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하지 못함으로 받게되는 압력



릭 워렌


삶이란 것은 여러 가지의 것들을 선택하고 결정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공이란 근본적으로 현명한 결정을 함으로써 오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이 결정을 하고 그 결정한 것들이 또한 우리를 형성합니다.

모든 결정에는 반드시 그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정을 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정을 하는 것이 때로는 큰 압력을 가져다 줍니다.

잘못된 결정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걱정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분들은 지금 결정해야 되는 문제들을 결정하지 못함으로 압력을 받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한 금주에 아주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택해야 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해야 할 것인가? 내가 참여해야 되는가, 아니면 참여하지 말아야 하는가? 결혼을 해야 될 것인가? 새로운 직장을 택해야 할 것인가? 이사를 가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들을 결정하지 못함으로 오는 압력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모든 일에 안정성이 없다고 말해준니다.



(약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정함이 없다”라는 말을 헬라어 원어로 보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린다”는 뜻입니다.


삶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게 될 때에 허우적거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핀볼 게임에서 공이 이리 저리 부딪치며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방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을 한 후에도 또 다시 자신이 한 결정에 대하여 “정말 내가 바른 결정을 한 것인가?”하면서 생각해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하며 안절 부절함으로써 압력을 받게 됩니다.

결정을 할 때에 오는 압력을 피하는 해결책이 있습니까? 분명히 있습니다.

시편 23편 3절 후반 절은 그 비결을 말씀해 줍니다.



(시23:3)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결정을 할 때에 압력을 해결하는 비결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선한 목자는 우리에게 양식을 제공해주시고 인도해주시며 보호해 줄뿐만 아니라 또한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의 길이란 올바른 길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만약 지금 우리에게 말한다면 올바른 길은 우리가 궤도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살면서 궤도에서 벗어나기란 아주 쉽습니다. 사소한 일에 사로잡혀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기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이 정상적인 궤도에 머물러 있도록 해주십니다.

어떤 분들은 아마도 이런 고백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런데 실상은 더 복잡해졌다.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모르게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하고 게임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지를 몰라 당황하면서 고통을 받는 것을 하나님은 즐겨보시는 괴퍅한 분이십니까? 물론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인도함을 받기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의 뜻을 알기를 더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할때에 일어나는 큰 문제중에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된 곳에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한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느낌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감정으로 온 몸에 전율을 느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신비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에 바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좀 더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조직적인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기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을 누군가가 제시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9가지 단계”입니다. 이 공식을 적용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공식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있어서 마술적인 방법을 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슨 놀라운 표적을 보여주기를 기다립니다. 하늘에다가 글을 쓰시거나 전화를 걸든 아니면 전보를 보내시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사람들이 사용하는 위에 열거한 모든 방법들은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좌절감을 느끼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도록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느낌이 아닙니다. 어느 일정한 공식도 아닙니다. 무엇인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좌절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하면 하나님께서 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하게 할 수가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가 네 가지를 해야 됨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인도함을 받으려면



1. 내게 인도자가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2. 믿음으로 방향 제시를 간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4.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1. 내게 인도자가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 특별히 남자들에게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방향을 잃어버리게 될 때에 우리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방향을 물어보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체로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방향을 잃어버릴 때에 중단하고 방향을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헤매게 되고 방황하게 되고 곁길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양들이 선한 목자가 필요하듯이 우리들도 삶을 인도해줄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방황하게 됩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들은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바로 큰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안내자, 인도자가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양은 잘 보지 못합니다. 멀리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박쥐처럼 눈이 멀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양처럼 눈이 멀었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양은 앞을 멀리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이 가는 길이 절벽으로 인도하는 길인지, 불 가운데로 인도하는 길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인도할 목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양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내년이나 십년 후는 말할 것도 없고 실상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오늘 오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기에 우리가 미래를 알려고 아무리 애쓴다 할지라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이 무슨말을 한다 할지라도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창조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양은 멀리 볼 수가 없고 우리 또한 미래를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비틀거리게 됩니다.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우리 모두가 결정을 할 때에는 옳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은 잘못된 것임을 깨달은 경험들이 있습니다. 어떤 길은 아주 막혀 버립니다. 다른 곳으로 전혀 인도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빗나가기 쉬운 것입니다. 양은 방황하게 되어 있고 우리들은 미래를 볼 수 없음으로 우리도 양처럼 방황하고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하나님, 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인정 해야 합니다.



