 이런 나라가 바람직한 나라가 아닙니다. GNP가, 수출만 세계 12위를 다투는 이런 나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서 내 사명이 무엇인가? 그 사명을 쫓아 사명 속에 행복을 누리고 사명 속에 우리의 기쁨을 찾아야 이 민족이 살 줄 믿습니다.
사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유럽의 박물관에 가 보면 한국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유럽에 와서 그 작품들 앞에 서서 감상하고 메모하고 스케치하는 것을 보면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어른이든, 아이든, 어떤 자리든지 너무 아름답습니다. 어린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며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면서 악기점을 드나드는 것 너무 아름답습니다. 복싱 선수가 글러브를 들고 다니는 것 너무 아름답습니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부귀 영광이 아닙니다. 흥청망청 대며 길거리를 헤매는 나라가, 힘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제각각 자기 길로 나아가서 사명을 다할 때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고 복된 사회고 축복된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화가들이 돈이 많아 그림 그린 사람들은 없습니다. 돈 벌기 위해서 작곡하고 하는 위대한 인물은 옛날에는 없었습니다. 모두 가난하였습니다. 궁핍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최선을 다하여 그림을 그렸을 때 이 분들의 그림도 살고 이름도 살고 오늘날까지 그들의 생애는 온 인류의 사랑을 받는 작가들이 되었습니다. 다른데 눈 돌리면 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세계의 것을 다 가질지라도 우리는 세상에 왔다가 가면서 주신 사명 다하고 가려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중국에 지금부터 2200년 전의 인물인 진시황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진시황제는 세계를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아서 만대에 외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자기의 영광을 자자손손 누리고 불로초를 구해다가 영생 장수하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궁궐을 얼마나 잘 지었는지 이 궁궐 이름이 아방궁입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아방궁이라 하는 것은 진시황이 지은 궁궐입니다. 궁궐이 얼마나 큰 지 성안의 궁궐이 300개이고 성밖의 궁궐, 경복궁 같은 것을 400개를 지었습니다. 본체인 궁궐은 얼마나 크냐 하면 동서가 800m요, 남북이 150m요 이층으로 지어서 그 위에 1만 명이 앉아서 만찬을 베풀 정도로. 지금 잠실에 있는 운동장만하게 어머어마하게 지었습니다.
진시황은 그것만 지은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들어갈 지하 궁궐을 지었는데 몇 년 전에 발굴되어 저도 거기 다녀왔습니다. 지하도 지상과 똑같이 만들어서 그 안에 만조백관이 있고 마차가 있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라 해서 인어불을 켜 놓고 그 안에 은, 금, 보화를 얼마나 가져다 놓았는지 규모가 엄청납니다. 여러분. 나중에 지하 궁전을 발견하고 물건을 옮기는데 30만 명이 30일을 걸릴 정도로 그 안을 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군대들이 서서 자기를 지키도록 만들었어요. 그러나 진시황은 40대도 못 넘기고 죽고 그의 아들 대에 가서는 나라까지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거대한 성이. 다 무너지고 불타는데 만 수십 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명을 떠나서 제 아무리 무엇을 지을지라도 헛되다고 말합니다. 어린아이 하나라도 사명을 가지고 기르면, 그 사명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되고 하나님이 그와 그의 자손, 그 뿌리를 보존하시고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엘리야가 돈이 많아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 있어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알아주어서 성공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힘들고 피곤할 때 하나님이 주머니에 툭하고 돈을 준 것이 아니라 겨우 물 한 병, 떡 한 조각을 주었지만 거기에서 힘을 얻고 호렙산까지 나가서,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은혜를 받아 그 시대와 민족 앞에 훌륭한 선지자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사명을 좇아 열심히 나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