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종진목사 (남서울중앙교회)

인생은 누구나 위기 상황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위기도 있을 수 있고, 또 예고된 위기 혹은 타인과 자신의 부주의에 의해서, 천재지변, 인재, 풍재, 한재에 의해서 이런 저런 위기 상황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특별히 히스기야왕이 즉위한지 14년 만에 앗수르라고 하는 무서운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그 앗수르 왕 산헤립이 185,000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어찌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처한 위기는 크게 나누어서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①대적의 침략으로 인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이 위기는 정말 그에게는 뼈를 깎는 그런 아픔의 위기였습니다. 그 위기에서 피할 길은 아무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앗수르군은 천하를 호령하는 그런 강대국이었습니다.
②공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한 위기였습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이 랍사게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공갈 협박 위협하는 이런 위기에 처했을 때 충신들은 다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간신들만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사야 36:3이하에 보면 서기관 셈나는 국고를 맡은 자인데, 그 국고의 공금을 착복하고 사리 사욕을 취하는데만 급급했습니다. 국난시에 애국자를 알고, 빈곤할 때에 어진 아내를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웠을 때 모든 충신들이 생명을 걸고 국가를 지키고 민족을 보호하고 자기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이러한 마음을 한데 가졌다면 저들의 위기에서 승리의 길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인데, 이런 위기 상황에 엎친데 뒤친 격으로 점점 더 공직자들은 부패와 타락, 사리사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정말 기가 막히고 통곡할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③신앙의 박해로 인한 위기였습니다. 사람이 먹을 것을 주지 않을 때 배가 고프고, 자유를 박탈했을 때 구금을 당해서 부자유스럽게 되는 이런 것은 신앙으로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위기는 신앙의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더 이상 위로 받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신앙을 빼앗긴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난 역경이 있어도 신앙이 있으면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비록 철장 신세를 져도 거기에서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다면 철장 안에서도 천국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궐 같은 집에서 풍악을 울리면서 온갖 진수성찬을 먹으면서도 신앙이 없는 가운데서 어떤 위기에 처했다면 좌절과 절망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은 앗수르의 랍사게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선동을 하며, 최후 통첩장까지 보냈을 때 가슴이 떨리고 원통하여 견딜 수 없는 수모와 함께 고통을 겪은 것입니다. 그래도 일국의 왕인데 이러한 민족의 위기와 신앙의 위협을 받았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상에서 최강대국이 기독교 신앙의 국가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에 오늘날 세계에서 최강대국인 미국이 불교를 숭상하는 국가가 되었다든지 무신론 국가가 되었다면 약소국가들은 어려움을 당해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나라가 가장 강대국이 되어서 미국을 가리켜서 ''국제 경찰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외교로 안되면 군사 혹은 경제로 그 제재를 가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가장 강했던 앗수르가 무신론 국가로서 신앙을 박탈하니까 이 약한 이스라엘 민족이 당하는 어려움을 어디에 가서 호소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위기에 처해 있었던 히스기야였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예기치 않은 이런 위기를 당했을 때에 그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요? 신앙이 없는 사람은 좌절하고 낙심하며 방황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위기를 당했던 히스기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첫째, 하나님의 성전으로 찾아갔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사 37:1) 히스기야 왕은 위기를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히스기야왕은 그 당시에 강대국을 찾아 군사 지원을 호소할 수도 있었겠지만 위기 때에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온 성도 릴레이 심야기도회를 계속하고 있는데, 가정별로 1년 365일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는 이 모습을 하나님이 받으실 줄 믿습니다. 저도 우리 성도들의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복을 기원하면서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가족이 합심해서 기도드릴 때 그 가정은 분명히 하나님의 보장이 있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끊어진 가정은 마치 모터가 나간 공장과 같고, 수도관이 끊어진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생명 떠난 송장과 같습니다. 불꺼진 난로와 같습니다. 기도가 살아있을 때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우심의 손길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포위를 당했지만 무선으로 본부와 교신을 할 수 있다면 공중에서 헬리콥터나 어떤 사방의 큰 힘을 가진 어떤 군사장비로서 적을 쳐부수거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구출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부와 교신이 끊기면 굶어죽든지 포위 당해서 잡혀 죽든지 할 겁니다. 교신이 있으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본부에 지금 어떠한 위기 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아뢰면 되듯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서 하나님과 기도로서 교통을 하면 어떠한 위기도 극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주의 백성을 만나 주시는 곳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소원을 들어주시는 응답의 처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처소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방법은 모든 위기에서 해결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정해진 처소입니다.
