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 (경향교회)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하여 자신의 죽음이 다가옴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갖고 있던 큰 사업체를 자기 아들 중 어느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결정하기 위해 계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세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는 세 아들에게 돈 10센트씩을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오늘 저녁까지 내가 거처하고 있는 이 큰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구해 오너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자 먼저 맏아들이 돌아왔는데, 그는 양옆구리에 커다란 건초더미를 잔뜩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10센트를 가지고 싸고 부피가 많은 건초를 사서 그 큰방을 가득 채우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건초더미로는 그 큰방을 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10센트를 가지고 역시 부피가 큰 솜뭉치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솜뭉치로도 그 큰방을 다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셋째 아들이 돌아왔는데, 그는 손에 아무것도 사 들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상히 여긴 그 아버지는 왜 빈손으로 돌아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막내아들은 주머니에서 양초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르기를, "아버님, 아버님이 저에게 주신 10센트로 무엇을 사서 아버지의 큰방을 가득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며 시장 안을 걷고 있는데, 먹을 것을 달라고 구걸하는 배고픈 걸인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주신 돈에서 그 아이들에게 조금씩 먹을 것을 사 주었는데 9센트가 들었습니다. 남은 돈 1센트를 가지고 고민하며 생각하던 끝에 저는 양초 한 자루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마친 막내아들은 곧 빈방으로 들어가 그 양초의 심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그 캄캄하고 비어있던 큰방은 마침내 환한 빛으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는 변호사를 불러, 자기의 사업체를 모두 막내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하게 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셋째 아들의 지혜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삼상 18:5, 14, 15, 30).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사울의 왕자 요나단의 다윗을 향한 우정, 또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우정은 실로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주는 축복의 촛불과도 같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새 다윗 왕조의 등장을 예고해주는 축복의 우정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 번 설교에 계속해서 ''참된 우정''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사울 왕조의 역사가 길보아산 전투에서 사울 왕과 왕자 요나단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삼상 31: ).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로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왕권이 주어졌습니다. 헤브론에서 등극한 다윗은 정말 매사에 지혜롭게 행하는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죽은 친구 요나단과 맺은 우정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요나단과 생전에 맺은 우정을 사후에도 연속시키는 불변의 우정이었습니다.

Ⅰ. 맹세의 우정을 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맹한 친구 요나단과의 맹세에 기초한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안 요나단은 들에 숨겨둔 친구 다윗을 찾아가서 그 아버지의 뜻을 알렸습니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요나단에게 세 번 절을 하고 피차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만 같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윗이 더욱 심하게 울었다고 하였습니다(삼상 20:41). 바로 그때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고 하였습니다(삼상 20:42).
다윗이 왕이 된 후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하였습니다(삼하 9:1).
이 두 장면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바로 저들 생전의 우정이 사후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Ⅱ. 맹세의 우정은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애도에서 나타났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블레셋의 침략을 막다가 길보아산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삼상 31:8-9).
이 비보를 접한 다윗은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삼하 1:26).
그는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비보 앞에 해가 저무는 저녁까지 슬퍼하며 울고 금식했다고 하였습니다(삼하 1:12). 또한 그는 ''활노래''라고 이름지어진 슬픔을 노래한 애가를 지어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하고, 책에 기록하여 친구 요나단의 죽음을 조상하게 하였습니다(삼하 1:17-18).
다윗은 요나단을 향하여 「내 형 요나단이여…」라고 부름으로 요나단을 향한 애끓는 우정의 감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의 사랑, 그대가 나를 사랑함 때문이지, 내가 그대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석가 랑게는 사무엘하 1장 26절 말씀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다윗과 요나단의 맹세의 우정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후에도 끊어질 줄 모르고 불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정말 저들의 우정은 사랑이란 날개를 달고 중단이나 단절을 모르고 날고 있지 않은가!

Ⅲ. 맹세의 우정은 보은(報恩)에서 나타났습니다.

