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수목사 (양곡교회)

땅은 얼마나 정직한지 모릅니다. 땅에 고구마를 심으면 반드시 고구마를 맺고 땅콩을 심으면 땅콩을 맺습니다. 토마토를 심으면 토마토가 열리고 사과를 심으면 사과가 열립니다.
그리고 부지런한 농부의 논밭과 게으른 농부의 논밭은 차이가 납니다. 부지런히 잡초를 뽑아주고 거름을 주며 가꾼 농부의 논밭은 풍성한 곡식을 맺으나 억지로 농사를 지은 게으른 농부의 논밭은 그 곡식이 농부의 게으름을 말해줍니다.
땅은 정직합니다. 땅은 심는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자연 법칙에 따라 땅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스위스는 어디를 가나 초장이 아주 푸르고 가지런합니다. 포도원이나 옥수수 밭이나 그 어떤 농토나 가지런히 잘 가꾸어져서 보기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배고픈 사람들이 많은 헝가리에 가보면 농장마다 잡초가 가득합니다.
그 땅, 그 들판이 그곳 사람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땅을 지으시고 자연 법칙을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처럼 사람을 지으시고 인간 사회를 다스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자연 법칙을 다스리시는 분과 인간 사회를 다스리시는 분이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사회도 땅과 똑같습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위치, 내가 받는 대접,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내가 심은 대로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프로 골프 경기를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세계적인 한 골프 선수가 자기가 친 공이 맞지 않으니 골프채를 집어 던지며 마구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해설자가 "자기가 잘못해 놓고 저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왜 나를 몰라줘!"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네가 잘못해서 그렇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곡식은 심은 그 자리에서만 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창원에서 심었는데 서울에서 거두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심었는데 캐나다에 가서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에서 심었는데 서에서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심고 자식이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멀리 보아야 됩니다.
벼를 심으면 1년 만에 거두지만, 사과나무를 심으면 오래 있다가 거둡니다. 그런데 사람은 100년이 지나야 거둔다고들 합니다.
우리가 거두는 경우는 다르지만, 결국을 보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아비아달이 누구입니까?
그는 그 나라의 최고 제사장입니다. 다윗 왕 일생의 제사장으로 다윗 왕 곁에서 다윗 왕을 도우며 기도한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 왕에게 숙청 당합니다.
솔로몬 왕이 아도니야를 죽인 후 자기 정적들을 숙청하는데, 그때 아비아달도 숙청합니다. 보복 정치는 하지 않아야 된다고 하지만, 솔로몬 왕은 보복 정치를 했습니다. 한 번 파인 골은 허물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혁명을 모의한 아도니야와 아비아달, 그리고 요압 세 사람을 그냥 두면 결국 걸림돌이 되어 솔로몬 왕국이 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솔로몬 왕은 그들을 숙청한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아도니야를 언제 숙청할까 하고 있는데, 아도니야가 거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도니야가 아버지 품의 여자였던 아비삭을 달라고 하자 솔로몬 왕이 차제에 자기 정적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비아달은 죽이지 못했습니다. 아도니야와 더불어 혁명을 모의한 아비아달이 죽어 마땅하나 일생 자기 부친 다윗 왕에게 충성한 것이 너무 귀해 솔로몬 왕은 그를 차마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윗을 위해 애썼으며 함께 환난을 당했습니다. 다윗을 따라 피난을 가서 생사를 같이했습니다. 아비아달이 자기 아버지께 심은 것을 생각해서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죽이지 못하고 고향으로 쫓아보냈습니다.
"아비아달, 너는 죽어 마땅하나 내 아버지께 충성한 것 때문에 살려주니, 고향에 가서 조용히 살아라."
그러나 요압은 사정없이 죽임을 당합니다. 요압은 자기가 죽을 차례가 된 것을 알았을 때 하나님의 장막에 가서 제단 뿔을 붙잡고 이제 죽나 저제 죽나 하면서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젊어서는 사서라도 고생을 해야 되지만 늙어서는 편안해야 되는데, 요압은 늙어서 거친 땅에서 살았습니다. 솔로몬의 정적이 되어 밀려난 요압은 변방의 오두막 같은 집에서, 거친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자기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요압은 혹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을까 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제단 뿔을 붙잡고 덜덜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요압을 용서하지 않고 쳐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좋지 않아 요압에게 나오라고 하니 요압이 거기서 죽겠다고 했습니다. 늙은 장군 요압은 그의 말대로 그곳에서 비참하게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그리고 거친 땅에 묻혔습니다.
