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 (시23:4)



릭 워렌




이런 아랍 속담이 있습니다. “해만 밝게 비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사막이 된다.” 우리들의 삶에 힘들고 어렵고 우울한 날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메마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의 깊이도 없을 것이고 성숙함도 없을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좋은 때와 나쁜 때를 다 경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삶이란 고통과 즐거움, 승리의 패배, 성공과 실패, 산의 정상에 오름과 골짜기의 이르는 것의 연속입니다. 오늘은 삶의 골짜기에 다다랐을 때에 어떻게 처신하여 압력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깊은 골짜기에 처할 때에도, 삶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에도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게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4)



이스라엘에 “죽음의 그늘”이라는 골짜기가 실제로 있습니다. 아주 가파르고 깊으며 좁은 협곡입니다. 정오에만 해가 바닥까지 비췰 뿐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밑바닥이 캄캄합니다. 다윗은 아마도 그가 성장할 때에 양들을 “죽음의 그늘”이라는 골짜기를 통해 양들을 인도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골짜기”란 또한 삶의 가장 어려운 모든 상황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재난의 골짜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더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수7:26)



시편 84편은 통곡의 골짜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시84:6)



호세아는 고난의 골짜기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2:15)



시편 23편 4절에 나오는 골짜기는 히브리 원어의 뜻을 보면 깊은 암흑의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이 깊은 암흑의 골짜기에 처할 때에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암흑의 골짜기에 처하게 될 때에 다섯 가지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Ⅰ. 삶이 역경에 처할 때에 기억할 사항들



1. 역경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살다보면 암흑의 골짜기는 꼭 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아주 어려운 삶의 골짜기에서 막 나오셨을 수도 있고 지금 삶의 골짜기에 처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삶의 골짜기를 향해 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삶의 골짜기는 하나가 지나가면 또 곧바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골짜기가 꼭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아주 실제적으로 묘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16:33)



역경이나 고통은 “만일”이 아니라 “언제” 일어나느냐의 문제입니다. 일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정된 사실이나 문제는 언제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살면서 어려움과 실망 그리고 낙심하게 되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고통과 슬픔과 아픔의 시간이 바드시 있을 것입니다. 좌절과 실패한 피곤한 시간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정상적인 삶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서 놀라지 마십시오.



2. 역경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역경은 계획을 할 수도 없고 시간을 맞출 수도 없고 예정할 수도 없습니다. 역경이란 항상 기대하지 않을 때에 옵니다. 보통은 가장 최악의 시간에 내가 시간이 없을 때에 찾아옵니다. 준비하지 않고 있을 때에 옵니다. 가장 편할 때에 차가 빵구난 적이 있으십니까? 가장 여유가 없고 불편한 시간에 역경이 주로 찾아옵니다. 우리가 역경이 찾아오는 시간을 미리 계획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역경을 대비해서 미리 계획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갑자기 역경이 찾아옵니다.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좋게 시작한 하루가 아주 빨리 아주 나쁜 날로 바뀔 수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전화 한 통화로, 편지 하나 때문에 하루가 불행하게 바뀔 수가 있습니다. 정기 건강 진단을 받은 후에 갑자기 일어난 이상한 사고 때문에 곤란한 하루가 될 수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란 뜻하지 않은 때에 일어납니다. 예레미야 4장20절을 보십시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도다 (렘4:20)



3. 역경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역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면제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삶을 통하여 아무 문제없이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건 악한 사람이건 누구나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시련, 어려움,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들, 우울증과 좌절감이 있다고 해서 당신이 악한 사람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람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서 당신이 악한 사람인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악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선한 사람들에게도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역경이란 공평합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선하고 악한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4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5:45)