(시25: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2. 믿음으로 방향 제시를 간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여 줍니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야보고서 1장에 어떻게 지혜를 얻는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약1:5-6)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시려고 하시며, 정말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려고 갈망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시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받으려면 두 가지가 바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첫번째는 올바른 대상인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올바른 태도, 즉 믿음으로 응답을 기대하면서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달라고 간구하고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물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우리가 가진 믿음에 따라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인도해 달라고 간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함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가고 합니다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자기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란 삶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지혜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처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쁜 결정을 하시지 않습니다. 결코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그 분에게 귀를 귀울이면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 이 방 안에도 라디오 전파와 텔레비젼 전파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방 안에도 여러가지 소식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볼 수는 없으나 올바른 기구를 가지고 채널을 맞추면 들을 수가 있습니다. 라디오가 있으면 들을 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라디오 주파를 만든 자가 우리가 그 주파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고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수화기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1) 수화기를 꺼놓은 상태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항상 멀리 떨어져 있어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다른 채널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채널이 13인데 채널 4를 돌렸다면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채널이 믿지 않을 뿐입니다.



(욥33:14)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합니까? 채널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채널을 사용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들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성경, 교사들, 인상, 환경, 고통을 사용하시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같은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를 여러 가지로 성경은 제시해줍니다. 삶은 여행이며 성경은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책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침반을 주셨습니다. 그 나침반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양심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안내자를 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면 지도책과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미 갔다 오신 분이 사막 가운데서 우리를 실제로 인도하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도하는 지도책과 같습니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에 지도책을 읽지 않으면 전혀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성경은 혼돈될 때에 문제를 해결하고 삶에 필요한 방향 제시를 해주는데 아주 도움이 됩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은 마치 전화선을 끊어버린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 상태하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접근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전혀 말씀하시ㅣ 않는다고 말하셨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십니까? 안 읽으시지 않습니까? 전혀 성경을 암송한 적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생각나게 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넣은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간에 그것을 생각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고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교사를 통하여, 경건한 성경 교사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느껴보신적이 있으십니까? 그럴때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하와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분명히 믿기는 하나님께서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을 통하여 그들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 들어야만 하는 말을 하도록 하십니다. 이런 말씀들은 목사님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황에 따라서 어느 성도나 사용하십니다.



