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목사 (대흥교회)

룻기서는 전체가 4장, 85절로 이루어진 짧은 책입니다. 룻기의 시작은 1:1에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라고 시작됩니다. 매우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시대라는 뜻입니다. 사사시대의 대표적 현상이 있습니다. 태평성대를 이루면 타락하고, 고통을 겪게 되면 회개하고, 사사를 보내어 회복시키시고 태평성대를 이루면 또 타락하고……. 의 반복이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흉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룻기서를 보면 엘리멜렉이라는 가정이 소개되는데, 그는 베들레헴에 살다가 흉년을 맞게 되자,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를 찾기 보다는 자신의 방법으로 흉년을 피해보고자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가버린 가정입니다. 그곳에서 엘리멜렉이 죽고, 그의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이 죽음으로 그 집은 3 과부만 남았습니다. 시어미과부 나오미와 두 자부 오르바와 룻입니다.
룻기 1장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말씀하는 것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흉년 중에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풍성한 이방의 땅을 선택함으로 실패했다는 것, 두 자부 오르바와 룻이 처음에는 시어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가 결국은 오르바는 모압을 선택해서 헤어졌고,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와 그 하나님을 선택해서 동행하여 베들레헴으로 오게 되었고, 그의 선택은 훗날 이스라엘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의 증조모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되는 축복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오늘날 무엇보다 잘 감당해야 할 것이 “선택”입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 선택을 잘 못해서 고통과 후회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적어도 선택에 관한한 분명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선택한 일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하고 선택한 일에 대해서 후회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선택하면 후회뿐입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생활도 이 교회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시는 분은 정말 참된 행복을 놓치고 살아가는 분입니다. 부부에 대해서도 후회하고 살아가는 분은 인생의 행복을 놓치고 살아가는 분입니다. 어쩌면 룻보다는 오르바의 선택이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훨씬 잘한 것 같습니다. 오르바는 좋은 신랑을 만날 것이고 , 룻의 길은 험하고 험한 길을 걸어야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룻의 선택은 영원한 축복을 받을만한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 땅은 훨씬 기름지고 풍성한 땅이기에 잘 한 것 같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모든 결정의 선택을 택합시다. 그리고 선택한 길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후회하지 않는 축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나눌 룻기 2장에서 말씀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만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는 선택과 더불어 “우리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줄로 믿습니다. 세리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서 극적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죽게 된 여인도,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던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도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바나바를 만났기 때문에 위대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룻은 보아스와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은 베들레헴에 도착하자마자 밭에 나가서 이삭줍기를 하러 나가게 되었고, 그는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보아스와의 만남이 축복이었고, 또한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는 사환들도 축복이었습니다. 보아스가 자기의 밭에서 일하는 추수 일군들과 인사하는 말이 4절에 나옵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인사는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들이 나눈 인사입니다. 보아스가 한 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모든 회중이 “당신에게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원어 히브리어로 인사하는 교회들이 지금까지도 많이 있습니다. “아도나이 임마헴 - 여바레흐아 아도나이” ((헬라어로 교회들이 많이 인사한 것은 지난번에 말씀드렸습니다. 크리스토스 아네스티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습니다) - 알레소스 아네스티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 히브리어, 헬라어 교회 인사의 전통입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만남이 아름답고, 하나님의 축복들로 연결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가정의 만남, 교회와 성도의 만남, 목회자와의 만남, 형제와 이웃과의 모든 만남이 축복의 통로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의 만남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3절)

룻은 이삭줍기를 하러 밭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줍기를 하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은 보아스에 밭을 목적으로 찾아간 것은 아니었고 분명히 우연히 일하러 나갔는데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 룻은 우연히 가게 되었지만, 룻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 속에서 롯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롯은 우연이었지만, 하나님은 롯의 목자가 되셔서 롯을 보호하실 뿐 아니라,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시편23:에 보면, 다윗은 자신을 한 마리의 양으로 여호와를 목자로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양은 그냥 발걸음이 닿는 대로 가는 거지만, 목자는 양의 갈 길을 미리 계획세우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계획이시고 축복의 섭리이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왔지만, 보아스로부터 듣게 된 축복의 음성들이 있습니다. (1) 8절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2) 소년들이 건드리지 아니하고 너를 보호할 것과 (3) 목마르거든 소년들이 길어온 물들을 마시고 (4)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라(14절). 우리 예수님께 우리는 우연히 온 것 같지만, 우리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이 음성을 들으십니까?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며, 생수와 생명의 떡을 먹이시고 우리를 철저하게 보호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빌립보서4:19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의 참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그 풍성한대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유행가가 있습니다. 노사연이 부른 “만남”이라는 곡입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었소 잊기에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혼을 태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도 알고 있어요. 우리의 모든 만남이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미국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의 물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보다 더 좋은 변함없는 자산은 없습니다. ”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해 가신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까? 우리는 만남을 축복으로 이루어가려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룻이 부지런히 이른 아침부터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하였던 것처럼 부지런히 쉼 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만남을 우리가 맘대로 이루어갈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삶속에 쉼 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남을 축복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비즈니스를 하는데, 왜 나는 좋은 사람을 못 만나는 거야? 남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하다만, 나는 왜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는 거야?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쉼 없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축복의 만남을 주시기 위해 이런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두드리지 않고서는 결코 아름다운 만남을 이룰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할 때에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할지라도 온전하게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평생 감사해도 부족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입니다. 룻이 보아스와의 만남을 통하여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선조가 될 수 있었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 것입니다. 주를 만났기 때문에 다 된 것입니까? 주님은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주님께 최선을 다할 때에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와 남편으로 맞았으니까, 이젠 그 만남이 축복으로 인도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착각입니다. 최선을 다하며 사랑하고 순종하고 쉬지 않고 노력할 때에 서로에게 최고의 축복의 만남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겸손함으로 이루어진 만남

