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한 교회의 기도 (본문 딤전2:1-4)


영감의 사도 바울은 그의 믿음의 아들된 디모데에게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목회교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2장 초반부분은 교회가 공중예배시 행할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Ⅰ. 교회는 모든 사람, 곧 일반인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2장 1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간구’는 특별한 경우를 위한 애원입니다. ‘기도’는 일반적인 모든 기도이고, ‘도고’는 남을 위한 대신 기도이고, ‘감사’는 기도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공중예배시 교회가 하나님께 올릴 기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기도의 범위가 ‘모든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을 보면 ‘모든 사람’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딤전 2:1, 2, 4, 6).
이 말은 사실상 우리 선교의 대헌장이고, 우리 기도의 전 범위와 내용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딤전 2:4). 중보자이신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딤전 2:6).
그렇다면 여기 ‘모든 사람’이 만인구원설을 가리키는가? 아닙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의 주권적 언약 아래 예정되고 선택된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지역’ 안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한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예수에게 주어진 ‘모든 권세’는 19절의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자에게 해당됩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에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에서 ‘온 백성’은 마태복음 1장 21절의 ‘자기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 예수의 ‘자기 백성’은 시간적으로 ‘모든 시대’에 해당되고, 지역적으로 ‘모든 지역’ 곧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입니다. 그리고 인종적으로 ‘모든 사람’ 곧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입니다(갈 3:28).
바로 예수께서 올린 그의 대제사장적 마지막 기도에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한 사실입니다(요 17:9). 주님의 기도에는 ‘아버지의 것’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것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것들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요 17:6-11). 이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다시 예수께서는 온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7:20). 저들은 모두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선택). 그 아버지의 것을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는 다 예수에게로 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사람들을 예수께서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6:37-39).
그러므로 저 시온산에 이르는 상징적인 수인 14만 4천인 된 구원인을 가리켜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하였습니다(계 7:9, 7:4, 14:1).

그렇다면 본문의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작정된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떠한 사람이든지,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지혜로운 자나 무식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농부나 어부나 주인이나 종이나 차별이 없는 모두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교회가 받은 기도의 범위와 대상은 전 우주적이라는 사실입니다.


Ⅱ. 그 ‘모든자’ 중에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분문 2장 2절에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란 사실상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위정자 급에 있는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저들이 백성을 위하여 받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하였습니다(딛 3:1). 베드로전서 2장 17절 하반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이 세상에서 악을 제지하고 선을 포장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운 방백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14-15).
그래서 초대교회는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한 사실을 여러 기록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저들은 여러 위정자들이 기독교를 박해할 때, 그 압제 아래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위정자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터툴리안(Tutrullianus)은 ‘그리스도교가 황제를 위하여 그의 장수와, 안정된 통치와, 안정된 가정과, 충신(忠信)한 신하와, 의로운 백성과, 평화스러운 세계’를 위하여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키프리안(Cyprian)은 통치자 데메트리아누스(Demetrianus)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우리 교회는 당신의 평안과 안전을 위해서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께 제사(기도)를 드리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주후 311년에 황제 갈레리우스(Galerius)는 기독교도들에게 기도를 요구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면 은혜와 특권을 부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타티아누스(Tatianus)는 ‘황제가 우리에게 공물을 바치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기꺼이 바치자. 지배자는 우리에게 봉사할 것과 예속할 것을 요구하는가? 그렇다면 봉사와 예속을 인정하자. 그러나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경을 받아야만 되고, 참으로 인간이 숭상할 대상은 하나님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회는 죄가 되지 않는한 이 세상 왕국에 속한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된다고 한 것입니다.
안디옥의 데오필루스(Theophilus)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황제에게 주는 영광은 보다 큰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참다운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예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황제도 하나님께로부터 임명받은 자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황제에게 호의를 가지고 그를 따르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자는 황제에게 참다운 영광을 돌려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그의 황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황제께 돌리는 참된 영광이라고 한 것입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e)은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고 있는데,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당신에게 봉사하겠소. 임금들과 지배자들을 승인하고, 그들의 왕의 권력과 더불어 순수한 예지를 갖고 있는 자라는 것이 실증되도록 기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황제를 위한 기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기록을,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편지 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주후 90년경으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의 핍박이 사람들의 마음에 그대로 살아 있을 때였습니다.
‘주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우리들의 지배자나 위정자들에게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당신께서 저들에게 주신 통치권이기 때문에 저들을 따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님이시여, 건강함과 평안함과 조화 그리고 안정을 그들에게 내려주소서. 그것은 당신께서 주신 나라 일을 그들이 실수없이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주님이시여, 모든 시대를 다스리시는 우리의 임금이시여, 당신께서는 인간의 자손들에게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영광과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시여, 그들의 생각을 인도하시어 당신 보시기에 선하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하여 주소서.
저들(위정자)이 당신께서 내려주신 힘(통치권)을 평화와 관용 속에서 사용하게 하시어 당신 보시기에 선하고 만족스럽게 함으로, 그로 말미암아 저들이 당신의 총애를 받게 하소서.