제가 설교할 때에 모든 성도님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을 전하는 것은 실상 제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필요한 것들을 제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매일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번 주일에 누가 예배에 참석할 지를 아십니다. 그들이 지난 주간 동안 얼마나 어려운 일들을 당했는지 저는 모르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그들이 무슨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를 주님은 아십니다. 그들이 들어야만 하는 말씀을 제가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들어 주시고 목사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교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삶의 전환점들이, 아주 큰 삶의 전환점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교회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교회에 참석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씀을 목사님을 통하여 준비하셨는데 우리가 결석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휴가를 갈 때도 교회는 빠지지를 말아야 합니다. 저는 근처에 있는 교회를 찾아나가 예배와 성경공부 시간에 참여하며, 그 곳의 목사님들을 통해서도 제가 들어야 할 말씀을 증거하게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낌, 영감, 생각이나 예감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느 편으로나 너무 극단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합리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느낌을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모든 느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신비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닌것이 분명합니다. 아마 음식을 잘못먹어서 위에 소화불량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 느끼는 느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이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의 느낌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배에서 가스가 생길 때도 그렇습니다. 사단도 느낌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느낌은 시험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 분은 고통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즐길 때에는 속삭이시지만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에는 고함을 지르십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어려울 때는 무신론자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기로에 놓여 있게 될 때는 누구나 하나님을 믿습니다.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나니 매는 사람의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잠20:30)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듣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채널을 맞추어 듣고 계시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채널을 맞추지 않아 매일 매일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길을 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달에 아폴로 우주선을 발사했을 때에 달까지 가는 과정에 있어서 계속 궤도를 수정해야 했습니다. 달에 우주선을 겨냥하고 발사하면 자동적으로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 초마다 다시 궤도를 수정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매일 하나님과 사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이탈은 너무나 쉽습니다. 우리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간 하나님과 접촉이 끊어지게 되면, 오래 사귐을 중단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분야에서 멀리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계속 사귐을 가짐으로써 삶의 중간 궤도수정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채널을 맞추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바른 길을 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소견대로 삶을 살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것은 결국 깨어진 꿈과 상처받은 마음, 그리고 파괴된 삶과 가정을 초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가 따르기를 원하는 길을 이탈했기 때문에 생겨난 산물입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의의 길은 또한 회복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 저는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 초기부터 저는 잘못된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난것이 오래 됐을 수도 있고 얼마 안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가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이 시작됩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내가 삶을 낭비해 이제는 소망이 없다고 말하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끝났다고 믿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떠났는가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르게 세우실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비극이 찾아 올 수도 있고 위험이나 수많은 고통이 수반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길을 이해하기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4.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일을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의 바로왕 밑에서 400년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내 민족을 해방시키라”라고 말했습니다. 바로가 견디다 못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나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애굽을 떠납니다. 이스라엘 온 민족이 자유를 찾아 여행하다가 홍해에 오게 되었습니다. 좌우 양편에는 산들이 중첩으로 솟아 있어 도무지 여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바다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뒤편에는 바로가 마음을 바꾸어 그가 보낸 군대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의 길이 바닥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시77:19)

어떤 분들은 현재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또는 인간 관계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다른 길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현재 처해있는 환경이 어둡고 절망적이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줄 수도 있습니다. 아주 절망적으로 느끼면서 이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전혀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길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앞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나를 놓으신 바른 길을 계속 걷는다면, 그 길이 더욱더 밝아지고 분명해지며 그 길을 갈수록 더욱 더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감으로써 더욱 더 성장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더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삶은 여행입니다. 잠언 4장 18절 말씀을 보십시다.



의인의 길은 듣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집4:13)

새벽에 햇빛이 완전히 밝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감에 따라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어느 날 완전히 밝게 비치는 정오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하신 삶의 길을 분명히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잘 이해하지 못하고 위험과 혼돈한 현재 상태에서 이런 삶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의아해 하는 현실에서 어느 날 영원의 밝은 빛 밑에서 삶을 밝혀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 삶의 그림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특별히 선택하신 삶의 목적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잠언 3장에서 말씀해주고 있는 대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5-6)

“네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우리 삶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것들을 이헤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길을 다 가기전에는 결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내지 못한 계획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 참으면서 기다리십시오. 어느 날 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는 일들을 확실히 알고 계심을 깨닫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를 하시지 않습니다. 잘못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나에게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나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결과를 아십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제반 문제, 고민거리, 어려움과 일의 지연됨, 육체의 가시, 질병 그리고 우리가 “왜”라고 질문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아주 분명해 질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시37;23-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4)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걸어갈 경로를 이미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고안해서 만드셨습니다. 나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확실히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길을 우리가 억지로 가게끔 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로 갈 수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서세 될 때에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해 놓은 길을 네가 갔느냐?”고 물어보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내 방법대로 살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대가를 지불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자기 주장대로 사는 길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길이 바로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성경은 자기 원하는 대로 가는 길은 파멸로 인도한다고 말씀해 줍니다. 옳은 길처럼 보이나 필경은 사망으로 인도한다고 말씀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