축복된 만남은 겸손함으로 이루어져 갑니다. 룻은 2절에서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은 일터에 나가면서, 그것도 대단한 것을 벌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도 잘 안 통하는 베들레헴에서 이삭줍기를 나가면서, 그것도 은혜를 입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으면 이삭을 줍겠나이다.…….
그 당시에 이삭줍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삭을 줍는다는 것도 은혜로 여겼습니다. 룻이 이삭줍기를 하면서, 3가지를 고백합니다. (1) 7절에서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레위기19:9-10에 보면,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삭줍기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한이었지만, 룻은 복종의 자세로 이삭을 줍기를 간청하였습니다. (2) 10절에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 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베푼 물 한 모급에도 룻은 진심으로 몸을 굽힐 줄 알았습니다. (3) 13절에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슨 말씀을 하셨나이다” 다른 시녀만도 못한 자신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만남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욥기25:6에서 인생에 대해서 빌닷은 고백하기를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라고 고백합니다. 시편22:6에서 다윗은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벌레로 고백합니다. 겸손한 만남이 그리스도인의 만남입니다. 낮아지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교만한 마음으로 아무리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할지라도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신학자 앤드류 머레이는 말하기를 “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야할 근본적이고 진실한 관계는 잃어버린 겸손의 회복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부모의 잔소리입니다. 그것들 중에서도 가장 듣기 싫은 것은 왕년에 나는 안 그랬는데, 넌 왜 그러느냐? 하는 것입니다. 공부 못한 부모는 한사람도 없어요. 다 왕년에 1등 했다고 합니다. 부모가 다 밀어주지 못했어도 반딧불 잡아 불피워놓고 공부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그 모양이라면 안한다.…….속으로 그렇게 아이들이 생각합니다. 오히려 솔직한 대화일 때에 아이들이 변합니다. 나는 이래서 실패했고, 나는 너만큼도 열심히 공부하지 못했단다.……. 아이들이 더 기쁘게 공부합니다.
세계사의 흥망성쇠를 보면, 겸손할 때에 발전했습니다. 우리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 그러나 교만할 때에 모두 망했습니다. 로마가 그랬고, 바벨론이 그랬습니다. 솔로몬이 왜 망합니까? 처음엔 일천번제를 쌓으며 지혜를 구한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다 누릴 때에는 세상적인 것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때에 보면, 세계 축구 강국이라고 말하는 국가, 우승 후보라는 국가는 다 떨어집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4강안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프랑스의 지단이라는 선수가 1년에 받는 연봉이 160억이었고, 한국 선수의 총 연봉이 90억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선에서 지는지 아십니까? 교만하면 망합니다. 세상에 직업이 약 3만개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직업이든지 공통적으로 분명한 것은 겸손한 자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가져오는 것은 자랑이지만, 겸손한 마음이 가져오는 것은 감사입니다. 룻이 모두에게 감사하였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겸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삭줍기는 하루 먹을 끼니를 겨우 주워 오는 일입니다. 그래도 롯은 겸손과 감사함으로 감당했습니다.
미국 이민 생활 속에서 우리도 한 끼니의 이삭줍기라도 , 혹은 그 이상으로 먹을 것 걱정 없이 살아간다면 감사함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장사하면서 돈받이고 물건 파는데 무슨 감사인가? 그래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겸손한 만남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3. 아름다운 만남을 통한 축복들

세 번째로 나눌 말씀은 보아스를 만남으로 누리게 되는 축복들입니다.
(1) 추수의 주인을 만나라(룻2:4-7) - 우리가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땀 흘려 일하는 우리 삶의 추수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마태복음9:36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자들, 추수를 하되 추수의 주인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열매를 받으실 추수의 주인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2) 참된 안식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룻2:9,14절) - 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14절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보아스는 룻에게 풍성한 먹고 마심을 공급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온전한 만남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생명의 떡과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목마르고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참된 풍성함이 오직 예수 안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11:28에서 예수님은 보아스가 룻을 초대하듯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3) 필요의 충족함을 베푸십니다. (룻2:15-20절) - 15절 이하에 보면, 계속적으로 보아스는 굶주리고 힘든 룻과 나오미를 위하여 베풀어 줍니다. 추수하는 자들에게 명령하기를 곡식 단 사이에서 줍고 있는 룻을 꾸짖지 말고, 단에서 한줌씩 일부러 이삭을 빼어 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룻이 이삭줍기를 할 때에 한에바쯤 주웠고, 이것으로 시어미 나오미와 함께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수고하는 자들에게 충족함을 베풀어주십니다. 구하는 이에게 주시며, 찾는 자에게 찾도록 해주시며, 두드리는 자에게 문을 열어주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4) 은혜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룻2:10,12절) - 룻이 이삭줍기를 하면서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12절에 “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가 값없이 은혜를 베푼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 25:26에 게으른 한 달란트를 맡은 자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놀고 쉬고 하는 자에게 풍성한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룻과 같이 쉬지 않고 노력할 때에, 밀레의 만종 그림과 같이 하루 종일 밭에서 수고하고 주신은혜에 감사할 때에 풍성하고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 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말에 만남은 참 좋은 뜻이 있습니다. 만난다는 것과 맛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이 축복이 되고 맛있는 만남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도에게 주신 축복의 비결 첫째가 선택이라면 두 번째가 만남입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이 크신 하나님의 축복들로 가득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