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신목사 (영락교회)

가. 가정의 해체 (1:1-14)

아주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험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나오미입니다. "나오미" 라는 이름은 ''즐거움, 기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여인이 살아간 인생은 그 이름의 뜻과는 정반대로 슬프고 험악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살던 고향 땅에 큰 흉년이 닥쳐왔습니다. 그곳에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정들었던 땅, 친구와 친척들과 사랑을 나누던 그 곳을 떠나서 다른 민족이 사는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민족의 땅으로 이민 간 후 경제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 근근히 먹고살게 되었을 때, 이번에는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친척과 친구들과 이별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남의 땅에서 가정의 기둥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가정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가정을 경제적으로 지탱해 주던 가장이 죽은 것입니다. 외롭고 위험한 남의 땅에서 아들 둘과 함께 버려지듯 남겨진 것입니다. 그런 슬픔 중에서도 다행히 아들 둘이 잘 장성하여 아버지가 하던 역할을 대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대신 가정을 보호하고, 아버지 대신 일을 해서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게 했습니다. 나오미는 그 아들 둘을 다른 민족의 처녀들과 결혼시켰습니다. 문화와 종교가 달라 세계관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가족으로 맞아 들여서 그들에게 이스라엘 신앙을 가르치면서 사랑으로 품고 한 가족으로 만들기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들 둘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평상시에 병약해서 늘 걱정이 되었던 아들 둘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남편과 사별할 때의 슬픔과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는 중에 아들 둘을 또 잃어버리는 슬픔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그 동안 어려움 중에서도 잘 유지되던 가정이 이제는 완전히 해체될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오미는 가정을 유지할 조건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고 판단했습니다. 첫째로, 남편 없는 세 과부만 남아서 혈연적인 연결이 모두 끊어져 버렸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손주들도 없기 때문에 혈연적인 연결은 전혀 없는 셈이었습니다. 둘째로, 그 당시에는 남편이 없는 과부는 다른 남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납치를 당할 위험도 있었습니다. 또 그 당시에는 남자 없이 여자들끼리 삶을 살아갈 때에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남을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먹여 살릴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제는 며느리들을 그 친정으로 보내고, 나오미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적인 안전과 경제적인 안정이 보장될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가정을 완전히 해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가정은 사회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어야 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배우자의 외도나 폭력,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 심화나 술, 중독 등 사회적인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가정이 유지되기 힘듭니다. 또한 경제적인 안정이 보장되지 못할 때에도 가정이 유지되기 힘든 경우를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가정에 있어서 사회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이 가정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방위산업체의 경비로 일하는 분이 한 이야기입니다. 방위산업체는 보완유지 때문에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방문일지에 방문자 이름, 주민등록번호, 방문목적을 기록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가 방문을 했는데, 방문목적에 ''아빠에게 용돈 받으러''라고 썼더라고 합니다.
미국의 교육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미국의 청소년들이 자기 부모를 바라볼 때에 물질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을 세워나갈 때, 좀더 넓은 집에서 편안하게 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컴퓨터라든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육신적인 요소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가정이 쉽게 해체됩니다. IMF 경제 위기 시절에 많은 가정들이 해체되었습니다. 부부는 이혼하고 자녀는 고아원에 맡기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십대 청소년의 가출이 급증하고 있는데, 그 이유도 역시 사고 싶은 물건은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데 가정에서 용돈을 주지 못하므로 청소년들이 불만을 품고 가출하거나 불건전한 돈벌이에 나선다고 합니다. 물론 사회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이 가정의 유지에 아주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건만으로 가정이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가정의 결속(1:15-18)

가정이 유지되고 가정을 결속하는 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과 신앙이라는 요소입니다.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친정으로 보내고,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서 가정을 해체하기로 결정했을 때에 한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며느리 룻은 위험이 따르고 가난이 닥쳐오기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고 해서 가정이 해체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6절 하반절을 보시면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와 같이 고난의 길을 함께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인간적인 조건과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희생적인 사랑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의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지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진 세계관과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룻은 가정을 결속케 하는 요소가 육신적인 요소 외에도, 사랑과 신앙의 요소가 있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가정은 사랑으로 결속됩니다. 가정은 이 땅의 그 어느 곳보다도 가장 사랑이 풍성한 곳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비난과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말과 행동도 가정에서는 용납되고 이해됩니다. 물론 가정에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됩니다만 다른 곳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 가정에서는 용납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서로 간에 격식 없이 배려하고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에 가장 편안한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이 사랑이 표현될 때에, 같은 신앙을 가질 때에 사랑이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표현이 됩니다.
신앙이 다르면 세계관과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세계관이 달라지면 긴장과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가치관이 다르게 되면 충돌과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랑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기 어렵습니다. 사랑이 왜곡됩니다. 사랑이 풍성하게 표현되지 못합니다. 막히고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신앙을 가지게 될 때에, 같은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그리고 그 사랑이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흘러가게 될 수가 있게 됩니다.
룻은 시어머니와 결속될 수 있는 인간적인 요소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고백하면서 고난을 감수하는 희생적인 사랑을 시어머니에게 표현했습니다. 누가 강제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의무적으로, 율법적으로 가르쳐 가지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 그대로, 이와 같이 삶을 살아도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고 고난을 수용하고 극복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관계가 단절되고 해체될 위기에 놓인 가정이 신앙과 사랑으로 다시 결속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룻기를 쭉 보면, 룻의 가정 속에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축복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가정이 잘 결속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가족 속에 축복하셔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있던 그 가정이 남편도 있고 자녀들도 있는 온전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이름 그대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일이 그 가정 속에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도 육신적 요소들과 함께, 신앙적인 사랑의 요소들이 균형있게 키워질 때에 우리 가정이 온전한 가정, 결속된 가정, 강한 가정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 사랑과 신앙을 키우는 가정의 시간. 가정을 결속케 하는 가정의 시간.