오 주님이시여, 당신만이 이러한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대제사장이시며, 우리 영혼의 수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이나 모든 시대에도 영원토록 영광과 주권이 당신에게 있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 왕국을 통치하는 권위를 가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언제든지 교회가 맡은 중대한 의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심지어 교회는 교회를 박해하는 자들까지라도 위하여 기도함으로, 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하도록 해야 합니다.

Ⅲ. 그렇게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1. 교회가 신앙과 생활에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장 2절 하반절에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말합니다. ‘단정’은 사람들을 관계하는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신앙생활과 전도(선교)생활을 잘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라의 평안은 교회의 영적 성장에 유익이 된다는 말입니다. 나라가 평안할 때 각종 예배 생활이나 봉사나 사랑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전도와 종교생활을 할 수 있어 교회가 부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장 3절에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특별히 위정자들과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나누어주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곳으로 좇아가는 기도에서 자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택자 구원운동의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기도, 특별히 모든 사람과 나라를 위한 기도는 복음전도 운동과 세계종교운동에 필수적인 수단이 됩니다. 전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운동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감의 사도 바울은 지금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교회의 공적 기도를 말씀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교회는 예배 중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큰 이유는 교회가 평안 중에 신앙생활을 하기 위함이며, 또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더욱이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필수적인 교회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교회의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나라가 평온하지를 못하면 교회가 받은 영적 즐거움이나 선교사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애국이라든가 애족, 애민, 애국사상, 애국정신 등의 말은 사실상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기독교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일제 식민 36년 동안 교회가 평온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박해와 시련 속에서 순교자를 내고, 신자 수가 프로테스탄트의 경우 70만에서 그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또한 6.25사변으로 말미암아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하였을 때, 교회가 평온할 수 없었음을 경험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의 군부공포정치 어간에 교회는 알게 모르게 압제를 받아 평온하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2000년을 받으면서 우리 생에서 최고의 복된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북한이 평화로 가보자고 합의한 6.15선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경제구조 조정의 개혁이나 여러 가지 정치적 불안 때문에 진통을 앓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가 만난 이 진통의 진상을 낙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큰 이유는, 우리 민족은 이보다 더한 온갖 죽음의 시련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극적인 구원과 섭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백성들에게는 온갖 죽음의 시련을 극복하는 인내와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구속사의 경륜 가운데서 21세기 세계선교를 주도할 축복을 한국과 한국 교회에 주셨다는 확실한 이유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 땅에는 1000만이 넘는 기독 신자들이 나라와 백성과 교회를 위하여 올리는 기도가 있는 나라입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잠정적인 세상 나라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선교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주일마다 모여서 드리는 교회의 공기도가 있습니다. 삼일기도회,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그리고 여러 종류의 특별기도, 가정기도, 개인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백성이 있는 나라는 망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특별히 위정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나라는 결국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이 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출처/석원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