요압 장군은 다윗 왕의 누이의 아들이니 다윗 왕의 조카로 왕족입니다. 그런데 역적이 되었습니다. 자손 대대로 솔로몬 때나 르호보암 때나 역적의 자식들로 기를 펴지 못하고 살다가 사라진 가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압이 그렇게 죽은 것은 심은 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다윗 왕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윗 왕과 평화 회담을 하고 돌아가는 아브넬 장군을 왕의 허락도 없이 죽였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면 아브넬이 군대 장관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봐 아브넬을 불러내어 암살하듯이 죽였습니다. 또 다윗 왕이 아마샤 장군을 군대 장관으로 세우니 요압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아마샤를 찾아가 "형님!"하며 입맞추는 척하다가 칼로 아마샤의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 배를 찌른 후 칼을 그냥 뽑은 것이 아니라 배 안에서 휘저어 창자가 다 빠져나오게 했습니다.
요압은 아주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그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쳐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일생 올곧은 장군으로 다윗 왕에게 충성하고 솔로몬에게 충성한, 신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브나야는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장관이 되고, 역시 세월 따라 상황 따라 바뀌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 나단 선지자도 귀한 선지자가 되고, 사독 제사장은 국가를 맡는 제사장이 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흥하고 망하고, 일어서고 꺼집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시는 대로 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역사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보면, 결국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루 하루를 잘 심어 나중에 잘 거두는 복 있는 자, 하루 하루를 복 있게 심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잘 심어야 합니다.
아도니야는 다윗 왕의 아들로 왕자입니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존귀함에 처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존귀함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무덤을 팠습니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존귀한데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왕으로 계시는데 스스로 왕이 되니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아버지가 왕으로 계시는데,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내가 왕이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비삭이 아버지 품의 여자였던 것을 온 세상 사람이 다 아는데 그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는 어리석은 자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아도니야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세상의 그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얼마나 소중한 나인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귀한 것을 심어 스스로 무덤을 파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조금 더 귀하게,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되어 가는 길로 나를 심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인들이 자신의 몸을 위해 거울 앞에서 30분, 1시간 동안 화장도 하고, 피부 관리도 하고, 미용 체조도 하면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피부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피부가 훨씬 더 좋아지고 예뻐집니다. 미용 체조를 하는 사람은 미용 체조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몸매가 더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 얼굴, 그 몸은 결국 썩습니다. 아무리 투자해도 결국 시체가 되고 썩습니다. 몸을 위해 구하는 일은 결국 썩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얼굴 관리나 몸 관리도 어느 정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 영원히 살아갈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더 힘써야 됩니다. 화장대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성경 앞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야 되고, 내 몸을 위해 일하는 시간보다 내 영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날마다 자기에게 잘 심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는 내가 하는 일을 잘 해야 됩니다.
브나야와 사독이 곁눈질하지 않고 장군으로서 제사장으로서 자기 일을 올곧게 하니, 빛나는 장군으로서 빛나는 제사장으로서 끝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을 열심히 성실히 하면 그 일이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될 것입니다.
잠언 22장 29절에 말씀하십니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언 13장 4절에도 말씀하십니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여러분, 비행기를 타고 싶고 좋은 차를 타고 싶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꿈이 많아도 게으른 사람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일하면 성공이 따라오기 때문에 부지런한 자는 원하는 것을 다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일에 자기를 잘 심어야 합니다.
한 중소기업 사장이 부도 직전에 처했습니다.
''어쩌다가 내가 이리 되었는고?''
그런데 설교를 듣다가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 내 회사에 정말 나를 심어보자.''
그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공장에 뛰어들어가서 근로자들과 함께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원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원들도 사장님과 함께 일하니 힘이 나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그 중소기업이 부도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든든한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자기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차범근 선수가 해야 하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축구입니다. 축구가 그의 일입니다. 그는 축구를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여행할 때도 다른 선수들이 백화점에서 쇼핑할 때도 그는 필드에서 열심히 계속 뛰었습니다. 자기 일에 열심인 그가 독일에서도 영웅이 되어 우리 한국의 이름을 빛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를 마틴 루터 이후의 최고 전도자라고 독일 신문들이 대서 특필했습니다. 자기 일을 잘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도 빛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하는 일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점원이면 점원으로서, 공무원이면 공무원으로서 교육가이면 교육가로서 다른 사람이 따라오지 못할 실력을 쌓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수라면 학생들이 깜짝깜짝 놀랄 강의를 해서 "저 교수님이 누군지 알아? 양곡교회 집사님이란다."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8세 여학생인 카라우드는 돈이 없어서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클리블랜드의 한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 쏟았습니다. 마치 주님을 모시듯 친절을 베풀며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 82세 된 클라스텍이라는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아침마다 오셔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카라우드는 마치 친할아버지를 대하듯 손을 잡아 드리며 할아버지께 따뜻이 대해 드렸습니다. 1년쯤 지난 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카라우드에게 7억을 유산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1년 간의 친절로 7억을 받게 된 그는 공부도 하고 앞길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에 기회는 항상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성실히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회를 주십니다. 억울한 일이 없습니다.