사실 이 땅에 많은 빌딩이 지어져도 그리고 많은 위락시설이 지어져도 거기에 인생의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곳에는 어디든지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서 보여준 것은 양식과 물에 하나님의 저주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특별히 사랑한 것은 불교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1200만 성도들의 기도가 있기 때문에 이 땅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습니다.

둘째,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즉각 보냈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것 같지만 히스기야에게 얼마나 귀한 신앙이 무장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강대국에 사신을 보내볼 수도 있습니다. 또 위대한 전술가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연합군을 형성해서 앗수르 군사와 대적하여 그 위기에서 탈출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먼저 이사야 선지자 즉 하나님의 종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에게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가까이 하는 것은 히스기야왕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보려고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펴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해결의 길을 보여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늘 성경을 가까이 하는 생활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미국에 이민 간 교민 한 분이 저를 만나서 이런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두 가지 목적으로 자기 딸에게 성경을 읽게 했답니다. 성경 한 장씩 읽으면 처음에는 돈을 1$씩 주기로 했답니다. 그러다가 10장을 읽으면 10$,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10장을 읽으면 1$을 주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꾸 읽는데, 이 아이가 처음에는 억지로 그 한 장에 1$을 바라보고 읽다가 나중에는 10장에 1$을 주어도 그 재미로 계속 읽었답니다. 그 후 이 아이가 성경을 다 읽고 나서 은혜를 받고 "엄마, 나 돈 도로 내놓을래"하고 돈을 다 내놓으면서 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받아서 그렇게 착하고 기도생활 잘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봉사를 하면서 신앙이 성장한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은 곧 주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펴들고 있으면 하늘 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순간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순간이요, 하나님과의 교신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07:20에 보면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는데 말씀을 보내서 위경에서 고쳐준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묵상하는 중에도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듣는 중에도 그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해주십니다.
여러분, 아직까지 집사된 지 10년, 20년이 되었는데, 성경을 한 번도 못 읽었다면 우리 주님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만약에 어떤 남편이 부인에게 정성껏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것을 그냥 100통 중에 한 20통만 뜯어보고 방에 쳐 박아 놓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그 분이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이겠습니까? 남편이 그 분에게 아낌없이 무언가 맡기고 싶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된 우리는 신랑 되신 주의 말씀을 사랑하면서 이 말씀 한 자 한 자를 읽고 또 읽고 음미하면서 이 말씀을 가까이해야 됩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이 말씀을 내 자신이 읽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해 주어 함께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셋째, 그룹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14-16절) 히스기야는 모든 세계가 다 주의 창조한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그룹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이 사실을 낱낱이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기도입니다. 여러분, 팔 다리가 잘려도 심장이 멈추지 않으면 삽니다. 그러나 팔 다리 이목구비가 다 건전해도 심장이 멈추면 죽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위기 때에 의사가 와서 청진기를 꺼내어 어디에 댑니까? 제일 먼저 심장에 갖다 댑니다. 그래서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고 있으면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심장이 비정상적이면 가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심장과 같습니다. 비록 약점, 허점, 부족한 것, 단점이 좀 있어도 기도가 살아 있으면 그 분은 신앙이 급성장하게 되고, 어떤 위기에서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심장이 건강한 것처럼 기도의 심장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히스기야왕처럼 하나님의 전에 엎디어서 기도할 수 있는 이런 신앙의 자세가 갖추어져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기 전에 결단을 내리지 마시고, 무엇이든지 그 일을 착수하지 마시고, 결단 내리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착수한 일도 기도하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밥을 먹어도 숨을 쉬면서 먹지요. 운동을 할 때도 숨을 쉬면서 운동을 합니다. 옷을 입을 때도 숨을 쉬고, 심지어 꿈나라 갈 때도 숨을 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일을 할 때도 기도하면서 해야 됩니다. 계획을 세울 때에도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세상에서 기쁘고 슬픈 일을 만날 때도 기도하면서 하나 하나 해결해나간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사가 환자의 심장이 건강한 여부를 먼저 보듯이 목회하는 목회자도 우리 성도들의 신앙의 건전상태를 기도생활 속에서 먼저 살펴봅니다. 오늘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의 신앙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살아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결됩니다. 그러나 비록 전후좌우에 완벽한 그리고 모든 것이 다 형통한 가운데 있는 것 같아도 기도가 살아있지 않다면, 기도가 잠들어 있다면 여러분들이 하는 그 모든 일에 보장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