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워렌 (Saddleback Church)

압력 해소제 (시편 23편)

염려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사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을 중심으로 해서 압력을 해소하는 법에 대해 시리즈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압력을 가져다주는 일곱 가지 출처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들 전부가 시편 23편에 나와 있습니다. 또 그러한 문제점들의 해결책이 시편 23편에 나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이 정말로 누구이신가를 잘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을 묘사하는 시편입니다. 앞으로 시편 23편을 계속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중요한가를 배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더 이해하시면 할수록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쉬워집니다.



우리가 압력을 받게 되는 첫째번 원인이 바로 염려입니다. 우리 모두가 염려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물질 문제일 수도 있고, 직업이나, 인간 관계, 결혼, 자녀, 건강상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염려는 세 가지 문제를 동반합니다. 염려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염려는 합리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염려는 건전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염려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염려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합니다. 염려는 어떤 문제도 풀지 못합니다. 염려는 시작하지도 않고 우리의 속만 태웁니다. 마치 기아를 넣지 않고 액셀레이터만 밟는 것과도 같습니다. 연기는 자욱하게 나나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합니다. 염려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미래를 다스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오늘을 불행하게 해줄 뿐입니다. 염려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염려는 효과적이 아니고 실상은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염려는 합리적이 아닙니다염려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과장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더욱 더 크게 만듭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에 대하여 더 생각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욱 더 커집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바꾸십시오. 염려는 건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염려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염려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염려를 하게 되면 위궤양, 요통, 두통, 불면증 등 여러 가지의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식물이나 짐승들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염려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우리는 실상 염려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지음바 되었습니다. 염려하게 되면 불행하게 되고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염려에 대한 고전 영어의 뜻은 “질식시키거나 숨이 막히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염려가 하는 일들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염려는 우리에게서 삶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염려는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염려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염려하는 것부터 배웁니다. 오랜 실습을 통하여 염려하는데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염려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실 것을 믿으십시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면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는 것이 어떻게 삶의 압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는 것이 어떻게 당신이 염려하는 것의 해결책이 됩니까? 우리들은 이 점을 알기 위해 목자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는 것이 당신이 염려하는 것의 해결책이 됩니까? 우리들은 이 점을 알기 위해 목자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1. 목자는 제공해 줍니다. 먹을 것과 안식처, 그리고 사람의 기본적인 필수품들을 제공해 줍니다.

2. 목자는 보호해 줍니다. 그는 우리가 적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도록 방어해 줍니다.

3. 목자는 인도해 줍니다. 목자는 양들이 혼란된 상태에 처하게 되어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를
    때에 인도합니다.

4. 목자는 고쳐 줍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고쳐 줍니다.



이 점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를 위하여 위에 나열한 네 가지를 하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우리의 목자가 되게 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시며 보호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며 우리의 삶에 잘못된 문제들을 고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게 하면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인도하며 보호하고 바로잡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보서 4장 19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욕심을 채워 주신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채워 주신다면 아마도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못쓰도록 버려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정말로 잘못되어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든지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당신은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해 보겠다. 아마 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걸고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든지 아니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약속을 하시면 하나님의 성품을 걸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하시지 않는다면 그분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것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됩니까? 의사에게 지불할 돈도 포함됩니까? 월세도 포함됩니까? 영적인 필요도, 경제적인 필요도, 건강상과 인간 관계상의 필요도 다 포함됩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우리를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셨다면, 우리가 혼돈될 때에 인도해 주시며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을 때에 고쳐 주시겠다고 하셨다면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무엇을 걱정해야 합니까? 실상은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무엇이 보상되는지를 알면 보상되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발생해도, 보상이 되는 것을 알면 그런 것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상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 7천가지나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람을 책임져 주시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그런것들을 이해한다면 걱정할 것들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전혀 없을 것입니다. 염려는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도 아니며 건전하지도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목자라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염려할 때마다 마치 무신론자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실상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할 때마다 바로 무신론자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염려란 무신론이 실제화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신 것들을 내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목자는 아니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목자가 되도록 허락하시는 사람들만의 목자가 되십니다.



1. 예수님을 나의 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 영어로 보면 주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목자가 주인이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지 않고는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단순히 다스리는 것을 나타냅니다. 주인이란 누구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쓰는 말로 표현한다면 사장, 경영자, 회장 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인이란 최고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다스리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내 삶의 모든 사항을 예수님께서 결정하신다면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여러분의 주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인이 아니시라면 목자도 아니십니다. 주인이 나의 목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나타냅니다.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나도 아는 것이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이 세가지 의미는 줄친 세 가지 단어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하는 것은



⑴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⑵ 예수님을 듣는 것입니다.

⑶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내 삶을 지배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염려를 하는 한은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다스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염려란 항상 다스릴 수 없는 것을 다스리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염려란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지 않는 책임을 내가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나 경제나, 환경이나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다스릴 수 없는 것들을 다스리려고 할 때에 염려하게 됩니다. 염려란 경고하는 신호등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염려할 때마다 불이 꺼져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다스리려고 하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이것이 바로 염려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염려를 하게 될 때마다 결코 다스리려고 시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내가 허락해야만 합니다.