어떻게 하면, 이 신앙과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가정의 시간을 여러분에게 제안합니다. 오늘날 현대의 가정은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을 가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옛날에는 집이 좁아서 한 방에 여러 식구들이 살았는데, 요즘에는 각각 자기 방이 있어서 각자 다른 방에서 다른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납니다. 각자 다른 시간에 밥을 먹어서 이 시간에도 서로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전화가 한 대 밖에 없으니까 누구로부터 누구한테 전화가 왔는지 다 알지만, 요즘에는 각자 전화기가 있기 때문에 누구한테서 전화가 오는지, 누구한테 전화를 하는지 그의 인간관계를 알기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편지가 누구한테서 왔는지도 잘 알았는데, 요즘에는 각자 E-mail ID가 있어서 누구한테서 어떤 편지가 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집에서 살긴 하지만,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인생경험을 가지고 어떤 친구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한 집에 살긴 하지만 각자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현대인의 가정입니다. 육신적인 요소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충족되고 있지만, 그러나 신앙과 사랑의 요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약한 것이 오늘날 현대의 가정입니다.
그래서 이런 가정 속에 신앙과 사랑을 키우고 가정을 결속하기 위해서 가정의 시간을 가지도록 제안합니다. 가정의 시간은 가정예배를 매일 혹은 주 2, 3회 모일 수 있습니다. 함께 외식하거나, 영화나 연극을 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함께 여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주말에 함께 보내는 가정시간을 제안합니다.
제가 우리 만남지 5월호에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썼습니다. 마르바 던 박사가 [안식]이란 책에서 쓴 여러 가지 제안들을 자세히 썼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가정과 회당을 중심으로 시간을 계획합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진 저녁부터 토요일 해 지기 전까지인데, 금요일 저녁은 온 식구들이 모여서 찬송과 기도, 율법공부, 대화, 식사를 하는 가정의 시간을 가집니다. 토요일은 회당에서 율법을 공부하며 지냅니다. 그들이 가정의 시간을 드릴 때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찬송과 기도, 말씀과, 대화 그리고 식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의 전통들을 잘 이어받으면, 우리도 주일 전야나 주일 저녁에 가정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 찬송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일상 생활 속에서 돌보시고 도우신 것들을 간증하고 나누며 대화하고 또한 축복기도와 중보기도를 하고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가 있을 것입니다. 엄숙하고 딱딱한 신앙훈련이 아니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즐거운 경건훈련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랑과 신앙이 잘 표현되고 가정의 결속을 다지는 시간을 이룰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서는 가정 예배를 매일 드렸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목회를 하셨는데 아주 엄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예배 시간에 온 식구들이 다 모여야 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모이려면 아침시간 밖에 없다고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학교에 가려면 세수하고 밥 먹고 가기도 바쁜데, 그 바쁜 아침에 꼭 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벽기도 끝나자마자 전 식구들이 모여서 깜깜한 새벽에 옷 갈아입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참 힘들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아주 엄격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로 인해서 제 신앙에 유익이 되었지만, 힘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엄격하게 해 나가가다 보면 자녀들 가운데 반발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가장이 되고 저희 가정을 이끌면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는 조금도 부드럽게 완화해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주간에 저희 아버님을 추모하는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다같이 모여서 찬송하고 성경 읽고,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는 중에 특별히 그 날은 로마서 12장 1-2절을 읽으면서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말씀을 읽은 다음에 아버지, 할아버지의 신앙이나 삶이나 정신이나 좋은 점, 본받을 점을 한가지씩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대화하는 도중에 그 속에서 할아버지의 신앙과 할아버지의 정신과 삶과 인격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배우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릴 때에, 말씀을 읽은 다음에 그 말씀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혹은 이 번 주에 가장 기뻤던 일, 가장 힘들었던 일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가정 예배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대화를 나누는 중에 여러 가지 상처들이 치유가 되고, 여러 가지 갈등들이 해소가 되고, 거리가 멀어졌던 것이 가까워지고 가정이 하나되고 결속되는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그 기도 중에 큰 은혜를 받게 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게 되기도 하고 가정이 하나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 주5일 근무제가 점점 확산될 것 같은 데 그렇게 되면 여가시간이 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여가시간이 많아질 때에 게으름과 향락추구로 그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가정은 점점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여가시간에, 가정시간을 가져서 같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즐거운 가정의 시간을 가지게 될 때에 그 가정이 결속되고 견고한 가정이 될 수 있을 줄로 압니다.
여러분, 오늘 가족주일은 예배만 드리고 성경공부나, 주일학교 등의 모임이 없습니다. 오늘 한번 시작해 보십시오. 가정의 시간을 시작해 보십시오. 밥만 먹고 흩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같이 대화를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부드럽고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고 즐거운 가정시간을 가짐으로 여러분의 가정이 결속된 가정, 견고한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