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목사 (대흥장로교회)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한 해라는 것이 별 의미없이, 작년에 떴던 해를 그냥 맞이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이 한해 한해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스포츠맨들에게는 한 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소위 몸 값 때문입니다. 올 해는 내 몸값이 얼마나 될 것인가? 싸게는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도, 학벌이 출중한 사람도, 운동을 잘 하는 사람도, 잘생기고 멋있는 몸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들도 그 몸 값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천만달러에도 못하겠다는 스포츠맨들도 있고, 어떤 분은 밥만 먹여주어도 열심히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 값은 얼마나 되십니까? 최소한 우리의 몸둥아리 가운데서 장기만으로도 약 50만불의 가치는 있다고 말합니다. 눈 하나에 10만불, 쓸개, 신장등.... 이것을 우리는 소유가치라고 말합니다. 잘 생겼다는 것, 키가 크다는 것 때문에 그 소유가치가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탈북한 분이 이제 마지막 수요일에 간증해 주시겠습니다만, 어떤 분의 글을 읽어보니까, 이북생활 중에 하도 배가 고파서 닭주는 모이콩을 먹다가 간부에게 걸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죽도록 맞았는지, “세상에 인민공화국에서는 인간이 닭보다 못해서, 닭은 먹어도 되고 인민은 먹으면 안됩니까?” 그랬다가 아예 쫒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왕년엔 쬐금 값어치가 나갔었습니다) 아마 키만 1센치만 더 컸어도 값어치가 조금 더 나갈수 있었을텐데 ....(소유가치) / 사람에게는 또한 능력의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가치가 높아집니다. 농구공을 잘 집어넣고, 야구공을 잘 던지고, 노래를 잘 하는 것....이 모든 것은 능력의 가치입니다. 수천만불도 호가합니다. / 사람에게는 희귀가치가 있습니다. 희귀한 모습, 평범하지 않다는 것 때문에 가치를 높이 평가 받습니다. 예술가의 작품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동전도 지폐도 잘못된 인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몽양이라는 것 때문에 값이 부르는게 값입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65억인구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희귀성가치)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에 여러분 개인의 몸값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내적 가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 가치입니다. 그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이루어주신 영적 가치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그 값어치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몸값, 외모, 지식, 능력 이 모든 것은 잠깐입니다. 순식간에 다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우리에게 참된 가치는 소유가치가 아니라, 능력가치가 아니라, 희귀성가치가 아니라, 영적 가치입니다. (우리의 결혼반지가 왜 소중합니까? 돈으로 따지면 500여불정도겠지만, 절대로 팔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결혼 서약과 더불어 아내와 남편의 사랑과 서약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 결혼반지를 돈으로 이게 순금 10돈짜리인데.... 다이아몬드 5캐럿짜리인데.... 모자란 사람입니다. 참된 가치는 그 의미입니다) 우리의 영적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우리의 영적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괜챦습니다. 온통 세상은 소유나 능력의 가치로서만 몸값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영적 가치”로 계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값에 견줄 수 있는 ,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한 존재”가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잠언 30장을 보면 “지혜자 아굴”의 잠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굴은 어떤 인물인지, 또, 그가 가르친 “ 이디엘과 우갈”이 누구인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솔로몬의 주위에 있었던 한 지혜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지혜자 아굴은 고백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라고 고백합니다. 쉬운 의미로는 “개만도 못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총명이 없기 때문에.... 3절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지식은 무엇이고 지혜는 무엇입니까? 지식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사물을 터득하고 공부함으로 점점 쌓아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는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력은 아무것도 없는데, 지혜가 충만한 분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에서 지혜와 지식이 없는 것을 4절에서 “6개의 질문 문장”으로 묻고 있습니다. “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으는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 하나님을 아는 것, 창조주를 아는것, 그 교훈과 말씀을 새겨,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의 기준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치가 변화된 자의 두 가지 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새롭게 시작하면서 “소유, 능력의 가치”가 아니라, 영적 가치자로서 아름다운 기도와 간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허탄과 거짓을 멀리 하게하소서(8)

인생의 참된 가치를 위하여 지혜자 아굴이 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7-8절에 “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거창하잖아요. 평생 목숨걸고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평생 소원입니다. 이 기도만 이루어진다면, 저는 행복합니다...라는 것입니다. “평생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통일입니까?) - 이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 주시옵소서. (시므온과 안나의 평생 소원이 있었습니다. 평생 메시야를 만나는 것 )
그 중의 첫째가 8절에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우리 인간의 가치를 소유나 능력으로 평가하면 조금 허탄하면 어떻고, 조금 거짓말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정말 구할 만한 것이 있다면 “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쟎아요? 요한일서2:15-16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우리가 구하는 것들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뻐보이고 멋있게 보이고 화려하게 보이려는 것)들이 아닙니까? 지혜자는 인생의 참된 가치가 “내적 가치요, 영적 가치”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구하는 것은 허탄을 버리고 거짓을 내게서 멀리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1) 허탄은 거짓된 행복의 겉모양들, 헛된 기대들을 가리킵니다.