야곱은 주인으로부터 열 번이나 품삯을 사기 당했지만, 열심히 일했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견디면서 일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얼굴은 새까맣고 거칠었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야곱의 품삯을 악한 주인은 열 번이나 사기 쳤지만, 아닙니다. 야곱이 20년 간 사기 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20년이 되는 말에 그를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147년 간 살았습니다. 그러니 야곱의 인생에서 사기 당한 그 20년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총리의 아버지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은 불공평하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사장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상관없습니다. 내가 내 앞길을 성실하게 심으면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잘 심어야 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될 것을 아도니야가 알았을 때 형제로서 솔로몬을 사랑하고 세워 주었으면 죽지 않았습니다. 또 아버지 다윗 왕이 늙어서 힘이 없었을 때 아들로서 아버지 다윗 왕을 더 잘 보좌하고 아버지에게 힘이 되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연로하고 힘없는 아버지를 밀어내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불효하다가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1-3)
아도니야는 효를 심지 못하고 불효를 심었다가 죽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제일 잘 되는 길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귀찮아하는 것은 복을 귀찮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기 집에 계시는 것이 부담되는 사람은 복이 부담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축복도, 건강도, 성공도 부모님을 따라다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보름만 집에 계셔도 입술이 터지고 피곤한 사람은 복이 자기 집에 보름만 있어도 입술이 터질 사람입니다.
특별히 며느리들은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며느리들이여, 따라해 보십시오.
"시어머니는 복 줄이다. 복의 파이프다."
시어머니가 집에 오실 때 ''복의 파이프가 오시는구나.''하고 시어머니를 환영하면 복이 쏟아지게 됩니다. 시어머니가 4km 밖에서 택시를 타고 오시는 것만 알아도 부담을 느끼는 며느리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 누구도 절대로 고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의 법칙은 아무도 바꿀 수 없습니다.
효도하면 잘 됩니다. 성공합니다. 불효하면 아도니야처럼 망합니다.
가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효도입니다. 특별히 연세가 드신 부모님일수록, 힘이 없는 부모님일수록 더 잘 해드려야 합니다.
잠언 23장 25절에 말씀하십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어떻게 해 드리면 부모님이 기뻐하실까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그리고 자녀에게 잘 심어야 됩니다.
가정은 시험관 같습니다.
유리관에 쥐 한 마리를 넣고 실험하는 것을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담배를 피워 그 연기를 흡입해서 유리관에 빨아낸 다음 뚜껑을 닫고, 또 담배를 피워 연기를 흡입해서 유리관에 빨아낸 다음 뚜껑을 닫고,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니 유리관 안의 쥐가 죽었습니다.
갓난아기가 있는 방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계속 피우면 그 독이 어디로 다 가겠습니까?
가정은 시험관 같습니다. 내가 뿜는 대로, 내가 심는 대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가정을 위해서 선하고 귀하고 복된 것을 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께 밤 10시 30분부터 11시까지 저희 가족을 위해 엎드려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아침부터 집안에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가정을 위해 축복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로, 특별히 새벽기도로 축복을 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특별히 교회에 잘 심어야 합니다.
교회는 밭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교회는 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 합시다.
"교회는 밭이다."
교회에서는 정말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가 교회를 너무 너무 사랑하여 성전을 지을 때 7마지기뿐인 자기 땅 전부를 바쳤습니다. 그래도 가족이 굶어 죽지 않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백낙준 박사는 한국의 별이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오늘도 교회에 가셔서 청소를 하셨답니다. 팔순이신 지금도 늘 교회에 가셔서 청소를 하시고 심부름을 하십니다. 그 복을 저희가 다 받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눈이 교회에 계십니다.
누가 예배를 드리는지, 누가 기도를 드리는지, 누가 충성을 하는지 다 보고 계십니다.
교회에 땀과 시간과 물질을 잘 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회와 나라에도 잘 심어야 됩니다.
어제 차를 주차시키면서 보니, 주차장 여기 저기에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꽁초가 부숴져 결국 자기 코로 다 들어가게 되는데, 왜 그렇게 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차장이나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의 집에 어떻게 복이 임하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내 마을에 도움이 될까?'', ''내가 어떻게 해야 내 나라에 도움이 될까?''하며 사회와 나라에 선을 심는 그 가정에서 사회와 나라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나오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땅에서 심은 것을 하늘에서도 거두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결국은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한 독일인이 해외에 나가 우유를 팔아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돈을 금으로 다 바꾸어 가방에 가득 넣어 가지고 금의환향을 하고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이제 독일에 가서 잘 살리라.''하며 잠시 한눈을 판 순간, 원숭이 한 마리가 그 가방을 들고 돛 위로 올라갔습니다. 원숭이는 가방의 지퍼를 열어 금덩이를 하나 꺼내더니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를 꺼내어 그에게 던졌습니다.
"원숭아! 제발, 제발…."
그가 소리치며 애원했지만 원숭이는 계속 금덩이를 꺼내어 하나는 바다에, 하나는 그에게 던졌습니다. 결국 금덩이는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독일인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맞아. 이게 공평해. 내가 판 우유의 절반은 물이었으니."
결국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잘 심고 잘 거두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