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쁨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 (시편 23:2)

릭 워렌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주시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이 시편을 압력을 제거해 주는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받는 압력 7가지에 대한 해결책을 이 시편이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너무 바쁜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어 시원한 바람 속에서 즐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너무나 바쁜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레지스터라는 신문에서 최근에 발표한 것을 보면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일하는 것을 택하며, 즐기는 것보다는 일하는 것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 내가 일만 아는 사람이 아닌가를 알아보는 방법

① 항상 서두르며 사는가?

② 항상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은가?


③ 휴가를 내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는가?

④ 좀 쉬면서 일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한 사람 이상이 있는가?

⑤ 편히 쉴 때에 죄의식을 느끼는가?

⑥ 병들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않는가?

이런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당신은 일만 아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모든 크리스마스 카드가 사업에 관계된 사람들로부터 온다.

- 자녀의 사정을 알기 위해 학교에 가나 자녀가 무슨 과목들을 택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 교회에도 비퍼를 차고 온다.

- 가정 식구들이 당신을 집에서 잠만 자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 Tom Snyder를 봄으로써 일과 후에 피로를 푼다.

- 사업에 관계된 자료를 화장실에서 읽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형태의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시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촛불을 켜고 다 탈 때까지 깨어 있다면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아닙니다. 때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일이 잠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바치면 정말로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면 예수님께서 할 일들을 너무 많이 주셔서 훨씬 더 바빠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여러분들이 양이라면 시편 23편을 아주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23편 2절의 경우는 양들에게는 완전히 천국에 있는 것과도 같은 상태입니다. 여기서 편히 쉬면서 위기를 회복하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편히 쉬는 것과 즐거움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하고 균형잡힌 멋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일만 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자신을 주님께 바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을 더하시게 하기보다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줄이셔서 더욱 쉴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CNN 방송국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사람들 중 59%는 일을 덜하며 더 쉬고자 합니다. 해리스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는 한 세대 전보다 8시간 반이나 휴가 시간이 줄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을 더하고 쉬는 것을 줄이고 있습니다.

1. R - 자신이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E -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즐기는 것입니다.

3. L - 일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4. A - 자신의 가치관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5. X - 자신이 받고 있는 압력을 하나님의 평안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편히 쉬고자 한다면

1. 내가 가치있는 사람임을 인정하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일과 자신의 가치를 함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열심히 일해서 달성하는 것이 많이 있으며 우리가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과 누구인가를 혼돈해서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를 가지고 사람의 가치관을 정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이름을 묻고 그 다음에 묻는 것이 “무엇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가치관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가를 우리가 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부정적인 사회에 살면서 우리 마음 속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왔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사귀던 친구가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너는 결코 큰 사람이 될 수가 없다”라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더욱 열심히 지나치게 일하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 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증명해 주겠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달성한 업적들을 보여 줌으로써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가를 보여주겠다”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많이 달성해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매나 채찍이 우리의 뼈를 부러뜨릴 수가 있으나 내 이름은 결코 오랫동안 상처를 입을 수가 없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름 때문에 오랫동안 상처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상처보다도 명예상으로 당한 모욕이 더 오래갑니다. 내가 결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들은 말이 오랫동안 우리 마음 속에서 강하게 남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려고 열심히 일합니다. 계속 일합니다. 누가 나를 능가할 수 있습니다. 누가 나를 앞장서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보다 앞장섬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위대함과 중요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지나치게 일을 합니다. 쉬지를 못하고 계속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약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우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나이고 하나님께서는 시사한 것들을 만드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나는 좋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에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끼게 된다면,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로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좋아하시고 내가 나를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전 삶을 소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께 가치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새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도 아시고 돌보신다면 그런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돌보시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결코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⑵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⑶ 우리가 어떤 일들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보다 덜 사랑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실적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분이 누구이신가에 달려 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우리가 더 가치있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손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들은 주님 손에 못을 박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우리의 이름을 새긴 손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2.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즐기십시오.

(전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우리들은 더 많이 가지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현재의 것을 즐기지 못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더 가지려고 너무 열중한 나머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즐기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집을 즐기지를 못합니다. 아무도 집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하느라고 사무실이나 사업처에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더 얻고자 하는 병에 걸릴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올라가면 우리도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하고 보조를 맞추려고 합니다. 그들이 집을 재융자했는지 파산 신고를 했는지도 모르고 남이 하는 대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돈도 없으면서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으시대려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삽니다. 우리들은 더욱 더 소유하려고 하다가 결국은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그래서 빚을 갚으려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일을 합니다. 우리가 산 물건의 빚을 갚기 위해서 일하느라고 모든 시간을 다 소비하다 보면 가정 식구간에 인간 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아닙니다.

조금 가지고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 항상 바쁜 것보다 낫습니다. 사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저는 목사로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와 왔습니다. 죽기전에 “사무실에서 더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하고 시간을 더 보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인간 관계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좋게 하는데 보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합니다. 미국 문화권 내에서는 “일전 한푼 없이 죽는 것”을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때가 세상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마지막 수표를 쓰고 아무것도 없이 죽는 것이 실상은 괜찮습니다. 얼마나 시간을 잘 맞추는 것입니까?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즐기시고 더욱 더 가지려고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3. 일하는 것을 제한하십시오.