우리가 인생의 골짜기 즉 삶의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항상 처음 물어보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께 물어 본다면 “왜 내게 안 일어납니까?”라고 물어 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문제로부터 자신만은 면제되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문제로무터 자신만은 면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나만이 비극이나 손해, 사랑하는 사람을 여의는 일들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라고 물어보는 대신에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천국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은 완전한 것이 없고 여기 저기에 문제와 어려움이 쌓여 있습니다. 선한 사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문제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재난이나 비극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4. 역경이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역경은 항상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우리가 역경 가운데서만 살지는 않습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찌라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평생을 골짜기에서만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골짜기란 우리가 항상 그 가운데만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역경을 당할 때에는 종종 벗어날 길이 없다고 생각을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경이란 터널과도 같아서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터널을 들어가면 결국은 나오게 되어 있어 다시 햇빛을 보게 됩니다. 역경이란 우리 삶에 항상 머물려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역경이란 오면 지나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우리가 어떤 때는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베드로는 인정했습니다. 때로는 아주 어렵습니다. 삶이 힘이 듭니다. 그럴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넘치는 기쁨도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는 천국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문제도 없고 골짜기도 없으며 어두운 날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신다면 바로 당신은 천국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우리가 나이가 여든 살이나 아흔 살이 먹었으며 평생을 문제 가운데서 고통을 당했다 할지라도 그 기간은 우리가 아무 문제없이 수천 백만 년을, 아니 영원히 살 것과 비교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역경가운데 산다고 할지라도 영원과 비교해 보면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고후1:6)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레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받는 환난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가 지나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바울은 말해줍니다. 이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고통은 생산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역경에 처할 때에 올바르게 반응한다면 우리는 분제를 통하여 유익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순간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가 바르게 행동한다면 인생의 골짜기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유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5. 역경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생의 골짜기가 의심, 우울, 절망, 실망이나 패배이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벧전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여 함이라



베드로는 잠깐 근심한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시험으로 잠깐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일어납니다. 역경이란 자연의 장난은 아닙니다.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믿음을 증진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산의 정상에 있을 때를 즐기나 산의 정상에서 믿음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생의 골짜기에서 믿음을 키웁니다. 모든 것이 아주 잘되고 정상적일 때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를 직면할 때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역경을 통하여 믿음이 강해집니다. 하나님을 섬기거나 신뢰하거나 찬양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바로 우리의 믿음이 시험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삶의 좋을 때가 아니라 어려울 때를 통하여 믿음이 자랍니다.



⑴ 어떤 역경이나 목적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고통이나 별로 대수롭지 않은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을 키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어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⑵ 믿음은 인생의 골짜기에서 성숙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편안이나 편리보다도 우리의 성품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삶이 그저 편안한 것에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이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보다는 거룩한 것에 더 관심을 가지십니다. 거룩한 것은 지속되나 행복한 것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린다면 행복이란 거룩함에서 오는 부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신 모든 것들을 우리가 다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외로움을 체험하셨습니까? 물론 체험하셨습니다.

우리도 외로움을 경험하게 됩니까? 반드시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실망하실 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까? 물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을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오해를 받으시고 중상을 받으시며 불공평하게 비난을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을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꼭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하게 됩니다. 골짜기를 통하여 우리의 성품을 성숙시키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고나 비극이 일어나게 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고나 비극이 일어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악이 일어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고나 비극을 선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악을 행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런 악을 사용하시어 우리의 성품을 성숙시키심으로 선한 것이 오게 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골짜기를 반드시 사용하시어 우리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Ⅱ.역경에 처할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23: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1.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워하지 않음”이라는 글을 쓴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이라는 말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은 믿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는 말은 삶의 어려운 골짜기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달려가거나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여유있게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걸어가고 있다는 말은 역경가운데서도 침착하고 여유있게 살아가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윗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침착하게 생각하면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실망하는 것을 거절하십시오. 골짜기를 돌아서, 피해서 갈 수는 없습니다. 골짜기 속으로 갈 수도 없고 위로도 갈 수가 없습니다. 골짜기를 통과할 수만 있습니다. 다윗이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삶의 골짜기에서 자신이 어떻게 하겠다는 자신의 결정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의지로 결정해서 인생의 골짜기에서라도 겁내지 않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지금 현재 실망한 상태에 있다면 실상은 자신이 실망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문제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실망하기로 선택한 것은 압니다. 실망이란 항상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실망하는 편을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하기로 결정합니다. 부정적인 면만을 보기로 선택합니다. 그리스도와 모든 긍정적인 면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들만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부정적인 데서 긍정적인 데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서 올바른 결정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어떻게 하면 실망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가 있습니까? 문제보다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춤으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두 사람이 다 동일한 상황에 처합니다. 혼란과 비극과 위기에 처합니다. 한 사람은 아주 실망하게 되고 다른 사람은 더욱 강건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산산조각이 나고 다른 사람은 더욱 든든해집니다. 그 차이점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상황이 아니라 구세주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골1:11)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사람의 힘은 약해지고 없어집니다. 오랫동안 시련을 겪은 후에는 모든 힘이 다 빠집니다. 더 이상 스테미너가 없습니다. 인간의 견딤은 한계가 있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삶의 역경에 처할 때는 자신의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만 모든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만 모든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삶의 모든 문제들을 다룰만한 힘이 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힘을 능가하는 힘의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런 힘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골짜기에 있을 때에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삶의 골짜기를 결코 혼자 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삶의 어려운 순간을 혼자 걷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43:2)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우리는 물 가운데 잠기지도 않으며 불에 타거나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삶의 골짜기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면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천국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를 내려다 보시며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라고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골짜기에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 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 걸으시면서 “골짜기에서도 인도해 주시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23편 4절에서 언어가 의미심장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셔야 합니다. 시편 23편 4절 이전에는 하나님을 3인칭으로 표현했습니다.