사무엘하 9장 1절에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은총''이란 단어 ''헤세드( )''는 ''사랑'', ''친절'', ''인자'', ''은혜''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다윗의 질문에 아직 살아남아 있던 사울의 종 시바가 다윗에게 불려왔습니다.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는데, 므비보셋은 두 발이 다 절뚝발이라고 하였습니다(삼하 9:3, 13). 그 이유는 길보아산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모가 그를 안고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절뚝발이가 된 것입니다(삼하 4:4).
다윗은 사울의 종 시바에게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 앞에 나온 므비보셋은 다윗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삼하 9:6).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삼하 9:3). 그리고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하였습니다(삼하 9:7). 지금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그 아비 요나단으로 말미암는 은총을 베푼다고 하였습니다.
그 은총이 무엇인가?
되돌려주는 은총입니다. 도로 주는 은총입니다. 사무엘하 9장 7절 중에 「도로 주겠고…」라고 한 말이 중대합니다. ''도로 준다''는 말 ''훼시브''는 원래 위치로 되돌아오는 것, 원상복구를 뜻합니다.
다윗이 친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되돌려준 원상복구의 은혜가 무엇인가?
첫째, 정신적 복구의 은총입니다. 사무엘하 9장 7절에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더 이상 정치적인 압력이나 공포감에서 시달리지 않을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주는 은총입니다.
둘째, 신분복구의 은총입니다. ''되돌려 준다(도로 주다)''는 말의 큰 의미는 정신적, 명예적 용기를 재생시켜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소생(시 19:8), 복직(창 41:13), 회복(왕하 14:25) 등의 뜻입니다. 므비보셋의 경우 잃어버린 왕자의 신분을 회복시켜 줌을 의미합니다. 잃어버린 명예를 도로 찾아줌을 의미합니다. 사무엘하 9장 7절에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11절에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고 하였습니다. 13절에도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물질적 복구의 은총입니다. 사무엘하 9장 7절에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재산을 다 므비보셋에게 주고, 사울의 종 시바로 하여금 다시 관리하도록 명하였습니다(삼하 9:9-10).
넷째, 권위복구의 은총입니다. 이는 종들까지 모두 본 주인에게 복구시켜주는 은총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늙은 종 시바를 위시하여 그의 열다섯 명의 아들과 또 그 시바 밑에 수종들던 종 20명을 모두 본 주인 므비보셋의 소속으로 되돌려주었습니다(삼하 9:9-11).
실로 매사에 지혜롭게 행하는 지도자 다윗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생전에 저들이 세운 맹세의 우정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삼상 20:14-15, 41-42).
다윗이 죽은 친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향하여 ''베풀리라''(삼하 9:1), ''베풀고자''(삼하 9:3), ''베풀리라''(삼하 9:7), ''도로 주겠고''(삼하 9:7), ''주었노니''(삼하 9:9),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삼하 9:7, 11, 13)고 연발하고 있습니다.
실로 단절되어 버리거나 없어져 버리거나 죽어버릴 수 없는,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우정의 맹세였습니다. 생전의 우정이 사후에도 계대적으로 이어지는 변함 없는 우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텐포드 대학에 다니던 두 학생이 학자금 때문에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파데레브스키(Paderewski)를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등록금을 해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파데레브스키에게 공연료로 2000$을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연주회에서는 예상과 달리 총수익금이 1600$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등록금은커녕 약속한 공연료 2000$에서도 400$이나 적자가 났습니다. 저들은 하는 수 없이 연주회 수익금 1600$ 전부와, 나머지 400$은 앞으로 갚겠다는 서류를 만들어 파데레브스키에게 보냈습니다.
그 후 이 사실을 안 음악가는 가난한 학생들로부터 받은 1600$을 되돌려주면서 저들을 격려하고 학비에 보태 쓰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폴란드의 음악가 파데레브스키는 폴란드 공화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전 유럽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폴란드 대통령 파데레브스키는 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에 식량원조를 요청하기로 결심하고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식량원조 요청서가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미국으로부터 뜻밖의 많은 식량이 폴란드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급한 상황이라 일단 그것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난 파데레브스키 대통령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후버(Herbert Hoover; 미국 31대 대통령)를 찾아 정중하게 감사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후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식량이 필요한 것 같아 보내드렸을 뿐입니다. 기억이 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어렵게 대학에 다니던 시절, 당신은 제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정말 곤경에 처해 있었거든요."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폴란드의 대통령이 되어 있는 자신을 청하여 연주회를 열고, 그 수익금으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고자 했던 오래 전의 그 두 대학생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후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파데레브스키 대통령은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파데레브스키로부터 도움을 받은 후, 후버는 항상 그때 그로부터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세계 역사가 바뀌는 격랑 속에서도,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파데레브스키로부터 받은 1600$의 고마움을 후버는 결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때가 왔을 때 ''보은(報恩)''하는 감사를 행했던 것입니다.
참된 우정! 그것은 불변입니다.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우정! 그것은 맹세의 우정을 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요나단의 죽음 앞에 다윗의 애도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보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죽은 친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베푸는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요나단을 인한 은총이었습니다. 그 은총은 되돌려주는 은총이었습니다. 바로 평안의 은총, 신분복귀의 은총, 물질복구의 은총이었습니다.
이 은총 앞에 머문 므비보셋의 감은(感恩)을 보십시오. 므비보셋은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하면서 감사, 감격하였습니다(삼하 9:8).

※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생전의 우정, 사후에도 계속되는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친구 예수께서 우리에게 나타낸 생명의 우정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개 같은 우리 죄인을 친구로 삼아주었습니다. 죽음을 두고 십자가로 맹세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도로 찾아 주었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도로 찾아주었습니다. 마음의 평안도 도로 찾아주었습니다. 모든 육신적 축복까지도 도로 찾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친구 예수를 위해 30배, 60배, 100배의 보은적 삶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