내가 자신의 삶을 다스리려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이 바로 염려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할 때마다 우리는 염려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다스려서 일하려고 할 때에, 내가 다스릴 수 없는 것들을 다스리고자 시도할 때에 우리 속에서 음성이 들려 옵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이 아니며 너도 알고 하나님도 아시는 것은 네가 모든 것을 다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누가 다스리냐가 주요 문제점입니다. 하나님의 지시함이 없어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다스린다면, 여러분들은 염려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것들을 자신의 힘만으로는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목자가 되셔서 나의 삶을 지배한다면, 나는 땀을 흘리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2. 모든 것들에 대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모든 것들을 내놓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친구가 되시기를 원하시며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으십니까? 그런데 염려할 시간은 있으십니까?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기도한다면 염려할 것이 아주 많이 없어질 것입니다.

염려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나 기도는 합니다. 염려란 하지 않고서 애태우는 것입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바꾸실 수 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접촉하게 합니다. 내가 염려할 때마다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겁에 질려 있거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께 필요한 것들을 말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놀랍고 신비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에 임함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종교적인 것만을 기도하지 마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듣기를 원하는 것들만을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내 놓고 다 기도하라고 명령하십시오. 염려할 정도로 큰 문제라면 다 기도해야 될 만큼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염려보다 더 크십니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맡겨 버리라” 라는 말은 다 버려서 더 이상 가지고 있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를 문자적으로 말한다면 떨쳐 버리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 없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놀랍게도 우리가 받은 압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라는 말은 우리가 성이 나거나 걱정하거나 압력을 받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나타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는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들은 하나님께 맡기고도 여전히 염려합니다. 마치 낚시로 고기를 낚는 것과도 같습니다. 낚시를 던지고는 다시 줄을 감은 것처럼 하나님께 염려를 맡기고는 다시 걱정합니다.



지난 주일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비행기를 타고 갔었습니다. 그 때에 오렌지 카운티상의 계곡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탄 비행기가 위로 올라가 안개를 벗어나자 마자 해가 밝게 비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염려란 때로는 짙은 안개와도 같습니다. 짙은 안개가 몰려오면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짙은 안개 속을 운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안개는 환상입니다. 염려가 그와 같습니다. 염려와 안개가 환상을 만듭니다. 국가 표준청(National Bureau of Standards)에서는 “한 도시에 7개 블럭을 100피트나 짙게 깔려 있는 안개는 실상 압력기로 축소했을 때에는 한 잔의 물밖에는 안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염려가 바로 그와 같습니다. 염려가 확장되면 큰 문제를 야기시킴니다.



3. 한 번에 하루씩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번에 하루씩 산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십시오.



(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예수님께서는 비가 오기 전까지는 우산을 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실상은 내가 어제 걱정한 내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 할 때에 어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내일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염려란 단지 오늘을 혼란하게 만들 뿐입니다. 미래가 아주 어렵게 우리를 짓누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조그만 조각으로 한 번씩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한 번에 24시간씩만을 주십니다. 한 번에 하루씩 사십시오.



(마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염려하는 것을 극복하는 비결은 하루씩 선택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어느 세미나의테이프나 책도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영적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다시 염려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염려를 이기는 해결책은 매일 매일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아니 때로는 매 시간마다 또는 매 순간마다 선택하는 것에 좌우됩니다.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나의 주인으로 삼으려고 하는가?내 삶을 누가 다스리고 있는가?누가 모든 결정을 하는가?만일 내가 다스리고 있다면 염려할 것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배하고 계시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문제이고 그 분은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으십니다. 무엇이 우리로 염려하게 합니까? 왜 이런 것들이 잘 될 것인가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방황합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우리 뱃 속이 쓰라립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염려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당면하고 있는 것들을 액면 그대로 아십니다.



(마6:32∼33)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집에 가셔서 시편 23편을 읽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이 여섯 구절에 “나의, 내가, 나를, 내, 내게” 라는 나를 나타내는 말이 14번이나 나오는 것을 발견할 겁니다. 시편 23편은 아주 개인적인 시편입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이 7번이나 나와 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시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 바로 염려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종교가 내가 받고 있는 압력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종교가 내가 염려하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들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는 내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고 보호하고 인도하며 바르게 잡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은 종교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대하여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윌버 채프만씨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열살 난 소년을 격려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린 소년이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 소년은 죽는 것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채프만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가르쳐 주기를 원한다. 손을 내게 내밀어 다오. 성경은 주님께서 네 목자라고 말하고 있단다. 네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걱정하게 될 때마다 주님은 너의 목자인 것을 기억하고 집게손가락을 붙들어라.”두 주가 지난 후에 그 소년이 잠을 자면서 죽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소년의 어머니는 그 소년이 집게 손가락을 붙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무슨 압력을 받으시며 어떤 걱정을 하고 계신지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단어들을 강조하면서 읽어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고 다른 것들은 다 가짜이며 거짓신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자신있게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실 것이다가 아니라 정말로 목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자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인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자이시고 주인이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목자가 되시고 주인이 되시든지 그렇지 않다면 나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자가 되시고 주인이 되신다면 당신은 걱정을 중단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염려를 지고 다니시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저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압니다. 내가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내 삶을 다스리려고 하고 있다는 경고임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내 삶을 내가 다스리지 않겠습니다. 예수님,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주님을 더 잘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저의 삶을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