허탄한 것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웨” (메마른것, 소출이 없는 , 열매가 없는 허무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평생을 살고서 하나님 앞에 갈 때에 가져갈 것이 없는 인생이 허탄한 인생입니다. 솔로몬은 평생을 살면서 그가 고백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점1:2-3) 영적 가치를 깨닫고 살아가는 자에게는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평생 헛된 것만을 구하는 인생이되어, 올해에도 우리가 땀도 흘리고 눈물도 흘리고 열심히 뛰어갔는데, 헛된것 허탄한 것 뿐이라면 “욕심”의 길 뿐이라면 너무 억울한 인생일 뿐입니다. (1) 허탄한 눈을 버립시다. 보이는 것에 빠지지 맙시다. 세상적인 것에 현혹되어서 “신기루”를 향해 달려간다면 헛된 안목의 정욕일 뿐입니다. (2) 허탄한 말을 버립시다. 가장 허탄한 말은 쓸데없는 자랑입니다. 사람들을 힘들게하는 말들, 유익이 되지 않는 말들을 버립시다. (3) 허탄한 꿈을 버립시다. 일확천금! 특별히 올해에는 “황금돼지의 해” 그래가지고 쓸데없이 황금돼지를 꿈꾸지 마시고.... 새벽 이슬과 같은 청년의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지혜자는 거짓을 버리도록 기도합니다. “카자브” 이 말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세상은 정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직한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뻔뻔한 세상이 되어버렸는지 몰라요... 당장에 들통이 나도 대통령부터 “안했습니다. 1전도 안 먹었습니다.” - “모르겠습니다...” 스몰비즈니스를 지난주에 돌아보며 축복했습니다. 이민생활속에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이 정말 힘들게 살아가요.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순교를 각오해야만 정직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한 해동안 정직한 한 해가 될 수 있는 차원높은 기도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죄를 범한 후에 시편 51편에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 하나님이여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직의 회복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회개입니다.
시편11:7 -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기뻐하시고 정직한 자에게 주신 특권이 주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는 축복입니다. 시편 33:1에서 “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노래는 어떤 사람이라도 부를 수 있지만, 찬송은 정직한 영을 가진자에게 주신 특권이며 마땅한 바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11:1에서 다윗은 성회를 가리켜 말하기를 “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교회를 다른 말로 정직한 자의 모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제리 화이트(Dr. Jerry White)분이 쓴 “Honesty, Morality and conscience" (정직, 도덕 그리고 양심)이라는 책에서 정직을 4가지로 분석해서 말해줍니다.
(1) 일반적인 정직 -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정직이라고 말하는데, 이게 바로 일반적인 정직개념이다.