일하는 것 대신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야 합니다. 나는 매 주일 몇 시간

을 일하려고 하는가를 결정하고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나는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 가족 식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일하는 시간만큼 내 삶에 중요한 시간입니다. 특별히 이런 사람들은 일하는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⑴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일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집에서까지도 일하고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일을 안고 삽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는 시간을 제한하지 않으면 계속 일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⑵ 홀로 자녀를 돌보는 독신 부모입니다.

어떻게 일을 하고 가정을 돌보는지를 알기가 힘이 듭니다.

독신 부모들은 너무나 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쉬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은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전10:15) 우매자들의 수고는 제각기 곤하게 할 뿐이라 저희는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내가 항상 일한다면 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활을 늘 잡아당기기만 하면 그 힘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화가 나서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월요일 종일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월요일은 내가 쉬는 날입니다.”“사단은 하루도 쉬는 때가 없는 것을 아십니까?”라고 여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사단처럼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라고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출2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20: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것이 십계명 가운데 있는 네 번 째 계명입니다. 이 계명이 너무나 중요해서 하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들보다도 앞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쉬는 것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십니다. 매 칠일마다 하루씩 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십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주일에 하루씩 쉬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그 날을 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안식일이란 쉬는 날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골로새서에서는 우리가 어느 날을 택하든 한 주일에 하루를 택하면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일요일은 목사들에게는 안식일이 아닙니다. 일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에 쉬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을 하느라고 시간을 보내서는 안됩니다. 안식일에 무엇을 합니까?

⑴ 육신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간을 내서 몸을 쉬지 않으면 몸 자체가 시간을 내서 쉴 것입니다. 감기에 걸리거나 병원에서 쉬게 됩니다. 우리들에게 쉬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몸이 쉬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불란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에 불란서에서는 일요일에 쉬는 것을 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수 년이 지난 후에 그 법을 다시 바꾸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불란서 사람들의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 지치게 되어서 그랬습니다. 쉰다는 것이 어색하게 생각되십니까?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내어 쉬셨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바쁘십니까? 예수님이 하셨던 것들보다 여러분이 하는 더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⑵ 감정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까? 조용함이 필요합니다. 오락이 필요합니다. 무엇인가 우리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과 사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Time지에 “20세기 우울증”이라는 주제하에 현대인들이 너무나 빈번히 받고 있는 압력과 걱정과 좌절감에 대하여 언급을 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이 이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신뢰하면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소수의 사람들이 의미있는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삽니다.

⑶ 영혼을 다시 재조정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예배라고 부릅니다. 예배는 모든 것을 원상태로 회복시켜 줍니다. 교회에 큰 문제를 안고 올 때에 예배를 통해서 그 문제를 바로 보게 됩니다. 예배를 통하여 그런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며 다룰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4. 내 가치관을 조정하십시오.

내 삶에 기쁨을 줄이기 위해 중요한 것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전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더욱 더 얻으려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경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건을 더 얻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막8:36~37)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목숨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일들이 있습니까? 현재 돈을 아주 많이 법니다. 그런데 자녀들을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몇 년후면 다 집을 나갈 것입니다. 지금 자녀를 등한시 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실상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또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5. 내가 현재 받고 있는 압력을 하나님의 평안으로 바꾸십시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받는 모든 압력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가 지루함을 느끼는 이유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피곤함을 느낍니다 - 근육이 피곤해졌습니다. 이런 피로는 속히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피곤함을 느낍니다 - 감정과 느낌으로 피곤합니다.

영적으로 피곤함을 느낍니다 - 영이 메마름을 느낍니다. 이것이 최고로 피곤한 것입니다.

아마 휴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휴가는 감정적으로 피곤한 것이나 영적으로 피곤한 것을 돕지 않습니다. 감정을 회복하고 영적으로 메마름을 다시 충전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립니다. 두 주간 타히티나 다른 좋은 곳으로 휴가를 갔다가 오는 것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게 됩니다. 여전히 압력을 받게 됩니다. 감정적인 문제나 영적인 메마름은 시간을 내서 쉰다고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가치관을 재조정하거나 내가 받는 압력을 하나님의 평강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들은 누워서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휴식을 거절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항상 일만 하면서 쉬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다면 십계명을 범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성숙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양도 잔디에 누워서 쉬기를 싫어합니다. 시편 23편 2절을 보십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목자가 강제로 양이 눕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실 때가 있습니까? 우리가 쉬지를 않는다면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눕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의 속도를 올바르게 맞추기 위해서는 예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내가 너무 빨리 가거나 더디게 가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내 속도를 조정해 주셔야 합니다. 내 자신보다도 나의 안팎을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받는 압력을 주님께서 평안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올바른 삶의 길일뿐만 아니라 가장 건강한 길이며 가장 완전한 길입니다. 이렇게 살 때에 삶의 균형이 잡히며 참 쉼과 만족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초대를 하십니다.

(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가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무겁게 더 얹어주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해주십니다. 지치셨습니까?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으십니까?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주님께 나오시면 삶의 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쉬는 법을 주님께서 보여 주실 것입니다. 참 자유와 평안을 찾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