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가 그칠 때  (수 5:9~12)


제가 매월 구독하는 책으로 교회성장이라는 목회 월간지에 주로 성공한 목회자와 큰 교회 이야기가 나오지만 가끔씩은 개척의 현장에서 눈물 뿌리는 개척교회의 목회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읽으면서 지난 날 나의 개척 목회를 도우시고 함께 하신 은혜를 되새기며 감사하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이번 12월호에는 양성교 목사님이란 분의 “개척교회의 짜릿함”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개척 2년 된 교회로서 아동부 15명, 장년 25명이 모이는 교회라고 합니다. 툭하면 월세가 밀려 주인에게 건물 비우라고 협박을 당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월 사용료를 못 내 문을 닫게 된데다가 얼마 안 되는 재정을 관리하는 집사의 실수로 어려움을 당하는 등 힘겨운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급기야 교회 문을 닫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해서 난생 처음 목회현장을 떠나 노동현장으로 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일을 해 몇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갈등과 눈물 속에서 많은 날들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개척을 시작한 지 꼭 2년이 되었는데 그 분의 고민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감격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단 위에서 외쳤던 짧은 담임목사의 선포를 그대로 들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물질보다는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가슴 뜨겁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들에게 겨울은 하나님의 말 없는 돌보심을 통해서 경험한 따뜻함이었고 서로를 부둥켜 안을 수 있는 넉넉함이었다… 지금도 빚이 있고 매월 말일이면 임대료를 놓고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교회 속에서 보낸 첫 해의 겨울을 잊지 않고 있다. 교회는 사람들의 운영과 물질로 되어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지켜짐을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신 광야에 도착한 때부터 먹기 시작한 만나는(출 16:1-4) 그들이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은 다음 날부터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지난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만나는 미나리과에 속한 깟씨같이 생겼고 흰 색으로 맛이 꿀 섞은 과자의 모양같이 생겼습니다. 만나는 밤에 이슬같이 내렸고 새벽이면 한 오겔 씩 거두어 그 날 그 날 먹게 하셨습니다. 만나의 의미는 “이게 웬 떡이야”라는 물질적인 의미와 “이게 웬 일이야”라는 사건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먹는 은혜의 양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을 이 만나를 매일같이 먹었으니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겠습니까? 저는 토종 한국 사람이라 외국에 가도 된장찌개와 김치찌개가 그립습니다. 이 음식을 먹어야 밥을 먹은 것 같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은 성지순례 갔다가 터키 음식을 한 끼 이상 못 먹어서 탈진하여 쓰러졌습니다. 같이 동행했던 제가 한식당이 있는 이WM밀에 나가서 컵라면을 구해 오고 밤이면 김치찌개를 얻어오니 그것 먹고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가 끊어졌을 때 마치 생명이 끊어진 것처럼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염려와 불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만나가 그쳤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 것은 아닌가 하며 불안해 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 땅에 소산물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나가 그칠 때 주님께서 준비해 두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첫째, 준비해 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 22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시고는 수풀 속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함께 제사드릴 수 있도록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결코 허락지 않으시며 시험 당할 즈음에는 피할 길도 준비해 놓으십니다. 요즘 만나가 그친 가정이 있습니다. 만나가 그쳐서 힘들어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동안 평생직장인 줄 알고 다녔던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하셨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들이 있습니다. 잘 되던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나에게 만나가 그친 것 같은 아픔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만나가 그쳐진 날 하나님은 그 땅에 소산물을 이미 준비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아 도망 간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재미있게 살던 가정에 위기가 왔습니다. 동생은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하여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도망했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졌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하는 야곱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홀로 남은 아픔과 쫓기는 불안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의 답답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꿈에 사닥다리가 땅으로부터 하늘로 연결되었는데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음성을 들은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 하였도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는 야곱의 신앙고백입니다.

야곱은 난생 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고 가정을 떠나고 고향을 떠난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만나가 그친 것 같은 아픔을 경험했다면 야곱은 이미 와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미래를 보장해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체험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만나의 그침은 준비해두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둘째, 만나의 그침은 하나님의 섭리의 성취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별다른 변화 없이 계속 만나를 내리신다고 할 경우 표면적으로 볼 때는 대단히 유익한 것 같지만 발전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도 안 하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게을러지고 나태하여 삶을 무책임하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을 우리 인간들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힘써 수고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먹도록 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3:6-12)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만나를 내리셨지만 범상한 상황에서는 만나를 거두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퇴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만나가 그친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일상적인 섭리로써 분명한 인도하심을 받으며 지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고기 잡던 배가 좌초되었습니다. 생존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파도에 밀려 인적 없는 작은 섬에 당도했습니다. 궁지에 빠져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고 다른 배가 보이지 않을까 하고 날마다 지켜보았습니다. 어설픈 오두막을 하나 지어서 좌초된 배에서 건진 물건 몇 가지를 가지고 들여다 놓았습니다. 어느 날 먹을 것을 찾아 나서다가 오두막에 불이 나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슬퍼서 어절 줄을 몰랐습니다. 오두막이 금세 재로 변했습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배 한 척이 다가왔습니다. 섬에 고립되었던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구하려 왔을까 물었습니다. 선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낸 연기를 보았습니다.” 나 홀로 섬에서 버림을 받은 것 같았지만 , 겨우 지어놓은 집이 불이 나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만나가 그친 것 같은 아픔이 있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깊은 인도하심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만나가 그친 것 같은 아픔이 있습니까? 버림 받은 아픔이 있습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만나가 그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출처/김명섭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