(2) 법률적 정직 - 정해진 법을 잘 지켜나가면 정직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남의 것 도둑질 안하고, 사기 안치고, 남의 돈 안 떼어먹고, 교통법규 잘 지키면 정직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3) 내면적 정직 -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따라서 스스로 양심을 깨끗하게 지켜가는 것을 정직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법이 허용한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의 양심 기준이 있어서, 정직을 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4) 성경적 정직 - 사람 앞에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기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화 안에서 하나님 앞에 정직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준이 되어서, 내가 세운 양심적 기준의 정직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직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고 지켜나가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서 죤스라는 구약학 박사 , 세계적인 학자가 계시는데, 이분이 식사를 하면서 이런말을 해요. 스콧트랜드에서 나온 자랑할만한 제품이 2가지가 있습니다. (1) 장로교이고 (2) 골프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정신이 비슷합니다. 모든 스포츠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지만, 골프는 나를 상대로 정직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 골프공을 툭차고, 속이고..., 볼을 잊어버리면 슬쩍 내려놓고 그렇게 성적이 좋으면 무슨소용이 있어요...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 코람데오의 마음 -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한해가 됩시다. 항상 언제든지....


2.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여주시옵소서...

지혜자 아굴이 목숨을 걸고 평생 소원으로 기도한 두 번째는 “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8-9절)
세상의 몸값으로는 높은것 많은 것이 좋지만, 영적 가치로 볼 때에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말고 “일용할 양식,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주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기에, 지혜자 아굴은 “평생의 기도 제목”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필요한 양식”은 원어적 의미는 “ 내 분깃의 양식을 내게 먹여주시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남의 분깃에 손을 대지 않고, 내 분깃을 빼앗기지 않고 먹고 누릴 분깃입니다. 시편128편에서 “네 손이 수고한대로 네가 먹을 것이라...” 수고의 댓가만큼 먹을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가난하면 가난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도적질하거나 죄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난하게 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부요하면 부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물질에 매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 누구냐? 내 힘으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할까봐 부요하게도 말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Daily Bread) 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기도하기를 “3천만원을 내 손에 주소서” 그러면, 평생 소원이 없습니다. 혹시 안들어주실까봐 서원까지 하였습니다. 만약에 현찰 3천만원을 내 손에 주신다면 1000만원은 병든 사람을 위해서, 1000만원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500은 제가 쓰겠고, 나머지 500은 하나님 앞에 감사헌금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조카가 하도 가난하고 불쌍하니까, 그에게 3천만원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서원까지 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1000만원은 병든 사람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에게 주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모두가 의료보험이 있고, 천만원이 필요한 병든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아요. 가만히 보니까, 자신이 몸이 다 아프고, 병들고, 쑤시고, 결리지 않은데가 없어요. 그래서, 약속대로 병든사람을 위해서 제 자신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그리고 , 1000만원은 약속대로 가난한 사람을 주려고 찾아보니까, 주위에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은 없어요. 집도 없고 자기가 아무리 봐도 제일 가난해요. 그래서 자기를 위해서 썼습니다. 그리고 500은 원래 자기것이고, 나머지 500은 감사헌금으로 드리려고 하는데, 하나님 제가 언제 드리겠다는 약속은 안했쟎아요. 후에, 이것으로 더 많이 벌어서 드릴께요...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다 썼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주간 특별새벽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디모데전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마지막 결론에서 바울은 “돈은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딤전6:17 “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하시는 하나님께두라”고 말씀합니다. 돈이 나쁜것이 아니라, 돈이 자칫 잘못하면, 그것 때문에 죄 지을 수 있고, 그것 때문에 교만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에 대하여,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8:12-14절에 “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창세기 28장 20절 말씀에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우리의 나그네의 삶에 평안히 본향으로 가게 하옵소서.... 이게 우리의 기도제목이어야 해요. 나그네의 삶은 매일 수십가마 쌀을 짊어진것보다 큰 축복은 일용할 양식과 만나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세상적인 몸값으로 계산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우리의 몸값은 그리스도의 피값에 해당하는 영적 능력입니다. 세상사람이 몰라줘도 실망하지 맙시다. 분명한 소원은 본향에 가는겁니다. 진실하게 가는 길,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마시고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주소서... 지혜로운 삶이 이루어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