(Psa23:2-3)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he restores my soul. He guides me in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시23:2-3)그가 나를 푸른 초장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그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4절에서 골짜기를 말할 때에는 하나님이 3인칭에서 2인칭 대명사로 바뀝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Psa23:4)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시23: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삶의 역경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직면하게 됩니다. 인생의 골짜기에 처할 때에 갑자기 먼 곳에 계신 것처럼 느껴졌던 하나님이 가장 친밀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을 때는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종교가 인간 관계가 됩니다.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것을 말해줍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기진맥진하여 지치고 방황하며 절망에 사로잡히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말하게 됩니다. 그런가운데서 “네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듣게 됩니다. 우리는 산꼭대기에 있을 때에, 골짜기에 처할 때에 하나님을 직면하게 됩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제일 가깝게 느낍니다.



3.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의존해야 합니다.



다윗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막대기와 지팡이는 목자가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목자는 막대기를 자유 자재로 구사해서 양들을 공격하는 어떤 짐승이라도 보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삶의 골짜기에 처할 때에 “우리를 방어하고 보호하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막대기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오늘날의 목자들은 막대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총을 사용합니다. 옛날 서부 시대에 총을 막대기로 부른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골짜기를 통과할 때, 삶의 어려움에 직면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동정하는 마음과 측은하게 생각하시는 마음으로 하늘 저편에서 앉아 생각만 하시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십니다. 우리가 삶의 절망 가운데서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싸워 주십니다. 영적 싸움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어자이시고 보호자이십니다. 막대기가 바로 이런 것들을 나타냅니다. 지팡이는 긴 막대기로 끝에 검게 칠해 있습니다. 목자는 지팡이를 사용하여 양을 인도하고 편하게 해줍니다. 양이 가까이 오도록 지팡이를 사용합니다. 양이 누웠을 때에 일으키기 위하여 지팡이를 사용합니다. 지팡이를 사용하여 양들을 가까이 오게 합니다. 지팡이를 사용하여 양들을 인도합니다. 골짜기를 갈때에는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시기 위해서 지팡이와 막대기를 사용하십니다. 삶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그늘이 우리로 하여금 겁나게 합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협곡을 통과할 때는 그림자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이 골짜기를 잘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죽음의 계곡을 걸은 것이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비치는 계곡을 걸었습니다. 어느 날, 기대하지 않은 그림자가 우리의 삶에 닥칠 수가 있습니다. 미리 염두에 두고 사십시오. 그림자가 접근해 옴을 경험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닥칠 때에 그림자에 대하여 세 가지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1) 그림자는 항상 실체보다 큽니다.



두려움이란 항상 문제보다 큽니다.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2) 그림자는 우리를 상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림자에 치여 본 사람이 있습니까? 트럭의 그림자와 트럭 실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자란 실체가 없는 형상에 불과합니다. 그림자는 우리를 상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할 수는 있으나 상처를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3) 불빛이 없이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어두운 골짜기를 갈 때는 해가 비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아 가셨다. 내가 홀로 걷고 있다.”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내가 전혀 볼 수가 없고 그러므로 내가 완전한 암흑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항상 다른 곳에 빛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어두운 삶의 골짜기에서 두려워지기 시작할 때에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서 빛을 보기 시작하고 어두움을 등지십시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 볼 때에는 우리 주위에 있는 그림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뒤에 그림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면 괴로우실 것입니다. 자신을 보면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보면 쉼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전적으로 우리의 눈을 돌려 놀라운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렇게 하면 주님의 영광과 은혜 가운데 세상 것들은 이상하게도 그리 큰 가치가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림자를 보지 마십시오. 골짜기를 통과할 때는 빛을 보십시오.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삶의 골짜기를 통과함을 분명하게 나타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병이듭니다. 그리스인들도 비극을 체험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립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경제난에 허덕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가정의 문제가 있습니다. 성도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골짜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인생의 골짜기를 거닐 때에 현저한 차이점이란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림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함께 해 주신다은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